평등주의 사회는 없다(기계들의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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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oos
작품등록일 :
2020.08.0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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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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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범 사냥꾼들의 밤(1)

DUMMY

하칼 일행이 산 중에서 만난 두 사람은 범 사냥꾼들이었다. 중년 남성의 이름은 호섭이었고 성은 최 씨였다.


청년의 이름은 인림이었고 성은 김 씨였다. 둘은 부자 사이는 아니었다. 호섭은 산골에서 태어나 우연한 계기로 잡게 된 호랑이의 가죽을 내다 팔며 주변에 범 사냥꾼이라고 소문이 났다.


처음에 그는 이 사실을 몰랐다. 그러다 산 아랫마을에서 그에게 범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소문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당연히 이 부탁을 거절하며 자신은 범 사냥꾼이 아니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설명하고 돌려보냈지만, 소문은 그의 해명보다 천배는 더 빨랐다.


마치 산불처럼 번진 소문은 산 너머의 마을에서도 부탁해 올 정도로 퍼졌고 일 년이 지나자 가까운 도시인 철원에까지 소문이 나며 철원 도호부사의 귀에 들어가 결국 도호부사가 직접 그를 찾아오자 더 거절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스승님은 지금까지 사십 년을 넘게 범 사냥꾼으로 전국을 돌아다니시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소문을 듣고 스승님처럼 범 사냥꾼이 되기 위해 따라다니는 중이고요.”


인림이 말했다.


“그렇군요.”


하칼이 대답했다. 스승인 호섭과 제자인 인림은 갑자기 나타난 하칼 일행들 때문에 일찍 이날 사냥을 끝냈다.


화약 냄새와 묘한 짠 내를 풍기며 다닌 탓에 산짐승들이 죄다 도망갔다.


그들은 임시로 사용하는 사냥꾼의 오두막(산중에 지어져 사냥꾼들이나 심마니들이 산에 올라왔을 때 사용하기 위한 곳)으로 돌아가 저녁을 준비했다.


“아 참!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은 금강산이라고 조선에서는 꽤 유명한 산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범이 있다 하여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죠. 이런 곳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몽국에서 오신 군인들이라니!”


인림은 어찌나 들떴는지 쉴 새 없이 말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스승인 호섭이 극히 말수가 적은 자였다.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누구냐고 물어본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움직이기만 했다.


인림은 그 이유가 자신이 제자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혼자서만 범 사냥을 다녀서 그렇다고 했다.


“금강산이라...저희가 조선 지리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러는데 금강산에서 백두산까지는 얼마나 멉니까?”


하칼이 물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단서가 없는 거구귀를 찾는 것보다 백두산 부근에 있는 차프트 역으로 가 아이들을 찾는 것이 더 빠르리라 생각했다.


“백두산이요? 한참 가야 할 텐데요. 보름은 걸릴 겁니다. 산길로 갈 수는 없으니 산에서 내려가서 그곳에서부터 가야 하니까요.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대도시로 나가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말은 얼마나 하나요? 아니면 대도시는 먼가요?”


“군인들이시니까 말을 타고 가셔도 됩니다. 아마 몽령님에게 가시면 내어주지 않을까요?”


“몽령이 누굽니까?”


“몽령님이요? 아! 정확히 이야기하면 몽령 감사님들입니다. 말 그대로 자치정부 소속의 관료입니다.”


“그럼 자치 관료 말고도 따로 있나요?”


“네, 어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의 왕과 주요 관직들은 모두 개편이 되었는데 지방 관직들은 그 관직을 그대로 살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저 몇 개의 관직을 추가했을 뿐이죠.”


“아...그렇다면 아까 말한 도호부사는 옛 조선부터 있던 관직인 것이군요.”


“네, 맞습니다.”


“복잡하군요...이렇게 복잡하면 불편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옛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이나 개성같이 커다란 도시가 아니면 그리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몽령 감사는 각 지방의 관료들을 관리하는 직책이기 때문에 사실 백성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될 일이 많이 없거든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어디인가요?”


“음...통천이나 고성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희는 강원도 감찰사님께 직접 고용되어 고성을 통해 이곳으로 올라왔습니다. 통천 군수님은 좋은 사람이시죠. 그분이 호랑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마을 주민들을 생각해 강원도감찰사님께 호랑이를 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호랑이를 잡는 것이 뭐 그리 복잡하답니까? 인간에게 해가 되는 동물이지 않습니까?”


하칼이 물었다.


“아닙니다. 산짐승들은 지정된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임의로 죽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짐승은 산을 벗어나지 않죠. 하지만 이번에 한 늙은 범이 사람고기에 맛을 들여 산에서 내려와 귀신처럼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다섯 살이 안 된 어린아이들의 고기만 먹는 아주 흉악한 놈이지요.”


“그것참 무섭군요...”


“맞습니다. 특히나 이번 놈은 그 몸집이 어마어마하답니다.”


“그렇군요.”


하칼은 사람 수가 갑자기 늘어나 오두막 안에서 음식을 할 수 없어 밖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보며 대답했다.


불길은 이리저리 일렁이며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제 저녁이 거의 다 되었으니 조금 이르지만 먹는 게 좋겠습니다.”


인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혹시 거구귀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요?”


“거구귀요?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하칼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을 손질하고 있던 트러스티를 봤다. 그녀는 검신뿐만 아니라 검의 손잡이와 검집 구석구석 껴있는 먼지와 검게 변한 피딱지들을 떼어내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희 실프 상단이 조선에 들어와 있기는 합니다. 한양과 평양 그리고 제주와 백두산 차프트 역에요. 뭐, 차프트 역은 엄밀히 따지자면 조선 땅은 아니니 빼고 센다고 하더라도 세 군데에 있죠.”

“그럼 세 군데 중 한 군데만 도착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한양은 옛 조선의 수도이기 때문에 가장 크고 인구가 제일 많은 곳이죠.”


“평양은요?”


“그곳에는 지금 몽제국이 만든 자치령 사령부가 있습니다. 최근에 엄청나게 커지면서 한양과 비슷할 정도로 성장했죠.”


“그렇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주는 섬입니다. 남쪽에 있죠. 헌데 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요?”


“네, 제가 몇 년 전 아직 당주가 되기 전에 실프 상단의 모든 지부를 다 둘러봤습니다. 그때 조선 제주지부를 갔던 적이 있죠. 한양과 평양은 정말 조선, 그자 체의 멋과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참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주는 달랐습니다. 제주와 남쪽에서부터 동쪽 바다까지 펼쳐진 크고 작은 섬들은 자치령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치령이 아니라고요?”


“네, 그 섬들은 몽제국 군대 소속되어 제주를 기점으로 중무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뱃길을 통제하는 것이지요.”


“뱃길을 통제한다라...”


“마치 조선을 고립시키려는 것처럼 외부와의 연결을 거의 차단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절대로 배를 타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엄청나게 까다롭습니다. 출발지는 물론이고 소속과 목적, 내용물 등을 다 알려야 하고 심지어 다시 돌아가는 날도 정해야 합니다.”


“그것참 이상하군요.”


“네, 그래서 차프트로 백두산 역까지 간 후 그곳에서부터는 기차와 사람을 동원해 평양과 한양으로 물자를 나르고 있습니다.”


“그럼 한양이나 평양이 여기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습니까?”


“아뇨, 그때는 그저 빨리 모든 지부를 돌아야 한다는 마음에 조선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때 산책하러 나갔던 샬롭이 돌아왔다.


“대장”


그는 하칼을 불렀다.


“산책은 잘 다녀왔냐?”


“산책이 아니에요.”


“산책이 아니면?”


“경계죠.”


“설마...너 주변에 폭탄 설치하고 왔냐?”


“당연한 걸 왜 묻습니까?”


“진짜 대단하다...”


샬롭은 말을 마치고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뒤 인림이 자신의 스승인 호섭과 주민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호화스러운 만찬은 아니었지만, 산에서 잡은 토끼와 산 아래에서부터 가져온 채소들로 맛을 낸 따뜻한 스튜는 조금 썰렁했던 산 공기에 으슬으슬함을 몰아내 주었다.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해지자 산새 소리는 그들에게 자장가처럼 다가와 안정 지켜주었고 살랑대는 바람은 나무와 꽃 그리고 흙냄새를 가득 싣고 그들을 어루만졌다.


인림은 오랜만에 대화가 가능한 상대를 만나 신이 나서 지금까지 못다 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지는 이제 막 삼 년 차가 되었다. 범 사냥은 꽤 많은 보수를 받았다.


특히나 숙련된 범 사냥꾼인 호섭은 덫이나 올가미를 쓰지 않고 범이 지나다니는 곳을 찾아 몇 날 며칠이고 조용히 숨어 있다 범이 나타나면 기다란 엽총으로 정확히 범의 이마를 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방법은 잡는 데에는 큰 위험과 시간을 동반했지만, 가죽을 손상시키지 않고 온전하게 얻을 수 있었다.


몽에게 점령당한 후 무차별적으로 산짐승들을 죽일 수 없게 되자 호랑이 가죽은 그 값어치가 엄청나게 오르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호섭은 아까 전 그 자리에서 새벽부터 가만히 기다리던 중 갑자기 나타난 하칼 일행들 때문에 철수해야만 했다.


“미안합니다.”


하칼은 오두막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 호섭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꼭 사과할 필요는 없었지만 도움을 얻어야 하는 입장으로써 굳이 불편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호섭은 인림의 말처럼 말수가 극히 적은 사람이었다. 하칼의 사과에도 그는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하칼은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지 않을 마음으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너희들 정말로 범이 아니나?”


호섭은 하칼이 오두막을 나가기 직전 입을 열어 그의 발을 붙잡았다.


“어딜 봐서 우리가 호랑이라는 건가요?”


“범은 말이야, 영물이야. 오래 살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할 줄도 알게 돼”


“저희는 범이 아닙니다. 누구를 찾기 위해 몽에서 온 사람입니다. 근데 말투가 특이하시군요?”


“...”


호섭은 진지한 표정과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강원도 특유의 억양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호섭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하칼은 인사를 하고는 이미 오두막 안에서 곯아떨어진 주민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왔다.


밤이 되자 낮과는 전혀 다른 새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가볍고 자지러지는 새소리가 아닌 낮고 울리는 새 소리가 들려왔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작은 동물들과 벌레들이 움직이며 사각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샬롭과 인림은 모닥불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등을 나무에 기대고는 이른 잠을 청하고 있었고 트러스티는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별을 구경하는 거냐?”


하칼이 트러스티에게 다가가 물었다.


“뭔가 익숙한 상황이군요.”


트러스티가 웃으며 말했다. 로아는 그녀의 옆에 누워 천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조선은 하늘이 참 맑구나...”


하칼의 말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위협적인 소리에 끝을 맺지 못했다.


하칼과 트러스티는 즉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절대 큰 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작고 신중한 소리였다. 소음이 거의 없는 산 중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소리가 난 곳에는 공중에 떠 있는 두 개의 노란 불빛이 춤을 추듯 천천히 일렁이며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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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4화. 세상이 꾸는 악몽(1) 21.06.27 43 0 11쪽
93 93화. 이상자의 이상(2) 21.06.24 38 0 11쪽
92 92화. 이상자의 이상(1) 21.06.20 37 0 12쪽
91 91화. 섬 이에 21.06.17 36 0 11쪽
90 90화. 몽-002 21.06.13 40 0 13쪽
89 89화. 접신(10) 21.06.10 43 0 13쪽
88 88화. 접신(9) 21.06.06 42 0 12쪽
87 87화. 접신(8) 21.06.03 39 0 12쪽
86 86화. 접신(7) 21.05.30 49 0 13쪽
85 85화. 접신(6) 21.05.27 44 0 11쪽
84 84화. 접신(5) 21.05.23 47 0 12쪽
83 83화. 접신(4) 21.05.20 45 0 11쪽
82 82화. 접신(3) 21.05.16 39 0 12쪽
81 81화. 접신(2) 21.05.14 41 0 12쪽
80 80화. 접신(1) 21.05.10 43 0 14쪽
79 79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7) 21.05.06 44 0 12쪽
78 78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6) 21.05.02 41 0 12쪽
77 77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5) 21.04.29 48 0 14쪽
76 76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4) 21.04.25 47 0 15쪽
75 75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3) 21.04.22 55 0 14쪽
74 74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2) 21.04.18 48 0 14쪽
73 73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1) 21.04.15 49 0 13쪽
72 72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5) 21.04.11 49 0 12쪽
71 71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4) 21.04.08 60 0 12쪽
70 70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3) 21.04.04 49 0 14쪽
69 69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2) 21.04.01 57 0 14쪽
68 68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1) 21.03.28 45 0 14쪽
67 67화. 범 사냥꾼들의 밤(5) 21.03.26 50 0 13쪽
66 66화. 범 사냥꾼들의 밤(4) 21.03.22 54 0 15쪽
65 65화. 범 사냥꾼들의 밤(3) 21.03.19 49 0 14쪽
64 64화. 범 사냥꾼들의 밤(2) 21.03.14 52 0 13쪽
» 63화. 범 사냥꾼들의 밤(1) 21.03.11 60 0 12쪽
62 62화. 이(異)와 이(利) 그리고 조선 21.03.08 46 0 13쪽
61 61화. 괴물들이 난무하는 곳 21.03.04 47 0 14쪽
60 60화. 괴물을 위한 괴물 21.02.28 47 0 12쪽
59 59화. 마지막 커튼콜 21.02.26 49 0 12쪽
58 58화. 과거의 눈물은 현재의 비가되어(3) 21.02.21 81 0 12쪽
57 57화. 과거의 눈물은 현재의 비가되어(2) 21.02.19 52 0 14쪽
56 56화. 과거의 눈물은 현재의 비가되어(1) 21.02.15 4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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