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2)

므겐차프트의 동쪽 종착역인 백두산 역은 다마스쿠스와는 또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사실 이름은 백두산 역이었지만, 역은 백두산 산중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백두산과 인접한 평지에 지어졌다.
원래부터 도시가 아니었던 까닭에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역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네 개의 길이 만나는 곳으로 굉장히 중요한 장소였다.
차프트 역과 맞닿아 남과 북으로 뻗어있는 증기기관 열차의 역과 옛 조선 땅으로 갈 수 있는 열차의 역이 있었다.
므겐차프트의 대부분 승객은 이곳에 도착하게 된다면 역을 둘러보며(역이 섞여 있어 크기가 거대했다) 이 삼일 정도 소요하고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북이나 남으로 가서 크겐차프트나 르겐차프트를 타고 서쪽으로 돌아갔다.
이 방법이 가장 인기가 있는 관광 방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으로 가는 열차는 언제나 한산하거나 아무도 없을 때도 종종 있었다.
미카엘은 라파엘라를 업고 손에 짐까지 든 상태로 므겐차프트를 내렸다. 백두산역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다행이 라파엘라의 팔과 다리가 특수 제작된 몽철로만 이루어져있어서 가벼웠다. 아마 보통의 철로 만들어져있었다면 미카엘은 라파엘라를 업고 돌아다닐 수 없었을 것이었다.
심지어 일반 병사들에게 지급된 팔과 다리보다도 더 가벼웠다.
이러한 특징은 아젤혼 박사가 만든 역작들에서만 보이는 특징이었다.
더군다나 라파엘라는 현재 오른손마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정말 가벼웠다.
“괜찮아?”
라파엘라가 물었다.
“응, 이 정도는 끄떡없지”
미카엘은 라파엘라를 위해 바퀴가 달린 의자를 사러 실프상단의 잡화점으로 향했다.
백두산 역은 수많은 가게와 호텔들이 존재했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당연히 실프상단 산하의 호텔과 잡화점이었다.
특히 잡화점은 이것저것 모두 팔아서 잡화점이라고 부를 뿐 굉장히 고급스러운 가게였다.
특히나 인기가 많은 건 조선의 특산품들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각종 인형과 얼굴에 뒤집어쓰는 웃는 모습의 탈부터 각종 향신료까지 있었다.
조선의 의복도 인기가 많았는데 조선인들이 주로 입고 다녔던 단색의 한복과는 달리 색상도 풍부하고 둥그스름한 형태로 만들어져 상품가치가 나날이 높아졌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 가는 것은 조선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과 담배였다.
이런 기호식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각 나라의 독특한 방식으로 담근 술과 담배를 맛보는 것을 하나의 인생 업적으로 여겼고 그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술은 몇 병씩 사거나 실프상단에 수입의뢰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미카엘은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실프상단의 잡화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잠시 라파엘라를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히고 직월을 찾아 나섰다.
잡화점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미카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돈이 많아 보이는 외국인 부부에게 열심히 물건에 관해 설명하는 사람을 찾았다.
그들은 수많은 술이 죽 늘어서 있는 선반 앞에 있었다.
미카엘은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직원은 술에 관해 설명하는 것에 얼마나 집중을 했던지 미카엘의 말을 듣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미카엘은 그의 어깨를 톡톡 쳤다. 그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미카엘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죠?”
그는 자기 일이 방해 받았다는 생각에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여기 바퀴 달린 의자는 어디에 있나요?”
직원의 인상이 구겨졌다.
“나는 바쁘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시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외국인 부부에게 그들 나라의 언어로 말을 이어갔다.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면 내가 가서 찾을 테니 알려만 주세요.”
미카엘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카엘의 말을 분명히 들었음에도 못 들은 척 무시하고 계속 설명했다.
미카엘은 화가 나 당장이라도 그를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이런 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더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세요.”
미카엘은 화를 억누르고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부탁했다.
“저쪽으로 가보시오.”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미카엘은 대답하고 그가 가리킨 곳으로 가 직원이 가리킨 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바퀴가 달린 의자는 보이지 않았다. 크기가 작은 물건도 아니기에 이렇게 눈에 띄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미카엘은 다시 직원을 찾았지만, 그는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였다. 순간 미카엘은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후”
미카엘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라파엘라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오랫동안 라파엘라를 혼자 두기에는 불안했다. 수많은 사람을 헤치고 라파엘라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미카엘은 지금까지 참았던 화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라파엘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주변에 남자 무리가 모여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으아아아!”
미카엘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무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잠깐만! 왜 때리는 거야?”
갑자기 달려든 미카엘에게 일방적으로 맞던 남자들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수적인 우세함으로 도리어 미카엘을 때려눕혔다.
미카엘은 넘어진 상태에서도 양발과 팔을 사용해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남자 무리 쪽이 미카엘보다 싸움에 익숙한 듯 나중에는 쓰러져 있는 미카엘을 보며 낄낄거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라파엘라가 그만하라고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싸움을 더욱 불타오르게 할 뿐이었다.
“그만!”
그때 누군가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오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을 무리가 아니었다.
“그만!”
싸움에 고취되어 주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또 한 번 그만하라고 소리치며 군중들 사이에서 몽조수비대 군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몽조수비대의 군복은 옛 조선 군복과 외관상으로는 비슷했지만, 기능적인 부분을 훨씬 개량한 군복이었다.
백두산 역은 이런 부분에서 특이했다. 조선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서쪽으로는 몽제국으로 통하는 입구였기 때문에 항상 다른 두 종류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상주했다.
다만 몽조수비대는 조선으로 들어가는 기차역을 기점으로 출입을 심사하는 업무를 주로 보며 차프트 역 쪽으로는 거의 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차프트 역으로 오는 것이 불법은 아니었다.
그저 자치령의 특성상 다른 소속인 몽조수비대와 몽제국 병사가 충돌하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진 암묵적인 법칙이었다.
아무튼, 그의 등장은 불에 찬물을 끼얹듯 싸움판의 열기를 차갑게 식혔다.
쓰러진 미카엘을 때리던 사내 무리는 물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 미카엘을 살폈다.
“이렇게 많이 몰려와서 뭐 하는 짓이지?”
“저놈이 먼저 덤벼들었는데요? 다짜고짜 와서 때렸다고요!”
“알았다. 그래도 이 정도 때렸으면 된 거 아니야? 여기까지는 양쪽 모두 잘못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지만, 여기서 더 때리겠다면 살인의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고 체포할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미카엘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몸은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누워서 신음만 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더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쳇! 가자”
처음 미카엘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남자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미카엘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얼굴 이곳저곳에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재수 좋은 줄 알아라!”
남자 무리는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며 사라졌다.
“괜찮나?”
군인은 미카엘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미카엘은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안장 고통에 신음했다.
“제 오빠입니다.”
의자에 앉아있던 라파엘라가 대신 대답했다.
“아! 그랬군요. 그래서 저들에게 덤벼든 것이군요.”
남자는 축 처진 미카엘을 일으켜 세울 수 없었다. 자신보다 키가 더 큰 미카엘을 혼자서 부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의사에게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은데 혼자는 쉽지가 않군요. 이리 와서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는 라파엘라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팔다리가 불편해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남자는 라파엘라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듯 잠깐 멍하니 라파엘라의 팔과 다리를 바라보다 이내 격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천하에 몹쓸 새끼들 같으니라고! 몸이 불편한 여자를 놓고 남자 여럿이서 희롱하다니! 쳐 죽일 놈들!”
그는 벌떡 일어나 방금 전 무리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화를 냈다.
“괜찮습니다. 아마 저들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보다 어서 오빠를 도와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혼자 여기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라파엘라가 대답했다.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그때 미카엘이 정신을 차리고 그의 손을 잡았다.
“나는 괜찮으니...그만 가보세요.”
미카엘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요! 내 이런 보습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그는 재빠르게 자신의 팔과 다리에 차고 있던 무각과 무반을 조정했다.
“무각과 무반이군요.”
라파엘라가 말했다.
“무각과 무반을 아시오?”
남자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네, 이래봬도 미카엘 오빠가 꽤 실력 있는 기계공학자입니다.”
“아하!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제가 두 분을 한 번에 도와드리죠.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라파엘라 앞에서 뒤를 돌아 무릎을 꿇고 라파엘라에게 자신의 들을 가져다 댔다.
“업어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라파엘라는 잠시 망설이다 미카엘의 상태를 보고는 남자의 등에 올라탔다.
“실례하겠습니다.”
라파엘라가 인사했다. 남자는 너무나도 가벼운 라파엘라의 무게에 깜짝 놀랐다.
“아니, 밥을 먹고 다니는 겁니까? 어찌 이리 가벼우신가요?”
“그리 가벼운가요?”
“마치 깃털 같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한 손으로는 등에 업고 있는 라파엘라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미카엘을 부축했다.
다행히도 미카엘이 정신을 차려 절뚝거렸지만, 스스로 발을 움직여 걸었다. 남자는 그들은 가까운 진료소로 데려갔다.
모든 차프트 역에는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진료소가 있었고 의사가 있었다. 이것은 차프트의 자랑이자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여행 할 수 있게 해주는 이유 중 하나였다.
심지어 오지에 있는 마을이나 산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병원이었다.
비록 심각한 수술까지는 아니었지만, 응급처치와 간단한 수술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고 실력이 있는 의사들을 나라에서 고용해 배치 해둔 상태였다.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다행히 맞으면 위험한 곳들은 비켜 맞거나 손이나 발로 방어를 잘하셨네요.”
의사는 미카엘을 보며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립니까?”
남자가 진료소로 들어와 침대에 눕자마자 또 정신을 잃은 미카엘을 보며 물었다.
“몸 상태를 보아하니 음식 섭취를 균형 있게 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해서 그럴 거예요.”
의자에 앉아있던 라파엘라가 말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도 상당했겠군요. 사실 사람은 몸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게 더 큽니다. 아무리 균형 있는 음식과 적절한 운동을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삶의 의지가 없다면 몸은 버티지 못합니다.”
의사는 능숙한 솜씨로 찢어진 곳을 꿰매고는 다른 환자에게 갔다.
“당신은 다치지 않았나요?”
남자가 물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리고 초면에 이런 말을 하기가 굉장히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너무나 아름다우십니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고백에 라파엘라는 어리둥절했다.
“네?”
“비록 제가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봤던 여인 중 가장 아름답습니다.”
라파엘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는 팔다리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다른 건강한 사람을 찾으세요.”
“어차피 미용으로도 팔다리를 뜯어서 기계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제가 몽국에 요청하여 진짜 팔과 다리와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마음에 품고 계신 사람이 있으신 건가요?”
남자는 끈질겼다.
“도와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는 당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합니다.”
“아차! 제가 이름도 말하지 않았군요! 성은 김 씨고 이름은 청진입니다.”
김청진은 자신을 당당히 소개했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누워있던 미카엘이 눈을 뜨면 청진에게 말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