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3)

“개수작이 아닙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청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진심이라도 안 됩니다.”
라파엘라가 딱 잘라 거절했다.
“조금 더 누워 있어야 해”
라파엘라가 미카엘에게 말했다.
“나는 괜찮아, 빨리 가자. 너무 지체됐어.”
미카엘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침대를 붙잡아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다리에 힘이 빠진 듯했다.
“크읏”
팔에 힘을 주는 바람에 방금 꿰맨 상처가 다시 절어졌는지 미카엘은 팔을 움찔했다.
“괜찮나요? 제가 부축해드리죠. 어디로 가시나요?”
청진이 미카엘을 붙잡으며 말했다.
“놔, 이런다고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 그냥 갈 길 가는 게 좋을 거야”
미카엘은 청진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꼬인 사람이군요. 그런 마음으로 돕는 게 아니니 그냥 도움을 받으세요.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데 이렇게 서두르는 겁니까? 본인이 제대로 몸도 못 가누면서 누이는 어찌 데리고 가시려고 그러는 건가요?”
“신경 쓰지 말라니까!”
콰당
미카엘은 무리하게 일어나려다 결국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그로 인해 팔뿐만이 아니라 배 쪽에 꿰맨 곳까지 터져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의사는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아니,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의사는 청진과 함께 미카엘을 다시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라파엘라가 대신 사과했다.
“제가 아까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했던 건 생명에 큰 지장이 없다는 거지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뛰어나가서 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의사는 잔뜩 짜증을 내며 터진 곳을 다시 꿰맸다.
“봤죠? 오늘은 쉬고 내일 움직이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이왕 도와주는 거 내일도 도와드리죠.”
청진이 말했다.
“...”
미카엘은 눈을 감았다.
“빨리 고맙다고 해! 그리고 버릇없게 말하지 마!”
라파엘라가 따끔하게 말했다.
“고맙네요.”
미카엘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인사했다.
“하하하!”
청진은 뭐가 기분이 좋은지 웃었다,
“죄송합니다. 오빠라는 사람이 마음이 좁아서요.”
라파엘라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누이가 이런 상황인 상태에서 움직이면 여간 힘든 게 아닐 겁니다. 오히려 보기 좋습니다. 헌데 어디를 가시는 데 이리 급하신 건가요?”
청진이 물었다.
“알아서 뭐 하려고요?”
“미카엘!”
라파엘라가 결국 소리쳤다. 미카엘은 한번 움찔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무례한 건 사과드립니다만, 행선지를 알려줄 수는 없습니다.”
미카엘이 말했다.
“혹시 조선으로 가는 길인가요?”
“...”
미카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맞나보군요. 조선에는 뭐 때문에 가시는 건가요?”
청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일이 있어서요.”
미카엘이 대답했다.
“왜 그러시죠?”
심상치 않은 청진의 목소리를 들은 라파엘라가 물었다.
“현제 조선에서 쉬쉬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뭐죠?”
미카엘은 고개를 청진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지금 저희 몽조수비대는 일본과 전쟁 중입니다.”
“전쟁이요?”
“네, 그냥 단순한 마찰로 인한 소규모 전투가 아닌 나라 대 나라가 하는 전쟁 말입니다. 비밀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기는 하지만, 조선 내에서는 그 누구 하나 쉽사리 입에 담지 않습니다.”
“어째서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첫째로는 백성들의 혼란을 막기 위함이 크죠.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만, 조금 복잡합니다.”
“복잡하다고요?”
“네, 혹시 몽에게 점령되기 전 조선에 대해 아시나요? 아니면 현재 자치령 상태의 조선을 알고 있나요?”
“아뇨. 조선은 한 번도 와 본 적도 없고 몽제국 내에서도 조선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흥미 있는 주제가 아니죠.”
미카엘이 대답했다.
“무리도 아니죠. 조선에서 사는 백성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군인들은 다들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을요?”
“몽이 점점 조선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을요. 분명 외국의 신문물들을 조선에서 구경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외 소식도 비밀이 아니죠. 하지만 사람들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요?”
“따로 제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만족과 결핍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지요.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너무 풍족하거나 너무 결핍된다면 자신이 있는 곳 외에 눈을 돌리겠지요. 하지만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사용한다면 굳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자유가 그들을 해방했지만, 한편으로는 더욱더 옥죄이기도 하죠.”
“자유가 그들을 옥죈다고요?”
“조금 전 말했던 것처럼 원하기만 한다면 외국으로 나갈 수도 있고 외국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죠. 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며 볼 수 있을 정도로 좌판에 펼쳐져 있지는 않죠. 그러다 언제나 알 수 있다는 생각은 굳이 지금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겁니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는 건가요? 저는 지금까지 이야기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곳이 없습니다.”
“잘못된 건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저 제 추측일 뿐입니다. 실제로 몽제국이 조선을 고립시킨다고 이득 볼 건 없으니까요. 그냥 누구도 조선이라는 나라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잘 알지 못하는 나라가 되어가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겁니다. 사실 조선인들은 지금 현재가 천국처럼 생각될 겁니다. 몽제국 전의 조선은 속이 썩을 대로 썩어 백성들이 더 버틸 힘도 없던 나라입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버젓이 왕이 있는데도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팔아 개인의 이득을 취하려 했던 관리들도 있었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말도 안 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왕을 중심으로 다른 외부의 세력들을 끌어들여 나라를 팔려는 세력들을 견제하고 동시에 나라를 재건하려 했죠. 그 외부세력들이 지금은 망한 청나라와 러시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왕인 고종은 왕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힘이 없었죠. 정략적인 결혼을 했던 탓에 왕비의 일가인 민 씨 집안이 권력의 중심에 섰고 자신의 아비인 흥선대원군은 왕이 어려서 직위를 했을 때부터 섭정을 해왔기 때문에 사실상 왕보다도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전보다 힘은 빠졌지만, 왕까지 자신들의 힘으로 바꿀 수 있던 안동 김 씨 가문까지 있었죠.”
“아니, 지금 조선의 역사를 묻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조선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이라면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어야 좋을 겁니다.”
청진이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지금은 몽제국이 정복한 상태 아닙니까? 청나라는 이제 아예 사라진 나라가 되었고 일본은 몽제국에 결코 맞서서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아니죠.”
“맞습니다만, 방금 전 제가 말한 그 세력들 때문에 지금 조선으로 들어가는 길이 거의 막혀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일련의 모든 일을 겪은 조선이 결국 일본도 청나라도 러시아도 아닌 갑자기 생겨난 몽제국에게 정복당한 일은 조선에 존재하던 모든 힘을 가지고 있던 세력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허무하리만치 빠른 시간에 조선을 정복한 몽제국은 무슨 일에서인지 조선에 자리를 완전히 잡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자리를 잡은 후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갈아엎었습니다.”
청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그 바람에 적폐 무리는 대부분 죽거나 국외로 쫓겨났죠. 그렇게 쫓겨난 권력을 뺏긴 이들은 처음에는 뿔뿔이 흩어져 힘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다시 활동을 시작했는데 웃기게도 서로를 죽일 듯 잡아먹으려던 그들이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함께 손을 잡고 일본이 침략하는 동시에 내부에서 혼란을 야기할 목적으로 조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조선 출입이 제한됐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국외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래봤자 갈 수 있는 곳은 몽이나 러시아 정도밖에 없었습니다만, 오히려 조선보다 몽제국이 숨어있기 좋았습니다.”
미카엘은 머리가 아파졌다.
“그럼 백두산 역에서 조선으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힘들다는 말인가요?”
“네”
청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연고도 없습니다. 더더욱 그런 세력들조차 알지 못하는 데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겁니까?”
“그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되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시겠죠. 헌데 조선은 왜 가려고 하시나요? 이런 상황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미카엘은 잠시 멈칫했다. 청진은 몽이 조선의 정부와 군을 모두 무너뜨린 후에 조선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이유를 알지 못하는 듯했다.
몽의 군사력은 엄청났다. 하지만 조선에는 그때 당시 나라의 힘보다도 몇 십 배는 강했던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는 거구귀라는 이름으로 몽제국 내에서도 조선 정복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만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거구귀는 몽제국에게 맞설 정도로 기계공학에 뛰어난 자였는데, 몽제국의 기계공학과는 질이 달랐다.
몽제국의 기계공학은 사람을 매개체로 그들의 신체를 보조하는 무기와 갑옷을 만들어 한명 한명을 전쟁 병기로 만들었다면 거구귀는 사람이 필요치 않은 기계 그 자체를 만들어 움직이게 했다.
사람이 아니었기에 상처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고 두려움도 없었다.
하칼의 말로는 한두 개체가 아닌 몇 십 개의 개체가 한꺼번에 움직였는데, 똑같은 기능을 가진 기계들이 아닌 각자 다른 기능과 힘을 가진 기계들이 완벽한 연계로 공격해왔다고 했다.
그 덕분에 몽제국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결국 거구귀를 상대하기 위해 실력이 엄청난 자들로만 구성된 특별 부대를 만들어 대적했다.
그리고 그 거구귀가 미카엘이 조선을 들어가려는 진짜 이유였다.
“조선에서 만날 사람이 있습니다.”
미카엘은 그에게 거구귀에 대해 말을 해주어야 할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조선에요? 연고도 없다면서요?”
“그렇다고 만날 사람이 없다고 단정 지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째서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가요? 비밀이라면서요?”
미카엘이 물었다.
“음...원래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있지요. 해야 하지만 하기가 싫어서 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고 굳이 해야 할 일이 아니지만, 하게 되는 그런 심리도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누이에게 반하게 된 것부터 마음을 굳혔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제가 조선으로 가지 말라 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갈 것으로 보였거든요.”
“우리는 조선으로 가야 합니다.”
미카엘이 말했다. 다행히 청진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했다.
오히려 조선이 고립되어 외부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미카엘과 라파엘라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청진이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탓에 몇 년 전에 환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다른 나이가 많은 군인이라면 아무리 몽조수비대에 속해 있더라도 알 수도 있는 것이었다.
미카엘은 조심해서 나쁜 건 없다고 판단하고는 청진에게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청진은 그들을 데리고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호텔 방을 잡아주는 호의까지 보였다.
또한 움직이지 못하는 라파엘라와 절뚝거리는 미카엘을 부축해 방까지 안내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라파엘라가 인사했다.
“아닙니다. 저는 내일 아침에 오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와서 뭘 도와주겠다는 거죠? 어차피 조선으로 못 들어간다면서요?”
미카엘이 쌀쌀맞게 물었다.
“선뜻 그 부분을 도와드리겠다고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제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어째서 이런 고민을 하는지 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가장 이성적인 판단은 여기까지 도와드리는 거겠죠.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저는 결국 밤새 고민할 겁니다.”
“...”
미카엘은 청진이 이상한 건지, 착한 건지 아니면 바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일단 청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카엘은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한 것인지 아니면 힘이 들어 나쁜 사람이 아니길 바랐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청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갔다. 미카엘은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하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는 오랜만에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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