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주의 사회는 없다(기계들의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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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oos
작품등록일 :
2020.08.0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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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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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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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접신(3)

DUMMY

미카엘은 골목에서 일어난 소동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방금 전 봤던 용병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얼굴 한쪽을 천으로 가렸지만, 그 안으로 보였던 철판으로 덧댄 다소 흉측한 몰골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충격적인 외관은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보다 어딘가에서 봤던 것만 같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기분이 찝찝했다.


“무슨 소리였나요?”


미카엘이 호텔 방안으로 들어오자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던 청진이 물었다.


“웬 용병 하나가 잠시 소란을 피운 것입니다.”


“용병이요? 조선에 용병이 흔하지 않은데...평양 한복판에서 소란이라니...그래서 그 용병은 어떻게 됐나요?”


청진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냥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치안대에게 잡히지 않았을까요?”


“부디 치안대가 잘 처리 했으면 좋겠군요.”


“이제 슬슬 출발하죠.”


미카엘은 조급해졌다. 조금 전 봤던 익숙한 얼굴의 용변이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직 라파엘라 님이 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지요. 아마 회복 중이라 잠이 많아진 걸 겁니다.”


미카엘은 라파엘라를 내려 봤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출발하고 싶었지만, 청진의 말처럼 억지로 라파엘라를 깨우는 것보다 알아서 일어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죠.”


미카엘은 의자에 앉았다. 마음이 초조해지니 시간은 더디게 갔다. 시간은 언제나 그랬다. 빨리 가야 할 때는 더뎠고 천천히 가야 할 때는 빨랐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청진은 미카엘을 다독였다.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조급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것도요. 그런데 마음을 다스리는 게 쉽지 않군요.”


“허허! 당연한 겁니다. 사람이 마음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이 지경 이 모양이 될 리가 없죠.”


“그렇겠죠.”


미카엘은 청진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었지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라파엘라는 그로부터 두 시간이 지나고서야 눈을 떴다.


“오빠, 나 눈이 잘 안 떠지는데?”


라파엘라가 잠에서 깨고 한 첫마디였다. 그녀의 눈은 간밤에 낀 눈곱 때문에 위아래가 붙어있었다.


“잠시만”


미카엘은 화장실로 달려가 따뜻한 물에 수건을 살짝 적셔 라파엘라의 눈을 살살 닦아주었다.


“고마워”


그녀는 눈을 뜨며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창가에 앉아있던 청진이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라파엘라가 화답했다.


“슬슬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청진은 창을 닫으며 말했다.


“청진씨도 이제 오빠한테 옮았나 봐요!”


라파엘라가 말했다.


“하하! 그런 것 같군요! 어쩌면 한시라도 빨리 당신의 팔다리를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에 깊이 동감한 것일 수도 있죠.”


청진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시야는 여전히 창밖에 두고 있었다. 미카엘은 청진의 행동에서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꼈다.


“가자.”


미카엘이 말했다.


“잠시만, 나 화장실 좀”


라파엘라가 말했다. 미카엘은 라파엘라를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라파엘라가 볼일을 보는 동안 청진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죠?”


미카엘이 물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차 안에서 봤던 사람이 몇 보이는군요.”


“무슨 말이죠?”


“기차에서 봤던 사람이 둘씩이나 이 호텔 주변을, 그것도 저희가 묵는 방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몇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우연이라고 할 수 없죠.”


“그럼 누군가가 계속해서 우리를 미행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네, 지금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와 눈이 마주쳐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는군요. 그냥 대놓고 보고 있어요.”


미카엘은 더욱더 불안해졌다. 그리고 불안은 초조함과 긴장감을 동반했다.


“오빠! 나 도와줘!”


그때 라파엘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카엘은 빠르게 라파엘라를 준비시켰다.


“빨리 가자”


미카엘이 재촉했다.


“무슨 일 있어?”


“응, 누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


미카엘은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누가?”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알겠어.”


미카엘은 빠르게 짐을 챙겼다. 그때까지도 청진은 밖을 감시했다. 준비를 마친 미카엘은 청진을 불렀다.


“준비 끝났어요.”


청진이 고개를 돌려 미카엘을 봤다. 미카엘을 라파엘라를 업고 있었다.


“굳이 업을 필요는 없습니다.”


청진이 말했다.


“왜요? 빨리 가려면 업고 뛰어야죠.”


“뛸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이죠. 여긴 대도시 한복판입니다. 저들이 누구건 간에 그리 쉽게 뭘 하지는 못할 겁니다.”


청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음...”


미카엘이 잠시 고민했다.


“지금 저희는 누군가에게 뒤쫓기는 건 아닙니다. 그저 감시당하고 있을 뿐이죠. 그럴수록 더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저들을 자극하게 될 겁니다. 아직 거구귀를 찾은 게 아니기 때문에 저희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 합니다.”


“알겠습니다.”


미카엘은 라파엘라를 조심스럽게 바퀴 달린 의자에 앉혔다.


“고마워”


라파엘라가 인사했다. 미카엘은 의자를 끌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그저 평양에 잠시 놀러 온 사람들입니다. 너무 의식하거나 경계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겁니다. 저들이 누구인지 우리를 쫓는 게 맞는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부디 저들이 착각하거나 저희가 오해한 것이면 좋겠군요.”


청진이 미카엘에게 말했다. 미카엘은 문득 청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미행은 자신과 라파엘 때문일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보고 의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카엘은 순간 청진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알려야 하나 갈등했다.


그들은 거리로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오빠 저거 봐봐!”


라파엘라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지붕이 얹혀 있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저건 기와집이라고 합니다. 찰흙으로 만든 기와를 한 장씩 포개어 만든 지붕입니다.”


청진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와!”


“몽에도 기와집이 있을 텐데요?”


“오래된 도시에는 있지만, 최근에 지어진 도시들에는 거의 없죠. 특히나 환에는 전혀 없습니다.”


“환에서 사셨나 보군요?”


청진이 물었다.


“네, 어렸을 때 전쟁을 피해서 이사 갔던 곳이죠.”


“그렇군요. 아무튼 기와집은 굉장히 비쌉니다. 기와 한 장이 보통 가격도 아닌 데다가 들어가는 숫자도 만만치 않죠. 뭐 그래도 요즘에는 벽돌로 지어진 새로운 방법의 집이 훨씬 인기가 많지만요.”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거리를 걸었다. 호텔과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즐비한 기차역 주변을 빠져나가자 낮고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 나왔다.


이곳의 길은 벽돌이나 아주 작은 자갈을 깔아 만든 호텔 주변의 길과는 달리 흙길이었다.


“흙바닥이 바퀴 달린 의자를 밀기에는 더 좋군요. 벽돌이나 자갈길은 너무 울퉁불퉁했어요.”


미카엘이 말했다.


“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는 거죠. 흙바닥이라고 해서 언제나 부드럽고 평평하지만은 않습니다.”


덜컹


청진이 말하자마자 의자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흙바닥에 움푹 파인 곳 위를 지나갔던 것이었다.


“하하하”


라파엘라가 웃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어?”


미카엘이 물었다.


“아니, 그냥...좋은 날씨에 이렇게 다니니까 기분이 좋아서”


“역시! 저도 그랬습니다. 저랑 비슷하시군요!”


청진은 들뜬 듯한 말투로 말했지만, 신경은 온통 주변에 가 있었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거 재미있다!”


라파엘라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그래? 나는 깜짝 놀랐는데!”


미카엘이 말했다.


“나도 놀라기는 했는데, 재미있어!”


“그래도 되도록 피해 갈 거야! 잘못하면 의자 망가져!”


미카엘이 딱 잘라 말하자 라파엘라는 도끼눈을 떴다.


“그러세요.”


라파엘라가 쀼루퉁하게 말했다. 그들이 도시 외곽 쪽으로 점점 나가자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시장이 나왔다.


시장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즐비했는데 실프상단이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본 물건도 있었다. 다만 실프 상단의 잡화점처럼 수많은 종류가 있지는 않았다.


“파는 물건치고는 좀 조악하게 생겼군요.”


미카엘이 붉은색 장신구를 보며 말했다.


“손으로 직접 만들기 때문입니다.”


청진이 말했다.


“어? 이건 실프 상단 잡화점에서 본건데?”


라파엘라가 노란색과 푸른색이 섞인 장신구를 보며 말했다. 미카엘은 라파엘라가 말한 장신구를 집어 들었다.


“외국에서 오셨수?”


가게 주인이 장신구를 만지작거리는 미카엘을 보며 말했다.


“네, 몽에서 왔습니다.”


“자꾸 만지작거리면 안 돼. 사려면 사고 안 살 거면 보기만 하슈”


외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 가게 주인은 성이 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죠.”


미카엘은 장신구를 내려놓았다.


“저거 한 번만 봐도 되나요?”


라파엘라가 주인에게 물었다. 가게 주인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라파엘라를 봤다.


“에고, 예쁜 아가 어쩌다 그리 된 거니?”


라파엘라를 본 주인의 말투에서 차가움이 사라졌다.


“전쟁 때문이지요.”


라파엘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놈의 전쟁 때문에 피해 본 사람이 몇 명이야!”


주인은 혀를 차며 라파엘라를 바라봤다.


“괜찮아요!”


라파엘라가 활기차게 말하자 주인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거 너한테 잘 어울리겠네!”


주인은 끝에 자그마한 나비가 달린 은색 막대를 가지고 라파엘라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검고 기다란 라파엘라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기 시작했다.


“이건 비녀라는 겁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진이 말했다.


“비녀를 아슈?”


열심히 손을 놀리던 주인이 물었다.


“네, 저는 조선인이니까요.”


“그랬구먼! 자! 다 됐다.”


그녀의 손길을 거치자 라파엘라의 머리에는 꽃이 피어있었다. 검은 꽃 위에 은색의 나비가 앉은 모양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와...”


미카엘은 넋을 놓고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어때 예뻐?”


자신의 뒤통수를 보지 못하는 라파엘라가 물었다.


“응, 엄청 예쁘다.”


미카엘이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슈”


주인은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반짝이는 거울 두 개를 들고 와 한 개는 라파엘라의 뒤쪽을 비췄고 나머지 한 개를 뒷머리를 볼 수 있도록 라파엘라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우와! 너무 예뻐요!”


라파엘라는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했다.


“정말이지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아름다움이군요!”


청진도 거들었다.


“얼마입니까?”


미카엘이 물었다.


“그냥 가슈”


주인은 뿌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미카엘은 주인의 거절에도 주머니에 몽제국 은화를 꺼냈다.


“그럼 은화 두 개만 주면 되유”


미카엘은 주인의 말에도 은화 다섯 닢을 손에 쥐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니! 너무 많아!”


“진짜 감사해서 드리는 겁니다.”


미카엘이 주인과의 고집 싸움에서 이겨 은화 다섯님을 쥐여 주고는 다시 길을 따라 걸었다.


“다시 봐도 정말 예쁘군요.”


청진은 연신 감탄했다.


“정말요?”


“네”


“어? 이게 무슨 냄새지?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요?”


신이 난 라파엘라가 어디선가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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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91화. 섬 이에 21.06.17 36 0 11쪽
90 90화. 몽-002 21.06.13 40 0 13쪽
89 89화. 접신(10) 21.06.10 43 0 13쪽
88 88화. 접신(9) 21.06.06 42 0 12쪽
87 87화. 접신(8) 21.06.03 39 0 12쪽
86 86화. 접신(7) 21.05.30 49 0 13쪽
85 85화. 접신(6) 21.05.27 44 0 11쪽
84 84화. 접신(5) 21.05.23 47 0 12쪽
83 83화. 접신(4) 21.05.20 45 0 11쪽
» 82화. 접신(3) 21.05.16 40 0 12쪽
81 81화. 접신(2) 21.05.14 41 0 12쪽
80 80화. 접신(1) 21.05.10 43 0 14쪽
79 79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7) 21.05.06 44 0 12쪽
78 78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6) 21.05.02 41 0 12쪽
77 77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5) 21.04.29 48 0 14쪽
76 76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4) 21.04.25 47 0 15쪽
75 75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3) 21.04.22 55 0 14쪽
74 74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2) 21.04.18 48 0 14쪽
73 73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1) 21.04.15 49 0 13쪽
72 72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5) 21.04.11 49 0 12쪽
71 71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4) 21.04.08 60 0 12쪽
70 70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3) 21.04.04 50 0 14쪽
69 69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2) 21.04.01 57 0 14쪽
68 68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1) 21.03.28 45 0 14쪽
67 67화. 범 사냥꾼들의 밤(5) 21.03.26 50 0 13쪽
66 66화. 범 사냥꾼들의 밤(4) 21.03.22 54 0 15쪽
65 65화. 범 사냥꾼들의 밤(3) 21.03.19 49 0 14쪽
64 64화. 범 사냥꾼들의 밤(2) 21.03.14 5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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