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섬 이에

이에 섬 남동쪽 해변에는 자그마한 부두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부두는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다는 것을 반증하듯 사람의 흔적이 지워져 있었다.
끼익
그리 강하지 않은 바닷바람에도 비명을 질러댔다. 하칼은 부두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하칼은 무각을 쓰지 않고 걸어서 섬까지 갔다. 무각을 쓴다면 분명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이었다.
부두는 모두가 지나갈 때까지 버텼다.
“이거 환영식이 거한대?”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벌레 무리였다. 인간 형태를 하고 있는 벌레들이 군대처럼 죽 늘어서 있었다.
벌레들은 별동대가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이거 일일이 찾아 다녀야 할 수고를 덜어주는데요?”
백천광은 신이 난 듯 양손으로 창을 잡았다. 벌레 무리는 바다를 등지고 있는 그들이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도록 에워싸며 달려왔다.
“천광아! 내기할까?”
성학이 물었다.
“뭔 내기?”
“누가 더 많이 죽이나 세어보자고!”
“하하하! 좋다! 좋아! 부디 네 목을 마지막으로 세지 않기를 바란다.”
“네 목이나 조심해라! 하하하”
“저도 끼겠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놀이에 빠질 수 없죠.”
수연이 말했다.
“네가 웬일이냐? 이런 내기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
“진지하게 싸워도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그러는 게 싫었죠.”
“지금은 목숨이 위태롭지 않다는 거냐?”
성학이 소리쳤다. 벌레 군단이 움직이면서 내는 이상한 딸깍이는 소리 때문에 그들은 소리쳐야만 소통이 가능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조금 전 배에서 했던 이야기 때문에 역겨운 기분이 들어서 떨쳐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나도 역겹다.”
성학이 소리쳤다.
“모두 뒤로 나와라!”
하칼이 앞에 서서 전투태세를 하고 있던 성학과 천광 그리고 수연에게 소리쳤다. 하칼의 말에 셋은 빠르게 뒤로 빠졌다.
잠시 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붉고 거대한 화염이 섬 전체를 뒤덮었다.
처음에는 그리 크지 않았던 불씨는 바람 한 점 없던 바다 쪽에서 태풍을 연상케 하는 강풍이 불어오며 거대한 화염 폭풍이 되었다.
화연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끝없는 불꽃은 계속해서 화염 폭풍의 크기를 더했다.
섬 전체가 불길에 완전히 타고나서야 폭풍은 사라졌다.
“다시 봐도 적응이 안 되네...”
백천광은 창을 내리며 허탈하게 말했다.
“싸움도 좋지만, 최대한 힘을 아끼는 게 좋다.”
하칼이 독려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싸움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벌레와 싸우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개싸움까지 좋아하는 건 백천광뿐이겠죠.“
성학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도 벌레와 싸우는 게 좋지는 않아!”
백천광이 발끈했다.
“그래? 그건 몰랐네?”
성학이 말했다.
“불길이 잠잠해지면 들어가자”
하칼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트러스티가 물었다.
“나무나 풀에 붙어있는 벌레 하나하나 모두 잡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판단했다.”
“행여나 안에 산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지 걱정됩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극히 적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멀쩡하게 산 사람이 섬 안에 있었다면 이상자의 편에 선거나 이상자보다 더 강한 힘을 가져 벌레무리에 먹히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알겠습니다. 저는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저 걱정됐을 뿐입니다.”
“알고 있다.”
트러스티는 말하는 도중에도 숲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숲은 엄청나게 강한 불길로 인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맑았던 하늘은 회색의 재로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불길은 점점 약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열기로 인해 뿌연 연기가 나고 있었다. 그때 섬을 둘러본 화연이 다가왔다.
“이상 없습니다. 움직임도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겠지...저런 불길 속에서 살아남을 만한 벌레가 있겠냐?”
그들을 향해 뛰어오던 인간 형태의 벌레 무리는 시커먼 재가 되어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알고 있다. 그래도 여긴 악몽 안은 아니다. 바깥으로 뛰쳐나온 이상자가 있는 현실이지”
“맞는 말씀입니다.”
“근데 기 나림은 불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냐?”
“불과 바람의 힘입니다. 불씨만으로는 이런 거대한 폭풍을 만들 수 없습니다. 불의 힘을 가속하는 바람의 힘이 합쳐져야 합니다.”
“그렇구나, 이 힘은 봐도 봐도 적응하기가 힘들군...”
“그렇기 때문에 황제께서는 절대 악몽 안이나 이상자들과 싸우는 것 외에 평범한 인간에게 사용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했습니다.”
“기 나림의 힘이 불과 바람이라면 릴 림의 힘은 어떤 것이냐?”
“나무 문양을 사용하는 릴 림은 엄청난 치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힘에 의해 다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물론 질병까지도 치료가 가능합니다. 다만 치료의 범위는 마를 사용하는 사용자에 능력에 따라 다릅니다.”
“그렇군. 그래서 노엘은 의무관인 거로군.”
“네, 맞습니다. 하지만 노엘은 정복 전쟁 도중에는 절대로 릴 림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다.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이상한 점을 눈치챈다 하더라도 이런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상상도 하기 힘들 겁니다.”
화연이 말했다. 하칼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맞는 말이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보자”
성학과 천광은 몸을 가만히 놔둘 수 없었는지 벌써 숲 근처에 있었다. 그들은 하칼이 다가오자 조금 물러섰다.
“이제 들어가나요?”
천광이 물었다.
“그래”
하칼은 그들을 지나쳐 섬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숲이라 불렀지만, 숲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초라할 정도로 그 규모는 작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섬을 다 돌았다. 숨이 붙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판단한 하칼은 그들에게 섬의 구석구석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여기! 동굴이 있습니다.”
흩어져서 섬을 수색하던 중 백천광이 소리쳤다. 동굴은 산 중턱에 있는 커다란 바위 옆에 나 있었다.
크기도 별로 크지 않아 겨우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들어가 볼까요?”
성학이 물었다.
“모두를 기다린다.”
“알겠습니다.”
그때 자현이 다가왔다.
“저쪽에도 동굴이 있습니다.‘
“크기는?”
“이것보다는 큽니다. 절벽 밑에 있는 걸 보니 파도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자현이 대답했다.
“두 개 조로 나눈다. 하나는 트러스티가 이끈다. 화연, 성학 그리고 자현까지 트러스티를 따라간다. 수연, 천광, 샬롭은 나를 따라오면 된다. 트러스티 조가 해안 절벽에 있는 동굴을 탐색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트러스티는 대답하고 곧바로 자현을 따라 해안가로 갔다.
“우리는 둘은 밖에서 대기하고 나머지 둘은 안으로 들어간다. 굴의 깊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너무 깊다면 밖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조금 안으로 들어와 대기한다. 너무 깊게 들어오지는 않고 밖에 있는 사람과 의사소통은 물론 시야에까지 들어와 있는 정도까지만 들어온다. 이해했나?”
“네, 이해했습니다.”
“나와 샬롭이 들어갈 거다.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하도록”
“저도 들어가면 안 됩니까?”
백천광이 물었다.
“내 생각에는 큰 싸움은 없을 거다. 잘해봐야 알이 있겠지.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샬롭의 폭탄이 제격이다. 그리고 좁은 곳에서 네 창은 그렇게까지 효율적이지 않지.”
“알겠습니다.”
백천광은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혹시나 벌레가 기어 나온다면 가차 없이 죽여라”
“알겠습니다.”
천광은 힘차게 말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수연이 굴속으로 들어가는 하칼에게 말했다.
“그래”
대답을 마친 하칼은 굴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굴속은 비좁았다. 비스듬하게 경사진 길로 인해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어느정도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이 허리를 펴고 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왔다.
“예전에 사막에 있던 개미굴과 비슷하군요.”
샬롭이 말했다.
“그래, 근데 규모는 훨씬 작다. 조심해야 해. 그때는 상대가 인간이었고 이번에는 벌레다.”
“아...진짜 벌레는 끔찍하게 싫다.”
샬롭이 말했다. 공간은 길이 나뉘지 않고 한쪽으로 향했다. 길의 끝에는 문이 있었다. 하칼은 주저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뒤에는 거대한 공간이 나왔다. 이제 하칼은 이런 것에 그리 놀라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세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침입자에게 이 세계는 위험하고 낯선 곳이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바다가 근접해있어서 그런지 땅속임에도 습했다. 하칼은 문 뒤에 수많은 알과 징그러운 벌레가 득실거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공간은 깨끗했다.
딱 딱
발소리가 들렸다.
“너희가 여긴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온 이상 살아나갈 생각은 말아라.”
말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에서 몽국어를 들을 줄이야...”
하칼이 총을 꺼내며 말했다. 발소리의 주인은 소매가 넓은 일본식 의상을 입고 허리에는 기다란 카타나를 차고 있었다.
딱딱 거리는 소리는 나무로 만든 나막신이 바닥을 때리며 생기는 소리였다.
“그 유명한 사무라이인가요?”
샬롭이 그를 보고 말했다.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은데? 나는 그런 땀내 나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하칼이 권총을 겨누며 말했다.
“私は日本の最高の剣客である.”
그는 검을 겨누며 말했다.
“뭐라고 하는 거냐? 나는 일본어를 모른다.”
“자신이 일본 최고의 검객이라고 합니다.”
반대편에서 화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개의 동굴은 서로 연결되어있었나 봅니다.”
곧이어 트러스티의 목소리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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