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주의 사회는 없다(기계들의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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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oos
작품등록일 :
2020.08.0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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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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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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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2화. 이상자의 이상(1)

DUMMY

굴속이 어두워 트러스티와 화연의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트러스티와 화연인가? 아니면 흉내 내는 벌레인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연입니다. 그리고 트러스티님도 있습니다.”


“모습은 너희가 맞구나”


하칼이 말했다.


“제가 저 사무라이와 싸우죠.”


트러스티가 말했다.


“이길 자신은 있는 거겠지?”


“검의 길고 짧음은 언제나 재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트러스티가 칼을 꺼내며 말했다.


“잘 안 보이는데 괜찮나?”


“그건 걱정 마시지요.”


화연은 손을 들어 불꽃을 일으켰다.


“한결 낫군.”


화연의 불꽃은 굴 안을 비췄다. 시야가 확보되자 굴 안이 보였다. 이곳 어딘가에 이상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무라이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私が勝てば蟲師について教えてくれ”


사무라이의 낮은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자신을 이기면 충사에 대해 알려주겠답니다.”


화연이 곧바로 통역했다.


“잘 됐군요.”


트러스티는 메아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움직였다.




사무라이는 뒤에서 날아온 트러스티의 검을 막았다. 그는 뒤로 돌아 트러스티의 검을 정면으로 막은 것이 아니라 보지 않은 채 검을 자신의 뒤로 넘기며 트러스티의 검을 받았다.


트러스티는 곧바로 두 번째 일격을 날렸다. 이번에는 앞으로 움직이며 등으로 날아온 트러스티의 공격을 피했다.


그는 곧바로 돌아 트러스티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트러스티도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천천히 그를 주시했다.


사무라이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는 한 손으로 검집을 꽉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허리를 살짝 숙여 몸을 낮춰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발도술이군요.”


화연이 말했다. 사무라이는 조용히 트러스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트러스티는 웃었다. 그녀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오랜만에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검술을 사용할 기회였다. 전쟁 때에도 검술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검술만으로 전쟁을 살아나올 수는 없었다.


전쟁은 그녀에게 검술 이외의 것들을 강요했다.


그녀는 비스듬하게 섰다. 그리고 앞선 손인 오른손에 자신의 검을 잡았다. 앞에서 봤을 때는 마치 얇고 긴 검과 몸이 하나같이 보였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선 자세는 오른발을 앞선 상태로 검과 일직선이었다. 그녀는 양발을 교차라는 보폭이 아닌 뒷발을 차고 앞발은 그대로 앞쪽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사용했다.


트러스티는 긴 검을 앞세워 사무라이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거리는 점점 좁혀져 조금 있으면 둘은 서로의 사거리 안에 들어갈 것이었다.


멈칫


트러스티가 발을 멈췄다. 아슬아슬하게 자신이 손을 뻗었을 때 사무라이에게 닿지 않는 거리였다.


한 발짝, 아니, 반 발짝만 더 다가가면 찌를 수 있는 거리였다. 둘은 서로를 노려봤다.




트러스티는 사무라이의 눈을 보고 있다가 그가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너무나도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 그를 향해 검을 찔렀다.




사무라이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뜸과 동시에 자신의 검집에서 검을 꺼내며 그 가속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트러스티의 얼굴을 향해 검을 날렸다.


그 바람에 둘의 검은 공중에서 부딪히며 청명한 쇳소리를 내었다. 둘은 짧은 시간동안 검을 교차한 상태로 서 있었다.


잠시 뒤 사무라이의 몸이 스르륵하고 넘어졌다. 트러스티의 검은 아래에서 위로 찌르는 궤적을 그리며 사무라이의 이마를 찔렀다.


고작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의 검이 닿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무라이의 검은 트러스티의 검보다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며 트러스티의 턱 바로 아랫목 주변에 긴 자상을 남겼다.


트러스티는 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냈다.


“아슬아슬했습니다. 그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제 목이 달아났을 겁니다.”


트러스티는 검 끝에 묻은 피를 닦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네가 질 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


하칼이 말했다.


“절대무적은 검의 신밖에 없습니다. 저는 아직 한참 멀었죠. 언제든 대결에서 지고 죽을 수 있습니다.”


“불허한다. 질 것 같으면 무조건 무각과 무반을 사용해라.”


하칼은 딱 잘라 말했다.


“무각과 무반은 순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다가 호노르가 도살자와 싸우다 죽은 거 아니야?”


샬롭이 말했다.


“잠깐!”


하칼이 샬롭의 입에서 호노르의 이름이 나오자 외쳤다. 하칼은 샬롭 앞에 서서 막았다.


언제나 호노르의 이름이 나올 때면 트러스티는 흥분했다. 그는 트러스티의 오랜 친구이자 같은 스승 밑에서 자란 동문이었다.


호노르는 유쾌하고 활기찬 사람이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해 내성적이었던 어린 트러스티가 군에 지원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는 트러스티의 실력이 자신보다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먼저 진급시킨 것을 부당하게 여겼다.


그는 트러스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그녀의 의지를 지탱해주던 친구였다.


“괜찮습니다.”


트러스티가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정말?”


“네”


“언제나 호노르가 아군을 위해 도살자와 맞서다 죽었다 말하며 그의 명예를 지키려 애썼습니다. 그 누구든 호노르에 대해 욕하는 것은 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으로 생각했죠.”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그의 명예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때 무각과 무반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살아남았다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는 생각합니다.”


“정말?”


“네, 지금까지 제가 불같이 화냈던 것도 속으로는 명예든 뭐든 그가 어떤 방법으로라도 살아남았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는 죽었고 그 죽음을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기고 싶었던 거겠죠. 하지만 그 누구보다 제가 그의 생환을 기다렸습니다.”


트러스티는 허리를 굽혀 사무라이의 몸을 수색했다.


“너도 조금씩 바뀌는구나.”


하칼이 말했다.


“저 자신에게 진실하여지는 거겠죠. 죽을 고비를 넘기다 보면 가끔 스스로 포장을 하는 제 자신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을 들여 포장한다 해도 죽음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사무라이의 몸에서 자그마한 열쇠 하나를 꺼냈다.


“그럼 너는 나중에 이런 목숨을 건 싸움에서 죽을 것 같으면 무각과 무반을 쓸 거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저는 이런 스릴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기분은 생각보다 자극적입니다.”


“그게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라는 거다. 그래도 네가 자신의 힘으로 헤쳐 나올 수 있는 죽음의 위협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절대적인 죽음의 위험 앞에서는 공포심은 무릎을 꿇린다. 그건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하칼이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쪽에 문이 있습니다.”


화연이 동굴의 구석에서 외쳤다. 하칼은 화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 흙으로 뒤덮인 문이 있었다.


트러스티가 열쇠로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을 열자 밖과는 다른 땅굴이 나왔다. 사람의 발길이 오래전에 끊긴 길처럼 땅속을 파고들어 온 나무의 잔뿌리가 길의 대부분을 막고 있었다.


화연은 불을 더욱 키워 길 안을 비췄다.


“이 안에 있겠군.”


“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작은 굴속에서는 빠르게 도망칠 곳도 없습니다.”


“알고 있다.”


하칼이 대답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트러스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갑자기?”


“지금 아까 말씀하신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 상태라 뒤에 간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자그마한 움직임만 보인다면 가장 먼저 달려갈 겁니다. 그럴 바에는 제가 맨 앞서 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불안한데...”


하칼이 말했다.


“지금부터는 무각과 무반을 켜고 가겠습니다.”


트러스티가 웃으며 말했다.


“알겠다.”


트러스티를 선두로 넷은 굴속으로 들어갔다. 화연이 가장 뒤에 서서 후방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진짜 벌레가 좋아할 만한 장소네요. 축축하고 어둡고...”


샬롭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는 이상자입니다.”


“화연의 말이 맞다. 경계해야 돼”


“뭔가 찾은 것 같습니다.”


얼마 안 가 앞서가던 트러스티가 뭔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하칼은 트러스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게 뭐지?”


하칼은 커다랗고 하얀 무언가를 보고 말했다. 눈으로 보고도 뭔지 확정지어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특이하게 생긴 바위 같기도 했고 무언가의 배설물 같기도 했다. 뒤이어 샬롭이 다가왔다.


“으악! 이게 뭐야! 무슨 벌레 고치가 이렇게 큰 거지?”


무심코 튀어나온 샬롭의 말에 하칼은 이마를 탁 쳤다.


“벌레 고치였구나!”


하칼이 말했다.


“자세히 보니 조금씩이지만, 고동치고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증거죠. 알았으니 제거하겠습니다.”


트러스티가 검을 꺼냈다. 그러자 조금 더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두어라! 어리석은 인간들아!”


고치 저편에서 누군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는 옷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의 배에서부터 이어진 굵은 탯줄이 고치까지 연결되어있는 것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지 이 징그러운 건?”


샬롭이 말했다.


“이상자인 것 같습니다.”


화연이 말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너희는 어째서 같은 동족을 죽이려 하는 것이냐?”


“동족? 우리가 왜 너랑 동족이냐? 우린 벌레가 아니야”


하칼이 말했다.


“마를 다룰 줄 안다는 건 모두 어떻게든 원래의 세계와 관련이 있다는 뜻 아니냐?”


하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상자를 살폈다.


이상자는 별다른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계는 해야 했다.


“우리는 너를 죽이러 왔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죽이면 너희도 같이 죽는다.”


“어째 서지?”


“내 숨이 끊어진다면 나와 연결되어있는 이 고치는 폭발한다.”


“이게 너의 최후의 보루였군.”


“최후의 보루? 웃기지 마라! 너희가 조금만 늦었다면 내 걸작이 탄생했을 거다. 내가 그저 조금 운이 없었을 뿐이지”


“운? 웃기는구나. 운 따위에 기대는 녀석이라니”


“운을 업신여기다니...너희는 운이 무어라 생각하느냐?”


“운은 운일 뿐이다.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지”


“어리석은 자의 표본이로구나!”


“그럼 운이 무엇이냐?”


“운은 신의 간섭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 그저 운이란 단어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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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90화. 몽-002 21.06.13 29 0 13쪽
89 89화. 접신(10) 21.06.10 31 0 13쪽
88 88화. 접신(9) 21.06.06 29 0 12쪽
87 87화. 접신(8) 21.06.03 27 0 12쪽
86 86화. 접신(7) 21.05.30 34 0 13쪽
85 85화. 접신(6) 21.05.27 30 0 11쪽
84 84화. 접신(5) 21.05.23 32 0 12쪽
83 83화. 접신(4) 21.05.20 3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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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80화. 접신(1) 21.05.10 3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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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6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4) 21.04.25 35 0 15쪽
75 75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3) 21.04.22 39 0 14쪽
74 74화. 오랜 힘과 계획의 단면(2) 21.04.18 3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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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5) 21.04.11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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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3) 21.04.04 39 0 14쪽
69 69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바람(2) 21.04.01 3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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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범 사냥꾼들의 밤(3) 21.03.19 3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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