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혼란의 혼란 2"
‘함정‘.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어쩐지’ 라는 단어가 뇌리에 확 꽂혔어.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린다.
지금 ‘어쩐지’라고 말하며,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는 태도를 취할 때인가.
만약, 이번 일이 차도스에 대한.
특정 조직 및 국가의 ‘대국가(對國家) 계략’이라면.
...내가 그 ‘태풍의 눈’ 안에 있는 꼴인데?
어떠한 형태로든...
난 이 일에 가장 깊숙이 연루된 것이다...
두렵다.
겁이 난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 밀정과 뇌물, 다스트쿠트에서 온 게 아니라 해도.
정체불명의 거액을 어떠한 보고도 없이.
적대국인 다스트쿠트에 갖다 주려고 한 것 자체가.
반역 행위로 비춰지기에 충분할 터.
그리고 그 주비스가...
다스트쿠트로부터 온 돈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 어마어마한 돈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조달해서...
하카이트에게 건넨 것인가.
게다가, 이 따위 일을 획책한 동기와 목적은?
하카이트의 심성과 충성을 감안해.
당연히 거절할 것을 알고.
이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차도스가 이 돈을 받고 진짜로...
트레이브스를 배반할 거라고 기대해서 이런 책략을?
그럼 도대...
“데케 장군?”
“음... 네...? 아, 네, 하카이트. 죄송합니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압니다만, 혹시 지금 몸을 움직이실 수 있겠습니까.”
?!
하카이트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혹시 그렇다면, 이제는...?
“욱...”
“...아직은 무리인 듯싶군요.”
고통을 없애 주는 카이트가 풀렸음에도.
말을 꽤나 수월하게 할 수 있었기에.
...회복이 많이 된 줄로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다가.
새로운 고통 부위도 발견했는데...
상반신을 지탱하려고 왼팔을 쓰려다가.
갑자기 온 충격...
맞아.
아인의 친구한테 화살을 맞았었지...
“밖에 있는 병사, 제 말 들립니까.”
...하카이트의 부름에도.
바깥쪽에서는 응답이 없다.
“장군. 그럼,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하지만, 하카이트...”
“네. 뭘 말씀하시려고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만... 이 아이는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흥, 어떻게 알죠?”
“당신이 도망친다면, 이곳에서 기다렸다가. 여기에 다시 돌아올 예정인 네 친구를 죽여 버릴 테니까요.”
“...칫.”
내 현재 상태로는, 아이가 도주해도.
막을 수 없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하카이트는 이미, 모든 걸 내다보고 계셨다.
...
...
하카이트가 나갔고, 그 뒤로 정적이 흐른다.
이제는 몰두할 거리가 없는데다가.
카이트까지 풀린 덕분에.
...온몸이 고통으로 덮여 있는 상태.
하지만 포로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에...
이를 악물며 멀쩡한 척을 하고 있다...
“아저씨.”
...갑자기 나를 부른 목소리에.
누운 채 고개를 돌려, 아인을 쳐다본다.
나를 그렇게까지 경계하지는 않는 분위기야.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지만.
“...말해.”
“제 친구 ‘초록 펄’은 어떻게 됐어요?”
“...누구를 말하는 거냐. 내가 맨 처음 공격한 아이? 아니면 나에게 활을 쏜...”
“그 둘은 모두 죽었다는 걸 알아요. 제 눈앞에서 죽는 걸 제가 봤으니까요.”
“...”
“제가 묻는 건, 이 동굴에 누워있었던 아이를 말하는 거에요. 며칠 전부터, 병에 걸려 누워 있었거든요.”
“...모른다. 나도 사실, 네가 일어나기 직전에 깨어났어. 네 동물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니.”
“아, 맞다, 그랬었지... 그래도 사과는 안할 거예요.”
“당연하지, 네가 왜 사과를 해. 단지 우리는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싸웠던 것뿐이야.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우린 친구가 될 수도 있었겠지.”
그렇다.
만약 이 친구들이.
차도스에 자원한 훈련병이었거나, 견습공이었다면.
좋은 아군이자, 친구가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죄송해요, 아저씨. 목 밑 부분을 그렇게 만들어서...”
“...뭐야. 아까는 사과 안 한다며.”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냥 나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잠깐의 대화였지만 아저씨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말에 오히려, 내 마음이야 말로 바뀌었어.
아이의 말에서 따뜻함이 묻어 나왔기에.
꽤나 오랫동안, 사무적인 인간관계만 접해오다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아저씨, 결혼 했어요?”
...내가 받은 따뜻한 감동에.
나도 따뜻한 말을 건네려고 했지만.
아인은 내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아니... 만약 했다면, 너 정도의 아들은 있었을 수도 있겠지.”
“장군이면, 얼마나 높은 직책이에요?”
“그리 낮은 직책은 아닌데, 장군도 장군 나름이라서... 난 그렇게 높은 사람은 아니란다.”
“차도스에선 얼마나 오래 계셨던 거예요?”
...뭐지?
이 천진난만함은.
“...200개월 조금 못 되는 것 같구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안 세서. 더 길 수도 있고.”
“와, 어떻게 200달 동안 전쟁을 하면서 군인으로 살아요. 안 무서우세요? 안 답답하세요?”
...??
나와의 간격을,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까지 좁힌다고?
정녕, 이 아이가 한때 나를...
죽음의 공포로 몰았던 사람이란 말인가.
“데케 장군.”
!!!
...하카이트의 목소리.
아이와의 순수한 대화에.
잠시 놓고 있었던 긴장감이.
하카이트의 호출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카이트, 빠른 발걸음으로 오고 있고.
뒤에는 병사도 함께 있다.
“아까 포착됐던 다스트쿠트 국경순찰대의 규모가 꽤 큽니다. 분위기도 생각보다 더 어수선하고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건 확실해 보이는 군요.”
“아직도 저희 주변에 있는 겁니까?”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어찌된 영문인지... 리리 협곡의 도로를 샅샅이 수색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지요?”
“네, 넷! 30여 기의 펠리오니스가 도로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면서! 특정 인물이나 물건을 찾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병사.
그렇게 크진 않으면서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카이트. 저들이 우리를 찾기 위해 특별히 조직된 수색대 아니겠습니까?”
“그렇진 않을 겁니다. 제가 일행에 있는 걸 알고, 저를 잡거나 죽이기 위해 보냈더라면... 저희 쪽이 아무리 소수라 해도, 저 정도 수준의 병력을 보내진 않았겠지요.”
...맞는 말이야.
하카이트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카이트에 대응할 수 있는.
정규군 중에서도, 최정예를 보냈을 것이다...
“게다가, 어떠한 국가의 정규군도 하스테리아에서 지정한 ‘중립지대’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국경지대의 치안 유지 필요성을 인정, 소규모의 국경순찰대만 진입이 허가되죠.”
...그런가?
두 번째 이야기.
완전히 모르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처음 듣는 내용이기도 해...
‘하’의 중립지대에 대해선.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지만.
리리 협곡이, 그중 하나였을 줄은...
“그래도 관습적으론 ‘우정의 다리’ 근방까지가 다스트쿠트의 방어식별구역으로 알고 있었는데... 확실히 가벼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어요. 어찌됐든, 제가 내린 판단으로는 최대한 빠르게 본국으로 돌아가는 게 최선인데... 이거, 상황이 안팎으로 여의치 않군요.”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라도 몸이 성했더라면.
뭔가 방책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카이트 아저씨.”
...?
“여기 있었던 제 친구는 어떻게 됐나요...”
...나한테 했던 질문이야.
하카이트는, 분명히 알고 계시겠지.
나와 아인을 여기로 데려온 장본인이니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 자식이!!”
“잠깐! 모두들 진정하세요!”
하카이트, 양팔을 나와 병사에게 뻗으며.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게 소리를 외쳤고.
...하카이트의 기세에, 우리는 움직임을 멈췄어.
아인은 순식간에, 하카이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붙잡았고.
이에, 우리 둘은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이었다.
하카이트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던 난...
상반신을 절반 이상 일으킨 상태였다.
병사는 칼집서 칼을 뽑은 상태였고.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 몰라!! 펄은 어쨌냐고!!!!”
아인은 계속, 하카이트의 멱살을 붙든 상태로.
주체하지 못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다.
“...죽어 있었습니다. 온몸이 썩은 채로요.”
...침묵이 흐르고.
하카이트를 붙들고 있는 아인의 손에선.
점점 힘이 풀린다...
“나중에 온 활 쏘는 친구가, 아마도 그 아이를 돌봐 왔었던 친구겠지요. 그 친구가 온몸을 주물러 주거나 뒤집어 주면서, 환자의 몸이 괴사하는 걸 최대한 지연시키고 있었을 겁니다.”
...하카이트의 말에.
고개를 떨구는 아인.
이내, 숨을 죽이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시체는 2차 감염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 바로 묻었습니다. 죽은 지는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였지만, 부패는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어요.”
“...”
“무슨 독에 어떻게 걸렸는지를 알아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어쩌면 저희가 당신들과 만나기 전에 이미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말하는 하카이트.
나는 그 친구를 보진 못하긴 했지만.
하카이트는, 그 아이의 시체만 보고도.
독에 걸려 죽은 걸 알 수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랑 조금 더 빨리 만났었더라면...
그 아이는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인에게,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저 눈물로, 친구의 죽음을 위로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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