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우정의 다리 3"
치익.
화르륵.
퉁.
해가 점점 저물어 가면서.
안 그래도 어두운 실내가, 더 어두워지자.
부사관, 허리춤에서 성냥을 꺼내...
횃불에 불을 붙인 뒤, 다시 벽에 꼽는다.
“음, 나도 조금은 정신 차리고 진지하게 임해야겠는데. 야, 맨 뒤!”
“네, 넷! 7등병 주황 네타타!!”
“내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이 둘을 죽이도록.”
...대답이 없어.
땅을 보고 있어서 병사의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대략 어떤 표정인지, 마음에 그려진다...
...지금 병사의 표정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한테 갑자기 찾아온 죽음.
죽게 된다고...?
내가...?
이제는, 무서운 마음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더 떨리기 시작한다...
...상대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스릉.
“...대답 안 하냐?”
알 수 있어.
부사관이 칼을 뽑았다는 걸.
“네네넷! 아아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병사는 이제.
나에게 창을 겨누고 있겠지.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들 수 없다고.
고개뿐만 아니라...
온몸이 더욱 더 움츠러든다...
저 풋내기 병사, 엄청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군인은 군인일 터.
명령이 떨어진다면, 곧바로 나와 코루스를 치겠지.
동료인 코루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 목숨은, 절대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말단 병사의 긴장된 목소리 속에서.
확신을 찾을 수 있었다.
잘못될 경우, 내 생명은 끝이라는 확신을...
“얘야.”
...
“아가씨?”
읍.
...말할 뻔했어.
주체할 수 없는 공포심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말이 튀어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버텨냈다...
지금, 이 공포를 견뎌내야 해.
아무것도 불확실한 현재 상황에선.
그저, 코루스가 한 말을 믿는 수밖에 없어.
“...입을 열지 않으시겠다?”
짝! 퍽.
“꺄악!! 욱!...”
내 왼쪽 볼로, 손바닥이 날아오자마자.
발길질이 내 배를 때렸고, 난 뒤로 크게 쓰러졌다.
신기하게도, 맞은 순간에만 잠깐 아팠을 뿐...
점점, 나를 죄어 오는 죽음의 공포가.
내 감각마저 마비시키는 느낌이다.
...바닥에 눕자마자 느낀다.
내 피가 더 빨리 돌기 시작한다...
“너에게 해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기 전에, 자비심으로 현재 상황의 흐름을 이야기해 주지.”
“...”
“하나, 이 돈은 저 놈이 가지고 있기에 말이 안 되는 액수다. 둘, 그 말은 이 돈이 너한테서 나온 걸 의미한다. 셋, 그런데 이 돈은 어린 여자 아이가 수중에 들고 다닐 만한 액수도 역시 아니다.”
“...”
“...내 결론, 넌 평범한 소시민이 아니다.”
...젠장할.
나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확실하게 하려고.
내 돈 전부를 꺼낸 거였는데.
이게 이렇게 의심될 거였다니...
생각이 짧았어...
아니.
너무나 안일했다.
아무리 돌발상황이 발생해.
갑자기 니신 행을 정한 거라고는 하지만...
그냥 항상 해오던 거니까 평소대로 하면 되겠지.
...라는 타성에 젖어 있었던 거야.
한 나라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가는 데도.
“너, 어디서 보낸 염탐꾼일까?”
“...”
“...뭐, 아무렴 어때. 그럼 이제는,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
...
시간이 점점.
느리게.
흘러간다.
내 맥박 소리와.
호흡 소리에.
주변 소리.
들리지 않기 시작.
터진 입술에서.
느껴지는 피의 맛.
...진하다.
정말로.
마지막인가.
지금까지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았건만.
내 원한과 복수.
풀지도 못한 채.
이렇게 끝이 나다니.
!!!!!!!!!!!!!
...정신차려, 느키티.
살아있는 한, 포기란 없다.
믿어보는 거야, 코루스를.
시간을 벌고 싶은 마음에.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지만.
...코루스의 말, 끝까지 믿어야 해.
찰나의 순간, 수십 가지의 생각이.
내 머릿속을 바쁘게 오고 간다.
그 짧은 순간에도.
자아가 내게 속삭인다.
빨리 뭐라도 말하라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라고.
도대체 왜, 이대로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그냥 죽기를 기다리냐고 묻는다...
...그래.
많이 버텼어.
지금쯤이면 괜찮겠지, 뭐라도 말해도.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거짓말 쳐서 죄송합니다!...”
?!!!?!!?!
코, 코루스가...
주저앉아 있는 내 앞에 선다.
저 부사관을 가로막는다...?
“...무슨 말이야.”
“부사관님의 말씀대로, 사실은 제가 거짓말을 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너, 이 새끼...”
내 입을 열려는 순간...
코루스가 시간을 조금 벌어 주었다.
...목숨이 조금 연장된 것일까.
하지만 달라진 게 없는 만큼.
두려움은 여전해.
코루스가 느끼고 있는 공포심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게 느껴져.
때문에, 내 두려움은 오히려 배가 됐다...
...?
그런데, 뭐지...?
갑자기 든, 이 낯선 느낌은?
“...마지막 기회다. 있는 그대로를 말해라.”
“사실, 이 여자는 저의 친척도 지인도 아닌... 오고 가며 그저 얼굴만 알고 있는 사이입니다. 근무 서면서 마주칠 때마다, 저에게 조금씩 뇌물을 챙겨 주면서 알게 됐습니다...”
“...어쩐지.”
“그런데, 오늘은 요즘 상황 때문에 제가 들여보낼 수 없다고 했는데... 자신의 사정을 말하면서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걸 외면하지 못했고, 결국 사수인 검은 펄 부사관께 이렇게 오게 된 것입니다...”
“무슨 사정?”
“산적과의 싸움 과정에서, 자신의 친구가 중독됐는데 한시가 급해... 치료 방법과 해독초를 구하기 위해서, 니신을 찾았다고 합니다...”
...코루스도, 결국 고민 끝에 고른 건.
나와 같은 선택지였다.
‘솔직하게 말하기‘
하지만, 그가 견뎌내야 할 무게는...
내가 아까 전에 처했던 상황보다 훨씬 더 무거울 터.
‘군대’라는 조직 안...
이것만 따진다 하더라도...
내가 느꼈던 아까의 중압감과 비교 불가일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진실을 말하기 위해선.
자신의 ‘비리’까지도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상황이잖아.
‘뇌물 수수’
군법에 대해 알진 못하지만.
군대를 떠나, 어떠한 조직에서도.
조직원이 개인적 이익을 몰래 착복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게다가, 그 조직이란 곳이 ‘군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지금 방금 깨닫는다.
아까 전에 내가 느꼈던 게 뭔지를.
그건, 희망이었어.
어쩌면 여기서 변수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기대했던 희망.
그리고 확인한다.
그 희망이 날아갔음을.
약간이나마 시간을 벌었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내가 아까 전에, 밑에서 솔직하게 말한 거와.
지금 코루스가, 자신의 상관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는 건.
...’무게감‘이 완전 다르다고.
무섭고.
무섭다.
땅이, 내 몸을 자꾸 아래로.
점점 더 세게 당기고 있는 걸 느낀다.
죽음이 나를 부르고 있...
“야.”
“네, 넷! 3, 3등병, 초록 코루스!!!”
...?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어?
“하나만 묻자. 넌 이런 사정들을 어떻게 알게 됐냐?”
“저 아이가 솔직하게 다 말해 줬습니다!”
“그래서 저 아이를 봐 줬고?”
“네, 맞습니다!...”
“너, 말 잘 했다. 그런데 넌 왜 나한테, 그렇게 솔직하게 말 안하고 거짓말을 쳤어?”
“그... 그게...”
...이후로, 말을 잇지 못하는 코루스.
“야, 우리의 적은 누에르타이트고 차도스지, 시민이 아니라고. 시민들도 전쟁 통에 살기 얼마나 팍팍하겠냐. 엄밀히 말하면, 내 가족과 친구도 죄다 ‘시민’ 아니냐?”
“마, 맞습니다...”
“게다가, 우리나 용병이나 매한가지겠지만... 살아남아 있을 때, 그리고 챙길 수 있을 때 챙겨 놔야 한다. 죽으면 땡인데 가족을 위해서라도 목숨이 붙어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대한 많이 벌어 놔야 하는 거잖아, 안 그러냐? 내 말에 틀린 게 있으면 반박해 봐, 당장.”
“...마, 마, 맞습니다!!”
“그래, 인마.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선에서 서로 돕고 살아야지,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 안에서. 그렇지, 막내야?”
“그, 그, 그, 그렇습니다!!!”
“...근데 너 이 새끼, 빠져서 관등성명 안 대냐?”
“아, 죄송합니다! 7등병 주황 네타타!”
“이리 와 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앞으로 달려 나가는 막내 병사.
?!
부사관은, 주머니에서.
동전 네다섯 개를 꺼내더니, 병사에게 준다.
“받아.”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이씨, 이 놈이 미쳤나. 너 좋으라고 주는 게 아니야. 너도 공범이 돼야 입이 무거워질 거 아니냐. 이 일이 새어 나가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어!”
“아! 저, 저는!... 그, 그게 아니라...”
“...그리고 500델이면 꽤 나쁘지 않은 돈이니까, 챙길 수 있을 때 챙겨 두라고.”
“가, 가, 감사합니다!”
“야.”
“3등병, 초록 코루스!”
“너, 맨 처음에 저 아이와 만났을 때... 돈을 어느 정도 받았지? 맞지?“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숨기려고 했던 게 아니라 경황이 없어서 말하지 못...”
“야, 됐고. 얼마였어.”
“네, 500델입니다!!”
“그래? 그럼...”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아까 만큼의 동전을 꺼낸다.
“여기 500델 더. 군 생활 오래 했는데 짬 대우 받아야지. 막내야, 불만 있냐?”
“아, 없, 없습니다!”
“나머지 돈은, 위에다가 기름칠하는 데에 쓴다. 그 후의 남는 돈은 내가 갖고.”
“...네?”
“야, 이 멍청아. 내가 너의 상관인 것처럼, 나에게도 상관이 있을 거 아니냐. 이런 일들을 벌이고도, 오래 살아남으려면!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미리 대비해야 하는 거 몰라?!”
“아, 실례했습니다!...”
순식간이었다.
한꺼번에 모든 게 정리됐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거짓말을 곧바로 꿰뚫으면서.
진실을 밝혀내어, 상황을 정확히 파악.
이곳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무를 다 했어.
그 다음에는, 융통을 발휘해.
나를 포함해, 여기 있는 모두가 이익을 보도록 했고.
동시에, 혹시 모를 ‘뒷일’까지도 대비...
오랜 군 생활.
괜히 한 게 아니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몸에 다시 피가 돌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는 게 느껴져...
“아가씨? 일어서서 이리 와 봐요.”
...감각이 다 돌아오지 않았나 봐.
일어나는데,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고.
허리를 펴자 순간적으로...
...시야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어.
최대한 약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하며.
이를 악물고, 부사관 앞에 선다...
“나이와 다르게, 상당히 담대하고 똑똑한 구석이 있네. 그 상황에서 솔직하게 말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으니 하나 물어볼게요. 저희들 앞에서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이유가 있어요?”
읍.
말할 뻔했어, 이번에도...
죽을 뻔한 상황, 가까스로 정리됐다는 안도감에.
하마터면 아까 코루스가 했던 말을 까먹고.
긴장을 풀은 채, 입을 열 뻔했다...
사관으로부터 내게로 전해져 오는 중압감.
자꾸 내 입술을 열려고 하고 있다.
...이 충동, 너무나도 저항하기 힘들어.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이 무거운 분위기가 걷힐 것 같으니까.
어떡하지...
...
“흐음... 똑똑한 아가씨구먼.”
덜컹.
드르르륵....
내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자.
부사관은 짧은 말을 던지며, 뒤돌아서더니.
도개교 장치를 조작했다.
쇠사슬과 톱니바퀴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돌로 만들어진 실내를 가득 채운다.
시간이 됐으니, 다리를 들어 올리려는 거겠지.
“야, 넌 여기 다 수습하고 뒷정리 한 다음 나와라. 나하고 막내는 먼저 간다. 알겠지.”
“3등병 초록 코루스, 알겠습니다!”
“문제 없도록 확실히 하고 오라고, 뒤지기 싫으면. 막내는 1층 당직실로 가서 근무일지 작성하고, 우리들 짐 챙겨오고.”
“7등병, 주황 네타타! 알겠습니다!!”
끼이익.
텅.
...문이 닫혔고.
방 안에는 나와 코루스, 둘만 남게 됐다...
살았다.
살아남았다.
...크게 안도하며, 기쁨을 만끽하려는 순간.
나처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또 한 사람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코루스 역시, 이 순간에 감사하고 있어...
오늘, 다스트쿠트의 한 병사에게.
내 목숨을 빚졌다.
- 작가의말
5,623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