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카 그리고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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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호수.
작품등록일 :
2020.08.11 20:00
최근연재일 :
2021.02.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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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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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쪽

4-20. "드디어 외출 3"

DUMMY

“...저기요.”


“...”



“랑랑 아저씨.”


“네, 하카라타.”




“지금 분위기가 무슨... 서로가 허풍으로 자웅을 겨루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아무리 그래도, 방금 그 말은 도가 많이 지나친 것 아니에요?”


“...”


“아니, 제 말은 정말로 사실이라니까 그러네? 저, 진짜로 리리 산맥을 넘었다고요. 그런데 제가 그 말을 하니까 마치 패배감이라도 들었던 것 마냥, 그에 대한 반격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치세요? 지금 저희가 상상력 대결을 펼치는 게 아니잖습니까...”


“...”



“아무리 하스테리아가 세상의 중심이라지만, 기상은 ‘하’의 영역이잖아요. 그런데 무슨 허풍을 상도덕도 없이 그리 뻔뻔히 쳐요? 날씨를 바꾼다고요? 날씨를?!”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만, 하스테리아는 주변의 날씨를 일시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날씨와 바꾸고자 하는 날씨에 따라 난이도도 바뀌기에, 성공률이 경우와 시기에 상관없이 10,000 카트로드 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구름을 없애는 정도는 거의 실패 없이 수행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따지고 보면 날씨를 바꾼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 목적 자체만으로도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요. 좋은 경치를 저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구름을 없애서 하늘을 맑게 한다고요?!”


“물론, 하스테리아가 가지고 있는 수백 가지 능력 중 하나인 ‘날씨조절기능‘이 원래부터 ’좋은 전망‘을 위해 개발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또한 그 기능이 가지고 있는 영구적 부작용의 종류와 영향이 모두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의 사용되지 않아 왔지요. 웬만해서는 허가가 잘 내려지지 않습니다만...”


“...”



“그래도 하카라타의 관광을 철저히 수행하라는 하키온의 지시에 힘을 얻어, 저희 관광청 귀빈특별관리팀이 각 코스마다 비장의 무기들을 하나씩 준비해 왔지요. 카이트베이워크타의 날씨조절기능을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권한 사전 획득은 그중 하나고요.”



“비, 비장의 무기?! 관광 코스별로 저를 위한 비장의 무기를 하나씩 준비해 왔다고요?!!”


“맞습니다, 하카라타. 이를 모든 관광 장소나 체험마다 준비해 두지는 못했지만, 하카라타께서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코스에 대해서는 저희가 가히 특별하다고 부를 만한 것들을 미리 마련해 두기는 했지요.”



“그, 그, 그렇다면 제가 만약 미술관을 골랐다면요?! 어떤 게 저를 위한 특별함인데요...?”


“하스테리아 중앙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작품들 전부가 현재 민간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아닙니다. 보유 미술품 중 상당수가 비공개로 남아있지요.”



!!!!!!!!!



“그 말인즉슨... 그것들을 오직 저에게만 보여 주려 하셨다는...”


“그렇습니다.”




...각 장소나 체험마다


뭘 특별하게 준비했는지 묻고 싶지만,



너무 구차하게 보일 것 같아 참았어...



그래도 진짜 대단한 게,


내가 도대체 뭐라고 이런 귀한 대접을 다...




“하카라타.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는 입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소가 주변에 국한되긴 했어도, 저희가 날씨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다른 권역민들에게 말한다면... 그들 또한, 쉽게 믿지 못하겠지요.”


“...”


“하지만 하스테리아에서 조금이라도 살아 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수긍할 말입니다. 저희 조상들이 남긴 이 거대한 유물, 하스테리아의 수많은 능력들은 그야말로 자연에 대한 저희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이니까요.”


“...”



“그래도 하카라타께서 본인의 뜻을 계속 관철하시는 만큼, 이제는 저의 말을 굽히고자 합니다. 더 이상 하카라타를 이성적으로 설득시켜 드리려는 저의 오만함, 그만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뭐라고 하카라타께서 더 이상 안 믿으시려 하는 것에 대해 믿으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하카라타께서 거짓말이라고 말하신다면, 그것은 이미 거짓말이지요.”


“...”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제 입장에서는 ‘전망대’를 하카라타께 강력 추천드릴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정말로 저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구름 높이의 전망대,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된다는 날씨조절기능... 둘 다 만약 사실이라면,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쯤은 직접 확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 아닐까요?”


“...”




...와.


달변가네, 달변가야...



나에 대한 격식과 예의는 차리면서,


본인의 말은 거짓말이 아님을


이토록 수려하게 풀어낸다고?



아니, 그렇다고 내 마음이 바뀌었다는 건 아니야.


여전히 저 말은 거짓말일 수밖에 없어, 내 입장에선.



사람이 구름 높이의 건물을 만들고,


구름을 없애서 맑은 날씨로 만든다?



미친 소리지, 미친 소리야...


지나가는 ‘다리아‘도 저 말은 안 믿는다고...




...하지만 이쯤 되니,


저 아저씨의 말처럼 진짜로 확인하고 싶어졌어.



전망대와 날씨조절기능...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저 초록 랑랑이란 아저씨, 정말로


희대의 사기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사람들이 왜 사기를 당하는지 알겠네...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술술 하는데,


안 믿겨지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끌린다니까?




“...좋아요. 오늘 관광에 있어 저의 첫 번째 선택, 전망대로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카라타.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말씀하시지요.”



“저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보다, 날씨조절기능을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전망대를 고른 거거든요? 그러니까, 아까 말씀대로 구름을 없애려 할 때... 절대로 먼저 하거나 제가 안 볼 때 하지 마시고, 반드시 제 눈앞에서 해 주세요. 그러면 전망대를 고를게요.”



“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모든 걸 다 알고 있진 않습니다만... 제 3자가 볼 때 날씨조절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라는 식의 조항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서요. 뭐, 크게 문제될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오오?! 저, 정말이죠?!! 구름을 없애서 맑은 하늘을 만드는 모습, 제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네, 하카라타. 만약 장애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저희 팀과 관광청이 지니고 있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가능하게 만들겠습니다.”




...랑랑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갑자기 엄청난 설렘이 밀려오고 있어.



드디어 바깥에 나가게 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기적과도 같은 일을 보게 돼서?



하여튼 간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음을 느껴...




“하카라타?”


“네? 네!”


"그러면, 두 번째 행선지는 어디로...“



“...첫 번째를 들르고 나서 결정하도록 할게요. 자꾸 의심해서 정말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전망대에 가 보고 나서야 그 다음 갈 곳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 제 말이 믿을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나서, 그 다음 걸 결정하시겠다는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전망대 다음에 갈 곳을 말씀해 주시지요.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물어 보시고요.”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가 잠시 내선 좀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내선이요? 그게 뭔지...”


“아, 저기 침대 옆에 있는 전화기를 말씀드린 겁니다.”




전화...기?


아, 저걸 전화기라고 부르는 거였어?



나는 그냥, 장식용 가구인줄로만 알았는데...




“아... 그럼요, 쓰셔도 돼요.”


“그럼, 잠시 몇 분 동안 실례하겠습니다.”


“네...”



뚜벅, 뚜벅, 뚜벅...



찰칵.



“...안녕하세요. 관광청장실과 중앙지휘통제실, 동시 연결 부탁드립니다.”



??!?!!?!!!?...



뭐, 뭐, 뭐야...?


아니, 웬 혼잣말을 저렇게 멋들어지게 해?



전화기라고 불리는 걸 들더니,


귀랑 입에다가 대고는 어디를 연결해 달라 그랬어.



뭘 누르거나 조작하는 일 없이,


저걸 들자마자 거의 곧바로 말을 꺼냈...



“아, 귀특관 팀장입니다. 귀빈과의 접선, 모두 마쳤고요. 1차 관광지는 전망대로 결정하셨습니다...”



어쩌고저쩌고...




...혼잣말이 아닌 것 같은데?



만약 저게 혼잣말이라면, 랑랑이란 사람은


진짜 희대의 사기꾼을 넘어 역대 최강의 배우...



한동안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얘기하다가,


한동안은 아무 말도 없이 전화기만 들고 있어.




...어휴, 몰라. 모른다고.



쳐다 봤자 뭐가 뭔지 모르는데,


계속 보고 있을 이유가 없지.



그나저나, 정말일까?



하스테리아라는 도시? 아니, 건물이 구름까지 닿는다?


게다가 날씨를 조절하기까지?!



하아, 애매하네... 애매해...



지금까지의 분위기만 보면,


뭔가 있긴 있는 것 같긴 한데.



확실히 하스테리아에선 모든 게 신기하긴 했지...



어마어마하게 거대하면서 이질적인 핵심동력실,


현실과 분리된 가상공간이라는 세토드,


그 속에서 목숨 걸고 치러진 순례자의 시험,


마치 하가 형상화된 장소와도 같던 대예배당,


자기 혼자 움직이며 우리를 데려다 주는 빔,


뭐가 뭔지 말로도 표현조차 안 되는 집중치료본부,




...이렇게 나열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 사치의 끝을 부리고 있는 이 호텔이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야.



하스테리아에 갑자기 떨어진 이후로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을 회상해 보면,



내가 지금 관광하려는 게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이진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뭐, 이제는 이렇게 의심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어?



어차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면,


참인지 거짓인지 한 방에 알 수 있을 텐...



철컥.



“하카라타.”


“네? 아... 끄, 끝나셨어요?”


“네.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좋은 소식 두 가지 먼저 알려드리고, 바로 이동하시지요.”


“오, 뭔데요?! 뭔데요?!!”



“우선, 첫 번째로... 하카라타께서 직접 주신 요청 말입니다, 직접 보시는 중에 구름을 없애달라는.”


“네, 어떻게 됐나요?”



“중앙지휘통제실에서 허가했습니다. 가능할 것 같군요.”


“오오!!!”



“게다가 현재의 기상상태가 마침, 구름이 짙게 끼어있는 상태랍니다. 하카라타께서 원하시는 걸 보는 것에 있어 최상의 날씨이지요.”


“와우... 그, 그렇군요...”




문득,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


내 양심을 찌르기 시작하는 나의 이중성...



이성으로는 거짓말이네 허풍이네,


절대로 안 믿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막상 랑랑 아저씨의 그럴듯한 말을 들으면,


주체할 수 없는 설렘이 한없이 솟구치네?



믿을 수 없다는 나의 이성과,


그런 게 정말로 있다면 꼭 보고 싶다는 소망이


서로 충돌하는 건가...




“그리고 두 번째는, 가이드입니다.”


“앗! 아까도 질문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가이드가 뭐에요?”


“아, 관광 중이신 하카라타께서 별 어려움이 없도록 옆에서 수행하는 도우미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싶습니다. 또한, 하카라타께서 관광 중인 장소 및 대상에 맞게 적절한 설명도 보조해 주실 분이기도 하고요.”


“흠... 대충 감이 오네요, 어떤 역할을 맡으신 분일지.”



“다행입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원래는 저희가 하카라타께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가이드를 오늘 모셔오려 했는데...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취소됐었지요. 그분은 전업 가이드가 아닌데다가, 상당히 바쁘신 분이기도 해서요. 때문에 제 2순위 실력의 가이드가 오늘 하카라타를 수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아, 네...”



“그런데 지금 청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분께서 오늘 일을 하실 수 있게 됐다고요. 정말로 다행인 일이지요.”



!!!!



“...그런데, 가이드는 아무나 해도 별 상관이 없지 않을까요? 저는 옆에 누가 있던, 별로 큰 영향은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저는 제가 볼 걸 보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막상 실제로 겪어보시면 왜 가이드가 중요한지 금방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이드의 실력에 따라 관광의 질이 천차만별이라는 건, 저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니까요.


“그, 그래요...?”



“제 말, 꼭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하스테리아 관광청이 인증하는 가이드는 쉽게 될 수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만, 그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우수하니까요.”


“...”



“그뿐만이 아닙니다. 무려, 하스테리아의 이름있는자이기도 하지요.”




?!!!!!!!!!!




오우... 이름있는자가 가이드라는 직업까지도 한다?!



가이드란 직종, 완전히 처음 듣긴 했는데...


엄청 고귀한 일자리인가 보네...




“우와... 이, 이름있는자가 제 관광을 옆에서 계속 도와주신다고요? 이제야 조금 체감이 되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마음이 놓입니다. 직접 만나 보시면, 실력 있는 가이드의 소중함을 더 깊이 체험하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알겠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그러면, 혹시 추가로 질문하실 게 있을까요?”


“아뇨, 없습니다!”



“그러면, 바로 이동하시지요.”


“쿠오오오오!!! 네!!!!”




찰칵. 찰칵. 덜컹


덜컹.




내 방을 나선 다음


붉은 융단이 깔려 있는 화려한 복도를 따라,


전망대를 향해 걷는 나와 랑랑.



와, 드디어... 내 방을 나가는구나...



아무리 으리으리하고,


방이라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넓은 곳이라지만!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감금이 계속되면 그곳은 감옥으로 돼 버린다고...



갑자기 가슴에서 느껴지는 벅차오름에,


전망대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신경 안 쓰게 되네.



진짜면 어떻고, 거짓말이면 어떠하리.


내가 이렇게 바깥을 나갈 수 있...




...생각하는 사이, 어느 새 우리 둘은


승강기 앞에 서게 됐어.



빔하고 비슷하게 생겼지만


지금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빔이 아니라 승강기라 그랬어.



호텔에 온 첫 날에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빔이 아니라 승강기라는 설명을 받았지.



확실히 외관은 비슷해도,


차이는 분명했다.



가장 큰 차이는 뭐니 뭐니 해도,


이동 방향이 아닐까?



빔은 앞 뒤 양옆 위아래,


전방향으로 이동하는 데에 반해.



승강기는 오로지 위로만 이동했어.



그렇다는 말은, 이번에 내 방에서 나갈 때는...


분명히 아래로만 가겠지?



이 호텔을 나가려면,


우선은 내가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야 할 테니.



그다음으로, 승차감.


아니, 탑승감이라고 해야 하나?



단어야 어찌됐든, 타고 있을 때의 느낌이


빔하고는 많이 달랐다.



빔이 훨씬 더 우아하고 매끄러운 느낌...?


승강기는 뭐랄까, 조금 거...



띵동.



드르르르...



...왔네, 승강기.


문이 양옆으로 갈라져서 열리는 건 같아.



“먼저 타시지요.”


“아, 감사합니다.”




타자마자, 문 옆에 있는


수많은 동그라미 중 하나를 누르는 랑랑.



첫날 호텔에 왔을 때는,


내 옆에 있었던 직원이 눌렀던 걸로 기억해.



빔은 모든 걸 말로 명령하고 대답까지 했는데...



승강기는 손가락으로 조작되는데다가,


말도 전혀 하지 못하는 듯?



이제야 느끼는데, 속도도 훨씬 느린 것 같...



[그나저나, 소문에 의하면 어린 애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상당히 건장한 체격의 청년인데?]



“네?!”


“...하실 말씀이라도?”



“아니, 저한테 방금 말을 거시지 않으셨어요?”


“아뇨, 전혀. 저, 아무 말도 안 드렸습니다만...”




...이상하네.


내가 잘못 들었나...



“아, 아니에요.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하카라타.”



참나, 분명히 나한테 말을 한...



[깜짝 놀랐네. 나도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한 줄로 착각했잖아. 그나저나, 왜 이분은 왜 추방당하지 않...]


“봐요, 봐! 방금도 저한테 말 걸으셨잖아요!!”



“저, 정말 죄송합니다만... 지, 진짜로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말하기는커녕, 입도 뻥끗 안 했다고요...”


“아니, 자꾸 거짓말 치실 거예요?!!! 제가 분명히 듣!...”




!!!!!!!!!!!!!!!!!!!!!!!!!!!!




“...죄송합니다. 제가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쐬다보니, 너무 흥분해서 그런지... 헛것이 자꾸 들리나 봐요... 자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하카라타. 한 곳에 오랫동안 강제로 머무는 것만큼, 고역스러운 일은 없겠지요. 괜찮습니다.”




...맞아,


그때와 똑같은 증상이야.



트레이브스 훈련소에서 겪었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불가피하게 읽는 현상...



띵동.


드르르르...



“스, 승강기 옆에서 잠시 기다리고 계시겠어요...? 저는 프론트에 가서, 필요한 절차를 밟고 오겠습니다...”


“아... 네...”



문이 열렸고,


예전에 봤던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어.



거실...이라고 표현해야 되나?


하여튼, 방이라고 하기엔 느낌이 아예 다르니까.



그리고 랑랑은 내가 예전에 호텔에 처음 왔을 때


다리움과 함께 곧바로 들렀던 곳으로 간다.



아, 저기를 프론트라고 부른다고 그랬지?



이곳에서 살면서 꽤 자주 들은 단어인데다가,


나도 실제로 가본 곳이잖아.



이참에 확실하게 암기해 둬야겠다니깐?




그나저나, 이곳은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화려하군 그래...



빔의 문이 열리고 처음 봤을 때의 황홀함,


쉽게 잊히지는 않겠지.



그래도 그때보다는 그 감격이


많이 무뎌졌기는 해.



아무래도 내 방 역시 화려하다 보니,


사치스러움 속에서 계속 살아서 그런가...?



그래도 모든 게 똑같지는 않아.


그때와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바로 사람들 수.



예전엔 수십 명의 손님들로 분주했는데,


지금은 직원들 외엔 단 한 명도 안 보여.



호텔 직원들의 수조차도, 많이 줄...



오, 금방 끝났나 보네.


내 쪽으로 걸어오는 랑랑 아저씨.




“끝났습니다, 빔으로 이동하시지요.”


“아, 네.”



승강기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랑랑과 만나 빔을 향해 걸어간...



[설마, 진짜로 내 카에 간섭해서 생각을 들여다본 건 아니겠지? 어리바리한 반응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긴 한데... 하여튼 간에, 확실히 이 사람이 매우 중요한 인물 같기는 해. 느낌이 절대로 평범하지는 않아. 심증과 물증은 없지만, 신성수호국이 이 사람을 가까이 두면서 계속 감시하려는 느낌?]




...또야.



무슨 생각인지는 당최 모르겠지만,


다시 읽히기 시작하는 랑랑의 생각.



아니, 그래도 훈련소에서는 분명히!


이 능력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고!



그런데, 갑자기 이 현상이 또 도진다?!!


안 돼!! 생각의 유입을 얼른 막아야 한다고!!



빨리 이걸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지 않으면...


그때와 같은 커다란 혼란에 또 빠져 버리게 돼...




[물론, ‘예비 이름있는자’라는 명분을 들어서... 또한 알려지지 않은 고대의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이름을 얻은 거라,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대고는 있지만... 어쩌면, 이 자와 관련해서 뭔가 비밀스러운 게 있을지도 몰라. 아직까지는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긴 해도, 혹시 모르니까 빨리 조직에다가 보...]




?!!!!!!!!!




...됐다?


되, 된 거지?



휴, 그래.


생각의 유입이 멈췄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정신을 집중하다가 얼떨결에 된 듯?



정말로 다행이다, 다행이야...



저 현상이 발생하는 순간,


내 뇌는 그냥 아무 기능도 못하게 되는 거라고!



말은커녕, 아무런 생각도 못하게 될뿐더러!!


그냥 하루 종일 남의 생각만 듣고 살아야 한!...




...잠깐만?


뭔가 이상하잖아?



아니, 훈련소에서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들의 온갖 생각들이 저절로 읽혔지?



그래서 얼마 동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동안 머리가 빠개지는 고통 속에서 살았지?



그러다가, 겨우 그 능력을 조종할 수 있게 됐고?



그런데 리리 협곡으로 도망쳤다가,


나를 쫓아온 네이온 형을 만났는데?!



하스테리아에 온 이후로는


오만 사람들을 죄다 만났는데도?!!



계속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다가...


왜 이제야 갑자기 이 현상이 나타나냐는 거지...




하타이트들, 하키온, 나한테 옷을 준 아저씨,


네이온 형이 치료받는 곳에서 만난 이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양한 종류의 호텔 직원들까지.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대상을 만났다고!



그런데 이때까지 내내 잠잠히 있다가,


갑자기 이 랑랑 아저씨를 만나고는...



이 능력이 또 다시 발현한다고?!


내가 원하지도 않은 타이밍에서?!



아니,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게...


뭐가 뭔지를 이해하지 못...



“하카라타?”


“...네? 어?!”



“안 타십니까?”


“아, 아뇨! 타, 탈게요!!”




...언제 도착해서, 언제 문이 열렸는지.



이미 빔 안에 타고 있던 랑랑,


나에게 왜 안 타냐며 재촉했어.



“전망대로.”


“전망대로 이동 중. 예상 소요 시간, 9분.”



구우우우우...




그때와 같아.



승강기처럼 뭐를 누르거나 할 것 없이,


랑랑의 지시로 모든 게 끝나 버린다.




“그나저나, 현재 하스테리아 내 유동인구가 상당히 적어져서 그런지... 소요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단축된 것 같군요.”


“아... 그런가요?”



“물론,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체감상으로 그렇다는 거지요... 아,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가이드는 지금쯤이면 이미 전망대에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가이드라... 내 관광을 도와주는 사람...


누구일지 궁금하긴 하네...



보통 같았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을 텐데,



랑랑 아저씨가 정말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보기도 전부터 하도 띄워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기대가 되긴 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구름이 없어지는 광경을 보고 싶은데... 많이 아쉽습니다. 전망대에 가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 눈앞에서 구름이 없어지는 모습은 아예 다른 차원이니까요.”


“어? 같이 보러 가요! 저는 괜찮은데...”


“아닙니다, 하카라타. 저는 현재 근무 중이니까요, 하카라타처럼 관광을 즐길 수는 없겠지요. 저에게는 또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저는 하카라타를 전망대로 모셔드리기만 할 겁니다. 가이드로부터 하카라타를 소개한 뒤, 나머지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르시면 될 겁니다. 두 번째 관광지 선택 역시, 가이드와 상의해서 결정하시면 되고요.”



“...아쉽네요. 아저씨가 진짜로 설명을 잘해주셨는데. 아저씨처럼 말 잘하는 사람, 처음 봤다니까요?”


“과찬이십니다. 하스테리아에 근무하는 사무직군들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 뛰어난 분들이시지요. 사무직 한 자리를 얻으려 해도,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니까요.”



흠... 하스테리아에서 직장을 갖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인가 봐...?



“하지만 저희 같은 사무직군들이 아무리 목에 힘을 줘 봤자, 하스테리아의 이름있는자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무려, 신성사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엄청난 인재이니까요. 생도였다가 끝내 졸업을 못해서 진로를 관료로 틀은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처럼 일반 공개 채용으로 들어온 자들보다 승진이 훨씬 더 빠르지요.”


“아... 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가이드로 오실 분,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설명을 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아는 척 하면서 넘겼어.



아니, 질문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뭐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질문을 하니까.



아무튼, 새 가이드에 대한 기대감이 크긴 해도...


나는 이 아저씨가 좋았긴 진짜 좋았단 말이지...



갑자기 다른 사람이 온다고 해서 섭...



...?!?!!



“어어?!! 서, 설마?!!!”


“...하카라타?”



“거,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도, 도망을 치는 거예요?!! 전망대고 날씨고, 죄다 허풍이었다?!!!”



“...하하하. 이거, 참... 하카라타께서 말씀하시는 거라, 뭐라 반박하기도 그렇고... 상당히 난처하군요. 그러면, 명함을 드릴 테니... 제 말이 거짓인 게 밝혀지면, 저를 따로 찾아오시겠어요?”


“아? 아, 아뇨... 그, 그렇게까지는...”


“...”



“미, 믿을게요, 그냥...”


“감사합니다, 하카라타. 역시, 너그러우시군요.”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전망대와 날씨조절기능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그냥 밖에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신나는걸요?”



“...흐음. 확실히 아까 전까지 하카라타께서는 상당히 상기된 분위기였긴 한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 흥분이 많이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네요? 무슨 문제라도...?”


“네...? 아! 아, 아니에요. 그냥... 저기... 뭐랄까... 갑자기... 예전에 제가 한참 심란해 했었던 문제가... 다, 다시 도지는 바람에...”



“그러시구나. 그렇다면, 제 호기심은 이쯤에서 바로 접는 게 맞겠지요. 누구나 다 살아가다 보면, 고민거리야 하나 이상씩 가지고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 그건 그렇죠...”



아무래도, 내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지...


랑랑과의 대화, 상당히 어색하게 끝이 난다...




그나저나,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로 이상하단 말이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무작위로 읽히는 현상,


내가 완전히 정복한 줄로만 알았어.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이미


나의 ‘능력’이 됐다고 확신했었다니깐?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대상의 생각을,


내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된 거라고 말이지?




그래서 이 ‘생각을 읽는 회로’를


열고 닫는 능력을 확실히 얻었다고 생각하고는,



그 뒤로 이걸 사용한 적이 없었어...



그 이후로는 다른 존재의 생각이


내 머릿속으로 쏟아지는 혼란 역시,


두 번 다시 없었고...



물론 네이온 형을 만난 이후로는


눈코 뜰 새 없이 경황이 없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못하긴 했다.



다시 말해, 내게 이러한 능력이 생겼다는 걸


그냥 아예 까먹고 있었다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딱히 발휘할 기회도 없긴 했고.




그런데, 그러다가 갑자기?!


내내 잠잠하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시 읽히기 시작했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지 멋대로?!!!



미쳐버리겠다, 정말로...




...처음부터 하나씩,


차근차근히 생각해보자.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시발점은 ‘카슘’이었어.



카슘의 생각을 읽으면서 살아왔다가,


얼떨결에 네이온 형의 생각까지 읽게 됐고.



카슘, 네이온 등 특정 대상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훈련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까지도


이러한 현상이 빚어졌다는 말이지?



그러다가, 아무에게도 안 나타났...




?!!!!!!!!!!!!!!!!!!!!!!!!!!!!!!!!!!!!




아... 아!... 아!!...


아...무에게도... 안 나타...난 게... 아니었어...



이제야 깨닫게 된다!


이 능력, 아무에게도 발휘 안 된 게 아니었다고!!




카이트베이워크타와의 의사소통...


사실상 이 능력과 같은 선상에 있는 거였네...



게다가 그건 무작위로 벌어진 현상이 아니라,


철저히 내 의지가 반영된 능력 발휘였잖아...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나와


하르카네하를 구사하는 워크타,



...결코,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사이였지.



하지만, 카슘과 생각을 주고받는 데서 힌트를 얻어!


네이온 형과의 동기화라는 개념에서도 힌트를 얻어!



워크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었고!!



그 기적을 발판으로 삼아, 궁극적으로는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그래, 나의 교만이었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현상과 관련해


내가 내 자신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훈련소에서 불현듯 엄청난 혼란이 찾아왔는데,


그걸 내 스스로 극복하고는.



그 후로 두세 명의 생각을 고의로 읽어 본 뒤,


내 능력이 됐다며 그냥 속단을 내린 거였다고...



하스테리아에서 별의별 경험들을


다 겪고 난 뒤 돌이켜 보니,



카슘 이후로 나에게 지속적으로 일어났던


이 ‘초자연현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실질적으로 단 하나도 없었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래도,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만큼은


너무나도 분명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잠재력,


어떻게든 끌어 올려야 한다는 목표를 인식한다.



지금이야,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지만...



나에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이


결코 평범치 않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니까?



그러니, 이걸 갈고 닦고 공부해서


완전히 내 걸로 만들어 놔야 해.



이걸 바탕으로 순례자의 시험을 극복한 것처럼,


앞으로도 엄청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



“도착했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두우우우웅...



!!!!!...



“이쪽으로."


"...아, 네.“




오... 크다...



대예배당에서 나온 뒤에 간 장소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프론트가 있었던 호텔 공간보다는


확실히 훨씬 더 큰 것 같아.



곳곳에 기다란 의자들이 상당히 많은 걸 보면,


평소에는 이곳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뜻이겠지?



“오! 어서 오세요, 팀장님! 잘 지내셨죠?!”


“하하하, 자네가 나와 있었네? 가이드는?”


“아, 출근하겠다는 연락은 받았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출발한 것 같긴 하니, 아마도 잠시 뒤에 도착하시지 않을까요?”



“음... 알겠어. 그나저나, 외근은 어때? 많이 힘들지?”


“말하면 숨이나 차죠, 뭐...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또 관광객이 한 명도 없다 보니, 심심해서 죽겠네요... 일이 많아도 짜증, 없어도 짜증... 에휴, 그냥 연금 나오는 근속월수까지만 채우고는 때려 치워야지...”



“후후후... 마음에도 없는 소리, 여전히 잘 하는데?”


“헤헤, 들켰나요? 이렇게라도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게, 말단 사무직의 삶 속 소소한 낙 아니겠어요~?”




...둘이 구면인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친한 사람처럼 보여.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한동안 둘이서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 공간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원탁,


그리고 그 원탁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여성.



이곳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하카라타, 저는 그럼 여기서 물러나겠습니다.”


“아... 가시게요?”


“네. 원래는 가이드와 만나서 직접 소개시켜드리려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군요. 여기서 가이드를 기다리시면 되겠습니다. 그 사이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데스크에게 문의하시면 되고요.”



“데, 데스크...?”


“아, 호텔의 프론트랑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지금 계신 곳이 데스크입니다. 방금 제 말은, 이 친구를 말씀드린 거였지요.”


“반갑습니다~ ‘빛나는 주비스’라고 해요~”


“아, 안녕하세요... 그러면 여기서 기다릴게요.”



빛나는 주비스라... 역시나 처음 들어보는 이름.



확실히 세상의 중심이어서 그런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꽤 많긴 하네...



“그럼,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나에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한 후,


타고 왔던 빔 쪽으로 다시 걸어가는 랑랑.




“하얀 키엔 씨? 성함, 맞으시죠?”


“네? 아, 맞아요...”


“잘 부탁드려요, 키엔 씨. 따뜻한 차라도 드릴까요?”



“...따뜻한 차?”


“네, 차요.”


“그게 뭐, 뭔지... 잘...”



“...아, 음료수의 일종입니다.”


“앗, 그랬구나... 저는 괘, 괜찮습니다.”


“그러면, 다른 종류의 음료수는요? 그것도 싫으시면, 물이라도?”


“아뇨, 아뇨. 그냥 있을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불편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셔요.”


“네...”




...휴.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 전혀 아니거든?



그런데, 이게...


분위기라는 걸 절대 무시 못 하네...



이 커다란 공간에 여성과 나,


달랑 둘이서 있으니까...



이 어색함, 어쩔 거냐고...


아씨, 가이드는 도대체 언제 온다는...



?!!!!!



그, 그, 그렇지!


시간도 남는데, 정말로 잘 됐어.



가이드를 기다리는 동안, 저 여성을 상대로


생각을 읽어보는 능력을 시험해 보는 거야!!



타다닥, 타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목표가 정해져서 그런가,


이제야 저 여성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원탁의 높이는 서 있는 사람에게는 허리지만


앉은 사람에게는 얼굴 높이인데,



그 원탁의 막혀있는 면을 보면서


열 손가락으로 뭔가를 계속 두드리네...?



뭘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상당히 열중해 있는 모습이야.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시험과 훈련 대상에 있어, 최적의 상태다...




...




...?




...??




“저...”


“...”


“저기요?”



“...아, 저요? 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일하는 중이라 그런지, 목소리를 못 들었나 봐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 질문이 있는데...”


“네, 말씀하시지요.”



“지금까지, 본인의 일을 하고 계신 거였잖아요?”


“그럼요.”



“그러면서, 아무 생각도 안 하셨어요?”



“...네?”


“아니, 제 말은... 그, 그러니까... 저를 만난 이후로...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셨는지... 만약에 무슨 생각을 하셨다면... 무슨 종류의 생각을 했고, 얼마나 길게 생각을 했다거나... 그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차분히 정리한 다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 아... 그게... 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하고 싶으신 질문이 정리되면, 그때 다시 말씀해 주셔요~”


“네...”




...미치겠네.



아무것도 안 들려서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긴 했어.



아니, 그 사이에 생각을


아예 하나도 안 했을 리가 없지...



멍 때리고 있어도 무의식적으로 드는 게 생각인데,


저렇게까지 열심히 뭔가를 하는 중이라면?



뭐라도 하나 이상은 생각했을 게 확실하다고.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고 짜증나게도...


이번에는 아무것도 내 머릿속에 안 들어왔어...




와... 환장하겠네?



능력 개발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이것부터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겠어.



어떤 대상의 생각은 읽히고,


어떤 대상의 생각은 안 읽히거나 못 읽는지.



그리고.



어떨 때 다른 대상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어떨 때 다른 대상의 생각을 못 읽는지를.




하아, 이게 확실히만 해 두면 나에게


엄청난 자산이 될 거라는 건 맞는데!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마어마하게 답답하긴 하네...



역시, 믿을 건 네이온 형밖에는 없나?


언제 돌아오냐고, 이 잠꾸러기 자식아...



나를 키워주겠다는 사람, 어디 갔냐는 말이다!!


돌아오기만 해봐, 제대로 혹사시켜주겠어!!



이렇게 된 이상, 그때 나를 때렸을 때 사용했던


타카인가 카타보다도 이걸 더 먼저 배워야겠!...




어? 잠깐만?! 생각해보니...?


이걸 가르쳐달라 하면, 싫다 그러는 거 아니야?!



그때도 자기 생각을 내 멋대로 읽었다고,


공포 분위기를 엄청 조성했잖아.



당시엔 형의 본성을 몰라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 표정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인내심을 발휘할 때 나오는 거였다고.



네이온 형의 쓰레기 인성,


그때 곧바로 알아차렸어야 하는 건데~



뭐, 나중에라도 알게 됐으니 참 다...



“키엔 씨? 하카라타?”



??!!?!!?!!



“네?! 네넷?!!”




까, 깜짝이야...


인기척, 전혀 느끼지 못했어.



누가 나를 불러서 뒤를 돌아 봤는데,


한 남자가 내 앞에 서 있...




!!!!!!!!!!!!!!!!!!!!!!




“어어어?!! 우, 우리!... 어,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기억해 주시는 군요. 그때는 저희가 크게 결례했습니다.”



어, 어, 어디서 봤더라...


아휴, 답답한 내 돌대가리...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날 것 같으면서 안 나서 더 미치겠네...




“준도이타보룸 두 하타이트라고 합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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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4-21. "드디어 외출 4" +2 20.12.01 57 4 42쪽
» 4-20. "드디어 외출 3" +2 20.11.28 61 4 36쪽
107 4-19. "드디어 외출 2" +5 20.11.26 128 3 28쪽
106 4-18. "드디어 외출 1" +4 20.11.24 77 6 27쪽
105 4-17. "내 친구들 전부, 내 손으로 죽였어 2" +4 20.11.21 80 9 38쪽
104 4-16. "내 친구들 전부, 내 손으로 죽였어 1" +1 20.11.19 80 9 67쪽
103 4-15. "처음부터 확정돼 있었던 죽음 5" +1 20.11.14 74 6 33쪽
102 4-14. "처음부터 확정돼 있었던 죽음 4" +1 20.11.12 64 7 37쪽
101 4-13. "처음부터 확정돼 있었던 죽음 3" +4 20.11.10 57 5 43쪽
100 4-12. "처음부터 확정돼 있었던 죽음 2" +8 20.11.07 82 7 32쪽
99 4-11. "처음부터 확정돼 있었던 죽음 1" +1 20.11.05 72 7 35쪽
98 4-10.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해야 한다 3" 20.11.03 77 3 26쪽
97 4-9.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해야 한다 2" +2 20.10.31 65 6 30쪽
96 4-8.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해야 한다 1" +2 20.10.29 79 4 44쪽
95 4-7. "죽음의 광야 4" +2 20.10.27 71 4 26쪽
94 4-6. "죽음의 광야 3" +3 20.10.24 77 7 27쪽
93 4-5. "죽음의 광야 2" +2 20.10.22 82 7 21쪽
92 4-4. "죽음의 광야 1" +3 20.10.20 84 7 23쪽
91 4-3.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3" +2 20.10.17 114 5 17쪽
90 4-2.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2" +2 20.10.15 96 10 17쪽
89 4-1.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1" +3 20.10.13 113 8 23쪽
88 4-프롤로그6. "하이파공의회 6" +13 20.10.10 147 10 43쪽
87 4-프롤로그5. "하이파공의회 5" +4 20.10.08 161 10 26쪽
86 4-프롤로그4. "하이파공의회 4" +9 20.10.06 173 10 37쪽
85 4-프롤로그3. "하이파공의회 3" +13 20.10.03 211 11 35쪽
84 4-프롤로그2. "하이파공의회 2" +4 20.10.01 183 9 40쪽
83 4-프롤로그1. "하이파공의회 1" +1 20.09.29 195 12 47쪽
82 3-에필로그3. "하스테리아 견문록 3" +5 20.09.28 145 15 24쪽
81 3-에필로그2. "하스테리아 견문록 2" +2 20.09.27 176 12 24쪽
80 3-에필로그1. "하스테리아 견문록 1" 20.09.26 151 12 20쪽
79 3-31. "하의 뜻이었다 3" +2 20.09.25 209 12 33쪽
78 3-30. "하의 뜻이었다 2" 20.09.24 121 9 25쪽
77 3-29. "하의 뜻이었다 1" +5 20.09.24 122 13 19쪽
76 3-28.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4" +1 20.09.23 122 15 39쪽
75 3-27.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3" 20.09.23 158 10 27쪽
74 3-26.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2" +3 20.09.22 122 11 35쪽
73 3-25.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1" +1 20.09.22 138 12 26쪽
72 3-24. "순례자의 격(格) 3" +4 20.09.21 146 10 28쪽
71 3-23. "순례자의 격(格) 2" +2 20.09.21 131 11 32쪽
70 3-22. "순례자의 격(格) 1" +1 20.09.20 178 11 29쪽
69 3-21. "세상의 중심에서 4" 20.09.20 145 13 21쪽
68 3-20. "세상의 중심에서 3" 20.09.19 139 14 21쪽
67 3-19. "세상의 중심에서 2" +2 20.09.19 134 9 24쪽
66 3-18. "세상의 중심에서 1" +1 20.09.18 155 12 16쪽
65 3-17. "새 친구와 함께, 시공간을 접어 2" +1 20.09.18 155 14 22쪽
64 3-16. "새 친구와 함께, 시공간을 접어 1" +3 20.09.17 145 17 29쪽
63 3-15. "재회 3" 20.09.17 160 14 19쪽
62 3-14. "재회 2" +1 20.09.16 131 15 19쪽
61 3-13. "재회 1" 20.09.16 135 16 20쪽
60 3-12. "나는야 등산왕" +1 20.09.15 217 15 18쪽
59 3-11. "진실을 찾으러, 차도스 성으로 3" +1 20.09.15 124 15 17쪽
58 3-10. "진실을 찾으러, 차도스 성으로 2" 20.09.14 150 12 23쪽
57 3-9. "진실을 찾으러, 차도스 성으로 1" +2 20.09.14 134 14 22쪽
56 3-8.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3" +2 20.09.13 151 11 16쪽
55 3-7.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2" 20.09.13 185 13 18쪽
54 3-6.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1" 20.09.12 166 14 16쪽
53 3-5. "하느느" +1 20.09.12 137 15 17쪽
52 3-4. "원수에서 친구로 4" +2 20.09.11 141 18 22쪽
51 3-3. "원수에서 친구로 3" +1 20.09.11 137 18 17쪽
50 3-2. "원수에서 친구로 2" +1 20.09.10 169 17 19쪽
49 3-1. "원수에서 친구로 1" 20.09.10 146 15 15쪽
48 3-프롤로그2. "숨어 있던 세력의 등장 2" +4 20.09.09 158 12 19쪽
47 3-프롤로그1. "숨어 있던 세력의 등장 1" +1 20.09.09 198 14 16쪽
46 2-에필로그. "하스테리아 조사관의 보고서" +1 20.09.08 162 14 19쪽
45 2-25. "죽음의 문턱에서 3" 20.09.08 153 11 13쪽
44 2-24. "죽음의 문턱에서 2" 20.09.07 138 15 14쪽
43 2-23. "죽음의 문턱에서 1" 20.09.07 149 13 14쪽
42 2-22. "감금, 그리고 진실 공방 3" 20.09.06 157 11 18쪽
41 2-21. "감금, 그리고 진실 공방 2" 20.09.06 143 15 16쪽
40 2-20. "감금, 그리고 진실 공방 1" 20.09.05 145 13 16쪽
39 2-19. "은밀한 거래 2" +2 20.09.05 159 15 18쪽
38 2-18. "은밀한 거래 1" 20.09.04 158 14 14쪽
37 2-17. "니신에서 홀로 3" +1 20.09.04 167 14 15쪽
36 2-16. "니신에서 홀로 2" 20.09.03 188 14 15쪽
35 2-15. "니신에서 홀로 1" 20.09.03 205 17 15쪽
34 2-14. "아무도 보지 못했다 4" +2 20.09.02 180 18 19쪽
33 2-13. "아무도 보지 못했다 3" 20.09.02 183 16 16쪽
32 2-12. "아무도 보지 못했다 2" 20.09.01 191 19 15쪽
31 2-11. "아무도 보지 못했다 1" +3 20.08.31 228 16 14쪽
30 2-10. "시공간의 시공간 4" +1 20.08.30 206 20 17쪽
29 2-9. "시공간의 시공간 3" +2 20.08.29 190 19 17쪽
28 2-8. "시공간의 시공간 2" +1 20.08.28 204 17 16쪽
27 2-7. "시공간의 시공간 1" 20.08.27 198 18 15쪽
26 2-6. "다른 시공간에서 3" 20.08.26 224 20 16쪽
25 2-5. "다른 시공간에서 2" 20.08.26 216 22 14쪽
24 2-4. "다른 시공간에서 1" +1 20.08.25 256 19 16쪽
23 2-3. "진실은 미궁 속으로 3" 20.08.25 230 22 14쪽
22 2-2. "진실은 미궁 속으로 2" +1 20.08.24 212 22 13쪽
21 2-1. "진실은 미궁 속으로 1" +5 20.08.24 253 20 14쪽
20 1-에필로그. "이야기의 시작" +6 20.08.23 289 23 13쪽
19 1-18. "하, 카, 그리고 타" +1 20.08.23 285 25 13쪽
18 1-17. "우정의 다리 4" +5 20.08.22 277 26 14쪽
17 1-16. "우정의 다리 3" +1 20.08.21 268 24 12쪽
16 1-15. "우정의 다리 2" +2 20.08.21 290 25 12쪽
15 1-14. "우정의 다리 1" +1 20.08.20 296 23 13쪽
14 1-13. "혼란의 혼란 3" +11 20.08.20 325 28 13쪽
13 1-12. "혼란의 혼란 2" +3 20.08.19 322 32 10쪽
12 1-11. "혼란의 혼란 1" +3 20.08.19 346 35 14쪽
11 1-10. "바깥사람 2" +7 20.08.18 378 30 12쪽
10 1-9. "바깥사람 1" +2 20.08.17 414 37 16쪽
9 1-8. "이상한 꿈" +5 20.08.17 413 39 15쪽
8 1-7. "운명과 운명의 충돌 3" +14 20.08.16 452 37 13쪽
7 1-6. "운명과 운명의 충돌 2" +6 20.08.15 461 33 16쪽
6 1-5. "운명과 운명의 충돌 1" +5 20.08.15 518 34 13쪽
5 1-4. "차도스의 충신 2" +2 20.08.14 593 39 14쪽
4 1-3. "차도스의 충신 1" +6 20.08.13 694 40 10쪽
3 1-2. "뜻하지 않았던 이별 2" +5 20.08.13 799 44 11쪽
2 1-1. "뜻하지 않았던 이별 1" +40 20.08.12 1,668 67 27쪽
1 프롤로그. "협곡의 풋내기 산적단" +57 20.08.11 3,458 10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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