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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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을
작품등록일 :
2014.06.0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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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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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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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구름의 아이들 - 09

DUMMY

Channel 1. 로키


임꺽정의 양털 깎기는 계속되었고, 안전한 물가에서 마냥 물만 먹어대는 양들을 보기에도 조금은 지루한 감이 있어, 나는 양들을 몰아 풀밭으로 데리고 갔다. 다행이 이곳에는 양들이 좋아하는 새순들이 많이 돋아나 있었다. 눈치 빠른 서림은 양떼에게 달려들어 양들을 이리저리 흩어뜨려 놓았고, 이리저리 밀리다가 흩어진 양들은, 자연스럽게 간격을 두고 각자가 좋아하는 풀을 뜯어먹었다. 이런 한가로운 풍경을...... 목가적이라고 하던가? 아마 그럴 것이다. 산중이었으면 아마 임꺽정이 펄쩍뛰며 난리 난리를 쳤을 테지만....... 마을도 가깝고 해서, 임꺽정도 고개를 들어 쓱 훑어볼 뿐, 그 이후에는 다시 양털을 깎는데 매진을 했다.


나도 이후론 딱히 할 일이 없고 하여, 임꺽정이 준 양피지를 펼쳐서 보았다.


“음...... 사는 사자......”


양피지에는 라스알하게어와, 그것에 대응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에휴......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구먼. 일전에 임꺽정이 내게 라스알하게의 문자를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었는데, 나는 그가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참으로 큰 오산이었지. 그는 생각보다 추진력이 좋았고, 그 추진력은...... 그의 고집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었다. 그는 요 며칠 동안 끙끙대며 양피지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무언가를 만들었고, 그것이 다 만들어지자 그걸 내게 숙지하라며 건네주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그것이지.


처음에는 괴이한 모양의 글자와, 괴발개발로 그려진 그림 탓에 뭐가 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는 그런 나를 붙들고 끈질기게 그림의 의미,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글자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싫다고 진저리를 쳤지만...... 녀석은 우악스럽게 매달렸고, 결국 두 손 두 발을 든 것은 나였다. 그래도 그림이 개판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었던 지라...... 나는 ‘발음 기호’를 사용해 첨언을 하는 걸로 그와 합의를 보았다.


“아......는 아죠...... 야, 이거 뭐라고 읽냐?”

“아저씨.”

“아.....죠오.....쓰.....이.”

“라스알게티 넘덜은 정말 이상하다니께...... ‘어’발음이 그렇게 어렵냐? 쌧바닥이 반 토막 난겨?”

“아 몰라. 일단 이건 패스해. 그 다음께......자는 자......리......인고비. 자린고비...... 맞냐?”

“어...... 그려.”

“그게 무슨 뜻이냐?”

“음...... 돈 쓰는데 벌벌 떠는 놈들 있잖어.”

“아, 구두쇠?”

“니네넌 그런 식으로...... 부른 갑네?”


내가 자린고비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서 묻자, 임꺽정은 ‘하 새끼 더럽게 물어보네.’라고 투덜거리고는 생각보다 자세하게 그 단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그의 설명을 듣는 동안, 새끼양 하나가 내게 다가와 내 손을 햝으며 낑낑거렸다. 응? 무슨 일이지? 귀나 눈, 목이나 엉덩이 등 확인해볼 곳을 다 확인해 보았지만, 딱히 이상이 있다 싶은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뭐...... 안아달라는 것인가 해서, 나는 녀석을 끌어안고 임꺽정의 이야기를 더 듣기로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다보면...... 고기가 썩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고기가 썩는건 썩는 거지만...... 그래도 당장에 먹어버리면, 자기 딴에는 반찬이 사라진다고 생각을 했나보지.”


설명을 듣고 나니...... 참 이 대륙이 넓은 이유를 잘 알 것 같았다. 그 많은 또라이들을 모두 품으려면...... 지금의 크기로도 사실 좀 모자란 감이 있는지도 모르지. 내가 아는 구두쇠라는 단어의 주인공과, 이제 막 들은 자린고비라는 단어의 주인공을 비교해 보았을 때...... 자린고비 쪽이 좀 더 윗길인거 같......


“아야! 너 왜 그래 임마?!”

“왜 그려?”

“이놈이 날 무는데?”


새끼 양 이놈이 무슨 불만이 있었는지, 내 손을 꽉 깨물었다. 아이고...... 풀을 뜯어먹는 놈들이라고 해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막상 물리고 나니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아니 이놈의 새끼는 안아줘도 불만이네. 뭐가 불만인거지? 내가 눈을 부라리며 양을 쳐다보니, 양은 내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틀었다. 아 이거 참...... 사람이면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라도 있지. 말이 안 통하는 짐승을 상대로 의사소통을 하려니 도통 머리가 아픈게 아니다. 아니 그러니까 뭐가 불만이냐고!


“야...... 로키야.”

“어? 왜?”

“양덜이...... 쪼깐 이상헌디?”


임꺽정의 지적에 양떼를 보니, 비단 양떼만 이상한게 아니었다. 서림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높은데 올라서 양떼를 감시하거나, 멀리가는 양들을 데리고 올 녀석이, 지금은...... 어딘가를 향해 경계 태세를 하며 짖고 있었다. 그리고 임꺽정이 지적한 대로, 양들도 뭔가 이상했다. 분명 서림이 양들을 이리저리 흩어놓았었는데, 양들은 서림의 지시도 없이 알아서 뭉쳐있었다. 음...... 분명 임꺽정이 알려준 대로라면, 양들이 저렇게 모여있는 건......


“서림이...... 뭔 일...... 있는가?”


나는 임꺽정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는 입으로는 서림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의 손은 지팡이를 잡고 있었다. 경력이 되는 그도 긴장을 했는지, 지팡이를 잡은 손이 하얘질 정도였다.


나도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주머니를 뒤져 몽둥이를 꺼냈다. 왜 칼을 꺼내지 않냐고? 아무래도 동물의 가죽은 인간의 것보다 더 질기고 털에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괜히 어설프게 날붙이를 들어보았자, 실효성이 떨어질 것 같았거든.


“부스럭!”


오...... 이런...... 빌어먹을.








Channel 2. 아이리스


이봉학씨의 제안에 따라, 저는 토끼를 잡는 대신, 녀석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먹이사슬 상, 풀 바로 위인 토끼라면...... 토끼를 노리는 다양한 동물들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게 비단 저에게만 새로운 도전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능수능란했던 이봉학씨도, 자신이 제안을 해놓고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쪼깐...... 성급헌 결정이었남? 생각해 보니께...... 우리덜 무기도 안 챙겨 왔잖아유.”

“그래도 덫이 여러 개 있으니까. 돌발 상황이 생겨도 최소화되지 않을까요?”

“음...... 그려도 혹시 모르니께, 무기가 될 만 한 건 챙겨두는 게 좋을거 같어유.”


이봉학씨는 사냥용 칼을 꺼내, 근처의 나무를 잘라내고 그걸 손질했습니다. 투박한 모양새였지만, 날이 잘 들어, 그의 손질이 거친 뒤에는 제법 그럴듯한 꼬챙이가 만들어졌어요. 뭐...... 그가 가지고 있는 칼로도 충분한 무기가 될 것 같긴 했지만...... 분명 그가 그런 걸 만드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굳이 트집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음..... 요거면 되얐슈. 사냥용 칼만 가지곤 안 돼유. 명색의 야수라, 붙어버리면...... 그날로 인생 하직허는거유. 최대한 거리를 벌려서 놈이 사정권에 왔다 싶으면...... 냅다 찔러버려유. 최소한 죽이진 못허드래두, 요정도면 큰 상처정도는 냉길 수 있을테니께.”


저는 이봉학씨가 주는 꼬챙이를 받아들고, 그와 함께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서도, 그리고 제가 실제로 경험해본 바로서도, 나무위에 올라가는 건 사냥을 할 때를 한정지어서는 꽤나 손쉽고 효과적인 은신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두 발로 땅을 짚는 인간과 달리, 네발로 기는 동물들은, 시야가 한정되어있거든요. 자연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는 것이 습관화 되지 않은 동물들은 나무위에 올라가있으면 바로 밑에 지나가더라도 자신의 머리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더라구요. 나무위에 올라가서, 그는 우리가 하는 작전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간단해요. 우리가 사전에 만든 덫에 토끼를 미끼로 두고, 기다리는거에요. 토끼를 먹이로 삼는 늑대나 이리가 지나가다가 토끼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순간, 덫이 작동을 하는 거죠. 이때의 덫은...... 토끼나 다람쥐를 잡을 때 썼던 올가미는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대상이 아무래도 맹수이다보니, 신체의 일부를 구속하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안전을 도모하기 어렵거든요. 만약에 우리가 목숨을 끊으려 섯불리 다가갔다가 맹수가 공격을 하게되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사용한 덫은...... 벼락틀이라고 하는건데요. 통나무들을 그들의 문자로 ‘ㅅ’모양으로 기대게끔 하고, 그 위에 조금만 충격이 가해져도 바로 무너져 내릴 수 있도록 돌들을 올려놓았어요. 만일, 미끼를 노리고 온 맹수가 그걸 발견하고 먹으려고 다가간다면...... 먹이에 손을 대는 순간 바로 무너져 내릴 겁니다. 맹수로서는 혼비백산할 일이겠죠.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릴테니......


만약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맹수가 덫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제 2의 덫이 그걸 기다리고 있습니다. 창 덫이 바로 그거에요. 덫 근처에 자라는 어린 나무의 가지를 꼬챙이처럼 날카롭게 만들어 창을 삼고, 그걸 구부린 뒤에 줄로 고정을 해놨어요. 만약 벼락틀에서 운좋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당황해서 정신 못 차리는 짐승을 이걸로 단번에 죽일 수가 있어요. 이정도 이중 덫이라면, 억세게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빠져나가긴 힘들 겁니다. 물론, 저희는 이 두 개의 덫중에 하나만 작동하더라도 바로 뛰어내려 동물을 사냥할 거고요.


저와 이봉학씨는 나무 위에서 한참동안 기다렸습니다. 미끼가 된 토끼는 이곳의 냄새를 맡고는 ‘맹수가 지나가는 곳이구나’라는 걸 깨닫고 겁에 질려 오도가도 못 하고 있었지요.


“부채로 토끼 똥을 부치기라도 할까요?”

“아녀라, 기왕 한다믄...... 토끼헌티 피라도 내는건디, 이미 덫을 설치해놔서 그건 무리구...... 즘생덜이 우리보담 냄새는 잘 맡으니께 그걸 믿고 기다려......쉿.”


이봉학씨는 자신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그가 무언갈 발견한 모양이에요. 저도 그의 제스쳐에 입을 다물고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 왔군요. 그런데...... 으응?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그러게유...... 철이 철인지라 겨울잠에서 깨긴 혀쓸텐디..... 요러게 마주치리라구 생각은.....”


저도 이봉학씨도...... 낯선 방문자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만약 제가 살아남을 수 있고, 그 뒤에 당황한 까닭을 듣는다면..... 아마 당신은 그럴 수밖에 라고 수긍할 거에요...... 지금 토끼의 냄새를 맡고 나타난 동물은 다름 아닌...... 곰이었거든요.


“......”


누가 그렇게 하자고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무슨 소리라도 냈다가...... 곰이 고개라도 드는 날에는...... ‘아버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는 거니까요. 저희는 소리를 죽여 곰이 어떻게 나오는지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생각한 사냥감이 아닌게 매우 당황스럽긴 하지만...... 덫이 제대로 작동해준다면, 녀석을 잡는 게 가능할 지도 모르니까요.


“......”


곰은 코를 킁킁거리며 덫 주위를 돌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듣거나 읽었던 우화들에서의 곰은 미련하고 둔한 이미지로서 우리의 곁에 찾아왔는데, 지금 제 눈앞에 실존하는 이 곰은 의심이 매우 많아보였습니다. 얼마나 똑똑한지 그다지 알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보이는 대로만 말해 본다면, 적어도 죽은 척 하는 나그네에게 ‘너 친구 잘 사귀어 임마.’라고 속삭일 것 같지는 않아보였습니다. 어쨌거나, 곰은 벼락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꼼꼼하게 위험요소를 살피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혹시나 녀석이 덫을 잘못 건드려 녀석이 미끼를 물기 전에 무너져버리는 것이 아닌지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


한참을 돌던 곰은 마침내 판단을 마쳤는지 우뚝 섰고, 이번엔 더욱 조심스럽게 벼락틀 속 미끼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해서 방아쇠를 건드리면..... 녀석의 머리위로 돌덩이가 와르르 쏟아질 터입니다. 저희는 마른침을 소리죽여 삼켜가며 곰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와..... 저걸 저렇게?”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올 정도로, 곰은 미끈하게 벼락틀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녀석의 입에는 토끼가 들려있었어요. 토끼는 겁에 질리다 못해 기절한 것처럼 굳어있었습니다만, 곰의 입에는 피가 흐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죠? 곰이 설마 뭐...... 덫에 걸린 토끼가 불쌍해서 풀어주려는 건 아닐테고...... 어떻게 하면 저 우악스러워 보이는 입에서 토끼가 상처하나 없이 들려있나 싶습니다. 그리고 대관절 왜 그렇게 다루는지도 궁금하고요.


“.......저기 보슈.”


이봉학씨는 낮은 목소리로 곰의 오른편을 가리켜보였습니다. 아아, 저쪽에 새끼 곰 한 마리가 보이네요. 아마 지난 겨울을 어미곰과 함께 겨울을 보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배가 한창 곯아있을 새끼 곰을 위해 토끼를 먹지 않고 저리 살려둔 것이겠지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성애 앞에서는 하나인 것 같습니다. 훈훈한 모성애 앞에서 지금 제가 무슨 일을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하는 차에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Channel 1. 로키


마을 어귀 숲에서 튀어나온 것은....... 곰이었다. 그것은 잔뜩 성이 났는지, 표호를 내지르며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토끼였다.


“으아아! 이게 뭐야!”


토끼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식으로 이리저리 내달리고 있었다. 토끼가 빠르다는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죽기 살기로 내달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곰은...... 흔히들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련하다든지, 동작이 굼뜨다든지 하는 것들은 그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신의 온몸으로 증명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땅이 울리도록 거칠게 자신의 질주를 계속해나갔다.


“서림이! 몰어! 얼른!”


임꺽정도 최초의 당혹스러운 순간이 지나간 뒤에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성을 찾아, 서림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래, 딱 보아도 둘 사이의 추격전에 굳이 서림이 끼어드는 ‘삼파전’의 양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서림도 임꺽정의 신호에 따라 이리저리 내달리며 양떼를 우리에게 몰아왔다. 그동안 서림이가 제법 날쌔다고 생각해왔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니, 이 녀석이 얼마나 평소에 게을러 터졌었는지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어처구니없고 위험한 사태에, 나는 내가 기억하는 범위에서 최초로 두 손을 모아 ‘제발 저놈이 이곳으로 오지 않도록 해주십쇼.’라고 간절하게 빌었던 것 같다. 토끼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지 않기를, 그냥 거짓말처럼 먼발치에서 지나쳐가기를, 토끼에 정신 팔린 곰이 우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기를 무던히 빌었다.


“캭!”


하지만 희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으니...... 약이 바싹 오른 곰이 딴에는 회심의 일격이라도 되는 듯이 몸을 날려 토끼를 덮쳤지만, 이 얄미운 사족보행의 피조물은 재빠르게 방향을 바꾸어 곰의 습격을 피했고...... 곰이 넘어진 사이에 더욱 거리를 벌려 건너편 숲으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리고 이 넓디넓은 초원에는...... 자빠진 채 고통에 겨워하는 곰과...... 겁에 질린 양들, 그리고 나와 임꺽정 서림......이 남았다.


“......”


곰은 묵직한 자신의 육체를 일으켰고...... 녀석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


곰은 두 발로 곧추서서 주변을 둘러봤고, 우리는 숨을 죽였다. 내 머릿속의 수다쟁이도, 이때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녀석이 눈치가 빨라서 그랬다기 보단......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머릿속에 그 녀석도 생각을 포기한 게 아닐까 싶다.


“......”


곰은 이족보행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앞발로 땅을 디뎠다. 그래 허리가 아파서 그런 것일 거다. 원래 곰은 사족보행을 주로 하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야 했다. 하지만.....


“......”

“......”

“야 이 씨발!”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단어는 ‘희망’이라고 했던가, 곰은 우리를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오다가, 어느정도 거리가 됐다 싶었는지 우리를 향해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욕설 섞인 절규가 튀어나왔고, 양들은 서림의 통제에서 벗어나 진동한동 달음박질 쳤다. 그 기세 좋던 서림도, 양들을 통제하다가 양들의 발굽에 밟혀 깨갱하고 쓰러졌다. 내 머릿속에서는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빨리 반대 방향으로 달음박질 쳐라!’라는 다급한 명령이 수도 없이 떠올랐지만, 내 빌어먹을 육신은 그 자리에 뿌리를 박아버리기라도 한 듯 좀체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1여 년 전에 수상 관저를 습격했을 때, 폭발에 휩쓸리면서 겪었던 감정이 다시 살아난 모양이다...... 감정을 잊어버린 줄 알았던 내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 불편한 것...... 공포가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얌마, 뭐 허는겨! 얼렁 텨!”


공포가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기 직전에, 내 몸이 붕 뜨더니 그대로 뒤로 내다꽂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상황변화를 내 뇌가 해석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동안, 내 눈에는 임꺽정의 뒷모습이 보였다. 새삼스럽게, 녀석의 등이 근육으로 더욱 우락부락해 보였다.


곰은 달리면서 자신을 가로막는 양들을 부딪쳐 날려버리고 그대로 나와 임꺽정을 덮쳤지만...... 놀랍게도 임꺽정은 작대기로 곰의 일격을 막아냈다. 세상에, 저런 나무 몽둥이로 곰의 일격을 막아낸다고? 공포심이 호기심에 잠깐 주춤한 사이, 나의 눈에는 나무 몽둥이가 패인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패인 나무 사이로...... 쇳조각이 햇볕을 부스러뜨리는 것이 보였다.


“니라도 살아야 할거 아니냐! 나가 막을 때 얼렁 튀랑께!”


임꺽정이 소리를 지르는 동안, 곰은 몽둥이를 아가리로 꽉 물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임꺽정의 그 육중한 몸이 그에 따라 와달강데달강 까불려졌다. 임꺽정은 다급했지만, 나는 곰이 저렇게 집요하게 그를 물고 늘어지는 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곰과 임꺽정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건가?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적어도 곰에게 있어선 나든, 서림이든, 양들이든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대상에 집중을 하다보면..... 주변의 것에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손에 쥔 양피지를 만졌다. 이게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빳빳하게 마른 것이라면, 적어도 단 십 몇 초라도 녀석의 공격을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일단 질러나 보자. 평소의 나라면 ‘가능성이 없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가능성을 계산할 만한 계제가 없다.


“어.....어어? 안 튀고 뭐혀!”


나는 곰의 등 뒤로 재빠르게 달려,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곰은 임꺽정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내가 올라탄 것도 까맣게 모를 정도였다. 좋아, 단 몇 초라도 그렇게 모르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녀석의 등을 기어올라, 어께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양피지를 녀석의 눈에 덮고, 양피지 고리의 줄을 쭉 당겼다.


“!!!”


불의의 습격에 당황한 곰은 앞발을 휘둘러 자신의 얼굴을 쳤다. 때로는 그 공격이 고개 너머로 향하긴 했지만, 내가 양피지 줄에 몸을 기대다시피 하며 쭉 당겼기 때문에, 녀석의 공격은 나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만 무의미하게 당겼다. 곰은 얼떨결에 입을 벌렸고, 덕분에 임꺽정의 몽둥이도 녀석의 아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보니, 녀석의 몽둥이는......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쇠심을 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이었다.


“내려치든 엎어치든 어떻게든 해봐!”

“이.....씨펄럼이!”


임꺽정은 몽둥이를 크게 휘둘러 곰의 뒷발 무릎을 쳤다. 곰의 무릎에서 우지직하는 소리가 났다. 곰은 불의의 습격에 벌떡 일어났지만, 아까의 공격으로 무릎이 아작 났는지 이내 균형을 잃고 쓰려졌다.


“됐어!”

“안직이여...... 이 씨펄럼아!”


임꺽정의 두 번째 공격은 곰의 대가리를 향했다. 완전히 적중했다면, 그 쇠몽둥이로 곰의 두개골을 박살낼 수 있을 터였지만, 곰이 본능적으로 피하는 바람에 곰의 턱주가리만 박살을 낼 수 있었다. 곰은 몸부림을 쳐댔다. 그리고..... 그것은


“야! 조심해!”

“어이구구!”


곰의 앞발이 임꺽정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아니...... ‘할퀴다.’라는 표현은 곰의 크기와...... 그 공격의 강도를 묘사하기엔 턱없이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내가 아는 언어들의 부스러기를 모아 그 참상을 묘사해보자면, 곰의 그 눈먼 앞발이 임꺽정의 가슴을 후벼팠고..... 녀석은 가슴팍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며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이런......씨바. 이게 뭔 일이냐고!”


곰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양피지를 찢어버리기 위해 계속해서 발을 휘둘렀고, 나는 엄호를 바랄 수 없이 곰에게 매달린 형국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매우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거의 영원과 같은 시간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거둬가는 걸로 생을 영위하던 내가, 이렇게 무력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도시에서 살았던, 거기에서 먹이사슬의 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거대한 대 자연 속에선 한낱 미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게 ‘네 주제를 알라’고 곰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풍랑속의 나룻배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그 상황에......


“조심혀!”

“!!!”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곰의 오른쪽 옆구리에 창을 꽂아 넣었다. 창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는 것처럼 매끄럽게 옆구리로 빨려 들어갔고, 그 일격에 곰이 우뚝하고 일순간 멈추더니..... 거짓말처럼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뭐.....뭐야?”

“꺽정이성! 오매...... 이게 뭐여 가심팍이 완전 패여 버렸는디?”

“기다려봐요! 제가 해결할게요!”


그 둘은 곰의 시체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내버려두고, 바닥에 쓰러진 임꺽정에게 바로 달려갔다.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고, 한명은 생전 처음 보는 듯 했지만...... 나머지 한명의 뒷모습은 꽤나 익숙했다. 그렇다...... 답답이였다.








Channel 2. 아이리스


라스타반의 연구자 라이프니츠라는 사람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신이 던진 작은 조약돌과 같다.’ 이 발언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데요, 조약돌을 하늘로 던져버리면, 그 돌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겠지요? 아마 조약돌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날아가는 동안 ‘난 자유롭다!’라고 외칠거란 겁니다. 인간은 신이 던진 작은 조약돌과 같아서, 인간의 이른바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모두 신이 의도하는 것과 상통한다는 거에요. 일전에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잡혀갔던 수녀님이 말씀하신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비열한 것도, 악한 것도 신의 섭리에 합당하기만 하다면 선에 귀결된다고 믿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거겠지요.


만약 제가 라스타반으로 갈 수 있다면, 그곳에서 라이프니츠를 만날 수 있다면...... 저는 그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 모든 일이 신의 뜻에 귀결되는 거냐고요.


“아..... 안돼!”


제가 말릴 새도 없이..... 새끼 곰은 창 덫의 방아쇠를 건드려버렸고, 서늘하도록 뾰족했던 그 창은...... 새끼 곰의 머리를 부숴버렸습니다. 그동안 사냥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생각을 했지만..... 차마 그 장면은 볼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어요.


어미 곰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지, 자신의 앞발로 조심스럽게 새끼곰을 건드려보았지만...... 그 힘이 워낙 강했던 탓에, 어미 곰이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새끼 곰의 시신은 더욱 잔혹하게 뭉개질 뿐이었습니다.


“끄어어어어......끄어어어어!!”


어미 곰은 하늘을 보며 처연하게 울부짖었습니다. 그 바람에 운이 좋았던 토끼는 곰의 아가리에서 재빠르게 빠져나가 숲 밖으로 내달렸지요. 토끼가 도망치자, 어미 곰은 사냥감을 놓쳤다는 낭패감에 자신의 자식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이 뒤엉켜 비틀거리며 토끼를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와 이봉학씨는 나무위에서 숨죽여서 이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간거 같슈.”

“내려가 볼까요?”


어미가 나타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내려간 뒤에, 저는 새끼 곰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매우 처참하게 박살이 나서 건드리기가 망설여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녀석의 목을 짚어보았어요. 아아, 놀랍게도..... 이 어린 ‘아버님’의 피조물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뭐 하는거유?”

“기다려보세요......”


저는 두 손을 들어 박살이 나 너덜거리는 새끼 곰의 머리를 붙잡고 기도문을 읊었습니다. 제발...... 제발 이대로 어린 생명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모순된 것인 건 알아요. 어쩌면 위선된 행동일 지도 몰라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인정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워......웜마? 이게 다 뭐래유?”

“......하아..... 하아.”


이마가 땀으로 축축해지도록 치열하게 기도문을 읊은 결과...... 다행이 새끼 곰의 머리는 온전하게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저는 새끼 곰의 코에 귀를 대보았어요...... 숨을 쉬고 있습니다.


“......됐어요.”

“됐다뉴? 뭐가? 지금....., 요거를 살렸다 이거유?”

“네......”

“환장하것네...... 나가 지금 내 눈으로 뭘 본거여?”

“위선된 행동인거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노리는건 이 작은 아이가 아니었잖아요.”

“아니 뭐...... 위선이다 뭐다...... 내가 따질건 아닌거 같긴 헌디..... 지금 클났소.”

“네?”

“저 곰새끼가...... 간 방향이.......그러니까.”

“마을 쪽으로 간 거군요.”

“잉 그류.”

“큰일이네...... 얼른 쫓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근디 우리가 가진거라고는...... 딸랑 몽뎅이 몇 개랑 꼬챙이가 다라...... 우리만으로는 역부족이유.”

“......”


저는 제 품에 안겨 쌕쌕거리며 자고 있는 새끼 곰을 보았습니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에 폭주한 어미 곰에게 자신의 아이가 살아있다는 걸 알려준다면...... 일이 풀리지 않을까요? 이런 제 생각을 들은 이봉학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럼 얼른 쫓자구유. 그넘이 사고를 더 치기 전에 말여유.”


우리는 꼬챙이와 몽둥이를 챙겨 어미곰을 쫓아갔습니다. 숲은 많이 우거졌지만, 어미곰의 흔적을 찾는건 어렵지 않았어요. 자식잃은 분노로 어미곰이 이리저리 내달렸던지 숲의 나무들이 온통 상처투성이였거든요. 특히 몇몇 나무들은 기둥이 찢겨져 있을 정도였습니다. 토끼를 잡는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저는 어미 곰이 마을로 내려가 더 큰 사고를 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숲을 완전히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야 이 씨발!”


아이고..... 사태는 완전히 최악의 방향으로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곰이 마을로 내려간건 아니었어요. 숲과 마을의 완충지대이자, 양치기들이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들린다고 하는 초원에 있었어요....... 다행인 부분은 여기까지였고, 나머지는 다 최악을 향하고 있었지요. 우선적이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초원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거에요. 양치기와...... 양들이었죠. 토끼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사냥감을 잃어버린 어미 곰은......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필요로 했었던 모양입니다. 녀석은 양치기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죠. 그리고 두 번째로 심각한 문제는...... 곰과 양치기들 사이에 양들이 있었던 거에요. 곰은 양치기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고, 그 돌진에 우왕좌왕하던 양들은 손쓸 새도 없이 곰에 받혀 이리저리 나뒹굴었습니다. 초원은...... 이제 초원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버렸죠. 저와 이봉학씨는 더 늦기 전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곰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꺽정이성!!!”


이봉학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그쪽을 향해 내달렸어요. 어찌나 다급했던지, 그의 입에선 침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그는 그걸 닦을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침을 휘날리며 달렸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라...... 어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손이 하얘지도록 꼬챙이를 움켜잡고서 그를 따라 달렸어요. 머릿속에는 ‘빨리 저곳으로 가야한다.’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리에는 쥐가 났는지 후벼 파는 통증이 허벅지로 하여금 비명소리가 나게 만들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지금은 1분 1초가 급했으니까요.


저희가 그들을 향해 달리는 동안에도 사태는 여전히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양치기는 두명이었고, 그중 우락부락해 보이는 이가 얄쌍한 이의 뒷목을 잡아채 뒤로 던졌습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곰이 그 둘을 향해 달려들었고, 동료를 집어던진 양치기가 자신의 지팡이로 어미 곰의 아가리를 막아냈습니다.


“니라도...... 거 아니냐! 나가..... 때 얼.....랑께!”


달리는 동안 맞바람에 정신없이 머리카락이 나부껴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몸으로 곰을 막아낸 양치기가 자신의 동료에게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는건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곰을 막아내는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는지, 곰은 아가리로 지팡이를 잡더니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어댔어요. 그 바람에, 평생 누군가에게 꿀리는 삶과는 거리를 두었음직한 이 남자가 지팡이를 따라 이리저리 까불려졌지 뭡니까.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어요.


악화일로로 치닫는 상황에 변수가 생긴건, 그 때 부터였습니다. 우락부락한 이에게 밀려 나자빠진 얄쌍한 남자가, 살금살급 곰의 뒤로 다가가더니, 곰의 등을 타고 올라가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훼방에 당황한 곰은 자신의 등 뒤로 팔을 휘휘 저었지만, 신체적인 조건탓에 남자에게 닿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어요. 그러는 사이, 곰의 공격에 날아가버린 우락부락한 이가 자신이 잡고있던 몽둥이를 들고 곰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시펄럼아!”


남자는 몽둥이로 곰의 뒷다리를 후드려 팼고, 그게 먹혔는지 곰은 비틀비틀 하더니 자리에서 주저앉았습니다. 이 이후에 진짜 명장면...... 이라고 해야 할 장면이 나오는데요. 남자는 주저앉은 곰의 머리통을 몽둥이로 후려치더군요. 사람이 급박한 상황에 직면하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저 남자는 이런 식의 ‘평생을 가도 한 번 겪을까 말까한’ 일을 숱하게 경험해 왔는지 자세한 속사정은 알도리가 없었지만, 저 남자의 호쾌한 공격이 먹힌건 사실이었어요. 머리통을 두들겨 맞은 곰은 비틀비틀하다가 악에 받혔는지 팔을 더욱 세차게 휘둘렀습니다.


우리가 그 잔혹극에 도착한건 그 직후였어요. 이봉학씨는 제게 ‘짝대기 주쇼!’라고 소리쳤고, 저는 이봉학씨에게 꼬챙이를 넘겼지만...... 아이고 이런, 긴장감 탓에 어찌나 오랫동안 그리고 어찌나 강하게 그걸 움켜잡았던지, 그에게 꼬챙이를 넘겨주기 직전에 그걸 떨어트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일이 생긴건...... 바로 그 직후였습니다.


“어이구구!!”

“조심혀!”


곰의 눈먼 앞발이 우락부락한 남자의 가슴을 쳤고, 남자는 가슴에서 대량의 피를 흘리며 다시 한 번 나자빠졌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봉학씨는 가까스로 주운 꼬챙이를 곰의 심장에 박아 넣었어요.


심장을 찔린 곰은, 언제 그렇게 날뛰었냐는 듯이, 그 육중한 몸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저희 둘은 곰을 살펴보는 대신 바로 우락부락한 남자에게 달려갔지요.


“뭐.....뭐야?”

“꺽정이성! 오매...... 이게 뭐여 가심팍이 완전 패여 버렸는디?”

“기다려봐요! 제가 해결할게요!”


작가의말

오늘은 평소와 달리 2회차(1회차 = Channel 1 + Channel 2)밖에 진행을 못했습니다.

평소대로 3회차 진행 후 업로드를 하려고 했으나, 마지막 회차의 내용 일관성을 위해서는 원테이크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한 오버페이스를 하다보니,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서 3회차 작업은 어렵다고 판단해 2회차로만 업로드를 했습니다.

전편과 비교해보니 약 4,000자가 부족하네요. 조금 흐름이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긴 내용을 원테이크로 하는건 지양해야겠다는걸 느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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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법치의 세바퀴 - 12 19.07.09 58 0 26쪽
85 법치의 세바퀴 - 11 19.06.26 108 0 17쪽
84 법치의 세바퀴 - 10 19.06.02 64 0 30쪽
83 법치의 세바퀴 - 09 19.05.13 79 0 23쪽
82 법치의 세바퀴 - 08 19.04.25 84 0 18쪽
81 법치의 세바퀴 - 07 19.03.28 71 0 18쪽
80 법치의 세바퀴 - 06 19.02.17 142 0 28쪽
79 법치의 세바퀴 - 05 19.02.02 106 0 35쪽
78 법치의 세바퀴 - 04 18.12.27 85 0 31쪽
77 법치의 세바퀴 - 03 18.12.02 109 0 27쪽
76 법치의 세바퀴 - 02 18.11.08 143 0 18쪽
75 법치의 세바퀴 - 01 18.10.29 160 0 26쪽
74 고단한 아버지 - 07 18.10.11 124 0 23쪽
73 고단한 아버지 - 06 18.10.01 95 0 28쪽
72 고단한 아버지 - 05 18.09.17 125 0 33쪽
71 고단한 아버지 - 04 18.08.05 111 0 35쪽
70 고단한 아버지 - 03 18.07.20 125 0 37쪽
69 고단한 아버지 - 02 18.07.04 106 0 30쪽
68 고단한 아버지 - 01 18.06.06 118 0 28쪽
67 고단한 아버지 - 0 18.05.24 130 0 18쪽
66 구름의 아이들 - 15 18.05.13 119 1 37쪽
65 구름의 아이들 - 14 18.05.02 132 0 33쪽
64 구름의 아이들 - 13 18.04.19 147 0 33쪽
63 구름의 아이들 - 12 18.03.31 130 0 32쪽
62 구름의 아이들 - 11 18.03.20 123 0 33쪽
61 구름의 아이들 - 10 18.03.06 119 0 36쪽
» 구름의 아이들 - 09 18.02.21 128 0 33쪽
59 구름의 아이들 - 08 +2 18.02.12 166 1 43쪽
58 구름의 아이들 - 07 18.02.02 149 1 34쪽
57 구름의 아이들 - 06 18.01.03 137 0 44쪽
56 구름의 아이들 - 05 17.12.20 492 0 23쪽
55 구름의 아이들 - 04 17.12.14 132 0 44쪽
54 구름의 아이들 - 03 17.11.21 435 0 34쪽
53 구름의 아이들 - 02 17.11.07 163 0 32쪽
52 구름의 아이들 - 01 17.10.24 162 0 21쪽
51 사막의 어금니 - 06 17.10.07 178 0 35쪽
50 사막의 어금니 - 05 17.09.14 194 0 40쪽
49 사막의 어금니 - 04 17.09.01 155 0 15쪽
48 사막의 어금니 - 03 17.07.30 166 0 23쪽
47 사막의 어금니 - 02 17.07.20 194 0 24쪽
46 사막의 어금니 - 01 17.07.17 197 0 26쪽
45 당랑포선 황작재후 - 10 17.06.21 223 0 22쪽
44 당랑포선 황작재후 - 09 17.06.06 336 0 31쪽
43 당랑포선 황작재후 - 08 17.05.06 222 0 21쪽
42 당랑포선 황작재후 - 07 17.03.22 293 0 25쪽
41 당랑포선 황작재후 - 06 17.01.29 373 0 25쪽
40 당랑포선 황작재후 - 05 16.11.24 376 0 27쪽
39 당랑포선 황작재후 - 04 +2 16.11.07 610 1 22쪽
38 당랑포선 황작재후 - 03 16.10.18 543 1 25쪽
37 당랑포선 황작재후 - 02 16.09.26 561 1 25쪽
36 당랑포선 황작재후 - 01 16.09.11 494 0 30쪽
35 실마리 - 06 16.08.11 516 0 35쪽
34 실마리 - 05 16.07.21 575 0 30쪽
33 실마리 - 04 16.06.27 397 0 23쪽
32 실마리 - 03 16.06.09 393 0 28쪽
31 실마리 - 02 16.05.29 318 0 19쪽
30 실마리 - 01 16.05.23 467 0 13쪽
29 운터 브룩에서 - 04 16.05.22 301 0 12쪽
28 운터 브룩에서 - 03 16.05.08 462 0 28쪽
27 운터 브룩에서 - 02 15.11.04 528 0 21쪽
26 운터 브룩에서 - 01 15.10.10 478 0 11쪽
25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3 15.04.30 425 0 24쪽
24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2 14.07.18 620 0 19쪽
23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1 14.07.10 430 0 25쪽
22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7 14.07.09 418 0 14쪽
21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6 14.07.08 537 1 22쪽
20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5 14.07.07 471 0 24쪽
19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4 14.07.06 675 1 17쪽
18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3 14.07.05 599 0 17쪽
17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2 14.07.04 560 0 32쪽
16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1 14.07.02 837 0 21쪽
15 운터 브룩과 무르짐 산맥 - 02 14.06.30 715 1 40쪽
14 운터 브룩과 무르짐 산맥 - 01 14.06.29 626 0 36쪽
13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3 14.06.28 571 2 43쪽
12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2 14.06.27 769 0 30쪽
11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1 14.06.26 519 0 14쪽
10 피아제와 비고츠키 14.06.25 567 0 13쪽
9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5 14.06.24 700 1 45쪽
8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4 14.06.23 349 0 37쪽
7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3 14.06.20 512 0 32쪽
6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2 14.06.19 384 1 10쪽
5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1 14.06.14 592 3 23쪽
4 운터 브룩과 이스트 민스터 - 02 14.06.13 405 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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