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도모지
작품등록일 :
2020.08.21 00:57
최근연재일 :
2021.01.08 13:51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5,487
추천수 :
266
글자수 :
493,612

작성
20.09.26 17:24
조회
64
추천
7
글자
22쪽

18화-비장의 무기

DUMMY

수적 차이, 무기 없는 맨손, 짙은 어둠, 인간과 흡혈귀 간의 신체 능력 격차.


이 모든 요소가 합쳐지다 보니,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진이라도 별 수가 없었다. 경찰한테 잡힌 현행범처럼 팔을 뒤로 잡힌 채, 바닥의 냉기를 느끼는 꼴이 됐다.


굳이 말하자면, 진이 경찰 쪽에 좀 더 가깝긴 했지만.



"그러게,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뭐 이리 일을 복잡하게 만드냐."


"설마 진심으로 우릴 이길 거라 생각한 거야? 인간 주제에?"



진의 팔을 붙잡은 빡빡머리 모제기와 키가 큰 소경수가 말했다. 팔에 힘을 줘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손아귀 힘으로 잡고 있지만, 아까 수갑에 묶였을 때보다 훨씬 풀기 힘든 속박이었다.



"다리 잡힌 귀뚜라미야? 자꾸 펄쩍 펄쩍 뛰게?"


"방아깨비 아니야?"


"아무렴 어때, 벌레인건 똑같은데."



진나경은 키득 거리며 저항을 해보려는 진을 비웃더니, 다리를 굽혀서 진과 눈높이를 맞췄다.



"벌레치곤 괜찮게 생겼는데 말이야."



손을 뻗어서 진의 목에 걸린 태엽 목걸이를 잡아당겼다.



"이거야? 네가 그리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



진나경은 자신들이 죽인 인간의 소지품을 하나하나 수집하는 악취미가 있었다. 이번에 그녀가 노리는 것이 진의 목걸이였다.



"별로 취향은 아닌데 그래도 이건 내가 가져갈게."



진나경이 힘을 줘서 목걸이 줄을 뜯어내려는 순간, 진이 풀려 있는 손을 뻗어서 태엽을 붙잡았다.



"구질구질한 남자는 여자한테 인기 없는데?"


"걱정 마."



처음부터 흡혈귀를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다는 희망찬 생각은 안했다.


태엽을 붙잡은 손이 서서히 진나경의 얼굴을 지나, 날카로운 가시 형태의 귀걸이를 한 귀로 향했다.



"나도 성격 더러운 여자는 질색이니까."



홱!!


귀걸이를 붙잡은 후, 강하게 잡아당겼다.



"아악!!!!"



귀걸이가 진나경의 살점과 함께 떨어져 나왔다. 귀걸이의 주인이 찢어진 귀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진은 떼어낸 귀걸이를 역수로 쥐었다.



"진짜 미친 새낀가? 가만히 안 있냐?"



으득.


모제기가 진의 팔을 좀 더 위로 꺾는 바람에 관절이 조금 어긋났다. 아프긴 했지만,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다. 탈구 정도는 익숙하다.


호흡만 약간 고른 후, 손에 쥔 귀걸이로 뒤에 있는 모제기의 눈을 찔러버렸다.



"끄아아아악!!!! 내 눈!!!!"



모제기도 진나경처럼 피 흘리는 눈을 부여잡고 나가떨어졌다.


등을 밟고 있던 소경수의 발은 모제기가 난동을 부리다가 밀어내는 바람에 진의 몸이 다시 자유로워졌다.


겨우겨우 일어난 후, 뒤로 도약해서 흡혈귀들과 거리를 벌렸다. 품에서 주사기를 꺼내서 입으로 뚜껑을 열었다.



'어차피 다시 잡히는 건 시간문제고.'



지금 진에게 가장 필요한 게 시간인데, 태생적인 스펙 차이 때문에 도망은 못 친다.



‘결국은 쓰게 되네.’



쓰고 싶지는 않지만, 이거 말고는 마땅한 방법도 없다.



'죽지는 않는다니까.'



더는 망설이지 않고 경동맥에 주사기를 꽂으려 했다. 하지만 조금 늦고 말았다.



"가지가지 한다."



순식간에 진의 눈앞까지 다가온 경수철.


어둠 때문에 앞이 제대로 안 보여서 반응이 늦고 말았다. 경수철은 주사기를 쥔 진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뒤로 넘기고 진을 넘어트렸다.



"적당히 설쳐라, 인간 새끼야."



친구들이 다친 건 별로 관심 없다. 애초에 친구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기 위한 관계일 뿐이다.


그저 한낱 인간이 자신의 눈앞에서 흡혈귀를 대적하겠답시고, 이렇게나 설쳐대는 건 너무 아니꼬웠다.


말 안 듣는 개는 패야 말을 듣는다.



"일단 이 팔이랑, 눈깔, 귀 한 짝은 내가 가져간다."


"기다려!! 그 새끼 눈깔은 나 줘!! 내 손으로 뽑아버리게."


"귀는 내 거야!!!"



진나경과 모제기는 악에 받혀서 눈동자뿐만 아니라 흰자까지 빨개졌다.



"어차피 눈이랑 귀는 두 개잖아. 좀 기다려 봐."


"칫, 빨리 끝내."


"그럼 팔부터다. 소리는 마음대로 질러. 어차피 구하러 올 사람도 없을 텐데."



경수철은 그들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진의 팔을 잡아당겨서 어깨 관절을 뽑으려 했다.


삼각근이 비명을 질렀고, 견갑골이 울부짖었다. 진의 입에서도 소리가 새어나왔다.



"젠장....."


"왜? 이제야 단념할 생각이 들어? 근데 너무 늦었잖아. 병신아. 짖으라고 할 때 짖지 그랬냐."


"아니, 그건 아니고. 이 짓을 또 해야 하나 싶어서."



진은 붙잡힌 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건히 손목이 붙잡힌 상태라서 온전히 팔꿈치 쪽으로만 힘이 가해졌다.



"뭐하냐?"



경수철은 진이 마지막으로 발악해보려는 줄 알고 같잖다는 듯 진을 비웃기만 했다. 그의 친구들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진을 그저 개가 개장수에게 잡히기 직전에 짖어대는 꼴이라고만 여겼다.



"스읍....."



흡혈귀들이 뭐라고 하던 간에, 진은 잠시 후 생길 엄청난 고통에 대비해서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이를 악 물었다.


모든 힘을 모아서 팔에 가했다.


뽀각!!!


드디어 한계치의 힘을 견디다 못한 진의 팔꿈치가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자기 손으로 팔꿈치를 부러트리는 건 처음 해보는 짓이 아니지만, 여전히 아프긴 엄청 아프다. 눈물이 살짝 맺혔다.



"진짜 병신이야? 진짜 부러트렸잖아?"


"아하하하하!! 아, 배야, 살다 살다 이런 인간은 처음 보네."


"야, 누가 저거 사진 좀 찍어서 제보 좀 해봐. 지 손으로 지 팔꿈치를 부러트리는 병신이 있다 고."



앞쪽이 굉장히 소란스러웠지만, 진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그 소음이 정신을 집중시키고 각오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됐다.



'간다.'



다시 한 번 숨을 삼키고, 빠르게 상체를 돌렸다.



"크윽...."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이,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어쩔 수 없다. 어깨는 탈구되고, 팔꿈치는 반대 방향으로 꺾인 상태에서 몸을 돌렸으니 무사하던 뼈들까지 단체로 아작이 나버렸다.


푹.


그래도 고통을 대가로 목적지에는 도달했다.



"이런.... 미친 새끼가."



경수철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진과 눈을 마주쳤다. 자기 팔을 자기가 꺾어서 목에다가 손에 쥔 주사기를 꽂은 미친놈을.



"앞으론 미친개를 팰 거면."



고통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만족감에 차있었다.



"목줄부터 채워라."



주사기의 내용물이 경동맥부터 시작해서 빠르게 진의 몸을 돌기 시작했다.


진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전에 주치의인 매니가 진에게 검은색 주사기를 던져주며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알다시피 악마의 피에는 인간을 흡혈귀로 변화시키는 V항원과 반응하기 위한 항원이 전혀 없어. 그래서 흡혈귀의 피를 아무리 체내에 주입해도 흡혈귀로 변하지 않지."


"대신 응혈 반응 때문에 죽을 맛이지만요."


"그래서 말인데. 전에 네 몸의 한계치를 계산한 거 기억하냐?"


"당연하죠. 나로 실험했다가 그날 어머니한테 죽을 뻔 했잖아요."


"그 때 돌아간 턱이 아직도 얼얼... 크흠."



매니는 헛기침으로 다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 주사기에는 회복용 주사기의 수 백 배의 V항원이 들어있어. 딱 네가 죽지 않을 정도로 계산된 양이지."



미량의 V항원이 든 회복용 주사기를 몸에 주입하면 아주 짧은 시간동안 흡혈귀의 회복력을 얻는다.



‘그런 걸 대량으로 몸에 때려 박는다면....’


"무. 뭐야...."



진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팔은 여전히 경수철에게 잡힌 상태 그대로였지만, 그건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았다.


경수철은 놀란 나머지 힘을 더 세게 줬지만, 아까와는 정반대로 진을 억누를 수가 없었고, 이내, 진이 완전히 일어섰다.


순간, 눈을 감고 있는 진에게서 새어나오는 불길한 기운을 느낀 경수철이 빠르게 팔을 놓고 거리를 벌렸다. 왠지 모를 식은땀과 불안함이 그의 온 몸을 감쌌다.


진은 아까 부러트렸던 팔을 조금씩 움직여봤다. 역시 흡혈귀의 회복력 덕에 금방 회복됐다.


눈을 감은 상태 그대로 전신에 흐르는 기운을 느껴봤다. 아픈 곳은 없지만, 그게 더 불안했다. 평소에 비해 몇 배는 강해진 것 같은데, 아직까지 아무런 부작용을 못 느끼다니.



"쉽게 생각해."



일단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모든 V항원이 체내에서 사멸하기까지 약 5분 정도."



저것들을 5분 안에 다 정리해야하니까.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하고 서서히 눈을 떴다. 언제나 머리카락처럼 깊은 밤을 간직한 검은색이었던 진의 눈동자가.



"넌 흡혈귀의 힘을 얻게 될 거다."



붉게 물들었다.



"부. 붉은 눈?"


"악마의 피는 흡혈귀로 안 변한다며."


"나한테 묻지 마. 나도 놀란 참이니까."



체인 리쉬는 진의 붉은 눈을 보고는 단체로 패닉에 빠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요란 떨고 뭐하나 했더니."



체인 리쉬에서 가장 덩치가 큰 태일원이 진에게 건들거리며 접근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의 주먹은 꽉 쥐어진 상태였다.



"개가 사람 흉내 내지 마. 기분 엿 같으니까."



태일원의 주먹이 곧장 진을 향해 뿌렸다. 대충 가볍게 뿌렸지만, 인간에게는 충분히 치명적인 위력이었다. 조금 전 같았으면, 피하기 위해 온몸을 써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어둠 속이 아주 잘 보이고, 주먹이 날아오는 건 더 잘 보인다. 거기다 주먹 위력도 별로 안 세보였다. 한 손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해봤다.


퍽.



"진짜 되네?"



저 묵직한 파열음을 낸 주먹을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손도 딱히 아프지 않다. 야구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한 기분이다.



"이 새끼가! 안 놔?"


"아, 미안."



얼떨떨해서인지 필요도 없는 사과까지 하고 주먹을 놔줬다.


주먹을 쥐락펴락하고, 가볍게 스텝을 밟아봤다. 뭔가 몸이 내 몸이 아닌 기분이다.



'적응하려면 조금 걸리겠다.'


"감히 날 무시해!!!"



얼굴이 삶은 문어가 된 태일원이 소리치며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질렀다.


속으로는 아깐 우연이다. 기분 탓이다. 내가 힘을 뺀 거다. 라며 계속해서 합리화를 시키면서.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합리화를 시키는 시점에서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진은 태일원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후, 한 번 지금의 힘을 시험해보기 위해 전력으로 주먹을 내질러봤다.


평소에 비해 훨씬 빠르고 강한 주먹은 순식간에 태일원의 코에 닿았다.


으저적!


코뼈, 이빨, 광대뼈까지 손이 밀고 들어가는 게 다 느껴진다.



"푸억!!!"



쿠당탕!


주먹에 직격으로 맞아서 얼굴이 찌그러진 태일원이 다른 흡혈귀들을 넘어서 벽에 부딪히며 저 멀리까지 날아갔다.


완전히 납작해진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는 비참한 꼴로 몸을 조금씩 떨기만 하고, 어떠한 말도 움직임도 없었다.


흡혈귀니까 저 정도로는 안 죽겠지만, 주먹 한 방에 흡혈귀를 저렇게 만들 수 있다니.


진짜 효과 하나는 끝내준다. 부작용은 얼마나 끝내줄지 걱정된다.


걱정은 나중에.


우선은 자기가 사람인 줄 알고 계속 짖어대는 저 광견병 걸린 개들부터 끝장내야겠다.



**



"로드시여. 잠시...."



카르밀라와 잔을 부딪치던 경태구에게 클랜원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막내 도련님 일입니다."


"....말해 봐."



카르밀라는 남의 클랜 일에는 신경 끄려했지만, 눈이 힐긋 넘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클랜원의 보고가 이어질 때마다 경태구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져 갔고, 보고가 끝나자 그의 얼굴에 수심이 깊이 드리웠다.



"카르밀라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왜? 무슨 일인데? 말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도와줄게."


"그. 그게. 아무래도 선내에 침입자가 있는 거 같습니다."


"침입자? 여기에?"


"예, 그래서 막내아들과 친구들이 상대하는 중이랍니다."



보고를 한 클랜원은 그저 잠시 경수철의 상태를 확인해보려다가 어둠 속에서 얼핏 본 걸 스스로 그렇게 판단해 침입자라 보고했다.


침입자라는 말에 카르밀라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그럼 나도 데려가. 내가 자네를 도와줄 수 있는 게 쌈박질밖에 더 있어?"


"하, 하지만. 귀빈을 그런 일에...."


"아, 됐고. 빨리 가자. 겁도 없이 여기 침입해 온 놈 면상이나 좀 보자고. 안내 좀 해주겠어?"


"네?, 아, 저. 저기...."



보고를 한 클랜원은 재촉하는 카르밀라를 곤란하다는 듯이 보며 경태구의 명을 기다렸다. 미세하게 고개가 끄덕여서 허가를 받았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조아써!!!"



최강이라 불리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 같은 면이 있는 카르밀라는 경태구와 함께 가벼운 걸음으로 침입자에게로 향했다.


진은 침입이 아닌 납치당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자세한 사항까지 그들이 알리는 없었다.



"참, 우리 마누라지만."



가만히 앉아서 얘기를 나눌 때보다 싸우러 갈 때 훨씬 들떠있는 아내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프란츠였다.



**



체인 리쉬의 흡혈귀들은 집안을 잘 만나서 어려움 없이 안전하게 오냐오냐 자란 탓에 자신들보다 강한 자와의 전투 경험이 전혀 없으며 성격도 완전히 개판이 나버렸다.


지금까지는 자신들보다 약한 인간만 상대해오고, 열등하다 여기는 인간을 짓밟는 것을 낙으로 살았다.


그런데, 저 인간은 대체 뭐냐? 어디서 갑자기 저런 힘이 생겼다는 말이냐.



"역시 눈이라서 그런지 회복이 좀 느리네?"


"닥쳐!!!"



한 쪽 눈에서 피를 줄줄 흘려서 거리를 잘 못 재는 모제기의 발차기가 애꿎은 벽만 부숴버렸다. 그에 반해 진의 돌려차기는 정확히 그의 안면에 꽂혔다.


비틀거리며 모제기가 벽에 달라붙자, 자전거 페달을 밟는 듯한 자세로 그의 복부를 내려찍어버렸다.


콰직!!!


모제기의 배에 닿았던 진의 신발자국이 벽에까지 새겨질 정도의 위력이었다.



"푸억...."



내장과 뼈들이 발자국 모양으로 찌그러진 모제기의 입에서는 피와 토사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손으로 모제기의 머리를 옆으로 돌려서 몸에 최대한 분출물들이 안 닿게 만들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안 빠지네."



너무 깊이 박혀서 그런지, 벽에서 다리가 빠지질 않는다. 낑낑 대며 다리를 잡아당기는 모습에 그 사실을 눈치 챈 진나경과 소경수가 진에게 달려들었다.



"아, 빠졌다."



다리를 빼긴 했지만, 자세가 아직 불안정해서 회피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흘려버렸다. 타이밍, 위력을 완벽하게 계산한 패링이었다.


감정이 실려서 닥치는 대로 날아오는 주먹이나 발은 굳이 피할 필요도 없었다. 흡혈귀 두 명이서 닥치는 대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무엇하나 진의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기술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었던 놈들이다. 힘까지 생긴 지금은 전혀 어려울 거 없는 상대들이다.


자세도 이제 완전히 다잡았다.



"이 새.... 아악!!!"



짜증이 치민 진나경의 시야가 좁아진 틈을 타, 그녀의 팔을 붙잡고 발을 밟은 후, 무릎을 밟아서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와 동시에 부서진 무릎을 밟고 소경수의 머리를 잡으며 관자놀이에 니킥을 선사했다.



"컥...."



그 충격에 소경수의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진나경은 부서진 무릎 때문에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그러자 진은 기다린 것처럼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채찍처럼 벽과 바닥에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쾅! 쾅! 쾅! 쾅! 쾅! 쾅!


진나경의 몸이 벽이나 바닥에 부딪혀서 금을 낼 때마다, 중심에는 언제나 핏자국이 함께였다.


이 채찍은 위력은 있었지만 내구도가 별로였다. 진은 손에 들려 축 늘어진 채 피를 뚝뚝 흘러내리는 진나경을 빤히 내려다보더니, 그대로 소경수에게 홱 던졌다.


소경수는 반사적으로 진나경을 그대로 옆으로 패대기치고, 진을 응시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뒤에."



갑작스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경수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도대체 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공포영화의 법칙에 의하면 이럴 때는 뒤돌아보면, 무조건 끝장이었다. 이 경우에는 안 돌아봐도 끝장이지만.


쩍! 쩍! 쩍! 쩍! 쩍! 쩍! 쩍!


머리가 터졌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파열음의 하이킥이 양방향으로 수없이 반복됐다. 소경수의 몸이 모노크롬처럼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기울어졌다.


의식은 이미 3번째 발차기 때부터 저 멀리 날아간 후였다.


눈을 까뒤집은 소경수가 앞으로 쓰러지자, 주먹을 꽉 쥐어서 어퍼컷을 그의 턱에 날렸다.


모노크롬이었던 남자는 샹들리에가 됐다. 머리가 천장에 박힌 상태로 대롱대롱 매달렸다.


천장에 샹들리에를 달아준 진은 몸을 돌려 마지막 남은 흡혈귀를 여전히 새빨간 눈으로 응시했다.


경수철은 몸을 크게 움찔 거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너. 너. 이러고도 무사...."


"됐고. 넌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그러더니, 진은 순식간에 경수철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몇 분 전의 진과는 달리, 어둠 속이 훤히 보임에도 반응을 전혀 못한 경수철은 너무 놀란 나머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펄쩍 뛰었다.



"어. 언제...."



짝!



"으억..."



진의 손바닥이 경수철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싸대기에 정신이 든 경수철은 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 새..."



짝!



"이익!"



악에 받혀서 진에게 덤벼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욕이나 저항을 할 때마다 싸대기의 강도만 더 높아졌다.


짝!


저항해봤자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경수철이었지만, 저항 안 해도 때린다는 건 알지 못했다.


복도 안을 어둠과 함께 피부를 찢는 찰진 소리가 가득 메웠다.


어느새 경수철의 얼굴은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졌다. 입까지 부서져서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 사리지여."


"뭐라는 거야."



거짓 정보로 자신을 기만하고, 미오를 건드렸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죽이려 들었다. 진은 오늘 처음 만난 경수철에 대한 분노를 모두 주먹에 담아서 얼굴에 가했다.


퍽!!!


진이 평생 내질러 본 주먹 중 가장 강한 주먹을 맞은 경수철의 얼굴은 물론 배의 외벽까지 채로 부숴버렸다.


죽이진 않는다. 아직 송다인의 정보 출처에 대해서 물어봐야한다.


진은 복도의 파편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 때, 진의 정신이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떤 이상한 냄새가 코를 통해서 뇌까지 찔러오는 느낌이었다.


자동으로 눈은 냄새의 출처를 쫒았다.


아무래도 싸대기를 너무 세게 날린 모양이다. 손이 조금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상처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금방 회복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진은 흡혈귀를 미치게 만드는 악마의 피를 가졌으며, 지금 진이 흡혈귀가 된 상태라는 것이다.



"하아.... 하아...."



난생 처음 느껴보는 자극이었다. 진심으로 저 한 방울을 혓바닥에 닿게만 만들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흡혈귀들이 자신을 노리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려고 했다.



‘나였어도 그랬을까?’



이미 제정신이 아니게 된 진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그것도 금방 그만뒀다.


마치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눈빛이 몽롱해진 진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곤 날카로워진 송곳니로 자신의 손바닥을 강하게 물어뜯었다.


쉬익!


날카롭고 긴 암기가 진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지만 않았다면 진짜로 그럴 뻔했다.


맹렬한 소리에 정신을 차린 진은 암기를 손에 든 파편으로 쳐냈다.


팍!


파편이 산산조각 나고 암기는 진을 지나쳐 벽에 박혔다.


앞을 돌아보니, 손에 암기를 든 남자가 서있었다. 그 주위에는 그와 같은 새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마스크를 낀 이들이 여럿 있었다.


진은 저 마스크의 주인들을 알고 있다.



"테일즈본...."



경수철의 아버지가 로드로 있는 그 클랜이다. 클랜원들 중 몇 명은 진을 살기 어리게 경계하고, 몇몇은 경수철을 데려가려는 것을 보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로 알아챘다.



‘난 침입자고, 저 새끼랑 친구들은 날 막으려다가 부상이라고 여기나 보네?’



저들은 대화를 할 마음은 없어보였다.


우선은 어떻게든 자리라도 피해보려고 다리에 힘을 줬고,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누군가 진을 제압해서도, 억지로 눌러서도 아니다.


마법의 시간. 5분이 지나자마자, 전신에 힘이 풀렸고 매니가 말한 그 부작용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



"저기 보인다!!!"



망망대해 위를 날아가고 있는 하이드가 크루즈선을 발견하고 외쳤다. 그의 옆에는 같은 날개를 한 아나가 있었고, 남매들의 손에는 각각 수연과 미오가 매달려 있었다.


각자 자신의 클랜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남매와 수연은 역병의사 마스크, 미오는 대쾌의 상징인 이매탈이었다.



"저 큰 배에서 어떻게 아무한테도 안 들키고 진 선배를 찾죠?"


"난 저 배에 있는 흡혈귀들 다 합친 것보다 우리 엄마가 더 무섭다야. 어? 잠깐만."



하이드는 눈을 얇게 뜨고 배의 한 곳을 집중해서 봤다.



"저기 배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저기로 들어갈까?"


"저거 내부에서 뚫린 거 같은데요? 무슨 싸움이라도 있었나?"


"....감이 오는데?"


"서둘러!!!!"



하이드와 아나는 경로를 수정해서 배에 난 구멍 쪽으로 향했다.



**



"내가 먼저 가는 게 좋지 않아?"


"어우.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르밀라님. 저희 클랜 일이니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그렇다면야."



카르밀라와 경태구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가장 아래층 객실에 도착했다.


배 밖에서도 안에서도 많은 배우들이 한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작가의말

다음 편에 반드시 끝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1 61화-끝을 향해 +1 21.01.08 53 3 15쪽
60 60화-프로파일링 21.01.05 37 3 16쪽
59 59화-꼬리잡기 21.01.02 64 3 14쪽
58 58화-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 20.12.31 38 3 18쪽
57 57화-집단지성 20.12.29 44 3 15쪽
56 56화-이이제이 20.12.23 39 2 15쪽
55 55화-블러드문 20.12.20 50 2 14쪽
54 54화-소수정예 20.12.18 36 2 16쪽
53 53화-작별 20.12.16 52 2 17쪽
52 52화-상황종료(?) 20.12.14 47 2 16쪽
51 51화-개봉 당일 20.12.11 55 2 17쪽
50 50화-빌드 업 20.12.09 41 3 16쪽
49 49화-시나리오 작성 20.12.07 43 3 15쪽
48 48화-신과 악마 20.12.04 42 3 16쪽
47 47화-선발대 20.12.02 137 3 16쪽
46 46화-영혈교 20.12.01 45 2 17쪽
45 45화-수상한 남자 20.11.30 47 3 18쪽
44 44화-첫 출근 20.11.26 44 2 15쪽
43 43화-최종 합격자들 20.11.25 53 3 16쪽
42 42화-막고라 20.11.23 60 3 15쪽
41 41화-도망자VS추격자 20.11.22 46 4 15쪽
40 40화-탈출 계획 20.11.20 50 4 17쪽
39 39화-한밤 중의 대치 20.11.18 42 3 16쪽
38 38화-첫째날 20.11.17 48 3 19쪽
37 37화-전초전 20.11.15 45 5 19쪽
36 36화-새로운 시작 20.11.13 47 2 16쪽
35 35화-결단 20.11.11 48 2 18쪽
34 34화-마지막 인사 20.11.09 49 4 19쪽
33 33화-입단식 20.11.05 49 3 19쪽
32 32화-새로운 가족 20.11.02 63 5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