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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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지
작품등록일 :
2020.08.2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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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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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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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설상가상

DUMMY

진을 찾기 위해 사냥꾼이 된 정미는 한국의 어느 사냥꾼보다도 열심히 악마의 피에 대해 조사했다. 그런 그녀가 악마의 피를 가진 인간이 흡혈귀로 변하지 않는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에 정미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싸움을 잘하는 거야, 전에 아나에게 들은 말도 있고 하니 이해한다. 가방에서 도끼가 나온 건 진의 처지를 생각하면 호신용이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주사기를 목에 꽂은 이후, 눈이 흡혈귀들처럼 붉어지더니 완전히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을 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지금도 덤벼드는 인간 두 명의 턱을 돌려버린 게 주먹인지, 발인지 보지도 못했다.



"오빠.... 대체."



눈만 껌뻑이며 멍하게 지켜보는 건 여기까지. 진에게 주의가 쏠린 사이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적들 몰래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정미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없애기 위해 진은 최대한 빠르고 요란하게 움직였다. 천장, 벽을 바닥삼아 날아가다시피 이동하는 진의 움직임에 제대로 반응을 하는 건 단 한명도 없었다.


걸음걸음마다 땅이 파일 만큼 신체능력이 올라간 진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이십면상의 부하들은 당황해서 반사적으로 무기를 치켜들었다.


툭.


그리고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진의 주먹이 가볍게 턱에 꽂히자마자 비명도 못 지리고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진은 잠깐 숨을 돌리는 김에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런 그에게 달려드는 적들은 아무도 없었다.



"야, 가만히 있잖아. 뭐라도 해봐."


"네가 해 새끼야. 다른 사람 시키지 말고."



서로 남을 사지로 떠밀기 바쁜 놈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잠깐 계획을 세웠다.


사냥꾼들이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4분 정도, 남아 있는 인원은 날아간 이십면상을 포함해서 14명.


지금까지 때려잡은 6명은 모두 인간. 그렇다면 저기 남아있는 14명 중 7명은 흡혈귀다. 프락치가 잡히긴 했지만, 이십면상 성격상 금방 보충했을 것이다.


인간 흡혈귀 안 가리고 다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인간을 죽이는 건 나중에 사냥꾼들에게 할 변명이 안 떠오르니까 아웃이다.


그렇다면 인간 사이에 숨어있는 흡혈귀들을 끌어내야만 한다. 인간과 흡혈귀는 겉모습만으로는 구분하기 힘들지만, 진은 그 누구보다도 흡혈귀들을 끌어내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스읍...."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당분간은 코로 숨 쉬면 안 된다. 폐 가득 공기를 채운 진은 그대로 자신의 손목을 물었다.


으득.


날카로워진 진의 송곳니는 손목에 가볍게 구멍을 냈고, 그곳에서는 피가 스멀스멀 흘러내렸다.


그것도 잠시, 피가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상처는 금방 회복됐다. 언제 봐도 사기적이기 짝이 없는 흡혈귀의 회복력으로도 못 고치는 게 있었다.


악마의 피로 인해 뇌가 다쳐서 이성을 잃은 저 흡혈귀들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으어어어어어!!!!!!"



이성을 잃은 흡혈귀들은 목에 피가 날만큼 괴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진에게 달려왔다. 모든 무게 중심을 머리 쪽으로 두고, 기어오듯 달려오는 흡혈귀가 정확히 7명이다.


진은 토마호크의 자루를 고쳐 쥐며 이리저리 휘둘러 봤다. 평소에는 살짝 묵직했던 토마호크였는데, 지금은 커터칼처럼 가벼웠다. 신체능력도 강해진 지금이라면 흡혈귀들의 몸 정도는 가뿐히 동강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진은 자신의 피냄새에 대한 반응으로 상대의 격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냄새만으로도 이성이 날아가는 놈들한테는 절대로 안 질 자신이 있었다.



"크아아아아!!!!"



눈을 뒤집어 까며 가장 앞서 오는 흡혈귀의 오른손가락이 진의 얼굴에 닿기 직전, 진은 몸을 살짝 아래로 숙이고는 토마호크를 대각선 방향으로 올려 벴다.


스윽.


뼈에 박히는 둔탁한 소리가 아닌, 커터칼로 종이를 베는 얕은 소리였다.


손에 든 느낌은 마치 식칼로 생선을 자르듯 부드러웠다. 흡혈귀의 몸이 하나의 종이로 만들어진 생선처럼 느껴졌다.


자른 진 스스로가 놀랄 만큼 가볍고 쉽게 흡혈귀의 몸에서 목이 떨어졌다.



'진짜 회도 뜨겠네.'



놀랄 시간은 없다. 이미 회쳐야할 생선들이 정신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가볍게 토마호크의 피를 털어낸 진은 이번엔 자신이 흡혈귀들에게 접근했다.


서슬 퍼런 토마호크의 날이 번쩍거릴 때마다, 흡혈귀의 몸은 하나 둘, 머리와 작별을 고했다.



"미. 미친.... 뭐야. 저게...."


"상대가 저런 괴물이라는 말은 없었잖아!!!!"


"아이씨. 돈 때문에 죽을 수는 없지. 그냥 튀자."



학살당하는 흡혈귀를 본, 돈으로 고용된 양아치들은 저마다 불만을 외치며 폐건물 밖으로 나가려했다.


제 손으로 출입구를 틀어막은 것도 잊어버릴 만큼 패닉에 빠졌다.



"열어!!! 열어, 이 새끼야!!! 빨리!!!!"


"아. 알았어. 잠깐만...."



문을 잠군 덩치가 자물쇠를 열고 쇠사슬을 풀었다. 묵직한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조금 열리는 순간.


쾅!!!


철문에 무언가가 강하게 부딪히고는 땅에 굴렀다. 문에 부딪힌 충격으로 약간 찌그러진 흡혈귀의 머리였다.



"으아아아악!!!!"



도망치려한 양아치들은 자신들을 원망하는 것처럼 눈을 부릅뜬 머리를 보고는 꼬마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런 그들에게 진은 들릴 만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도망칠 거면 쳐봐. 절대로 안 잡힐 자신 있으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무미건조하게 하는 말의 주인 곁에는 머리를 잃은 몸들이 잔뜩 있었다.


도망은커녕, 저항의지마저 꺾어버리는 광경에 모두 손에 든 무기를 멀리 내던지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시에 속으로 빌었다. 사냥꾼들이 제발 좀 빨리 와달라고. 저 놈이랑 엮이느니 차라리 감방에서 썩는 게 훨씬 낫겠다고.


한편, 진이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정미는 전신에 피딱지가 내려앉은 피해자인 오영을 업고, 진 쪽으로 천천히 돌아오는 중이었다.



"굉장.... 하다."



정미는 진이 만들어놓은 광경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무리 소규모라고 해도 상대는 흡혈귀가 여럿 있는 클랜이다. 흡혈귀 하나 둘도 아니고, 클랜 전체를 혼자서 뭉개버렸다. 그것도 무척이나 여유롭게.


한국에 있는 사냥꾼들 중에 이게 가능한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것이다.


자신은 물론 자현이나 팀장마저도 진에게는 당해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든 정미는 다시금 아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인간 중에는 진을 당해낼 자는 없을 거라는 말. 반신반의했지만 눈앞에서 본 이상 안 믿을 수는 없었다.



'나중에 사냥꾼 해보라고 권유라도 해봐야겠네.'



더는 불안함을 찾을 수 없는 얼굴로 진을 바라보던 정미에게 등에 업힌 오영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 흡혈귀에요?"



몸이 살짝 떨렸다. 심한 짓을 당한 탓에 흡혈귀라는 존재에 트라우마가 생긴 탓이다. 정미는 낼 수 있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틀림없이 인간이니까요."


"다행이네요.... 읏...."


"상처들 많이 아프겠지만 조금만 참아요. 사냥꾼들 따라서 앰뷸런스도 올.... 이런!!!"



정미는 놀란 얼굴로 황급히 뒤로 도약했다.


아직 원흉이 남아있다는 걸 깜빡 잊은 정미는 자신의 뒤에 이십면상이 서있다는 걸 눈치 채는 게 늦고 말았다.


퍽!!!


이십면상은 정미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아슬아슬하게 뒤로 뛰어서 직격은 면했지만, 충격은 상당했다.



"오억...."



정미에게서 떨어진 오영은 땅을 구르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고, 정미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낙법을 치고 재빨리 캡슐에서 샷건을 꺼냈다.


그대로 이십면상을 겨눴지만, 그보다도 빨리 이십면상이 샷건을 멀리 차내고 정미의 팔을 붙잡았다.



"야, 이 새꺄!!!!"



정미와 오영을 인질로 잡은 이십면상은 분노에 차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로 진을 불렀다. 슬슬 그가 회복했을 거라 생각한 진은 뒤를 돌아보고는 토마호크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침착하게 만들어주는 광경이었다.


정미가 붙잡혔기 때문이 아니다. 바닥에 오영이 널브러져 있어서도 아니다. 한 쪽 팔을 붙잡힌 상황에서 정미가 이십면상 몰래 손을 움직여서 캡슐 하나를 더 꺼내고 있어서였다.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시선을 끌 목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원하는 게 뭐야."



주도권이 자신에게로 왔다고 생각한 이십면상은 다시 그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얘기가 빨라서 좋네. 별 건 아니고. 조금 있다가 사냥꾼들 올 거잖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싸움은 잘 못해서."


"네가 도망치게 도와주라는 소리냐?"



정미에게서 인질의 가치를 발견한 이십명상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정미의 캡슐에서 권총이 나온 것도, 정신을 차린 오영이 슬금슬금 샷건 쪽으로 기어가고 있다는 것도, 무엇 하나 모른 채.



"아니, 조금 있다 오는 사냥꾼들 싸그리 죽여 버려. 그럼 이 년 목숨만은...."



푸슉!!!



"끄아아악!!!"



이십면상의 말은 비명으로 끝맺었다. 모서리에 찍혀도 아픈 발가락인데, 총에 맞았으니 고통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고통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이십면상의 손에서 벗어난 정미가 교본으로 쓸 만한 정확한 자세로, 그의 몸에 정성스레 총알구멍을 냈다.


아음속탄에 소음기가 달린 글록의 은탄은 조용히 이십면상의 살을 꿰뚫었다.



"크악! 으악! 억!! 그. 그만. 하라고...."



지옥 같았던 10초 정도의 시간이 지난 끝에 총이 비었다. 권총은 말이다.


오영이 정미에게 샷건을 던져줬다.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만 같던 오영의 눈빛을 본 정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샷건을 이십면상의 다리에 조준했다.



"야. 이 미친 년아.... 내가 너한테 뭘 잘못...."



퍽!!!



"끄아아악!!!! 이 썅년이...."


"나한테는 없어도, 저 애한테는 아주 많잖아."



무릎에 십여 개의 구멍이 동시에 뚫린 이십면상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정미를 노려봤다. 그에 지지 않고 정미도 이십면상을 노려봤다.



‘감정적이라는 건 알지만.’



사냥꾼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영과 같은 피해자들을 볼 때마다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는 정말 하늘을 찔렀다.


그러다 가해자가 인간일 경우는 사냥꾼이 개입할 수 없어서 분노를 속에 삭히기만 해왔다.


근데 눈앞의 저 놈은 흡혈귀. 거기다 화풀이를 해도 되고, 그 과정에서 죽여도 문제없는 놈이다.


정미는 천천히 샷건의 총구를 이십면상의 머리에 들이밀었다. 지금까지 인간도 흡혈귀도 죽여본 적은 없지만, 뭐든 처음은 있는 것이다.



"이야아아아아아!!!!!!"



움직일 수 없는 이십면상의 최후의 발악에 화음을 넣듯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려했다.


퍼억!!!!


갑작스레 날아온 토마호크에 이십면상의 머리가 두 동강나지만 않았으면.


식별명 이십면상. 가명과 얼굴은 수두룩하지만, 정작 본명은 본인도 잊어버린 흡혈귀. 혈주를 바탕으로 미성년자들을 농락하고 온갖 범죄를 저지른 흡혈귀는 그렇게 머리가 쪼개져서 죄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눈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비쳐진 건 검붉은 자신의 피와 뇌수였다.


그런 그를 조용히 내려다보는 정미를 지나쳐서 진은 머리에 박힌 토마호크를 뽑았다. 잘 뽑히지 않아서 몸통을 밟고 힘껏 당기자, 이십면상의 머리에 고여 있던 피가 진의 입가에 튀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돌아서 슬쩍 핥아봤다. 맛없다. 흡혈귀의 피는 정말로 맛이 없었다.


가벼운 실험을 끝낸 그는 정미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여전히 샷건을 든 채로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봤다.



"놀랐어?"


"조금. 그래도 내가 끝낼 수 있었는데."



아주 살짝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는 정미였다.



"저 놈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어서. 그래야 12년 전에 날 구해준 그 형들이 편히 쉴 거야."



생명의 은인들의 성불을 위해서라면 정미도 더 할 말은 없었다. 그녀는 총들을 다시 캡슐에 집어놓고 진의 손을 붙잡았다.



"고마워. 정말. 오빠 아니었으면 이렇게는 못 했을 거야. 코스모스에서 보상이 있을 거야."


"보상에는 별 관심은 없지만, 일단은 너도 고생 많았어."


"내가 뭘. 오빠가 다 했지."


"그건 맞아."


"후훗."



살며시 웃은 정미는 자신을 바라보는 진의 붉은 눈의 정체가 궁금했다.



"근데 오빠. 눈은 어떻게 된 거야?"


"비밀."



여지도 없이 단호하게 비밀이라고 끝내버리자, 정미는 호기심을 쉽게 억누를 수 있었다.



"일단 난 저 인간 놈들 좀 보러 갈 테니까, 넌 여기서 얘나 보고 있어."



턱짓으로 오영을 가리킨 진은 뒤돌아서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은 여전히 조금 열려있었지만, 누구 하나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곧 있으면 사냥꾼들이 올 때고, 그 때쯤이면 투혈의 효과가 풀릴 것이다.



'풀리기 전에는 와야 할 텐데.'



발에 치이는 쇠파이프를 장난삼아 걷어차며 찾아올 고통을 걱정하던 때였다.


깡!!!!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청아한 소리와 함께 걷어찼던 쇠파이프가 다시 진의 옆쪽으로 날아갔다. 뭐지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옆구리가 뜨거워졌다.


그와 함께 코를 통해 들어오는 뇌를 쥐어짜는 아찔한 향기. 전에 맡았던 자신의 피냄새였다.


진은 다급하게 손으로 옆구리를 매만졌다.



"크윽...."



손은 축축하고, 옆구리는 이물감과 함께 내장이 뒤섞이는 것처럼 아팠다. 옷은 이미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총?'



그것도 흡혈귀로 변한 진의 몸에 작열통까지 더해주는 걸로 볼 때, 은탄이었다.


그 예상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냥꾼을 보고는 확신으로 변했다.


아직 투혈의 효과가 안 떨어져서 눈이 붉은 탓에 흡혈귀로 착각한 건가? 살짝 열려있는 저 문 틈사이로 저격한 거고?



'젠장. 사냥꾼놈들.... 위협사격이라도 할 것이지.'



옆구리를 인두로 지지는 작열통이 점점 심해지자 진은 토마호크를 손에서 놓치고는 앞으로 쓰러졌다. 총상으로 인한 고통도 고통인데, 피냄새를 맡은 탓에 정신마저 나갈 것 같았다.


가쁜 호흡을 내뱉으면서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 순간에 투혈 효과까지 끝났다.



"어억...."



피냄새 쪽은 괜찮아졌지만,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돌겠네.... 진짜....'



점점 사라져가는 감각 속에서 진의 눈에 조금 전 걷어찼던 쇠파이프가 들어왔다. 중간에 찌그러진 자국이 있었고, 조금 전 들렸던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


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탄이냐. 이씨....'



오늘 운세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운 한 번 정말 더럽게 없는 날이다.


눈으로는 사냥꾼들이 자신을 에워싸는 것을 보며, 귀로는 뒤쪽에서 달려오는 정미와 오영의 고성을 들으며 진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처음 보는 천장은 아니다. 미오 문병을 올 때마다 봤던, 치건병원의 천장이다. 몸을 일으켜 보려했지만, 배에 힘을 주는 순간 내장이 뒤섞이는 바람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 때, 진의 의식이 돌아온 걸 본 간호사가 밖으로 나가서 누군가를 불렀다. 잠시 후, 정대원 팀장과 정미를 포함한 보이드 팀이 단체로 들어왔다.



"오빠!!!!"



정미가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진을 껴안았다.



"아픈데...."


"미. 미안."



다급하게 진에게서 떨어진 정미의 뒤로 얼굴에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뒤집어 쓴 사람이 다가왔다.


진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누구?"


"우리 팀에 나만큼 키 작은 사람 없을 텐데요."


"아니. 그거야 알지. 그냥 네가 좀 아니길 바랬거든."



그게 자현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배가 아니라 머리도 아파져왔다.


저건 분명 후각을 차단하는 용도. 즉, 악마의 피에 대한 방책이다.


그리고 그 말은 정미가 진이 악마의 피를 가졌다는 걸 팀원들에게 말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미를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원왔던 사냥꾼들 중에 자현 같은 흡혈귀라도 있었다간, 훨씬 큰일날 뻔 했을 테니까.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는 진은 사냥꾼들 뒤에 있는 광경으로 인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쥘 수 밖에 없었다.


병실의 문틈으로 살짝 보였다.


양산을 손에 꽉 진 채, 이쪽을 노려보는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아, 주님. 진짜.'



머릿속이 곤죽이 되어가는 상황에 이번 주부터 다시 미사에 나가야겠다고 다짐한 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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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화-빌드 업 20.12.09 41 3 16쪽
49 49화-시나리오 작성 20.12.07 43 3 15쪽
48 48화-신과 악마 20.12.04 42 3 16쪽
47 47화-선발대 20.12.02 137 3 16쪽
46 46화-영혈교 20.12.01 45 2 17쪽
45 45화-수상한 남자 20.11.30 47 3 18쪽
44 44화-첫 출근 20.11.26 44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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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화-막고라 20.11.23 60 3 15쪽
41 41화-도망자VS추격자 20.11.22 46 4 15쪽
40 40화-탈출 계획 20.11.20 50 4 17쪽
39 39화-한밤 중의 대치 20.11.18 42 3 16쪽
38 38화-첫째날 20.11.17 48 3 19쪽
37 37화-전초전 20.11.15 45 5 19쪽
36 36화-새로운 시작 20.11.13 47 2 16쪽
35 35화-결단 20.11.11 48 2 18쪽
34 34화-마지막 인사 20.11.09 49 4 19쪽
33 33화-입단식 20.11.05 49 3 19쪽
32 32화-새로운 가족 20.11.02 63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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