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Y.E.T.(Yame English Teacher)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연재 주기
나불리스트
작품등록일 :
2020.08.22 20:15
최근연재일 :
2021.05.14 00:06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2,977
추천수 :
87
글자수 :
365,104

작성
21.03.09 23:56
조회
17
추천
1
글자
11쪽

마음이 흐르는 방향

DUMMY

나는 정 선생에게 소주를 부어주며 컴퓨터 앞에 놓인 두꺼운 A4지 더미를 보았다.


필시 두 사람이 함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 원본일터였다.


“형님, 책임감 하나는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떻게 저걸 하루 만에 다해요?”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정 선생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책임감이란 것이 뭔지에 대해 이야기 좀 해줄까?”


“이야기해 주세요, 쌤!”


막상 나보다 현정이 더 궁금하다는 듯 보챘다.


“이건 내가 중학생 때 이야기인데 말이야.”


진중한 정 선생의 목소리에 현정과 나는 숨을 죽이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느 날 내가 책을 가득 넣은 가방을 메고 버스에 탄 거야!”


정 선생이 다소 드라마틱한 어조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운 좋게 겨우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가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더니 내 앞에 딱 서시는 거야!”


“······!”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겠어? 당연히 자리를 양보했지.”


현정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 선생의 처지가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미안했는지 그러시더라. ‘학생! 가방 내가 들어줄 테니 가방 줘봐!’ 그래서 ‘감사합니다.’하고는 가방을 넙죽 할머니에게 맡기려는 순간, 가방 지퍼가 살짝 열려 있었는지 책이 우르르 쏟아지는 거야!”


“그래서?”


“어머, 어떡해?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현정이 동시에 물었다.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이게 다 책인감(책임감)?”


“‘이게 다 책인감?’이래 하하하!”


약간 허탈해진 나와는 달리 현정은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나도 현정의 감정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뒤늦게나마 슬며시 웃어주었다.


“더 없어요?”


현정은 여전히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지 않은 채 정 보챘다.


“더 해줘? 궁금해? 궁금하면 500원!”


현정은 순순히 지갑을 열어 정 선생에게 500원을 내밀었다.


“형은 왜 만날 500원을 달라고 해? 거지야?”


내가 놀리자, 정 선생은 나를 정색하고 똑바로 쳐다보더니 이내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궁금해? 궁금하면 500원!”


나는 괜히 심통 난 척 정 선생에게 1000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거슬러 주세요.”


정 선생은 여전히 방글방글 웃으며 내가 내민 1000원을 챙기고 방금 현정에게서 받은 500원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내가 내민 1000원을 교탁 앞에 놓여있는 부엉이 저금통에 넣으며 자못 불쌍한 어조로 말했다.


“애들 간식비가 필요해서······.”


저걸 저렇게 불쌍하게 말할 필요가 있나?


그러나 현정은 마치 훌륭한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정 선생을 응시하고 있었다.


보통 팬심은 아닌 것 같았다.


“돈을 받았으니 밥값은 해야겠지?”


정 선생이 어느새 그 방글방글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에는 불안감에 대한 이야긴데······.”


“불안감요?”


현정은 여전히 기대에 가득찬 눈빛으로 반응했다.


“옛날에 어떤 할머니가 너덜너덜하게 다 헤진 며느리의 속옷을 보고 안쓰러워서 한 벌을 사주기로 작정을 했대.”


현정의 눈이 정 선생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따라 함께 가늘어졌다.


“큰 맘 먹고 쌈짓돈을 챙겨서 나온 할머니는 알뜰하게 사느라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속옷만 입는 며느리를 위해 여성속옷 전문점에 들어갔대.”


“어머!”


“점원에게 속옷 좀 볼 수 없냐고 하니까 점원이 속옷이 예쁘게 쫙 진열된 진열대로 할머니를 안내한 거야!”


“······.”


“여기저기 겹겹이 걸려있는 브래지어를 보고 할머니가 뭐라고 했게?”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어요?”


“이건 얼만교?”


나도 현정을 좀 웃겨볼 요량으로 잘 못하는 사투리까지 써가며 이야기에 참여했다.


“하이구야! 이게 다 브란감(불안감)?”


현정은 또다시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나도 아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따라 웃었다.


“재밌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하고 일하자, 현정아!”


“네!”


현정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대답했다.


외모는 첩보영화에 나올법하게 섹시하면서도 세련되고 강인하게 생긴 여자가 어쩐지 순수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에는 감 시리즈 마지막인 사명감에 대한 이야긴데.”


뻔한 패턴이겠지만, 이번엔 뭐라고 역을지 궁금했다.


“그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머, 계속 같은 할머니였던 거예요?”


현정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해맑게 웃었다.


“응, 같은 할머니야. 그 할머니 방금 브라 사서 나왔는데, 마침 노점에서 야채를 파는 중년의 부인이 있었던 거야!”


“······.”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다리가 아팠던 건지 아주머니가 다리를 주무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어.”


“······.”


“할머니가 그 아주머니한테 ‘집에는 언제 들어가우?’라고 물어보니까 아주머니는 ‘이제 한 소쿠리만 팔면 다 파니까 요것만 팔고 가려고요!’하고 대답했대.”


정 선생은 할머니든 아주머니든 성대모사를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연기 덕분이지 현정은 손으로 턱까지 괴며 그의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이거 다~~ 사면 감(사명감)?”


정 선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정이 배꼽을 부여잡고 웃었다.


예쁘다, 저 여자.


원래 미인인 줄 알지만, 정말 예쁘다, 저 여자.


현정은 실컷 웃었는지 손가락으로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일어섰다.


정 선생도 잔에 남은 소주를 비우고, 어느새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 있었다.


두 사람은 언제 웃겨 즐겼는지 알 수 없게 완벽한 호흡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족발을 먹다가, 피곤한 그들을 위해 커피라도 타오려고 슬며시 교실을 나왔다.




***




작업이 완료되자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터라 본의 아니게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상대방의 음성이 들렸다.


굵직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물론 내 귀가 좋은 탓도 있었다.


- 어! 용화야! 작업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양이 너무 많아서 버겁지 않겠어?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분산시켜줄까?


중후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상대방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바쁘다는 듯 자기 얘기만 속사포로 해댔다.


“아니요, 팀장님. 작업완료 됐고요, 팀장님 이메일로 보내드리면 되나요?”


그에 반해 그는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 어, 근데 그 많은 양을 벌써 다 했다고?


상대방은 꽤 놀란 모양이었다.


“확인해 보시고 부족한 부분 있다고 생각되면 연락 주세요.”


- 자기 실력이면 뭐 딱히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만, 암튼 대충이라도 훑어볼게. 아! 그나저나 너 같은 인재가 도대체 왜 그만뒀냐? 지금이라도 당장 와라! 너 만한 애가 없어서 진대리, 홍대리가 힘들다고 아주 난리다, 난리!


“아이고 그 무슨 황송한 말씀을······. 그나저나 입금은 언제쯤 될까요?”


- 항상 익월 5일이잖아! 알면서! 급해?


“네, 제가 정말 급해서 그러는데······. 손 좀 써주실 거죠?”


- 자기가 급하다면 자기부터 챙겨줘야지. 누구 덕분에 살았는데! 우리팀원들 월급을 가불을 해서라도 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보내줄 테니까 걱정 말고! 계좌번호나 보내. 암튼 수고했다. 다음에 또 일 생기면 연락할게.


“네! 감사합니다. 팀장님! 들어가세요!”


그는 전화를 끊기가 바쁘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을 보내놓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기지개를 켜며 나느 힐끔 쳐다봤다.


“현정아, 수고했어! 정말 너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 같아!”


그의 칭찬에 마음이 따뜻해져왔다.


“피곤하지? 안마해줄까?”


나는 그에게 싱긋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를 향해 어깨를 내밀었다.


“저기 교탁위에 엎드려 봐!”


그저 어깨나 조금 주물러 줄 줄 알았는데, 엎드리라니!


전신 마사지라도 하려는 건가?


아무리 나를 그냥 제자로 생각해도 그렇지, 그래도 남녀사이인데?


그가 나를 전혀 이성으로 보는 것 같지 않아 못내 서운하면서도 그의 손길을 느껴 보고 싶기도 했다.


내가 교탁에 순순히 엎드리자 그는 정수리부터 목 어깨, 팔의 각 관절과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섬세하게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의 손바닥이 나의 손바닥에 맞닿을 때는 부끄러우면서도 새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나의 목에서 골반 바로 위 허리까지 손가락으로 척추를 따라가며 마사지를 해주는데 마치 전문가에게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너무 시원해서 나도 모르게 약간의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마침 그때 교실 문이 열리고 최 실장이 들어왔다.


내가 들어도 너무 야한 나의 신음에 부끄러워져서 나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자, 그가 말했다.


“야! 안마하는 건데 뭐 어때?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그냥 눈 감고 있어라.”


아마도 그가 내 몸을 만져서 내가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가 내 골반 양쪽을 꾹꾹 누르자 이번에는 정말 몸의 민감한 부분에 그의 손이 닿아 부끄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엄연히 엉덩이인데, 이렇게 맡겨도 되는 거야?


마음은 그런데 막상 너무 시원해서 거부할 수가 없었다.


시원한 만큼 간헐적으로 새는 신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에게도 부끄러웠지만, 오늘 처음 보는 최 실장도 있는데, 너무 민망했다.


그는 그렇게 내 허벅지를 거쳐 무릎과 발바닥, 발가락까지 마사지를 끝냈다.


비록 안마를 하기 위한 스킨십이었지만, 그가 내 몸 곳곳을 만졌다는 부끄러움은 매우 컸다.


그러나 부끄러움보다 그의 안마는 더 시원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지만.


안마가 끝나고 다시 술자리로 돌아갔는데, 최 실장의 얼굴이 조금 어두웠다.


최 실장도 방금 그 모습이 어색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소주를 한 잔 원샷으로 기울이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됐어요?”


“그 이후요?”


아! 노래방에서 헤어진 데까지 이야기 했었지.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그 때의 일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




지하철에서, 역에서 내려와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그가 시킨 대로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연습을 더 하고, 자신감이 붙어 ‘이런 상황이면 뭐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겠다.’싶을 즈음 그에게 연락을 하고 그가 가르쳐 준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음성 채팅은 처음이라 좀 어색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이크에 대고 그를 불렀다.


“선생님?”


- 어! 입 풀 시간 줄 테니, 5분 있다가 보자. 나 담배한대 피고 올게.


나는 그 5분 동안 잘 생긴 그 입술에 담배가 물린 모습을 상상했다.


담배 피는 모습도 섹시하겠지?


아! 현정아, 정신 차려! 지금은 대회만 생각하자!


- 자 시작!


내 생각의 고리를 끊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의 칭찬을 기대하면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자, 빨리 칭찬해주세요! 이렇게 단기간 내에 잘 해낼 줄 몰랐죠?


나는 잔뜩 기대하며 그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 너 3번째 문장 해봐.




영어에 관한 질문을 댓글에 작성해주시면 선별하여 소설에 채택하여 사용하려고 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 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Y.E.T.(Yame English Teacher)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1 그 남자의 여자 21.05.14 12 2 12쪽
70 그녀들의 마음 21.05.12 12 1 11쪽
69 추억의 부루마블 21.05.07 12 1 11쪽
68 정 선생, 계획이 다 있구나. 21.05.05 18 1 11쪽
67 I wish 가정법, as if 가정법, 혼합가정문. 집밥 정 선생 21.04.30 30 1 11쪽
66 가정법 21.04.27 22 1 12쪽
65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21.04.21 25 1 11쪽
64 최종보스 공략전 21.04.16 25 3 11쪽
63 조동사, Battle 1:N 21.04.13 25 2 11쪽
62 그 남자의 관심사 21.04.09 21 1 11쪽
61 데이트 21.04.09 17 0 12쪽
60 현재, 진행, 과거, 현재완료 下 21.04.02 19 2 11쪽
59 현재, 진행, 과거, 현재완료 上 21.03.31 18 2 11쪽
58 오버 정용화 선생 21.03.25 15 2 11쪽
57 그럼 뭐 먹지? 21.03.23 19 1 11쪽
56 지각동사 下, 소개팅? 21.03.19 23 1 11쪽
55 무대, 사역동사, 지각동사 上 21.03.16 60 1 11쪽
54 탑골 미션 21.03.12 21 1 11쪽
» 마음이 흐르는 방향 21.03.09 18 1 11쪽
52 실력자 21.03.04 16 1 11쪽
51 테스트, 연습 21.03.03 19 1 11쪽
50 막무가내 YET 선생 21.02.26 23 1 11쪽
49 YET, 문제적 영작 21.02.24 28 1 11쪽
48 최 실장이 궁금한 그녀, 신현정 21.02.19 22 1 11쪽
47 PC 구하기 대작전 2 21.02.16 22 2 11쪽
46 PC 구하기 대 작전 21.02.05 42 1 11쪽
45 질문, 질문, 질문! 21.02.03 22 1 11쪽
44 부가의문문, 간접의문문, 도시락 21.01.28 25 1 11쪽
43 이게 학원이냐? 21.01.22 33 2 11쪽
42 정 선생의 도전기: 운전면허 21.01.20 25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나불리스트'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