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Y.E.T.(Yame English Teacher)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연재 주기
나불리스트
작품등록일 :
2020.08.22 20:15
최근연재일 :
2021.05.14 00:06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3,112
추천수 :
87
글자수 :
365,104

작성
20.10.06 19:14
조회
55
추천
1
글자
12쪽

교재비는 500원, 문법 나무

DUMMY

건이 엄마를 대동하고 다시 학원으로 들어가는 나의 발걸음은 조금 의기양양했다.


상담실장은 우리가 이렇게 금방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약간 호들갑스럽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어머나! 빨리 결정하셨네요.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어요?”


“혁보랑 똑같은 선생님들로 영어 수학 두 과목 등록하려고요.”


건이 엄마가 내 얼굴을 슬쩍 한번 보면서 말했다.


“영어 선생님 다시 뵐 수 있을까요?”


“아······, 지금은 수업중이신데!”


건이 엄마의 요청에 상담실장이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님들 무슨 일이시죠?”


마침 우리 옆을 지나치던 최 실장이 끼어들었다.


“이 언니가 오늘 정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지금 다시 등록하러 왔거든요. 등록하기 전에 정 선생님을 한 번 더 뵙고 싶은데, 수업중이라고 하시네요.”


나는 최실장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한창 수업중인 선생님을 콜 해서 내려오시라 하기엔 그렇고, 제가 교실로 안내해 드리면 어떨까요?”


“아니,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어요. 저희가 좀 기다리죠 뭐.”


최 실장의 제안에 경우가 바른 건이 엄마는 수업을 방해하는 건 싫었는지 사양했다.


“정 선생님은 학부모님들이 수업 참관하고 그러는 것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니, 교실로 가셔서 기다린다고 해도 결례가 되진 않을 겁니다. 어머님들 입장에서는 수업하는 모습도 직접 보실 수 있으니 따라 오시죠.”


최 실장의 강권에 나도, 건이 엄마도 정 선생의 수업을 보고 싶은 마음에 201호로 갔다.


지난번과 다름없이 정 선생의 교실에서는 여전히 깔깔 거리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최 실장이 201호에 노크를 하자 정 선생이 문을 열었다.


“여기 어머니께서 등록하러 오셨다는데요? 수업중인데 실례해서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 실장은 전혀 수업을 방해해서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고, 정 선생도 그의 말대로 전혀 개의치 않아하는 것 같았다.


“어머님들 안으로 들어와서 말씀 나누시죠.”


오히려 우리가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망설였다.


그러나 정 선생이 중학생들은 초등학생과 달리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했던 우리는 그것을 직접 확인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하고 못 이기는 척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가서 만난 광경은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컴퓨터에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는 아이들, A4지에 뭔가를 적고 있는 아이들, 노트에 뭔가를 적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본 바 있었다.


다만, 한글은 하나도 없이 오직 영어로만 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림도 거의 없이 작고 빽빽한 영어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 선생은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신경 쓸 시간이 있었다.


건이를 교탁 앞 비어 있는 자리에 앉히고, 우리는 좀 구석진 곳에 있는 빈 의자에 앉히고 자신도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봐라.’는 표정으로 우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야, 지난번에 수업 시작할 때부터 들어와 어떻게 아이들이 각자의 미션을 받아 움직이는지 그 과정을 보았기 때문에 물 흐르듯이 이 장면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수업 중간에 갑자기 들어와서 통일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 모습이 건이 엄마에게 어떻게 비칠지 비로소 걱정이 되었다.


“우리 건이는 어떤 교재로 공부하나요? 교재비도 오늘 내고 갈게요.”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달리 건이 엄마는 당장 지갑이라도 꺼낼 태세였다.


아무튼 이 언니는 평소에는 말이 거의 없다가도 무언가 결단을 내리고 나면 불도저도 이런 불도저가 없었다.


“교재비 많이 비싸요.”


정 선생의 얼굴에 조금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얼만데요?”


중학생은 초등학생과 달리 엄청 비싼 교재로 수업을 하나 싶어 내심 ‘너무 비싸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며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 선생은 책장에서 ‘파닉스 1’과 ‘중 1학년을 위한 4500제’ 두 권을 골라서 우리 앞에 내밀었다.


“권당 500원입니다.”


궁금하면 500원도 아니고, 장난하나!


언뜻 봐도 여기저기 낙서도 되어 있고 표지도 낡은 것이 아이들이 쓰던 책인 것 같았다.


이 책을 500원에 사라는 말은 아닐 거고, 학부모들이 알아서 사오는 구조라 정 선생이 교재비를 몰라서 농담을 했구나하고 생각했다.


건이 엄마도 나와 같이 받아들였는지 책 겉표지를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나도 건이 엄마를 따라 혁보가 배워야 할 ‘파닉스 1’의 겉표지를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진짜 이 책이 500원이라는 말인데요. 대여비 500원. 애들 간식 기금입니다.”


정 선생이 교탁에 동전이 반쯤 찬 저금통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그냥 새 책을 사올게요.”


건이 엄마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자고로 다른 건 몰라도 공부할 때 책값은 아까워하면 안 되는 거라고 배웠다.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나 정 선생은 단호했다.


“수업하는데 이 책이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일주일이면 마스터 할 책을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요? 두고두고 여러 번 볼 가치가 있는 책이면 몰라도······.”


정 선생은 책장으로 가더니 파닉스 시리즈를 꺼내서 ‘파닉스 2’부터 ‘파닉스 5’까지와 ‘중 1학년을 위한 4500제’를 두루 펼쳐 보여주었다.


“겉표지와 앞부분 필요 없는 부분에만 낙서가 있지 뒷부분은 깨끗하잖아요.”


정 선생의 말대로 겉표지와는 달리 속지는 너무나 깨끗해서 속지만 보면 새 책인지 중고 책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다만 전체적으로 색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정말 공부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이거 나름대로 선배라는 애들이 기부한 것인데, 그냥 이것 쓰시죠. 안 그럼 교재비 너무 많이 들잖아요!”


학부모의 주머니 사정까지 생각해주는 학원 선생은 난생 처음이었다.


“정히 마음에 걸리시면 Long man English Dictionary(롱맨 영어사전) 요것 하나 사서 기부해주세요.”


정 선생은 태연하게 말하면서 그가 그동안 기부 받은 책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건이 엄마와 나는 둘이 마주보며 이 낮선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지를 고민했다.


그런 상황이 익숙했는지 정 선생은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가 앉은 자리의 방향을 바꿔 아이들 수업을 참관하기 딱 좋은 위치로 만들어주었다.


정 선생이 손뼉을 두 번 ‘딱딱’ 마주치자 아이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정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가락 지시만으로 아이들은 그때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자세를 갖추었다.


그 모습은 자유분방하던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마치 군대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다만, 컴퓨터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헤드셋을 착용한 탓인지 여전히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있자 가까이 있는 아이들이 어깨를 툭 쳐주자 이내 눈치를 채고 서로를 일깨우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 공부할 친구야.”


그는 강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건이를 소개했다.


건이가 자리에서 잠깐 일어서자 아이들의 얼굴에는 새 친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착하고 순해보였다.


“어? 건이다.”


그 중에는 건이를 알아보고 아는 체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너희들한테는 미안한데, 어차피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니 이해하자?”


우리는 정 선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알아들은 듯 얼굴에 빙긋이 미소가 감돌았다.


정 선생은 건이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수신호를 하고는 칠판에 거침없이 뭔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분필을 가로로 잡아 세로로 긴 줄을 연하고 두껍게 긋고 맨 아래에 ‘S+V=1’라고 쓰고 조금씩 위로 올라가면서 차례대로 ‘N(명사)’, ‘V(동사)’, ‘AD(형용사)’, ‘ADV(부사)’라고 적었다.


그리고 나서 각 항목 옆으로 나뭇가지처럼 다시 가지를 그려 넣었는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1분도 안 되서 꽤 복잡해 보이는 그림을 완성했다.


지난번 보았던 발로 그린 것 같은 그림보다는 훨씬 봐줄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나뭇가지 같은 난해한 표인지 그림인지가 당황스럽기만 한데, 아이들의 표정에는 조금의 난색도 없었다.


정 선생이 그림 옆 빈 공간에 문장을 적었다.




I want go to school.

He keeps going to school.




테스트를 할 때, 건이와 민수에게 내 준 문제였다.


정 선생은 건이에게 아까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 문장들은 맞는 문장이니, 틀린 문장이니?”


“첫번째 문장은 want가 to 부정사를 목적어로 하는 타동사이기 때문에 틀린 문장이지만, 두 번째 문장은 잘 모르겠어요.”


건이 역시 아까와 똑 같은 대답을 했다.


“다른 의견 있는 사람은 손!”


그러자 여기저기서 서로 말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간혹 손도 들지 않고 제 나름대로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이런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지난번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질문을 하는 모습만 해도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서로 말 못해 안달 난 것처럼 이렇게 적극적일 수 있는 것인가?


무슨 하고 싶은 재미있는 얘기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것인데!


정 선생은 손가락으로 ‘쉿!’하는 모션을 취했다.


“자기 말을 하기 전에 남의 말을 듣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지?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야. 질서를 잘 지키면 너희 모두에게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질 거니까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


아까 건이에게 아는 체를 했던 선화가 고집스럽게 손을 점점 높이 치켜들자 정 선생이 웃으면서 자중시켰다.


“지난주부터 우리랑 같이 공부한 혜진이가 먼저 말해볼까?”


혜진이라는 아이는 조금 주저주저하긴 했지만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위에 것은 동사가 두 개라서 틀렸고, 밑에 것은 잘 모르겠어요.”


정 선생은 혜진이의 답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미소를 지으면서 박수를 쳐 주었다.


“혜진이 잘했지, 얘들아?”


“네!”


몇몇 아이들은 환호성도 질러주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수업시간이 무슨 파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할 말 있는 사람?”


아이들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정 선생이 다시 질문을 하자 누구보다 빨리 선화가 다시 손을 들었다.


정 선생이 선화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자 선화가 일어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의견을 말했다.


“첫 번째 문장은 동사가 두 개라서 틀렸고, 두 번째 문장은 동사가 하나이니 맞는 문장입니다.”


“와우!”


아이들의 환호 속에 ‘역시 선화!’라는 말도 들렸다.


그러자 정 선생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선화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만약에 두 번째 문장을 ‘He keeps to go to school.’ 이라고 하면 이건 맞는 거야, 틀린 거야?”


“틀린 거예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선화의 대답에 정 선생이 빙긋이 웃었다.


“왜 그런데?”


정 선생이 선화를 점점 궁지로 몰아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소 치열해지는 토론의 분위기에 나와 건이 엄마는 숨죽이며 지켜볼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반문에 반문을 거듭하는 정 선생, 선화와 정 선생의 논쟁 아닌 논쟁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귀 기울이는 아이들 모습은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 교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영어에 관한 질문을 댓글에 작성해주시면 선별하여 소설에 채택하여 사용하려고 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 드려요^^


작가의말

선화는 맞았을까요? 틀렸을까요?

궁금하면 500원.

문법 나무 나불리스트 버전 실존함.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Y.E.T.(Yame English Teacher)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1 문법나무 열매(관계대명사), 의리의 사나이 장 기사 21.01.16 32 1 11쪽
40 문법 나무 열매(문장의 5형식, 관계대명사) 21.01.12 27 1 12쪽
39 오해, 문법 나무 열매(문장의 5형식), 궁극의 목적 21.01.07 30 1 11쪽
38 나불리스트 20.12.29 27 1 11쪽
37 이 선생과 윤 선생을 떼어놓는 방법 20.12.25 29 1 12쪽
36 진희와 훈민 20.12.22 26 1 11쪽
35 면접 20.12.18 27 1 11쪽
34 무교동 낙지, 청계천 20.12.15 23 1 11쪽
33 미친 불닭 조작 사건 20.12.10 27 1 11쪽
32 문법나무 왼쪽가지(형태 변화), Soul Mate (소울메이트) 20.12.09 38 2 11쪽
31 문법나무 가지 실전 적용, 문법을 배우는 이유 20.12.02 35 1 11쪽
30 깨달음 20.11.28 33 1 12쪽
29 첫사랑 20.11.24 45 1 12쪽
28 혜신이 20.11.19 30 1 11쪽
27 동창회 20.11.17 42 1 12쪽
26 귀에 걸어도 코걸이, 코에 걸어도 귀걸이 이론 20.11.13 38 1 11쪽
25 우유에 빠진 딸기 20.11.10 35 1 11쪽
24 시강: 12시제, 시간조건 부사절 20.11.09 42 1 13쪽
23 달콤하고 소심한 복수 20.11.03 45 1 11쪽
22 윤 선생과 정 선생의 점심시간 20.10.29 38 1 12쪽
21 문법나무 가지 해설 V(동사) 下, AD(형용사), ADV(부사) 20.10.27 40 1 12쪽
20 문법나무 가지 해설 N(명사), V(동사) 上 20.10.22 46 1 11쪽
19 스킨십, 문법나무 줄기 해설, 대명사표 20.10.20 48 1 12쪽
18 팀 메이트 영어 정 선생 20.10.15 42 1 11쪽
17 정 선생과의 인연 20.10.14 55 1 12쪽
16 1번 원칙. S+V=1 (‘to 부정사’와 ‘V+ing’) 20.10.08 57 1 11쪽
» 교재비는 500원, 문법 나무 20.10.06 56 1 12쪽
14 결정의 시간 20.10.03 53 2 11쪽
13 Test Ⅱ 20.10.01 54 1 11쪽
12 Test Ⅰ 20.09.29 57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나불리스트'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