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진과 양현경
그래서 그 날의 과외 이후로 잘 되었나? 난 모르겠다.
내가 가르쳐 준 것은 컨트롤을 잘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게임을 편하게 하는 방법에 가깝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잘 없다.
편하게 하는 만큼 방송시간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방송 체력은 단순히 '라티온'만의 문제가 아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정말 없다.
그래도 요즘에 올라오는 "Mk.12" 영상을 보자면 썩 괜찮다고 느낀다.
에임 실력은 어쩔 수 없어도 에임이 편해 보인다. 떨림이 줄어들어 있다.
난 이것으로 만족한다. 몇 번이고 '라티온'에는 프로게이머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 프로게이머가 굳이 필요 없다면 즐겁게 게임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스트리머가 항상 프로게이머가 된다는 일련된 인과도 없지 않은가. 어떤 게임에서도 실력이 곧 스트리머는 아니다. 못해도 스트리머는 될 수 있는 것이고, 실력이 경쟁력이 될 수 있어도 무조건적인 경쟁력은 아니다.
"스트리머란 뭘까."
마권이 초청한다고 했고 응해준다고 말했긴 했다.
과연 그게 진실이었을까. 도덕적인 버릇 때문에 튀어나온 말이 아닐까.
실력을 경쟁력으로 치면 분명 이 세게에도 수많은 고수들이 잔뜩 있을 걸, 나는 오만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도피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겠다.
'라티온'을 그리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도 많다.
조금 "OCM(불)"에 자부심이 있는 것에서 그친다.
하룻밤은 은근히 늦잠을 잔다.
"기말고사가 언제야?"
벌써 그렇게 되었다고 잠시 착각했다. 기말고사란 말에 기말고사가 근처로 다가온 줄 알았다.
"루카"의 속임수였다. 막상 폰의 달력을 보면 5월 말인 것을 기말고사 걱정을 벌써 해야 하나. 중간고사를 치른 지 한 달 겨우 지난 시점이다.
"한 달 남았네."
"그래?"
정말 기말고사가 언제인지, 가 질문의 목적이었던가. 의심스럽다. 혹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짚어본다.
"왜?"
"왜라니?"
"기말고사 때 뭔 일이 있는 거야?"
"언제인지 궁금했던 거야."
"그래?"
괜히 참견했나 싶다. 별 거 아닌 일을 헛된 망상으로 부풀린 게 잘못이다.
궁금할 수도 있지.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기말고사 기간이 궁금할 수도 있는 법이다. 무조건 다른 중요한 일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건 비약적이다.
"기말고사 때도, 어머니에게 뺏겨야 돼?"
"잘은 모르겠네."
올해가 처음이다. 생애 처음이라서 한 번은 말도 못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한다고 이번에도 뺏기지 않으리란 각오는 없다.
의아하긴 하다. 정말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그랬는지, 호기심 삼아서 '라티온'을 하고 싶었기에 그랬는지.
엄마가 나 대신 강해진 "backist"를 플레이 한다라. 그 때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여차하면 장벽에 다다르지 않을까 싶다.
예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잠깐.
엄마도 VR이 처음일 텐데 어떻게 한 거였을까.
듣기로는 "마그란 레이드"도 돌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마권이 날 보고 잘한다고 칭찬을 하니, 그러면 그대로 엄마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는 논리다. 항상 '라티온'이 어렵지 않다는 게임이라고 인식해서 엄마가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끼지 않았었다.
유전인가? 이런 류의 게임을 잘하는 것은 유전인가?
그렇다면, 이번에도 믿고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뭐, 그런 놀부 심보가 있긴 하다. 믿을 만한 업자가 대리로 한다면 난 서슴치 않고 허락해 줄 것이다.
"그런다 해도 엄마랑 같이 해줘."
"그건, 싫은 쪽이야."
"싫은 쪽?"
애매한 말이다. 싫다고 단언한 것도 아니고, '싫은 쪽'이라니. 파라미터는 정확하지 않지만 음수인 것은 확실하다는 수학적 논리를 예로 들 수 있겠다.
하기야 나라도 아는 동급생이 아닌 동급생의 부모랑 같이 게임을 한다는 것은 별로 즐겁지는 않겠다. 일부러 불편함을 자처할 바에야 기필코 혼자하고 말겠다.
하지만, "루카"는 솔로 플레잉을 지양하는 편이라 기말고사 시즌 때는 중간고사 때처럼 '라티온'에 안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내가 실례를 일으킨 게 원인이라 내가 말할 처지는 안 된다.
"싫지는 않아. 그러나 무슨 말을 하실지가······."
"아···."
일종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트러블 메이커 기질이 강하긴 하다. 평소에는 절대 느낄 수 없었지만, "루카"와의 관계가 형성되고 나니 나도 기피하고 싶은 심정이 간혹 있다.
방문을 닫고 '라티온'을 플레이 하면서 엄마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매우 크다. 어느덧 PTSD다. 이미 두 번이나 폐해를 봤는 걸 어떡하나.
그러나 그게 꼭 나쁜 것인지에 대해 확답을 내릴 수가 없다.
"뺏긴다면, 그동안에는 '라티온' 말고 다른 걸 해볼래?"
"다른 거?"
이번에는 흑심이 있어보인다. 기말고사 기간은 함정이었다. 일부러 방심을 하게 만들어서 농락하려던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말고. 갑자기 유레카! 처럼 떠올린 게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입을 떼기 전에는 선수를 빼앗긴다. 이미 저 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편, "루카" 정도는 '이 편'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게 아니기 때문에 '저 편'이라고 구별했다.
발언권은 우리의 손 위에 있지 않았다.
"네가 현경이니?"
"네?"
점심 시간에 늘 하던대로 잡담을 나누고 있어 차마 눈치를 못 챘다. 시야 안에는 이미 들어온 지 오래인 존재였지만, 그 존재가 우리를 눈여겨 보고 있으리라 예상 못하고 있었다. 느닷없는 등장을 나는 허리를 편 상태로 똑바로 쳐다본다.
먼저 관찰한 것은 이름표로 색깔을 보아하니 2학년인 걸 안다. 자세를 고친 게 다행이다. 이름표니까 이름은, '김가윤'으로 평범한 이름이다.
얼굴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인연이라 아리송하다. 내가 그런데, 과연 지명 당한 "루카"는 이보다 덜하겠나.
"···네."
1살 선배인 것을 보고 위축 당한 듯하다. 그나저나 면식이 없는 선배에게 이름을 지명당한 것에서 웬만해서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일단 자신이 행했던 일들 중에 과오가 있었는지 돌이켜 보는 게 우선일 것이다.
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이론만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나도 당하긴 싫다.
"그리고 네가 호진이니?"
난 왜. 그렇게 반항심이 있어도 현실은 비정하다.
"네."
"따라와 봐."
순화된 표현으로 '따라올래?'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걸 초면부터 명령어투로 시작한다. 어떤 식으로 말하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알다마는, 기분이 살짝 마음에 안 든다.
그리 멀지도 않다. 다행히 골목 구석으로 데려가지는 않는다. 이야기가 우선인지 한산하지 않은 교실 앞 복도에서 걸음을 멈춘다.
"'라티온'을 한다고 들었거든."
"네?"
그런 소문이 있긴 한 걸까. 남이 무슨 게임을 하든 '라티온'이라고 해서 특이한 게임도 아닐 텐데. 게임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건지 이렇게 남의 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그러므로 소문은 아닐 거라 본다. 아닐 것이다. 이딴 소문까지 전파될 수 있다면 낮의 새든 밤의 쥐든 무서울 따름이다. 어쩌면 '라티온' 말고 다른 소문까지 퍼졌을 수도 있겠다. 이런 공상을 제외하면 그저 '라티온'을 하는 플레이어를 찾고 있던 거라고 추려낼 수 있다.
"네, 하고 있어요."
우물쭈물하던 날 대신해서 "루카"가 대신 답해준다.
"그럼 너희들이 "단마사" 둘이니?"
괜히 저런 질문을 날리는 게 예사롭지가 않다. 이번에는 내가 열정적인 태도로 돌변해서 대답한다.
"제가 "불"이고, 현경이가 "물"이죠."
"맞구나. 잘 찾아온 것 같네."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그러고 다음에 나온 말이 꽤나 충격적이다.
""여운하"라고 아니?"
한 명의 개인을 언급한다는 말은 속셈이 뻔해서 소름이 돋는다.
"누나가요?"
"맞아. 내가 "여운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스트리머지."
스트리머란 존재는 인터넷에 있기 때문에 어디에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결코 가깝지 않은, 적어도 우리 지역에는 없을 거란 게 보통의 거리 감각이다. 마권은 스트리머이기 이전에 친구가 되었기에 예외다.
그나저나 "여운하"다. 자연스레 후보 대상에서 제외된 "OCM(바람)"의 주인이자 스트리머를 우리의 의도가 아닌 이 "여운하"가 개인사로 찾아왔다는 건 기적이라고 불릴 만한가? 기적이긴 하다. 기적이 순도 100% 이롭다는 뜻을 의미하진 않으니까.
기쁘지가 않다. 일반인인 내가 스트리머에게 연락을 취해서 접근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러한 만남은 불편하다. 사업자 측에서 몰래 접근했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다.
"제가 아는 "여운하"가 맞나요?"
"스트리머 경력 2달차, 시청자 수는 200명을 넘나드는 소소한 규모의 스트리머인 "여운하"가 맞아."
"그런 사람이 왜 저희를 만나러 온 건가요?"
"따로 서로 하는 것 외에 집단으로 하는 게 있니?"
정확히 말해서 딱히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가 없다.
"없어요."
"방송에 출연할 의향이 있니?"
"아니요."
마지막 말은 내가 말한 게 아니다. 나와 김가윤="여운하"만의 대화가 아니라 나와 "루카"와 "여운하"와의 대화라서 "루카"가 거절했다고 해서 논란이 될 건 없다.
"호진이는?"
"저도, 거절할게요."
"아쉽네. 만약 볼 일이 있다면 2학년 5반으로 찾아 오면 돼. 아니면 전화 번호라도 가르쳐줄까?"
속 편한 스트리머다. 연락처를 함부로 고유하는 것은 나중에 두고두고 큰 일이 될 수도 있는 걸 조심성이 없는 발언이다.
"전화 번호는 괜찮아요."
내가 거절함으로써 올바르게 인도한다.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다."
대사를 놓고 봐서는 깎듯한 사과로 보이지만, 실상은 아무런 비언어적 표현 없이 떠나버린 "여운하"다. 무례하다, 다르게 보자면 계산적이다. 김가윤이란 캐릭터는 나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가까운 곳에 스트리머가 있네."
내가 느꼈던 걸 뒤늦게 말로 풀어내는 "루카"다. 반응은 안 한다. 왠지 모르게 "루카"가 썩 괜찮지 않은 기분이란 게 곁에 서 있자니 느껴진다.
귀가본능에 따라 다시 교실 뒷문을 통해 제자리에 앉는다.
가만히, "여운하"라는 스트리머의 실체가 우리를 스쳐지나간 게 태풍에 스친 것과 비슷한 듯하다.
그 이전에 어떤 화제로 말하고 있었지? 간신히 기억한 바로는 기말고사 때 또 '칼레이도'의 조종권을 뺏긴다면 어떤 걸 할지 고민했던가?
나는 "루카"를 바라보지만, 이상하게 "루카"는 잠시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라티온' 말고 다른 걸 하자고 했지?"
"응."
"어떤 거?"
"고민하고 있어."
"아직은 시간이 많지."
"호진아."
"루카"가 돌아보는 게 돌발 상황 같다. 평소의 이런 구도지만, 약간 흥분한 게 돋보여서 비정상적으로 느껴진다. 차분하게 흥분하고 있다.
"했어야 했을까?"
""여운하" 얘기지?"
태풍이 여운을 남기고 간 것이다. "여운하"라서 노리고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니다. 맞는 말이라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정상으로 회귀하기가 어렵다.
"어떻게, 했을 거야."
If "루카"가 내뱉기 전에 내가 무엇을 말했을 때. 그 때의 미래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어떻게 돼도 "루카"가 대답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다지 아무런 발언할 거리가 없었기에 그렇다.
"거절하지도 수락하지도 않았겠지."
비겁하다. "여운하"와 "루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꼴인 걸 직설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에둘러서 나의 문제를 숨기려고 한 것뿐인 잘못된 대답이다.
"내가 거절해서 거절한 거야?"
"아마도."
그러나 책임을 떠넘긴 사유도 있긴 하다.
"그 쪽이 고집이 세서 끌고 가려고 했다면 몰랐겠지. 믿는 구석은 있었어. 네가 거절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스트리머라는 직책으로 섭외를 하려고 한다면 그건 친분의 표시는 아니니 말이다. '라티온', "OCM"이란 키워드로 접근한 관계가 성립된다고 해도 "루카"가 좋아할 수 있을지 문제다. 내가 악착을 가지지 않는다면 비교적 혐오감의 수치가 더 높을 "루카"의 의견을 따르는 게 현명하다.
그게 나의 논리이되 합리적이다. 어떻게 보면 이기주의이기도 하다. "루카"에서의 시선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한 셈이다.
이후 남은 점심 시간은 침묵으로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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