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이도 하나로 노는 법
"루카"의 약점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번쯤은 그런 부끄러운 포즈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 할 수는 없다. 가끔은 도취에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디까지나 해프닝으로 일으키겠다. 그런 일을 미쳤다고 자신이 기록할 리는 없겠고, 여동생의 손에 의해 불법촬영을 당했겠거니 안타깝게 여기는 중이다.
"봐도 괜찮아."
그런데, 그 당사자가 저런 말을 한다.
"본다고 하진 않았어."
"그래?"
"그래."
남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 본다고 한들 마법소녀 포즈라는 게 얼마나 특이할 수 있다고 진귀한 광경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하나도 안 든다.
"하지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걸요?"
"왜?"
이유를 들어본다.
"사귀고 있지 않더라도 사귈 예정이라면 이런 것쯤은 흔쾌히 볼 수 있어야죠."
"별로?"
"보기 싫다고 하면 괜찮지 않아?"
대립 구도가 나와 "루카" Vs 여동생이다. 여기서 "루카"는 어떻게든 여동생의 의견을 존중해주려고 하는 게 약간 다르긴 해도, 거의 내 편이다.
"그러면, 오빠한테 물을게요. 진도를 어디까지 나갈 생각인가요?"
"진도?"
"사귄다는 마인드라면 진도는 확실히 정해놓아야 하는 게 정석이에요."
"어디까지라고 해도···."
"생각 안 해놓은 거예요?"
여동생한테 잔소리를 듣고 있다. 오늘 이러려고 온 것은 아니었긴 해도 일 리가 있어서 잠자코 듣는다.
반박을 못한다. 듣고 나서 생각해보면 진도를 정해놓진 않았다.
좀 더 다가가겠다고 말하긴 했어도, 목표가 어디까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단 종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결혼일 텐데, 내가 거기까지 "루카"를 끌고 갈 수 있을까, 란 의문이 든다. 그러면 결혼까지 생각 안 했다면 이 구도는 뭘까? 심오한 질문에 대답하기가 힘들다.
참 어렵다. 결혼까지가 아니라고 하면 중간에 버린다는 뜻이 되는 건가? 그건 "루카"를 여흥으로 사귀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한순간에 내 인간성이 쓰레기로 탈바꿈 되는 작업일 테니 섣불리 대답하기란 어렵다.
자문을 구해본다. 나는 "루카"와 관계를 어디까지 이어나가려고 하는 것일까.
"언니의 성격에서는 결혼까지 해야 할 건데요?"
여동생이 여유를 안 준다. 자문을 구하는 게 쉽지가 않다. 들어오는 훼방이 심해서 사고회로를 기동하는 건 포기한다.
"루카"의 반응을 본다.
"결혼은··· 고등학생이 생각하기에 이르지 않아?"
"맞아. 아르지."
"루카" 덕분에 기사회생을 한 기분이다. "루카"도 기본적으로 종점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 중이라 내가 정당하게 원하던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면 중간에 헤어지는 것이 전제인가요?"
"······."
"······."
서로 말이 없다. 그야 누가 여기서 헤어지는 걸 전제로 하고 사귀겠다고 말하겠나.
그리고 난 그러려는 마음은 없다. 하지만, 결혼은 생각하지 않은 것도 맞다. 그 중간인 무언가, 집행유예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는 다른 무언가 적절한 말이 필요하다. 나로는 표현할 수 없다.
"헤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면 사귄다고 볼 수 있나? 잠시 빌리는 거라고 봐."
이 말로 상황을 정리한다.
"이제 알겠네요."
나와 "루카"는 여동생을 보며 긴장한다. 끝나지 않는 공세에 또 어떤 파격적인 발언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 기대도 하기 싫다. 이제 끝내줬으면 한다.
"언니를 잘 부탁드려요."
언행일치로 "루카"의 부모님이 된 것 마냥 나에게 꾸벅 절을 한다. 대충 하는 느낌도 아니고 제대로 순서를 지켜 공손함이 나에게 전해지도록 방향도 어긋나지 않는다. 흡사 벌써부터 약혼이라도 치른 것인지 식은땀을 닦는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전개에 어쩌다 보니 매료된다. 저절로 몸이 무거워지더니 여동생과 똑같이 예의범절을 지키려고 절을 한다.
"난, 난, 어떻게 해야 해?"
하지 않으면 된다, 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차마 말을 못해준다.
이후, 자잘한 대화를 나눈 후에 여동생은 우리 둘을 방치시키기 위해 방문을 닫고 자신을 밀폐한다. 자잘한 대화라곤 하나 중요한 게 하나 있긴 하다.
번호를 교환해버렸다.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는 말이다.
"루카"와 "루카"의 여동생이라. 내 주소록이 점점 비범해지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연락망이 채워지면서 알게 되는 사람들이 비범하니 그럴지도 모른다.
기승전결로 '라티온'으로 간다. 결국에는 "OCM"에 얽히고 얽힌 인연이라 안정적인 방법을 택한다.
'칼레이도'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1인용은 어떻게 극복을 못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루카"의 PC가 사양이 좋지 못하단 것이다. '칼레이도'와 연동시키니 렉이 심하다. 자칫하면 하드웨어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바로 껐다.
"루카"가 하거나 내가 하는 걸 "루카"가 지켜보는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다. 마권의 집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구경이란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사운드 플레이다.
플레이어의 위치에 따라 남이 쓰는 스킬 사운드, 몬스터의 발소리 및 공격 효과음이 크기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방금 쓴 게 [역류참]인가?"
"맞아."
"그리고 중간에 [수평선을 향해]와 [얼음 공예]였나?"
"[얼음 공예]는 어떻게 아는 거야?"
"사실은 버튼 누르는 것을 보고 그렇다고 예상을 한 거야, 실제 효과음으로는 유사해서 바로 구분이 안 되고."
"그렇구나."
"내 귀가 분석기는 아니야."
"로다란"에서의 사냥은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긴 하다.
배경 음악이 내 취향이다. 어떤 악기인지는 몰라도 전통적인 피리 소리에 산맥이란 배경을 모티브로 해서 무협 느낌을 내는 것 같다. 그에 비해 '라티온'은 디자인 자체가 정통 중세 판타지라 무협의 기운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피리 소리가 좋은 점이 스킬 사운드와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는 점이다. 웬만한 전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배경 음악은 스킬 사운드와 샘플이 비슷한 것인지 장르가 달라도 섞여 들으면 스킬 마다의 효과음이 비슷하게 들린다.
그에 비해서 "로다란"은 무협 속에 마법사가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얼음 공예]란 스킬은 태생이 효과음이 없을 수밖에 없다.
[얼음 공예: 모든 수분을 급속 냉각시켜 얼음으로 만듭니다. 얼음 공예의 대상은 시전한 필드에 있는 시전자 소유의 물과 시전자가 머금음 상태로 빠뜨린 적만 대상입니다. 얼음 공예로 만든 얼음은 시전자 및 아군은 통과 가능하지만, 적은 파괴 전까지는 통과를 못합니다.]
즉시 시전이다. 이게 캐스팅이었으면 조정 불가능한 물을 사전에 미리 거리와 각도 등을 계산해서 미리 정해진 위치에 던져두고 [얼음 공예]의 캐스팅 시간까지 고려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스킬 이펙트는 [제로노바]를 떠올리게 만든다. 캐스팅이 성공한 순간 필드 전체를 얼어붙게 하는 재앙과 비교하면 밋밋하긴 하다. 여러 물 속성 장판기를 미리 깔아둔 상태에서 하면 그것도 멋있기는 하겠다. 그러나 그러는 게 손해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무조건 있다. [제로노바]와 실용성과 외관을 다 챙긴 140레벨의 궁극기라면, [얼음 공예]는 35레벨에 배우는 저레벨 스킬이다. 애초에 효율이 엄청 좋을 수가 없다. 가성비는 좋겠지만, 하필 저레벨 스킬이라서 이후 발설할 문제점이 한계를 드러낸다.
미리 물 속성 장판기를 깔아두면 좋겠지만, 그 장판기들이 일제히 얼음으로 변하면서 [얼음 공예] 텍스트에 적힌 데미지를 주고 끝이 난다.
즉, 스킬 여러 개들의 지속 시간이 남아 있든 간에 증발한다는 소리다.
또한, 물 스킬들이 포진되어 있는 곳에 [얼음 공예]를 쓴다고 해서 타격 횟수가 늘어나지도 않는다. 한 번 타격하고 끝이다.
대신 최대 2회 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물을 얼려버리는 방법도 있고, 텍스트에 적힌 '머금음 상태'의 적이 있을 때 사옹하면 된다.
물이 젖게 한다는 특성을 살려 '머금음 상태'가 존재한다. '빙결' 상태는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이 '머금음 상태'는 언급한 적이 없다. 왜냐 하면, 파티 플레잉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자체 효과가 없다. 상태 이상 표시에 표기되기는 해도 막상 아이콘에 조준선을 올리면 나오는 텍스트는 이렇다.
[머금음 상태: 현재 이 대상은 물에 노출된 상태입니다.]
효과가 적혀 있지 않다는 말은 효과가 없단 이야기다. 그렇다고 쓸모가 없는 걸 상태 이상으로 놓지는 않았겠다.
대표적으로 '머금음 상태'를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 [얼음 공예]다. 일반 "마법사"도 활용할 수 있는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긴 하다. "OCM(물)"처럼 '머금음 상태'를 부여할 수 있는 물 속성 스킬이 있어서 그렇다. 참고로 모든 물 속성 스킬이 '머금음'을 부여하진 않는다.
여러 콤보가 있으나, "루카"가 주로 쓰는 콤보인 [역류참]>[얼음 공예] 콤보는 "OCM(물)"이면 즐겨 쓰는 콤보이긴 하다.
[역류참]은 [화마의 손짓] 같은 스킬이다. 40레벨 전용 스킬이며 무난하게 일직선상을 그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게 맞다.
다만, [화마의 손짓]이 공중 판정이 아쉽다는 점과 준 장판이 있는 스킬이란 점이 정반대이다. [역류참]은 말도 안 되는 사거리 말고 압도적인 y축을 보여준다. 초승달 형태로 나아가는 형태가 높이가 너무 높아서 당장 머리 위에 있는 적은 무조건 맞추고 들어간다.
그러면서 1회 타격만 가한다. 이 말을 1회 타격에 모든 데미지 배율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또, [역류참]이지. 중간에 뭔가 쓴 거 같은데. 설치? [블루 홀]."
"응."
한 곳으로 몬스터를 모아버리는 [블루 홀]은 사실 [블루 홀]의 데미지 기댓값보다 [역류참]을 맞추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이다. 장판들의 고질적인 단점은 노출된 시간이 길어야만 효율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전용 스킬을 위해 공용 스킬 [블루 홀]이 희생하고 있는 셈이다.
어느 설명이 길어지는데··· 정말 마지막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역류참]이란 스킬 이펙트에 관해서다. 초승달 모양으로 나가 y축까지 압도적이란 게 무슨 뜻이냐면, 몬스터들을 관통하면 지나가면서 휘어진 모양새가 너무 길어 [얼음 공예]를 대충 써도 직선상의 몬스터들은 무조건 맞는다. 쏘자마자 쓰는 게 아니면 말이다.
그래서 소위 국민 콤보다.
"[달의 바다]는 소리가 나?"
"썼어?"
"썼어."
"신기하네."
[달의 바다]는 [새장 속의 불새]를 배우는 50레벨 전용 스킬이다. 이렇게 비교하니 [새장 속의 불새]가 얼마나 찬밥 취급인지 알 것 같다.
"스킬이, 장판보다는 장막에 가까워서 그런 것 같아."
"처음 알았네."
"나도. 처음 알았어."
장판이라기에는 이상한 스킬이다. 장판이라고 해도 시전자 주변을 휩쓸게 하는 결계 같은 포지션의 스킬이다.
[달의 바다: 침묵만이 존재하는 바다 안으로 주변을 침식시킵니다. 사용자 본인을 기준으로 반경 50미터 내에 있는 모든 대상들에게 다음 효과들이 적용됩니다.
대상이 아군일 시에는, 달의 바다에 침식된 적을 일반 공격 및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50%의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대상이 적일 시에는, 상시 머금음 상태가 됩니다.
해당 스킬은 얼음 공예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루카"가 솔로 플레잉에서 즐겨 쓴다던 스킬인 [달의 바다]. 듣기에는 매우 편안한 버프 스킬로도 볼 수 있겠다. 이걸 파티 플레잉에서 쓰지 않는 것은 시각 효과 때문이다.
범위 안으로 들어가면 화면이 파랑색으로 물들여진다. 멀리서 시전자를 바라봤을 때는 희미한 파란 경계선이 보이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물에 들어간 것처럼 표현되어 수중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기필코 피해야 하는 스킬이다.
'상시 머금음 상태', 다시 말해서 [얼음 공예]를 써도 상태 이상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매커니즘 상 머금음 상태가 아닌 적이 들어왔다가 나가도 머금음 상태로 나가져서 상태 이상을 묻히기에도 좋다.
그리고 설명을 보면 [얼음 공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얼어붙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 유일하게 [얼음 공예]랑 시너지가 맞는 장판 류다.
"플레이어의 캐릭터끼리 싸우는 콘텐츠가 나온다, 고 하지?"
"쇼케이스에서 그렇게 밝혔지."
"전용 스킬은 어떻게 돼?"
"적어도 궁극기는 빼고 나오겠지."
난 순간 "루카"가 PvP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 나쁠 것은 없지만, 놀랄 수 있었던 부분이다.
그건 착각이었다.
"[달의 바다]는 못 나오지 않을까."
"왜?"
"소리도 안 들리고, 범위도 넓고, 아군에게 이로운 효과도 주고, 시야도 방해하고, 동 직업을 적으로 만나면 싫을 것 같아."
어디까지나 자신의 직업에 대한 근심이었다. 덧붙이면, [달의 바다]는 데미지가 있는 기술이니 다가가기만 한다면 지속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다.
거기에 확정적으로 [얼음 공예]를 발동시킬 수 있으니 사기 스킬이 될 것 같긴 하다. 그대로 나온다면.
그대로 나온다면, 적어도 그대로 나오지는 않겠다. 적절히 수정을 가해서 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불마사" 효과음을 듣고 싶은데."
'칼레이도'를 벗으면서 심술을 내는 "루카"다. 효과음으로는 필드를 이동하는 소리로, 무음 처리가 된 순간은 로딩이다.
""희탑"이나 갈까."
"혼자서?"
"그럴 만한 스펙이야."
"그럼, 내가 먼저 그럴게."
'칼레이도'의 기능인 오픈 스피커를 이용한 플레이가 이렇게 흥할 줄은 몰랐다. 소리만으로 장면을 연상시킨다? "루카"의 PC의 한계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 의외로 마음에 든다.
한 번 마권에게 아이디어나 제공해 볼까. 딱히 다른 크리에이터도 해보지 않은 도전인 것 같아서 그럴 싸하다.
오늘은 이렇게 넘어가지만, 다음에 놀러올 때는 어떻게 할지 고민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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