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귤배 전쟁 유희 대회(6)
[개천의 시]. 내가 궁수라는 직업을 그렇게까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나름 멋있다고 생각하는 스킬 중 하나다.
어떤 스킬이냐, 제자리에 서서 일대를 폭격하는 스킬이다.
사용 즉시 시전자는 무적이 되며, 그래서 딜링 스킬이기도 하면서 무적 스킬로도 활용하는데, 무한히 거대한 화살이 계속 장전되며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연사 속도가 결정나는 화끈한 스킬이다.
발사 수가 정해진 게 아니라 지속시간 동안 시전자가 얼마나 공격을 누르는가에 따라 다르다. 극한까지 뽑아낸다면 어느 직업의 120레벨 스킬도 [개천의 시]만큼의 DPS를 뽑아낼 수가 없다. 이론상 데미지는 최강이다.
PvE에서는 그렇다.
여긴 PvP다.
무엇이 하향당했냐면, 당연히 무적은 삭제된 상태일 테고 무엇보다 범위가 문제다. PvE에서는 폭발형이라 땅을 맞춰도 유효한 데미지를 줄 수가 있다.
PvP에서는 화살의 크기가 작아졌을 뿐더러 직접 플레이어를 관통시키는 게 아니면 데미지를 줄 수가 없다. 유효한 데미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게 아니면 데미지가 0이다.
게다가 투사체 속도까지 하향 당해 있어서 잘 조준해서 쏜다고 해서 피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상대가 있다면 보고 피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개천의 시]는 PvP에서는 '잼잼의 시'라고도 불린다. 웬만해선 예능용 스킬이다.
그걸 대회에서 꺼낸다는 말은, 팬서비스가 철저하단 뜻이기도 하다.
("이번에 시전 속도가 상향 먹긴 했지만, 그 성능은 낼 수 있을까요?")
"김귤"이 말하는 것에 "중괄호"가 덧붙인다.
("성능 이전에 "설원" 맵이 아니었으면 어쩌려고 했을까요, "아포" 선수.")
"성요나"가 덧붙인다.
("그냥 "마법사"와의 매치업이니까 무조건 원거리 싸움이 있겠다고-")
미처 다 말을 하기도 전에,
("한 발!")
("맞췄어요?!")
("한 발!")
셋 다 "아포라크테"의 묘기에 감탄한다.
상대가 아무리 그래도 맞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개활지라서 장애물 전까지 일단 지그재그로 약진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 피하려는 마음가짐은 있다.
단지 "아포라크테"가 맞추는 것은 절대 "까까줏세요"가 맞고 싶어서 맞추는 게 아니라 그만큼이나 계산을 잘한다는 것이다.
("두 발! 세 발! 네 발! 다섯, 발!")
"김귤"만 적중수를 세고, 나머지는 입을 다물고 있다. 무언의 감탄이다.
물론 여타 궁수 스킬에 비해서 맞추기 쉬운 것은 맞다. 곡사가 아니라 직선으로 날아가며, PvP의 어떤 맵에서든 꿇리지 않는 사거리를 가지고 있는 스킬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 백발백중은 실력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반동도 있을 텐데, 그걸 다 조절하는 것을 감안한다고 쳐도 어떻게 예상 경로에 연사해서 화살을 박아넣을 수 있는 것인지 설명할 수가 없다.
("여섯 발! 을 쓰고 이제는 안 되겠죠?! 숨은 사람까지 맞추면 사기죠?! 네, 바로 해제를 하네요.")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연사한 "아포라크테"는 [개천의 시]를 중단하고 아까 했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이미 이득은 많이 본 상태죠. 굳히기 들어가는 "아포" 선수인가요? 발당 4%씩, 24%를 깎아내는 데에 성공한 "아포" 선수이기 때문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수" 대 "마법사"는 콤보보다는 견제 싸움이죠.")
("대신 "까까" 선수에게도 호기, 라고 해야 할지··· "아포" 선수의 스킬에 [개천의 시]가 있다는 것을 알긴 했는데, 이미 맞아버렸는데 호기라고 할 수도 없겠습니다.")
"성요나"와 "중괄호"가 잘 설명했다.
무의미하게 쓰였다면 [개천의 시]의 깜짝 등장은 우리를 웃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맞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까까줏세요"의 정신도 많이 흔들릴 것이라 본다.
그러나 사실, 이 경기의 승리의 열쇠는 이미 "마법사"에게는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벅차오른다.
(""아포" 선수, 64강과 32강에서는 콤보를 잘하는 선수다, 이렇게 평하고 있었는데, 오늘 화살을 제대로 갈고 나왔죠?!")
("내가 못 쏴서 콤보를 넣는 게 아니라, 상성이 그래서 콤보만 했던 거다, 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무슨, 쏘는 족족 주몽처럼 유효타를 주고 있어요!")
("PvP에서 저런 사람 만나면 접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거 동감합니다.(웃음)")
차례대로 "김귤", "중괄호", "성요나", "김귤"이다.
즉발도 아니고 사거리는 어느 정도 있되 투사체 속도가 느린 PvP에서 원거리 스킬이 데미지 넣는 용도로 안 쓰이는 이유는, 맞추기 어려우니까. 리스크가 있는 방향성으로 10개만 넣을 수 있는 스킬트리에 꽉꽉 원거리 스킬로 가득 채운다면, PvP 내내 맞춰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려야 할 뿐이다.
콤보 스킬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시동 스킬, 아니면 일반 공격을 맞춘다는 가정 하에서 일어나는 보상 같은 것이지만, 아예 확실하지도 않은 스킬로만 공략하는 것은 어마무시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못한다.
(""까까" 선수도 맞춰야 하는데요, 이대로면 "아포" 선수가 계속 빗나가지 않는 한 가망이 없습니다! [개천의 시]가 이렇게나 사기 스킬이었나요?")
("원래 맞추면 사기 스킬인 거 많겠죠. 그런데, 맞추면 당연히 사기 스킬이죠!")
"김귤"의 견해대로 이대로면 "아포라크테"의 승리로 끝난다.
다만, [개천의 시] 때문에 기울어진 게 아니다. 그것도 맞지만.
기본적으로 명중률이 너무 차이 난다. "까까줏세요"가 못하는 게 아니다. "아포라크테"가 너무 잘 맞추는 것이다.
엄폐물에 박힌 걸 제외하면 "아포라크테"는 빗나간 화살이 3개밖에 안 된다.
무려 1분 동안, 1분이면 PvP에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어차피 [에로우 레인]은 견제 스킬에 불과하니까 논외다. 직사로 쓰는 모든 스킬과 일반 공격을 통틀어서 3개뿐이다.
이번 16강에서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는 "아포라크테"다. 64강이나 32강에서는 하필 볼 여유가 없었다. 여유가 없었다고 할까, 불운하게 보질 못했다. 그래서 딱히 실력을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저 "아포"라는 선수가 이전 경기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는지 모르겠다. "해설"로 듣자니 이번 16강에서 처음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편적인 부분이라도 이 정도면 얼마나 실력자인지 알 수 있다. "궁수"라는 직업 자체가 화살을 맞추면 당연히 좋은 직업이니 그 말은 기본기라는 게 뛰어나단 소리다.
8강에서 저런 괴물과 붙어야 한다는 게 번거로울 수도 있긴 해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다.
평소에 못 만나는 스킬트리를 가진 최적의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이 대회의 신비다. 다른 직업이란 변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개별 처방약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 16강 시합은 생략한다. 별 볼 일 없으니까 생략한다.
···(중략)···
남은 8강의 여섯 경기는 금방 끝이 난다. 똑같은 단판이라 그런지 16강이 섭섭하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만큼이나 물갈이 했으니까 8강의 싸움은 슬슬 흥미진진해질 것이고, 여기서부터 다전제이니 1경기가 지나가도 여러 전략을 볼 수 있어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딱히 불만을 없을 것이다. 아니, 불만이 없지는 않겠지만, 불만이 적겠다.
물론 주최자 입장에서는 대회 시간을 벌여야 하니 바로 8강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막간을 이용해서 간이 인터뷰를 열어버린다.
때문에 나는 "아포라크테" 선수와 한 방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생존자 전원이 있는 방에 갇혀 있다.
그 안에는 "김귤"의 아바타도 있다.
("이제 1위에 올라갈 후보들이 8명만 남기고 있습니다. 직업도 다양합니다. "궁수", "불단마사", "소환사", "풍단마사", ······.")
여러 가지 사전 설명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막 들어온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럴 거면 16강까지, 단판으로 행해지는 모든 경기를 1일차에 끝내거나 1, 2일차로 생각하고 기획을 짰으면 어땠을까, 내가 아쉽다.
그나저나 "궁수", "불단마사" 순서대로 설명하는 거면, 대진표 순서대로 설명하는 게 너무 티 난다.
"김귤"의 아바타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데스크에 있는 것은 똑같다. 다만, 따로 음성 채팅 채널을 개설해서 초대하기보다는 '라티온' 시스템을 이용하는 편이 나으니까 인터뷰를 위해 한 방에 모은 것이다.
("···먼저 "아포라크테" 선수를 모셔보겠습니다. 인사, 부탁드립니다.")
상시 마이크가 개방되어 있어도 각별히 주의하는 경향이 있는 대회다. 일단 이 8명 중에서 제대로 자기 목소리를 공개한 적이 없다. 딱히 그런 위기를 겪지도 않았기도 했지만, 마이크와는 인연이 없는 듯하다.
한 번은 일부러 마이크로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관심종자가 있을 법하기도 하나, 여러모로 점잖은 분위기다.
("안녕하세요. 210레벨 "궁수"를 키우고 있는 "아포라크테"입니다.")
("혹시 "아포" 선수라고 불러도 되나요?")
("평소에도 그렇게 불리고 있어서 상관 없어요.")
("저희가 풀네임 그대로 부를 수 없어서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했었는데 죄송합니다.")
(""아포라크테"는 길죠. 괜찮아요.")
("닉네임에 의미는 있나요?")
옆에서 들으면서 생각한다.
만약에 나에게 '닉네임'에 관한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엄청 옛날에, 1권을 막 시작했을 시절에 이미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backist"가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만, 굳이 더 말하기가 싫다.
거의 무의식 속에서 나온 닉네임이지, 어떻게 정상적인 사고로 도출해낼 수 있는 닉네임은 아니다.
그렇단 말은,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걸 방송에 내보낸다는 말은 한 일주일 동안은 이불킥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막 지었다고 하자고 마음 먹는다.
곧 이어서 내 인터뷰가 이어진다.
("다음으로 "바키스트" 선수입니다.")
'인사,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이 없어도 알아서 한다.
(""불단마사"를 키우고 있는 "베키스트"라고 합니다.")
("아, "베키스트"였군요!")
("사실 "바키스트"라 읽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베키스트"라고 읽겠습니다. 앞으로 시청자 분들은 저희가 "바키스트"라고 읽을 때마다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언제 '닉네임의 유래'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지 경계한다.
("현재 "베키스트" 선수는 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선수죠? 64강에서 퍼펙트 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그런데, 본인은 알고 계시나요?")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네요.")
("당시엔 이번에 퍼펙트로 끝내야 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나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의도한 건 아니에요.")
("원래 흥분해서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이죠?")
("그렇죠.")
순도 100%의 진실이라 이 이상 부풀릴 수가 없다. 의도를 했으면 묘사라도 했겠다.
("혹시 "불단마사"로 출전한 이유라도 있는 건지 묻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서 묻겠습니다. 아무래도 1티어 직업이라는 의견이 분분한데, 그만큼 기본기가 있는 실력자라서 여러 PvP 캐릭터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 같네요.")
그 의도대로 대답하면 이렇다.
("키우는 게 "불단마사"밖에 없어서 "불단마사"로 출전한 거죠.")
("역시 오해였었네요. 언제부터 키우셨죠?")
("3월부터 '라티온'을 시작하고 바로 키웠죠.")
("레벨은 얼마죠?")
("205레벨이죠.")
("PvP로 200을 찍은 사람도 없으니 결백하네요.")
("네.")
("남은 경기, 열심히 치르시길 바랍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는 이렇게 끝난다.
닉네임 얘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바키스트"인지 "베키스트"인 지 언급한 것 외에는 다른 질문들이었다. 한 명마다 두 질문만 던지니까 두 질문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 것이었다.
인터뷰 이야기는 내 차례가 지났으니 넘어간다.
이제 8강 경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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