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2)
"생각보다 안색이 좋네?"
다음 주, 월요일···이라고 해도 어차피 그로부터 이틀 후다.
"나쁠 게 있나요?"
아침부터 김가윤이 우리 반으로 온다. 가끔 있는 흔한 일이라서 받아들인다. "루카"는 아직 부재 중이다.
"참, 대회는 어떻게 됐냐?"
"안 보신 걸 떠나서 벌써 말해야 하나요."
"비장의 수로 남겨뒀던 화제였냐?"
"아뇨. 그건 아니지만 현경이도 왔을 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죠."
그러자, 기다린 듯이 등장한다.
"오셨어요?"
"왔다."
"왔네."
"그러니까 말해."
"둘 다 모르니까 자세하게 말할까요. 아니면, 간단하게 말할까요?"
"루카"도 시청을 안 했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내가 신경을 안 써준 것이라 보지 않은 것도 있다. 제각기 할 일이 있는 상황이라 무조건적으로 내게 좋게 작용한다고 이기적인 심보를 들이밀면 안 된다. 난 몸소 배운대로 실천한 것이었다.
"자세하게."
"그럴까요."
"이건 선착순이지."
자세하게라고 해도 얼마 안 걸리는 일이라서 한숨만 돌리고 본론에 들어간다.
"16강까지는 무난했고, 8강에서 3:2로 간신히 이겼죠. 경기 내용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비등비등했죠. "아포라크테" 선수라고 저번 대회에서 결승전에서 만났던 상대를 만난 거죠. 리벤지 당할 뻔한 거죠."
"은근슬쩍 자랑질이냐."
"전력을 다해서 이긴 정도면 자랑할 거리가 아닌가요?"
"계속해."
"오히려 4강이 쉬웠는데, 굳이 쉬운 건 말 안 할게요. 남은 건 결승전이었는데, 하필이면 우려하던 상대가 나왔죠. "죽은수프"라고 아시나요?"
"아, "뒤진스프"."
"네."
"졌다고?"
"4:2로 졌죠."
모든 캐릭터를 쓸 줄 아는 사람이지만, 대회 규정상 계정마다 한 캐릭터로만 출전이 가능해서 그가 들고 온 직업은 "광전사"였다. 상성으로 그렇게 불리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실력으로 졌다는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반응을 못해서 졌죠. 실수라는 것들이 전부 기량에서 나오는 것들이라 별로 실수를 피드백하기보다는 실력을 키우는 게 더 빠를 것 같네요."
"4:2면 고군분투는 했네."
"둘 다 했죠."
"명성만큼 하나 보네. 그런 사람이라도 2차 예선에서 만나서 졌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그런 사람이니까 2차 예선에 안 가겠죠."
"팩폭이냐?"
팩트 폭력이다, 라고 말하려다가 "루카"의 말에 집중한다고 내 차례를 생략한다.
"그럼 아버지는?"
"아, 32강에서 탈락했지."
"잘만 했으면 부자끼리 상금을 타먹었겠네?"
"잘 못했으니까 망했죠."
"뒷담화도 상대를 잘 봐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지."
"고자질할 상은 아니잖아요."
"안 할 거야. 알아도 안 해."
"그리고 이미 면전에서 얘기했는 걸요?"
"뭐?"
김가윤이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의도한 바다.
"루카"는 조심스레 묻는다.
"결승전에서 못 만났는데 괜찮은 거야?"
"그런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사고하게 되었으니까 괜찮아."
"홀가분해졌구나."
"한마디로 말하면."
이제 와서 붙어보고 싶다는 욕망은 거의 없다 보면 된다. 결승전이 아니어도 좋다는 마인드가 아니라 그냥 안 붙어도 된다는 마인드로 바꿔었다.
이 결과에 대한 동기로는 아마 밑의 사건이 주된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하고 서술해보겠다.
진 사람을 보고 바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1일차에서는 16강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4시에 비로소 시간이 생기고, 그 때는 이미 탈락한 아빠가 평범하게 랜덤 매칭을 돌리고 있던 때라서 먼저 화제를 꺼내면서 시작했다.
"시간 되나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
"네."
"어떤 이야기?"
순서상 마지막 말은 아빠가 하는 게 맞는데, 갑자기 뒤에서 엄마가 튀어나온다.
내 경기도 끝났으니 무척 심심한 상황에서 엄마의 난입은 피할 수 없다. '라티온'을 즐겨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나오는 경기가 중오했었던 것이다.
"둘만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비밀로 해야 하니?"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라서요."
"알겠어~"
고집을 그만두고 손수 문을 닫고 나가준다. 문을 닫을 생각까지는 없었으나 닫히고 나니 닫았어야 했다는 사고가 일어난다. 일어난 후에야 좋은 판단이라는 결론을 짓는다.
"패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패인? 못해서가 아닐까? "성기사"가 그렇게 까다로운지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지. 단기간에 아무리 매칭을 돌린다고 해도 실력자를 만나는 건 한두번에서 그칠 거니까, 경험 부족도 마찬가지겠네."
대답이 끝났다고 판단된 이상 원하던 정답을 알려준다.
"네, 못해서 진 거죠."
"다른 게 아니고?"
"아뇨. 말한 것들이 전부 못한 거잖아요."
"그렇지? 내가 스킬을 뭘 가지고 가는지 뾰족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도 있었지."
"점프 회피는 처음 당해보셨죠?"
"거의. 그렇게 피할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
"그럴 만도 하죠."
"다 못하는 거에 포함시키는 거지?"
"네."
이로써 면전에 대놓고 못했다는 걸 인식시켜줬다는 복선은 회수한다.
그러나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다라면 이 사건을 들고 올 필요는 없었다.
아직까지 서론에 불과하다. 아빠는 아마도 본론으로 알고 있었겠다.
"게임을 못한다는 건 종합적인 거잖아요. '라티온'만 말하면, 상대가 어떤 직업인지 파악한 후에 그 직업이 쓸 수 있는 모든 스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면서 내 직업으로 파훼 가능한 스킬들이 있는지 없는지 연습하고 익혀야죠. 아무리 피지컬이 압도적으로 좋아서 임기응변에는 자신이 있다고 해도 사소한 지식의 차이가 쌓이고 쌓여서는 더 이상 운빨이란 요소는 사라지게 되죠. 피지컬도 결국에는 무지라는 불안감을 계속 안고 가다가는 미끄러질 수밖에 없죠."
"애매하게 알 때가 가장 힘들지. 딜캐를 다 외우는 게 쉬운 것도 아니지. 격겜들이 다 그런 류지 않나? 당연히 내가 원하는 커맨드를 저스트 프레임으로 입력하는 것과 더불어서 상식도 있어야지. 상식이라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고여서 그런가? 패치는 뭐 자주 안 하더라도 프레임이 바뀔 때마다 골치 아픈 영역이지. '라티온'도 똑같지 않나? PvP 밸패를 할 때마다 스킬들의 시전 시간이나 캐스팅이 달라지는 게 프레임 변경하고 뭐가 다르긴, 단위가 다르지."
"그러니까 물어볼게요."
"어떤 걸?"
"마지막으로 저와 붙었을 때 왜 막 지르면서 건성으로 하셨죠?"
"마지막?"
결국 말하고 만다. 부끄러울 수도 있는 질문이라 숨기고 있었다.
왜냐 하면, 나만 기억하고 아빠는 정작 기억 못하고 있을 수 있기 떄문이다. 지금도 물어보는 즉시 반응으로는 의식을 안 하고 있었던 게 드러난다.
나에게는 충격이었으나 미필적 고의의 가해자 입장에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꺼낸 의도는 해명이 아니라 사과일지도 모른다. '왜'라고 붙였지만 어떻게든 잘못을 했다는 사실관계 하나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겠다.
"마지막에, 내가 이상하게 했었나?"
"캐릭터가 허공을 허우적 되었죠."
"아, 그건가."
일단 겉으로는 기억이 난 듯하다. 정말로 기억이 난 것이면 의외인 상황이다.
"설마 백 덤블링을 말하는 거면 나름 의도적인 장치였는데 말이지."
"어떤 장치였는데요?"
"자세를 풀면 항상 앞무빙을 치니까 이런 기술도 맞겠거니 하면서 피하라고 쓴 거지. 그게, 너무 하찮게 느껴졌나? 후딜이 큰 편은 아니라서 피해도 주도권만 줄 뿐이지 무조건 내가 지는 싸움은 아니었을 텐데."
그 날의 일을 단편으로만 설명해서 그렇지 제대로 설명하면 이렇다.
늘 그렇듯 똑같은 캐릭으로 하는 나와 달리 아빠는 랜덤으로 고른 아무 캐릭터로 연승 중이었다. 난 애초에 이긴 적이 없었고, 벽에 계속 부딪치면서 도전하는 중이었다.
3선승인데, 이미 2세트를 내주어서 마지막 세트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물론 한 세트라도 먹은 적은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꼴사나웠던 백 덤블링이 3세트에 2번이나 튀어나온 것이다. 모션이나 기술 자체에 그렇게나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맞지 않을 걸 일부러 해주는 느낌이라서 내가 빈정 상한 것이었다.
다만, 그 기술 때문에 내가 완전히 유리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엇다. 전반적인 실력 격차에 있어서 자신감이 부족했던 터라 기상 시간을 이용해서 앞으로 달려나가 공격을 감행하겠다던 계획조차 없었다.
더군다나 서로 말을 안 하면서 무작정 붙는 대전이었기에 조언이나 이런 건 오가지도 않았다. 딱히 누가 입을 다물고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버릇이 있었다고요?"
"가르쳐달라고도 하지 않고, 알아서 공부하고 와서 나에게 도전하는 걸 보고 가상해서, 그런 이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있어서 몸소 깨닫게 해주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선의에서 시작된 가르침이 악의로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내가 그것 때문에 속상해서 다시는 대전을 안 한 것인지 몰랐지. 아니면, 내가 그러고 이유을 묻지 않은 게 잘못인가? 서로 오해가 있었던 거네."
그런 것으로 내 버릇이 고쳐졌는지는 모른다. 말마따나 그 이후로 난 그 영역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니까 더 이상의 발전도 없었다. 단지 나의 발전은 버릇을 넘어선 판을 읽는 능력으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정도에서 나는 성장이 멈춘 것이었다.
즉, 아빠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 맞아도 내가 맞지 않고 술수를 읽었다는 게 컸다는 얘기다. 내가 하찮은 초보였으면 저게 봐주는 행위라고 의심하지도 않았을 테다.
"지금까지 전 뭘 한 걸까요."
"오해를 한 거지."
맞는 말이라서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아무렴 좋지. 아빠의 아들이라고 해서 똑같은 종목을 잘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지. 뭐, 아빠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온전한 전성기의 컨디션이라고는 말 못하니까, 너랑 할 때는 커맨드 실수를 안 해도 래더에서는 자주 한단 말이지? 젊다는 이유로 성장력을 그렇다고 고이고 고인 곳인 격겜에 할애하게 만드는 건 내가 허용 못하니까, '라티온'이란 곳에서 행복한 게 더 좋지 않아? 마침 같이 하는 친구도 있는데, 그리고 성장이 끝났다고 할 생각은 아니지?"
끝은 아니다. 아닐 것이라고 믿는 마음가짐 자체가 상한선을 거부한다.
올라갈 것이며 정상이라 생각했던 나를 이긴 사람이 나왔으니 내가 넘어야 할 벽이 확고해졌다. 탈환을 당한 것이라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일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은 편이다. 영원한 2인자로 남을 수도 있더라도, 실제로 그런 역사도 있으니까.
"끝났다고 할 생각은 없죠."
"아빤 천천히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라볼 뿐이지."
"전 올라가야죠."
"재능이 확실히 있잖아?"
"그러니까요."
이 때만 해도 결승전에서 져서 2등할 거란 의심도 없었다. 뭐, 어차피 1등이나 2등이나 상금의 차이는 있어도 둘 다 딴 건 매한가지라 아쉬운 것은 없었다. 아쉽기보다는 열망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무려 '친구'라고 언급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역시 독립된 개체가 확실하다. 엄마는 눈치가 빨랐음에도 아빠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열지 않은 것 같다.
언젠가는, 말해야겠지만, 아직은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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