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러 가지 직업별 장인들을 초대했지만, 이번이 텐션이 최고조인 것 같네요. "베키스트"님은 어떠신가요?")
"좀 떨리네요."
("겉으로는 그렇게 떨지 않는 모습인데도요?")
"방송이 처음이다 보니 이렇네요."
실제 방송 경험이 없다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마권의 방송에 은근슬쩍 출연한 적이 있었다. 아예 게스트로 나온 게 아니고 그냥 레이드 던전에 들어갈 때 겸사겸사 끼어들어가 같이 돈 정도라서 방송을 탔다고 말하기에는 뭐하다.
그건 이런 것과 비슷하다. 뉴스 캐스터가 찍고 있는 중에 카메라가 잡고 있는 장면의 구석을 지나갔다고 방송 출연이라고 말하는 것.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렇군요. 초대에 응해주신 "베키스트"님을 배려해서 가볍게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언제부터 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올해 3월 말, 4월 초부터 시작했습니다."
("와, 저보다 늦게 하셨는데요? 생각보다 연륜이 있지는 않군요.")
"키우는 캐릭터는 이것뿐이라서 숙련도는 높죠."
("'라티온'이 다캐릭 육성을 권장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콘텐츠가 다캐릭을 육성하도록 강제하는 마당이라서 한 우물만 판다는 거, 진짜 쉽진 않습니다. 존경합니다.")
너무 나를 치켜세우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데, 120제 스킬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나도 궁금해서 스킬창을 열어서 확인한다. 퀵슬롯을 넘겨서 확인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몸이 좀 더 고생해버린다.
"15레벨이네요."
("사냥을 미친 듯이 하셨네요. 혹시 재산은 생길 때마다 강화에 탕진하나요?")
"아뇨. 어차피 새 장비를 맞춰야 할 거니까 보존하는 편이죠. 11강까지는 어떻게든 도전을 해보는데, 그 이상은 안 합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리고 기차에서 만났을 때부터 시청자분들이 묻고 싶어하는 게 있어요.")
어렴풋이 질문의 내용을 유추한다.
무슨 인신에 관한 질문은 아니겠다. 여자친구가 있나요, 등의 질문은 '라티온' 내에서 받을 이유는 없다. 애초에 현실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다. 그런 류의 삼천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의미심장했던 일이 있다면, "죽은수프"가 내 캐릭터 정보에서 "관념 망각의 억제"를 봤다는 것 정도다.
아무래도 그게 아닐까.
("혹시 "무호흡증세" 칭호를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닐지 의심된다고 하시던데, 맞습니까?")
이쯤 와서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칭호를 안 달고 있다지만, 어차피 업적 달성은 만천하에 공개가 된 상태다. 다름 아니라 캐릭터 정보를 서칭하는 사이트에서 어떤 업적을 깼는지 볼 수가 있다.
다만, 그동안 내가 "무호흡증세" 업적을 땄다는 걸 사람들이 몰랐던 건 그만큼 존재감 없이 플레이했기 때문이다. '어떤 업적을 땄는지'를 주제로 검색을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 특히나 랭커도 아닌 캐릭터 중에서 "무호흡증세"를 땄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건 어지간히 인내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무기부터 들통났으니 검색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실토한다.
"네."
("몇 트인지는 기억 나시나요?")
여기까지는 내가 속일 의향이 있다. 어차피 말만 하면 모를 일이다. 내가 아는 한 업적을 언제 달성했는지는 알 수가 없기 떄문이다.
"모르겠네요."
("그럼, 본분에 맞게 대전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런데, PvP 이야기라고 하면 도대체 무슨 질문을 던질까.
직업 상성에 관해서? 솔직히 할 말은 없다. 스킬 구성만 적절히 가져가면 힘든 직업이라고 해봤자 "암살자" 정도다. 어떻게 해도 [은신]이라는 스킬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에서 순간 판단이 중요한 PvP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어서 누구든 어려워 하는 상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 "암살자"가 등장한 적이 없다는 게 신기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불마사"의 입지는 어느 정도라고 봅니까?")
그것에 대한 대답은 준비해 둔 게 있다. 인터뷰를 가정하고 준비한 것은 아니다만, 평소에 견해가 있었다.
"한 때 1티어에 올라가 있던 직업이라서 현재까지도 약세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사실 "불마사"가 가진 장점은 뚜렷한 강점보다는 약점이 적다는 게 크죠. 무난하다, 그 정도죠."
("적어도 논란은 되지 않을 답변이라 다행입니다.")
"약캐는 아니죠."
("네, 약캐는 아니죠.")
다름이 아니라 [버닝 불릿]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인에게 미움받는 직업이다. 그렇게 따지면 순수 "마법사"도 가지고 있는 공용 스킬인데, 억울하진 않다. 당연한 처사다.
작은 경직에 타점이 좁고 사거리가 굉장히 짧다는 단점만 빼면 [버닝 불릿]은 유틸리티가 좋은 스킬이라 그렇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필수로 들고 가야 할 정도로 [버닝 불릿]은 유용한 스킬이다.
역사로 따지고 보면 [버닝 불릿]이란 스킬은 너프만 받아왔다. 가볍게 쿨타임이 2초 늘어나고, 그 다음에는 사거리가 20cm 저 짧아지고, 캐스팅 시간이 0.1초 더 늘어나나 아직도 스킬 자체는 1티어에서 머물고 있다.
장전만 하면 즉발이라는 메리트는 매우 크다.
"다른 게 아니라 [버닝 불릿]이 죽지 안핬으니까 가능한 일이죠."
("만든 사람 대가리를 때려 죽이고 싶은 스킬이죠.")
"아마 그 스킬만 티어가 내려가면 그 때는 "불마사"가 힘들 수도 있다고 봐요."
("데미지가 전체적으로 낮아진 파장이 오겠죠.")
"정답입니다."
인터뷰라고 하지만 편안하다.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수평적으로 PvP 전문가들이 합작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불편하지 않다. 단지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있는대로 끝까지 말하고자 한다.
"그, 원콤 사태도 질문하실 거죠?"
("아, 그럼요. 그거 희대의 사건이었죠. 저는 출전하지 않아서 라이브로 보지도 않았었는데, 영상이 유명해졌죠.")
PvP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기라서 칼 vs 칼이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상당히 높게 측정된 스킬 계수들이라서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대를 잘못 맞으면 크게 불리해지는 때였다.
그래도 스킬 개수 제한이 있어서 한 콤보에 죽이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그걸 생방송에서 실현해낸 탓에 아무래도 이런 정직한 시대가 온 게 아닌가 마음 한 편으로 자숙하고 있다.
("그 떄도 이미 인터뷰를 했었겠지만, 노린 건 아니었죠?")
"죽일 줄은 몰랐죠. [염제]와 [정화]가 때리면 세다는 건 알고 있어도 원콤은 연습 때에도 나오지 않았던 일이라."
("그리고 막 지른 거였죠?")
"네, 막 지른 거였죠."
[정화]의 범위는 좁다. 안 그래도 좁아서 딱히 데미지 너프 외에는 아무런 너프를 받지 않았다. "아포라크테"가 움직였으면 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든다. 한 판에 한 번이라는 제약을 가진 120제 스킬 치고는 여전히 아쉬운 스킬이다. 그래도 간혹 이용하는 것은 캐스팅 중 사운드가 미미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코너에서 속임수를 쓸 수도 있어서 그렇다. 실제로 예선전에서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다.
이게 스킬이다. 한 쪽에서 강점이라면 다른 한 쪽에서는 빈틈이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여전히 [버닝 불릿]의 사기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위 뇌절도 아니다.
("그 때와 지금이랑 어느 시절이 그립다고 느끼나요?")
"진지한 토론은 아니죠?"
("생각만 물어보는 거죠.")
"고르라면, 전자를 고르겠습니다."
("현재는 호흡이 너무 길어서?")
"한 판에 느낄 수 있는 피로도가 배로 늘었죠. 아, 그래도 이속 버프는 있는 채로 옛날로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그렇다고 HP 차이가 많이 난다고 더 빠르게 내진 말고 상한선이 높지 않게 한 채로 하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전쟁 유희'란 콘텐츠는 신생아라고 생각한다. 여름 방학에 등장했을 때부터 소소한 변화가 아니라 과도한 탈바꿈이 이루어졌다.
다들 각자 원하는 방향성이 있을 것이다. 현재로는 콤보를 여러 번 넣어야 적이 빈사상태가 될까말까 하는 상황인데, 이는 격투게임에서 흔히 보는 호흡은 아니다. 차라리 초창기가 진정 격투게임과 비슷하다. 날아오는 짤짤이를 맞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판정을 주진 않지만 한 번 콤보를 맞는다면 다음 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하는 게 흔히 아는 철x에서 볼 수 있는 호흡이다.
("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게 맞네요. 그럼 다른 격겜도 해보셨나요?")
"해본 적은 있어도 '라티온'만큼은 아니죠."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 혹시 이런 식으로 불리는 걸 알고 있으신가요?")
"어떻게요?"
(""벡신"이라고요.")
"backist"의 'back'만 떼고, 뒤에는 단어 그대로 신이라는 단어를 합성해서 만든 신조어인 모양이다.
해체하면 그렇고, 발음 그대로 "벡신"을 듣자 하니 '백신'하고도 유사하다. 말장난으로서의 가치도 있어 썩 나쁘지 않은 별명이다.
하지만, 들은 적은 없다. "죽은수프" 방송에서 한정인가. 어디 "로다란"에서 레이드를 갈 때도 음성으로 누가 말을 한 적이 없다.
같은 게임을 함에도 각자 다른 세계를 사는 듯하다.
("모르셨군요?")
"흔한 호칭은 아닌 것 같은데요?"
("유명하다는 감각이 덜 하시죠?")
"그렇, 죠."
내가 인지도를 신경 쓸 만큼 연예인병에 걸려 있지 않다고 자부하는데, 반대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내가 모르는 경우는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히 외부에서 오는 연락을 원천 차단하고 사는 게임 인생이라 노이즈와는 인연이 없는 듯하다.
("커뮤니티도 연이 없으신 편이고, 길드도 없으시고,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는 게 맞으시죠?")
"네."
("그러면, "근원"을 잡으실 때 그냥 즉흥적으로 공격대랑 합류해서 싸운 건가요?")
"네, 그렇죠."
("지금 보아하니 친화력도 대단하신데요?")
"그런가요?"
("방송을 보고 있지 않으셔서 모르실 텐데요, 저희 시청자들이(웃음) 꽤 호의를 보내고 있어요.")
"그 정도이진 않을 텐데요."
어디가 그럴까. 순 거짓말로 느껴진다.
면접을 보는 것 마냥 딱딱하게 대답하는 구석을 보고 호의를 가질 일이 있을까.
사교성과 친화력의 차이라고 하면, 사교성은 사귀는 힘을 말할 테고 친화력은 적응의 영역일 것이다. 개성이 없는 편이 친화력으로는 만능일 수 있어도 사교성과는 별개겠다.
못 들은 셈 친다.
("이번 새로운 콘텐츠가 나왔는데, 같이 파티를 맺고 싶다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어차피 파티 초대는 거부하신 상태잖아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운만 좋으면 함께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래도 날먹은 사절이죠?")
"그런 템으로 파티에 들어오면 가지도 않을 겁니다."
("(웃음)알겠습니닼. 다음 질문!")
[19:36]
생각보다 길어서 각오를 고친다. 정신을 잃지 않도록 집중도를 조절한다.
("개인적으로 묻는 겁니다. 저와의 경기는 어땠나요?")
대놓고 말한다.
"힘들었죠."
("저도 힘들었죠.")
"피지컬 차이였다고 생각해요. 꼼꼼하게 한다고 해도 반드시 빈틈을 찌르더라고요. 설마 질리겠다는 배제성 플레이가 패인이었을 겁니다."
("저도 될 줄은 몰랐죠. 리스크는 큰데 시도하는 건 확률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억지 연계라서 마음이 졸였죠.")
"대담한 플레이어라고 느꼈죠."
(""베키스트"님은 철벽입니다.")
"뭐, 감사합니다."
성향의 차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빠의 진화 단계가 "죽은수프"일 것이다. 기본적인 상식만 늘린다면 어떤 플레이가 가능하고 불가능하고 알 수 있기 때문에 내 판단으로는 그렇다.
그런 걸 "죽은수프" 본인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어··· 제보를 받은 거라서 확인 차 묻는 질문입니다.")
"네."
(""엘.유.씨.에이.알.아이.오"라는 유저와는 어떤 관계인지 자주 파티를 맺는다고 해서, 무슨 사인가요?")
잠시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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