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보정/크리스마스(1)
"폭권사"가 되기부터 육성 과정까지 "루카"는 개입을 한 적이 없다. 온라인으로라도 만난 적이 없는 아빠라서 초면에 어색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마스 때는 아바타뿐만이 아니라 실제 모습도 봐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미리 알선하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셋 다 남캐네?")
"뭐, 그렇죠."
나와 아빠는 캐릭터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반면에 "루카"는 캐릭터 컨셉이 확실하니까 남성일 수밖에 없다. 취향이 여성 캐릭터였으면 달랐을 수도 있겠다.
또한, 이 중에서 가장 볼품이 없는 건 역시 아빠 쪽이다. 치장용 장비를 사지 않은 순수한 플레이어로서 세팅에 필요했던 장비를 두르고 있으니 어느 누가 봐도 뉴비에 가까운 외형이다. 경력에 비해서는 PvE는 뉴비가 맞긴 하다. 다만, 경험 면에서 그렇지 컨트롤 자체는 수준급이다.
("그게 이상형이니?")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에요.")
("최애캐지?")
("네.")
("적어도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김새네.")
("네.")
("서브컬쳐하고 현실은 괴리감이 꽤 있지?")
("네.")
아빠는 그렇게 사랑꾼이 아니라 딱히 심문을 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은근히 신경 쓰는 모양이다.
-라고 말하려니,
("레이드 갈 거지?")
"그래야죠. 조력자가 한 명이 더 있으니 훨씬 수월하죠."
("보다 빠를 거예요.")
("잘 부탁해.")
"로다란"을 한 바퀴 도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루카"가 완전히 종결이 아니라도 내가 조금 욕심을 내어서 "근원"의 무기를 얻어서 그렇지 엄연히 "루카"도 고인물에 속하는 플레이어다. 던전을 진행하는 인원이 2명에서 2명으로 늘어난 만큼 속도도 2배인 게 당연하다.
앞으로 나올 내용은 레이드 따위를 클리어하는 과정을 그린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터진 잡담에 관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단마사"거리는 게 "단속성마법사"를 뜻하는 거지?")
"네."
("찾아보고 있는데 신기한 컨셉이란 생각이 들거든.")
필요한 움직임만 보이고 남은 신경을 서핑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는 듯하다. 흔한 디펜스 게임처럼 "그랜드캐논"에게 오는 적들도 함께 막아주고 있어서 피할 요령이 없어도 되긴 하다.
("그, 둘 다 "물속성", "불속성단마사"인 거지?")
"네."
("배경이 어떻게 되는 거지?")
"따로 마법 서적을 통해서 마력을 쓰는 법을 배운 게 아니라 정령왕과의 계약을 통해서 단일 속성으로 한 마법을 구사하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죠."
("왕이란 작자가 그렇게 계약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거야?")
"간단히 구두 계약으로 되는가 보죠."
("참 마법사 되기 편한 세상이네.")
"그런 세상이긴 하죠. 어느 직업이든 누가 하고 싶다고 하면 시켜주는 게 전직관이잖아요."
("딱 봐도 위험한 일인데 그냥 도장 찍고 통과시켜주잖아?")
"그렇죠."
'라티온'만이 아니라도 어느 전직 교관이든 그렇다.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다는 식의 설정이 있다면 신빙성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라티온'처럼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출발하는 모험에서 전직이란 그다지 품위 있진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직업이 여겨진다.
[정화] 스킬을 얻는 데에 필수로 거쳤던 120레벨 퀘스트에서 "정령왕(불)"이 자신의 숲을 나에게 떠넘기고 간 연출신을 말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이걸 말했는지 모르는데 수많은 "OCM(불)"이 이 장면을 본다면 왕만 몇 명이 있는 건지 의식하면 웃을 것이다.
하물며 왕이 되었다고 해서 그 이후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 숲도 들어가지 않고 있다.
정말 가끔씩 들어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길다람쥐"가 있는 건 여전하다. 소나무처럼 그 자리를 세월이 흘러도 지키고 있는 게 신기하다.
("키운 캐릭이 "폭권사"만이라서 그러는데, 시작은 가벼운데 끝은 무겁게 끝나더라.")
"장황하게 스케일이 커지는 연출이 종종 있죠."
("[차원 추월] 습득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진 않지?")
"안 봤죠."
("생각보다 위험한 기술이더라? 속도의 저편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남의 건틀릿에 오버 히트를 걸어서 작동시킨다는 미치광이 스토리라니까? 그게 잘 되어서 걸작이라도 붙여진 거더라고. 판타지엔 싸이코패스가 많은 게 역시 정설인가 보다.")
그런가 하면 "루카"의 [제로노바]의 스토리도 궁금하다.
""루카"?"
("왜?")
"[제로노바]는 어떻게 얻게 되는 거야?"
(""단마사"들의 스토리는 비슷할 거야. 똑같이 왕위 계승이라면서 비법을 전달해주고 "정령왕"이 떠나는 게 똑같은 양상이라고 알고 있어. 그런데, 그 "정령왕"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직까지 밝혀진 게 없잖아?")
"그렇지?"
이렇게 들으니 "OCM"들의 120레벨 스킬의 퍼포먼스가 비슷하다는 걸 떠올린다. 네 가지 스킬 모두 시전자 중심으로 해서 범위 공격을 실시하는 게 공통된 틀이다.
잘 만들었다고 말할 순 있어도, 대충 기획했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근원"도 갈 거야?")
"가실래요?"
이건 내 관활이 아니다.
("대규모 콘텐츠는 날먹하는 것 같아서 가긴 부담스럽지. 어차피 이스터 에그만 다시 잠적탈 건데 고혈을 빨아먹고 갈 수는 없겠지?")
"역시 그런가요."
("하지만,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면 가보는 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스펙을 얼마나 요구하는지 계산이 끝난 건 아니니까요."
여기서 "루카"가 묻는다.
("다음 것까지 찾았어?")
("그렇단다?")
아빠가 대답함으로써 대화는 종료된다.
이틀이 남은 시점에서 웬만한 요소들을 총동원해서 준비 중이긴 해도 운이라는 요소 때문에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게, 파티라고 적혀 있는 것 자체가 즐기려는 것임에도 너무 준비 과정이 기말고사보다 분주한 것은 확고하다. 그만큼 진심이란 증거이기도 하다.
대망의 날이다.
장소는 마권의 집.
각자 모이는 방법은 각자가 정해 놓았다. 한꺼번에 오지는 않는다.
우선 첫 방문자는 나와 아빠다.
"왔나? 그리고 어서 오시죠."
현관문을 연 마권은 재빨리 뒤로 빠져서 들어올 공간을 마련한다. 그렇게 현관이 좁아서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닌데 관례가 과잉이다.
"마권아, 오랜만이구나."
"바쁜 일은 가셨다고 들었어요."
"학교가 다르니까 우리 집에 오는 일은 없구나."
"워낙 그렇죠. 그리고 스트리머 건도 있고요."
"맞다, 그랬지."
오래 사귄 과거는 어디 안 가는 것 같다. 특히나 매일 만난 것도 아니라 가끔씩 만나는 인연이 더욱 질긴 것 같다. 간간이 연락하는 나보다 아빠가 마권에게 애탔던 것 같다.
"설치는 어디로 할까요?"
"정해놓은 데는 없는 거니?"
"다섯 구역이 있는데요, 선착순으로 할까요? 그러는 편이 형평성이 있어 보이니."
"어디로든 똑같은 기기를 쓰고 플레이할 건데, 아무 데나 하면 되지."
"너는?"
두 말이 필요할까.
"똑같아."
"정말 아무 데나 설치하면 되죠?"
"우리가 설치해야 집주인으로서의 권리 아니겠니?"
"초대를 보낸 입장에서 이 정도는 해야죠. 편히 기다리고 계세요."
안쪽으로 들어가자 자택의 외관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축제 분위기가 곳곳에 퍼져 있다는 걸 느낀다. 정확히 말하면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주는 요소는 없다. 크리스마스 트리나 장식들은 깔금히 배제되어 있지만, 대신에 분위기를 잡아주는 무드 등이 대낮부터 준비되어 있고 소파들은 발코니로 치워져 있고 대신에 7명이 거뜬히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탁상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트리나 장식은 없다고 해도 부엌 한켠에 케이크라 의심되는 상자 하나가 놓인 게 보인다.
"왔습니까, 형님."
"온다고 하면 오지."
아, 갑작스레 추가 설명해야 할 설정이 있는데, 아빠와 마권의 아버지는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절친 정도로 우선 순위가 서로 1위인 사이는 아니었다고 해도 지금도 알아보면서 지낼 정도면 어느 정도 면식이 있었겠지. 결국 예상이다. 그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아 여전히 모르는 상태다.
"요즘 얼마 안 하는 파티에 마침 초대되는 게 형님이라 다행입니다."
"내가 와서 다행인 것보다 파티가 열린 것만 해도 기분이 좋잖아?"
"에이~ 형님도 포함이죠~ 마실 거 드릴까요?"
"나중에 파티가 제대로 시작했을 때."
딩동-
"다음 방문객이군요."
누구인지 인터폰의 화면과 가깝지는 않아 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2명이 보인다면 "여운하"와 "정열랍스터" 쪽이다.
"김가윤 네입니다."
"저는 지훈이라고 합니다."
"성은?"
"성이 지 자고, 이름이 훈입니다."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도 걸릴 줄 알았다고 예상했다. 이름이 '지훈'인 경우가 허다하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
"그럼 훈인가?"
"공교롭게도 그런 이름입니다."
그리고 저런 이름이면, 솔직히 웃기다. 전통의 비열함의 상징을 떠올리는 이름이라서 웬만해서 밝히는 것도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위키에 적혀 있는 스트리머 정보란에서 "정열랍스터"는 방송인이었던 기간이 없었던 게 아닌데도 실명에 대한 부분이 없다.
"저희 '칼레이도'는 어디에 두면 되나요?"
"아무 데나 놓으면 우리가 알아서 하니까 편안히 있어라."
"···감사합니다."
생각 이상의 친절함에 "여운하"는 말문이 막힌 것 같다. 그리고 태도가 일관성이 있다. 아들이나 아버지나 사고방식이 똑같다.
"이런 으리으리한 집이 있다니."
일단 아빠는 아니고, "정열랍스터"를 제외하고 친근한 나에게 감상을 전하는 "여운하"다.
"으리으리해도 오늘처럼 화려했던 적은 잘 없었죠."
"그건 아쉽겠네."
"한이 풀려서 신이 나신 거예요."
"정작 게임을 하는 건 우린데도?"
"그래도 파티는 하잖아요."
"뭐랄까, 오기 전까지 이스터 에그에 도전한다고 생각해서 긴장을 해서 그런가, 파티를 한다는 느낌이 없었네."
"긴장하진 마세요."
"남들 하는 것이 아니니까 긴장을 안 할 수 없지. 녹화도 할 거잖아? 좀 떨리네."
방송인이라도 이 정도 무게감은 사람 나름인 것 같다. 나야 영상을 찍는다는 일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진 않아 무리가 없다.
"잘못해도 편집의 힘이 있으면 끄덕없지."
"넌 닥치고. 편집을 하면 의미가 퇴색되잖아."
"안 해. 그러니까 열심히 하라고?"
이 때 아빠가 "여운하"와 "정열랍스터"를 꾀어낸다.
"꽁냥꽁냥을 잘하는 한 쌍이네."
"저희 커플 아니거든요."
기어코 "여운하"가 반응한다.
"한 쌍, 커플이 아니고 어울린다고, 하하."
첫 인상부터 강하게 나간 아빠는 담판을 그려낸다. 제대로 미끼를 덥썩 문 "여운하"는 자연스레 자기소개 형식을 취하면서 설득하려는 스탠스를 취한다. 긴장감이 도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여운하"만 긴장 상태에서 흥분이 고조되어 말이 많았다. 이를 관전하는 듯한 태도의 나와 "정열랍스터"는 "루카"가 올 때까지 흥겹게 지켜보았다.
딩동-
마지막 손님이다.
"제가 나가볼게요."
"그러겠니?"
아무래도 역시 편한 쪽은 나일 테니까.
그리고 인터폰으로 보면서 내가 나가는 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어쩌면 놀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루카"의 얼굴을 쳐다, 보는 게 아니라 사선으로 오른쪽 밑을 쳐다본다.
"이 짐을 나르는 게 먼저겠지."
"힘들었어···."
투웅-
일반적으로 '칼레이도'가 포장된 박스만 들고 온 우리와 다르다.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러는 게 나와 "루카" 사이에서는 당연한 약속이긴 했다.
속이 가득 찬 캐리어를 파티에 끌고 오는 일은 상식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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