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그래서, 예선전은 어떻게 되었나?
("조 2위로 4강에 안착했죠.")
"최소 4등이네."
("재수 없는 소린 하지 마세요?")
"한 경기 차이라도 조 2위면 위태로운 거 아니야?"
("음, 그렇죠?")
"그러니까."
통과를 해서 다행이긴 하다. 광탈이 아닌 게 어딘가. 대신 나머지 2팀이 그 불명예를 얻게 되었단 건데, 4강이면 잘한 거다, 라고 해야 하나?
("아직 정돈된 것 같지 않아요. 갓 만든 팀이니까 팀워크가 부족한 것도 있어요.")
"어느 부분에서?"
("라인 컨트롤이나 아군 스펠 체크가 미흡하다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나요?")
"그 이상이 있으면 못 알아듣겠네."
라인 컨트롤이라 하면 미니언이 뭉치는 지점을 형성하는 것 정도겠고, 아군 스펠 체크는 팀게임인데 의외로 안 이루어지는 건가. 이게 적군 스펠 체크는 하고 있는데 아군을 못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말하는 건지.
"아무튼 수고했어."
("언니랑 돌아가고 있나요?")
"그렇지?"
바로 옆에 있다. 여동생의 말을 못 들어서 그렇지 들었다면 반응했을 테다.
("바꿔줄 수 있나요?")
"물론."
즉시 폰을 건넨다. 당연히 말도 없이 건네서 무슨 일인지 의아해 하는 "루카".
"할 말 있다는데?"
그러자 받고서 통화를 이어나간다.
"응. 알겠어. 내일은 같이 갈래? 그러면···."
무슨 이야기가 이렇게 빨리 오가나. 그보다···
왜 나를 쳐다 보지?
"경기를 보러 간다면 갈 거야?"
이걸 묻고 싶었구나.
""남작"은 일요일에 잡으니 충분히 시간은 되잖아?"
"쇼케이스가 다음 주지."
"맞아."
"가자."
"그러자."
보러 간다고 리뷰 영상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다. 태평하게 보러가도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궁금하기도 했다. 늘 말만 들었던 고등학생 소규모 리그가 어떻게 치뤄지는지 보고 싶었다.
인지도는 있어도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정도의 인지도는 아니다. 오히려 참가하고픈 사람이 잘 아는 리그이기에 간단히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면서 심지어 시청료도 무료다. 어차피 스폰이나 금전을 바래서 여는 대회가 아닌 주기적으로 인재를 찾기 위한 대회이므로 상금이 그리 높지도 않다.
표현하면 프로의 밑바닥이다. 제일 밑바닥. 경력을 쌓기 위한 도전이면서, 그러한 의도로 만들어진 대회다. 딱히 관객이 없어도 좋다. 따로 중계가 없어도 좋다. 해설자가 없어도 좋다.
"체육관에 이런 시설이 있구나."
"알고는 있었어도 처음 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체육관 일부를 마개조해서 경기용 PC가 부스 2개에 5개씩, 관전용 PC와 스크린이 가운데에 놓여 있다. 세팅은 관리자께서 다 하신다. 승패 기록도 마찬가지로.
따라서 관람석은 많지 않다. 해봤자 30명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지인만 오라고 만들어놓은 정도다.
미리 올 필요도 없다. 행사가 시작하는 시간이 오후 1시부터라고 했으니 1시에 들어와도 줄을 서는 것도 아니라서 가벼이 자리에 안착할 수 있다. 몇 명이 왔는데 나이가 지긋이 많으신 분들도 있고 또래들도 있는 모양이다. 각자 연은 없는지 그룹끼리 띄엄띄엄 앉는다. 우리도 그렇다.
여동생 팀들을 비롯해서 모든 선수들은 한 2시간 전부터 리허설 및 전략을 준비한다고 보진 못했다. 각자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을 게 뻔하지만 우리가 들어가는 것도 이상할 노릇이겠다. 그들도 어떻게든 이길 채비를 하고 있을 테니 가만히 기다린다.
그런데, 하필 2번째 경기다. 여동생이 있는 팀이 나오지 않는다. 4강은 3판 2선으로 진행되고, ㄹ이란 게임 특성상 평균 30분을 잡아먹으니 1~2시간이 지나야 여동생이 나오는 경기가 나오겠다.
그 사이에 잠시 한숨을 돌리러 밖에 나갈 수도 있으나, 체육관 주변에 뭐가 있겠나. 그런 정보는 알려줘야지.
"잠시 나갔다 올까?"
"조금 보는 눈을 만들고 싶어서."
"으음, 본다고 해서 그렇게 될까? ㄹ을 해봤어?"
"세··· 판?"
"몇 십판을 해도 안 돼."
어쩌면 몇 백판도 똑같을지 모르겠다.
사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경험이 중요하긴 해도 경험만 중요할 수는 없다. 경험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몇 천판도 똑같을 거다.
궁극적으로 지식이 문제다. 경험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지식이 있어도 사실 기본적으로 전반에 깔려 있는 지식이 없으면 활용을 못한다. 게임이라는 게 순전히 감각으로만 일어나는 게 실력의 영역이라 하면 큰 착각이다. 전에 격투게임 프레임 얘기도 이왕 비슷하다.
우리야 ㄹ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을 거니까 잘은 모른다. 어쨌든 아카데미도 많고 하니 규칙이란 게 있지 않을까. 사실 그런 건 시청하는 입장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 때만큼은 마음 놓고 즐겨도 된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볼 만해?"
"조금 균형이 안 맞는 감이 있는데."
"전부 실력이 들쭉날쭉하니까."
그런 점에서 싸움의 형국은 진흙탕 싸움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들이라고 온전히 정돈된 지식을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기도 하고, 결국 뒷받침해야 하는 실력들이 다르다 보니 킬과 데스가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어느 쪽이 유리한지 알 수가 없다. 갈수록 옵저버도 혼란해 하는 듯한 모습이다. 온라인 쇼처럼 리플레이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지나가면 지나간 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참 어지럽다.
항상 이런 맛에 다른 게임을 본다. '라티온' 영상을 보다 보면 내 상식과 겹쳐서 보게 되어 피곤한 감이 있다. 이건 안 그래도 된다.
즐기는 게임의 영상보다 다른 게임의 영상이 즐거운 이유는 아마 그거겠지.
"오."
"오."
번쩍번쩍하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슈퍼 세이브? 혼자서 살아갔으니 슈퍼 플레이려나. 나름대로 공방이 어떤지 보인다. 서로 저런 기술이 있는 걸 알고서 써서 따라올 걸 예상해서 동시에 쓴 거겠다. 말로는 이렇게 하는데 실제로는 어렵겠다. 대회에 나온 이상 자신 있는 실력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정말 실력이 용호쌍박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게임은 무조건 승패가 갈리게 되어 있다.
"이겼다."
"진 거지?"
"파란쪽을 응원했어?"
"왼쪽이라서?"
굳이 내가 레드 진영을 골랐던 이유는 빨간 무언가가 광역으로 깔리는 스킬이 있어서 그랬다. 여동생이 나오는 판이 아니기에 어느 쪽을 응원해도 되지 않나. 이러나저러나 이 중에서 여동생과 겨루게 될 상대가 정해진다는 건데(결승전이든 3위 결정전이든) 의미가 있나.
다행히 2:0으로 첫 번째 경기가 빠르게 마무리되고 다음은 여동생네 팀이 등장한다. 부스 안에서 센터를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포지션별로 자리가 결정되니까 말이다. 미드였었지, 아마.
밴픽이 시작된다.
"봐도 잘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알 수 있는 방법은 부스 안을 보는 거지만."
"잘 되고 있는 게 맞겠지?"
웃고 있긴 하다.
잘 되어서 웃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위기가 즐거운 것도 있겠지. 여동생에게는 특히나 그렇겠다. 어떻게 이 대회가 안 좋은 결말로 가더라도 시도를 한다는 의의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기회가 이번뿐만이 아니다. 나름 서핑을 하다가 알게 된 건데, 이런 대회는 분기 초마다 한다고 한다. 즉 여름도 있다. 게다가 이것 말고도 PC방 대회도 따로 있을 테고, 기회는 사회에 널려 있다. 뭐, 지라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웃는 일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라인전에서 2명에게 얻어맞아 죽을 뻔했을 때 살긴 했어도 별로 마땅치 않은 얼굴이었고, 뒤이어 시간이 지나서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도 살았지만 표정은 살짝 일그러졌다. 상당히 감정이 겉으로 잘 드러나는 여동생이다. 그리고 심히 감정적이다.
그렇다 보니 흐름이 잘 안 보여도 아는 부분이 생긴다. 옵저버가 각 팀의 시야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서로 암흑인 상태에서 여동생의 챔피언이 들어간다. 순간 구도로는 1:5. 한순간 5명과 눈을 마주치는데, 위기 의식이 없다. 암살자 포지션인 건 알겠는데, 너무 대범해서 나는 놀란다. 아니, 모두가 놀란다. 사전에 어디서부터 정보를 얻었는가, 아니면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건가. 멀리서 암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보고 난 후에 빠르게 반응해서 한 명을 죽인다. 그 이후에 바로 열린 한타는 대승을 거둔다.
그러자마자 해맑게 웃게 된다. 이전에 받은 스트레스를 되갚은 사레라고 볼 수 있다.
1세트는 여동생네 팀이 가져가고, 2세트도 일방적으로 그렇게 된다. 체급이란 게 있긴 한가 보다. 1세트에서는 종종 견제를 받아서 풀리지 못한 감이 있었지만 억제를 받지 않으니 그만큼 힘이 나오는 듯하다.
당장 이런 힘을 봤는데, 도대체 이 팀을 이긴 녀석들은 얼마나 강하기에- 라고 생각하려니 1세트에 나왔던 두 팀 중의 하나였지. 그 중 같은 조에 있었던 1위가 그만큼 강하다는 건데, 잘은 모르겠다. 대진표를 본다고 누가 조 1위인지 보여주는 게 아니라서 아무래도 결승에 간 놈이 그러지 않을까.
4강이 끝나고 결승을 앞둔 상태에서 쉬는 시간을 가진다. 바로 하면 당연히 2번째 경기를 한 팀이 불리하니까 전략을 구사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쉬는 것도 포함이다.
"대기실에 가볼까?"
"민폐지 않을까?"
"그런가."
위잉-
우리 심정을 아는지 여동생에게서 연락이 온다.
[대기실에 올 수 있나요?]
허락을 받으면 말이 달라진다.
대기실로 가는 약도까지 톡으로 받았으나 정작 대기실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거리가 떨어진 곳에 여동생이 마중 나와 있다. 오히려 약도를 주었으니까 우리의 경로를 제한해 둔 것 같다.
"솔직히 즐겜 했어요."
"이기는 게임이어야지."
"한 번 이겼으니까 할 만하더라고요."
"캐리였지?"
"캐리였죠. 그보다 밴픽에서 캐리를 해야 하도록 강요를 했기 때문에."
"했다?"
"그런 픽을 가자고 말했거든요."
역시 그냥 성사되는 건 없다. 모든 건 의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의도에 걸맞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거고.
"1세트 멋졌어."
"1대5 멋졌지?"
"그건 운 맞지?"
"그건 운이지!"
운이면 결국 피지컬 싸움이다. 챔피언 특성 차이라는 것이 있어도 마주친 순간 어떤 반격이 들어올지 모르는 건데, 도박을 잘하는 건가.
그리고 선언을 한다.
"아마 결승전도 무난하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바로 반론을 한다.
"너희들을 이긴 팀 아니야?"
"네? 그 팀은 이미 떨어졌어요."
아, 진 쪽이 3위 결정전에 간 거였나. 그럼 더 센 팀을 만난- 것도 아니고 다른 조의 1위와 붙어서 이긴 건데,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실력이란 것에 절대 수치가 없다고 하지만.
"그럼 조 2위끼리 붙는 거네."
"네? 아니에요."
"왜?"
"왜요?"
"경우의 수가 안 되잖아."
"음? 아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답을 말해드리자면, 8강에서 저흴 이긴 팀이 떨어진 거예요."
진짜 ㄹ이란 게임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팀이 왜 떨어졌대."
"요약하면 제가 던졌어요."
"어··· 그러냐."
"과거를 잊었기에 패승승으로 조 2위가 되었죠."
"최소 2승 1패 동점이잖아?"
"재경기는 안 하고 승리한 경기 평균 시간으로 2위가 되었거든요."
그런 룰을 몰랐다. 하여튼 잘 되면 그만이지 않을까.
위잉-
여동생은 앞에 있으니 아니고, 이번 톡의 정체는 과연 누굴까.
[신예린/긴급 소집에 응할 수 있냐]
참석 여부를 물어보면 그게 긴급이냐.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