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연대기 - 대공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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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dang
작품등록일 :
2020.08.2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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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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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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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슬픈 코넬리아 (11)

DUMMY

‘다시 장미가 피는 계절이 오면 당신이 생각날 거예요.’


‘내가 꼭 다시 돌아와서 그대를 지켜주겠소.’


수천 번도 더 꿈꿨던 목소리였다. 힘들고 절망스러울 때면 그날을 떠올렸다. 엄마와 그 사람을 기억하면 그제야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쁜 사람. 동화처럼 행복하게 될 거라면서... 이게 무슨 동화 같은 결말이야? 주인공이 따돌림 당하고 고생하다가 결국 겁탈당하고 죽는 동화가 어디 있어?’


그래도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앨리스님은 동화처럼 행복하게 되실 겁니다.’


‘거짓말’


“진짭니다. 앨리스님.”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이 아니라 귀로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 죽을 때가 되니 헛것이 들리는 모양이다. 점점 코넬리아의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손과 발, 그리고 머리로 감각이 느껴졌다. 겨우 눈을 뜨려는데, 손을 누가 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크고 단단하고 억센 손이었지만, 따뜻했다. 그 손으로 코넬리아의 손을 꼭 감싸고 있었다. 눈을 뜨니 주변이 온통 뿌옇다. 초점이 돌아오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덩치의 청년이 자신의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아악!”


너무 놀라 비명이 나왔다. 청년은 뿌리치려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작게 속삭였다.


“앨리스님, 엘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 소리에 너무 놀라 코넬리아의 몸이 굳어 버렸다.


“엘님?”


앨런이 손바닥으로 코 위쪽을 가렸다.


“앨리스님, 엘입니다. 로젠하임 수비 탑의 옥상을 기억하시나요?”


꿈인 것 같았다. 제발 깨지 않았으면 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코넬리아는 앨런의 가슴에 안겼다.


“엘님, 이건 꿈이지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꿈에 오신 거지요?”


“저도 이게 꿈같습니다. 앨리스님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두 연인은 오월 밤의 짧은 만남 이후 십여 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만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엘님이세요?”


“하하, 앨리스님을 안고 수비 탑 옥상으로 올라가던 엘이 맞습니다.”


둘은 떨어졌다가 다시 껴안기를 반복했다.


“험험.”


그제야 돌아보니 커티스와 치료사가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얼굴이 화끈거려 서로 고개를 돌렸다.


“백작님, 아직 치료가 더 필요합니다. 이제 깨어났으니 정양을 하셔야 합니다. 조금 뒤에 보시지요.”


“그럽시다. 그럼 저는 잠깐 나가 있겠습니다.”


앨런이 나가자 다시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코넬리아는 너무 창피해서 기절한 척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치료사가 주위 사람들을 물렸다.


“모두 나가시고, 저와 조수, 그리고 시녀 한 분만 남으세요.”


그는 조수를 시켜 묽은 죽을 가져오게 했다. 코넬리아는 그동안 피로와 함께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해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상태였다.


* * * * *


“아아, 앨리스님.”


“엘님.”


“로젠하임 수비 탑의 옥상을 기억하나요?”


“푸하하하!”


마르코와 르윈은 신이 나서 역할극에 몰입하고 있었다. 커티스와 헬튼이 흥미롭게 그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백작님이 저번에 말씀하신 로맨스가 진짜였다는 거네?”


“현자님, 그렇다니까요. 다들 백작님이 이제는 저런 거짓말도 하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정말이었어요.”


“상상이 안 되는데, 아까 그 모습을 보니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허허, 그 이야기가 진짜였다니.”


커티스와 마르코는 나름 치열한 연애를 거쳐 이미 결혼을 했다. 자식도 각각 둘, 셋이나 되었다. 자랑삼아 술자리에서 앨런을 자극했는데, 여자라고는 손목 한 번 못 잡았을 앨런이 자신 있게 자신의 연애담을 꺼내는 것이다.

어디서 많은 들은 소재에다가 저런 숫기 없는 앨런이 그런 과감한 연애를 했다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앨런이 어디서 로맨스 소설을 읽고 와서 그럴듯하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현자님, 제 이야기하고 있었죠?”


“헙!”


돌아보니 앨런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아무도 믿지 않았어. 여기 있는 유부남들은 그렇더라도 르윈 너까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르윈이 아무 말도 못하고 땅만 쳐다보는데, 앨런은 의기양양하게 문을 열고 나갔다.


“젠장. 이제는 백작님까지 짝이 있으니 나만 처량하게 되었네.”


“르윈님, 그러니까 그렇게 숙녀 분들이 쫓아다닐 때 튕기지 말았어야죠. 남자는 말입니다, 서른 넘으면 많이 힘들어진다고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어서 가정을 이루세요. 그래도 레이디 아가사는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만 놀리세요. 젠장, 이럴 때면 헬튼님 심정이 이해 간다니까요.”


르윈이 나가며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그런 르윈을 보며 커티스와 마르코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다가 커티스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 앨리스라는 분, 도대체 누굴까? 누구이기에 네더호프의 기사들이 그렇게 몰려들었을까?”


“우리 영지 분은 아닙니다. 네더호프의 기사들이 모두 죽어 버렸기 때문에 나중에 직접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딜런이 두리번거리다가 커티스를 보자 황급히 달려왔다.


“현자님, 가보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백작님이 데려온 레이디 말입니다. 아무래도 신분이 범상치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정보를 얻으셨습니까?”


“네더호프의 기사들을 태워진 선원 중 둘이 구조되었는데, 그들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선원 하나가 ‘공주님’이라고 레이디를 부르는 시녀의 소리를 들었답니다.”


“이런!”


생각지도 않았던 앨런의 첫사랑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다들 들떠 있었는데, 그 기분이 한꺼번에 가라앉았다.


“사실 나도 그 점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백작님도 서로 가면을 쓰고 있어 본 얼굴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여러 정황상 코넬리아 공주님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흉측한 일은 왜 일어났을까요?”


“아마 살인멸구하려고 했는데, 그때 백작님이 도착하신 모양입니다. 정말 이렇게 공교로울 수 있을까요?”


“허허.”


커티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헬튼님, 지금 빨리 친위대를 이끌고 동쪽 탑으로 가셔서 호위를 강화하십시오. 그리고 딜런과 마르코는 대책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아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참석자들이 모두 방을 나섰다. 커티스는 그제야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공작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 * * * *


카를로스 백작은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거의 손안에 들어 온 목표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카를로스 백작의 부대는 제나스 근처에서 하스달의 부대를 막을 수 있었다. 커틀란 후작의 지시는 명확했다. 겁만 주라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다.

만약 카를로스 백작의 부대가 공격했다면 하스달은 무리를 해서라도 돌파했을 것이다. 그러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병력에서 수는 자신들이 위였지만, 질에서는 분명히 저들이 한 수 위였다. 게다가 네더호프의 기사들이라면 이들로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 차라리 공격할 것을 그랬나?’


그럼에도 카를로스 백작이 후회하는 것은, 지금 닭 쫓던 개처럼 멀리 강만 바라보고 있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나스에서 카론으로 몰 때까지는 좋았다. 이틀이라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이미 카론에서는 마혼의 대부대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이 어긋나려니 하늘이 자신을 돕지 않았다. 갑자기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닥쳤고 그사이 콘웨이의 지원군이 후방을 공격한 것이다.

앞에서는 파도치는 마커키스 강이, 뒤에서는 콘웨이의 대부대가 있어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벌였다. 새벽녘에 비바람이 줄어들 때가 되어서야 치열했던 전투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그나마 카를로스 백작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콘웨이 군이 강을 따라오느라 상당수가 폭풍우에 휩쓸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카를로스 백작은 강변에서 차디찬 시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진일퇴를 반복하는 사이, 하스달 일행을 거의 품 안에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다. 하스달을 폭풍우 치는 강으로 몰아 버린 것인데, 카를로스 백작은 하스달이 지원군을 향해 무리해서라도 돌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스달은 공주를 데리고 폭풍우 치는 강으로 배를 몰고 도망쳤다. 눈앞에서 수많은 배들이 뒤엉키며 뒤집어지는 광경을 보면서도, 카를로스 백작은 그 뒤를 쫓으려 했다. 부하들이 결사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면 그도 그 아수라장 한복판에 있을 뻔했다.

카를로스 백작의 예상과는 다르게, 날씨 탓에 하스달은 콘웨이의 지원군을 마혼의 추가 병력으로 보았다. 그러니 갈 곳은 정해진 셈이었던 것이다.


“콘웨이 놈들은 어디에 있느냐?”


“저 구릉 너머에서 수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콘웨이 측도 공주를 찾지 못한 모양이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지금 마주쳐서 전투를 벌여봤자 무의미한 일이다.

서로 받은 명령도 비슷할 것이다. 지금 두 공작 사이의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공주를 먼저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서로 길을 엇갈려 강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타론 부근이 제국에서도 뱃길이 복잡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수색이 쉽지 않았다.

곳곳에 난파선들의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보통 이런 날씨에는 배를 피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금 공주라는 목표에 혈안이 된 두 공작의 무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었고, 그 결과가 강변에 펼쳐져 있었다.


‘제길, 사방이 난파선이고 조난자들이라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있나?’


뙤약볕에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성과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카를로스 백작은 급히 마탑을 통해 마혼 공작에게 보고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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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공작들의 전쟁 (19) 21.03.08 504 7 11쪽
167 공작들의 전쟁 (18) 21.03.05 571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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