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Born to be 각성자 1
따르르르르르릉~~~♬♬
알람시계가 신경질적으로 울어댔다.
졸린 눈으로 더듬더듬 시계를 찾아 시끄러운 알람 소리를 끄고 눈을 비볐다.
현재 시간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찬희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 중단전이고, 임독양맥이 타통이고, 간에”
“ 졸린 건 어쩔 수가 없네.. “
“ 하암~ “
졸린 눈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찬희는 나른한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정말 간사하다.
위급한 순간에는 몇 날 며칠을 잠을 자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찬희였지만, 평상시 습관처럼 찾아오는 달콤한 숙면의 유혹은 쉽게 떨쳐지질 않았다.
찬희는 몰려오는 졸음을 애써 털어버리고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세면장으로 걸어갔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던전을 연달아 클리어 한 찬희는 오랜만에 지구로 귀환했다.
오늘은 딱히 미련은 없지만 엄마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다니고 있는 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쏴아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찬희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게으른 잠을 쏟아지는 물줄기로 모두 날려버렸다.
그리고 간단하게 밥을 먹은 뒤,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카미짱을 타고 학교로 출발했다.
부아아앙···
시원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도로를 질주하는 기분이 나름 상쾌했다.
고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쉬지 못했던 그는,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꿈과 낭만이 가득한 대학 라이프를 제대로 즐기리라 마음먹었다.
두 시간을 달려 늦지 않게 학교에 도착한 찬희는 학과 건물 앞 주차장에 늘씬한 카미짱을 학교 주차장에 댔다.
이른 아침 시간이지만 드물게 보이는 여학생들의 카미짱을 향한 시선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 크크..
이게 진정한 황금빛 내 인생이지.. 크크 ‘
뚜벅이로 살아왔던 지난날의 쭈구리 인생을 회상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렀다.
아침 9시에 시작되는 첫 수업은 3학점짜리 전공필수, 경제학 원론···
텅 빈 강의실 제일 구석진 자리에 앉아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 아~ 그러니까, 아이X, 진짜 예쁘지 않냐??
노래도 잘하는데 심지어 귀엽기까지··· “
“ 나 저번 콘서트 때 사인도 득했다는···
크크크 “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낄낄대며 강의실로 들어왔다.
좋아하는 여가수에 대해 이야기하며 낄낄대던 학생들 중 한 명이 옆에 있는 친구들의 옆구리를 슬쩍 치며 귓속말을 했다.
‘ 저~ 저기··· 그 선배 맞지?? ‘
‘ 뭐?? ‘
‘ 왜 있잖아? 성수동 브레이크..! 불꽃 남자. ‘
후다닥···
시끄럽게 조잘거리던 학생들이 찬희와 완전히 떨어진 반대쪽에 자리를 잡고 힐끔힐끔 거리기 시작했다.
강의실은 묘한 침묵에 휩싸였다.
아무리 귓속말이라고 해도 찬희는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 아~ 귀찮게 된 것 같은데··· ‘
찬희는 모르고 있었지만,
성수동 브레이크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그때 화염을 일으키며 몬스터들을 소멸시킨 사내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로 인해 찬희의 신상은 낱낱이 공개되었고 화염에 휩싸인 채 몬스터들을 소멸시킨 찬희를 사람들은 불꽃 남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뒤늦게 각성자 협회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어설픈 반박문을 기재했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찬희는 이 상황이 마냥 불편하기만 했다.
성적에 맞춰 입학하다 보니 적성에 맞지도 않은 학문을 익히게 된 찬희는 딱히 배움에 대한 열망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원하는 것은 대학 졸업장, 그것뿐이었다.
대학 등록 후 바로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한 찬희는 복학 후에도 한 번도 학과 사무실에 찾아가지도 않았다.
신입생 환영회는 물론 학과 선후배가 모이는 MT도 따라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한 아싸(아웃사이더)의 길 위에서 세찬 폭풍우를 맨몸으로 맞아가며, 시베리아 벌판을 홀로 걸어가는 회색 늑대처럼 묵묵히 고독한 길을 걷고 있었다.(크~ 미친 새끼.. 지가 뭐라고~~)
그런 이유로 전공필수 수업임에도 강의실 내에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찬희는 그저 유령처럼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곤 했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학생들이 하나둘씩 강의실로 들어오고, 그를 알아본 사람들의 시선도 그만큼 늘어났다.
심지어 출석을 부르던 교수님조차도 놀라서 찬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아~ 진짜 왜 그래요? 교수님까지.. ‘
‘ 뭐 신기한 괴물이라도 봤어요?? ‘
후~
쨟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색한 기분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 기분 나쁘게 왜 힐끔거리고 지랄이야? ‘
‘ 불만 있으면, 얼굴 마주 보고 대화하자고···! ‘
항상 혼자였던 찬희는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관심이 못내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때, 언제나 비어있던 자신의 옆자리를 누군가 침범해 들어왔다.
헉헉헉···
“ 아~ 안 늦었네, 다행이다.. “
수업에 늦어 헐레벌떡 뛰어온 것처럼 보이는 남자는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그리고 서둘러 수업 준비를 마친 남자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와~ 죽는 줄 알았네··· “
그리고 그제서야 여유를 찾았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헉···!
남자의 얼굴의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굳게 마음을 먹은 남자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경제 무역학과 16학번 고찬희씨죠.. “
갑작스러운 상황에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인 찬희를 보며 용기를 얻었는지 남자는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 같은 경제 무역학과 16학번
이승일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
그렇게 자신은 이승일이며 너의 동기라고 소개한 남자는 찬희를 향해 한번 싱긋 웃어 보인 후 수업에 집중했다.
‘ 뭐야? 저 상큼한 미소는?? ‘
혹시?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찬희도 더 이상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수업에 집중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진행된 3학점짜리 전공필수 강의가 모두 끝이 났다.
공부에는 통 재미가 없었던 찬희는 힘든 시간을 무사히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 점심, 같이 먹을래···? “
옆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던 이승일이 용기를 내어 찬희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두 눈은 어색하고 불안한 듯 살짝 떨리고 있었다.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인 것 같았다.
소심하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남자가 오늘 처음 본 자신에게 점심을 먹자고 하니, 이게 뭔 일인가 싶었던 찬희는 주먹을 꼭 쥐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보자 그의 제안을 받아주기로 했다.
‘ 뭔가 할 말이 있는 것도 같은데··· ‘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이 아무리 학과 동기라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는 것은 매우 큰 결심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다.
“ 뭐~ 혼자 먹는 것보단 좋겠지.. “
당신을 보는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했어요..라고 지껄이면 그냥 살포시 접어주면 될 거고···
찬희의 승낙에 기분이 좋아진 이승일은 찬희와 함께 학교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저기~ 저기 봐봐.. ‘
‘ 걔, 맞지?? 불꽃남자 고찬희··· ’
‘ 경제 무역학과 16학번··· ‘
‘ 쟤, 엄청 부자라는 소문이 있던데,
왜 단과대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노란색 카마로 SS, 일명 범블비..
쟤가 타고 다니는 차래.
과동기가 차에서 내리는 걸 봤다더라고··· ‘
‘ 우와~ 부럽다. 각성해서 돈도 잘 벌고··· ‘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찬희는 불꽃남자 고찬희라는 닉네임으로 학교 내에서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 불꽃남자··· 호오~ 어감 괜찮은데···?! ‘
내심 닉네임이 마음에 들은 찬희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주문한 음식을 받아서 자리로 이동했다.
“ 근데, 이승일이라고 했지??
너도 좀 전에 말 놓았으니까 부담 없이 말 놓을게··· “
“ 그래. “
“ 근데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
찬희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이승일은 강하게 부정했다.
“ 할 말이 있긴 뭐가 있어..
그냥 동기끼리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게
이상해?? “
응, 많이 이상해..
오늘 아침까지는
너랑 나랑 완전 남이었거든··· ‘
그리고
강한 부정은 긍정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안 배웠냐??
“ 그래?? 알았어.. 그럼 먹자··· “
찬희가 쿨하게 대답하자 이승일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물쭈물 대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는 있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어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식사시간 내내 찬희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영락없이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돈 빌리러 온 모양새였다.
식사를 끝낸 찬희는 짐짓 이승일의 반응을 모른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식기를 반납하고는 물 한 잔을 마신 후 식당 밖으로 나왔다.
“ 오늘 강의 남은 거 있어?? “
이승일이 빠르게 따라와 붙었다.
아~ 얘 진짜 왜 이러니??
할 말이 있으면 하고, 아님 말고···
“ 으~응, 무역학 원론이랑 회계원리,
3학점짜리 두 개 남았어.. “
찬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밝은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 아~
너 지금 1학년 애들이랑 같이 수업 듣지??
이야기 들었어..
학교 등록하자마자 휴학했다면서.. “
이건 또 뭐야?? 내 뒷조사라도 한 거니?
자신에게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승일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두 손을 흔들며 빠르게 대답했다.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우리 학교 애들 대부분이 너에 대해 알 걸? “
“ 우리 학교에서 성수동 사건 이후로
널 모르면 간첩이다. 간첩··· “
이승일의 대답에 깊은 한숨을 내쉰 찬희는 다시 단과대 건물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찬희는 아직 들어야 할 수업이 3학점짜리 두 개, 6시간 이후에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단과대 건물로 함께 들어섰다.
“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좀 비는데,
학과 사무실에 안 갈래?? 커피도 한잔하고?? “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승일을 보고 이제는 못 참겠다는 말투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
“ 뭐야?? 할 말 있으면 빨리해··· “
“ 진짜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
단호하게 말하는 찬희를 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킨 이승일은 그제야 자신의 용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 저기, 사실은 말이야~~ “
불안한 눈빛으로 이승일은 말을 이어갔다.
이승일.
그냥 그냥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대학생.
하지만 그에게도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의 어린 여동생이었다.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이승일의 부모님은 작년에 덜컥 늦둥이를 보았다.
그것도 인형처럼 작고 예쁜 공주님을···
늦둥이를 본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승일조차 요람에 누워 꼼지락 꼼지락거리는 여동생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진짜 인형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법이라 했던가?
어느 날부터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동생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이의 가족들이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는 그런 변화가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 주위에 작은 인형 같은 물건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요람이 혼자 삐거덕 삐거덕거리며 흔들렸다.
아이의 이상한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고, 마침내 아이로 인해 큰 참변이 일어날 뻔하기까지 했다.
한밤중에 아이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고, 붉은 불꽃이 아이를 휩싸, 온 집안에 화재가 일어났던 것이다.
다행히 불은 다른 집으로 번지기 전에 잡혔지만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이의 가족들은 5년 가까이 살던 서울 시내 아파트를 정리하고, 서울 근교의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했다.
이승일의 가족이 새로 이사 간 집에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바로, 방염 시공과 화재 경보 시스템이었다.
언제, 어느 때에 아이의 이상한 능력이 발현될지 몰랐기 때문에 가족들은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지켜보았다.
“ 불안해 죽겠어.. “
“ 이러다가 진짜,
뭔 일이라도 나면 어떡해?? “
이승일은 찬희의 두 손을 꼭 쥐고 떨리는 눈동자로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 불꽃남자 고찬희..
제발 우리 집에 와서
한 번만 내 여동생 좀 봐줘라..
지금 애 상태가 어떤지?? 응?
도대체 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
이승일의 두 눈에는 어느새 투명한 이슬이 맺혀 있었다.
“ 알았어.. “
그의 절박한 두 눈을 외면하지 못한 찬희는 이승일의 두 손을 꼭 잡고는 굳센 약속을 해주었다.
하늘에서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시원한 산들바람이 두 사람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벚꽃잎이 눈처럼 쏟아져 내리고, 불어오는 바람에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리고 세상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샤랄랄라~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 어머 쟤들 뭐야?? 미쳤나 봐··· 진짜.. “
“ 와~ 역시 불꽃남자 화끈하네. 때와 장소 심지어 성별까지 가리지 않는 당신은 진정한 개새끼. 우흐흣~~ “
사방에서 뭔가를 오해한 듯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를 잔인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X발.. 내가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지금..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은 법.
두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이 남는 순간이었다.
찬희는 쏟아지는 눈초리를 묵묵히 참으며 남은 수업을 다 듣고 이승일의 집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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