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플레이아데스 - 벨레로폰 납치 사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니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었다.
강도, 납치, 불법 주거 침입, 기타 등등 양아치로 살아온 지 언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처럼 이렇게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는 곳도 드물었다.
사람이 실종되거나 심지어 죽어버려도 누구 하나 꿈쩍하지 않는 슬럼가, 그 슬럼가 여관에서 술에 취해 뻗어 있는 범행 대상자. 이런 인간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 근데 이 새끼 너무 태평한 거 아니야? “
“ 인간 사냥꾼이라고 해서 잔뜩 긴장했는데 말이야! “
“ 꼴에 감투하나 썼다고 자길 못 건드릴 거라 생각했겠지. “
“ 그래도 그렇지, 이곳에 오자마자 온통 벌집을 건드려 놓고 이렇게 태평하다고? 참나! 그냥 꼴통이네. 꼴통··· “
“ 뭐? 어쨌든 우리에겐 잘 되었지. 소란 피울 일도 없고··· “
2인조 침입자들은 술에 절어 뻗어있는 헨리를 한심하게 쳐다보곤 가지고 온 포대 자루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남자들은 헨리의 상태를 보고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여긴 사람 보는 눈이 많으니까 빨리 아지트로 데리고 가자고··· 서둘러··· “
거무틱틱한 자루에 서둘러 헨리를 닮고는 어깨에 들쳐 메었다. 그리고 2인조 주거 침입 및 납치범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두 남자가 헨리를 어깨에 메고 도착한 곳은 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허름한 창고였다. 아마도 이곳이 이놈들의 아지트리라···
특별한 것도 없는 슬럼가 뒷골목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허름한 창고.
보통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하곤 한다. 가장 가깝지만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장소, 그런 장소가 어떤 것을 숨기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란 말이었다.
이곳도 그런 곳 중에 하나였다.
슬럼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창고 안에 납치범들의 아지트가 있으리라고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 어~ 왔어. “
그때 허름한 창고 앞에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두 명의 험상궂은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거구의 남자들은 모두 얼굴에 긴 칼자국을 가지고 있었고, 드러난 팔뚝에는 현란한 문신들로 가득했다. 한마디로 나 조폭 양아치요라고 광고하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 생각보다 빨리 끝냈네··· “
“ 응~ 아주 태평하게 술 처먹고 뻗어 있더라고. 그래서 그냥 담아왔지. “
2인조 중 헨리를 들쳐메고 있는 남자가 자신의 어깨 위에 있는 자루를 가르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수고했네. 이제 곧 있으면 교대니 그때 같이 한잔하자고··· “
“ 그래. 수고들 혀. “
헨리를 납치한 2인조 남자들은 경계를 서고 있는 남자들에게 술 약속까지 하고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창고 안에는 부서진 집안 가구나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 따위가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간 2인조는 문 맞은편에 서 있는 낡은 서랍장을 옆으로 밀었다.
드르륵~
서랍장이 있는 자리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침입자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기척에 메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사실 영혼인 메리가 잠을 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녀는 헨리를 따라 자는 척하며 같이 누워있었지만 불청객인 집안으로 들어오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2인조 침입자들이 태연하게 헨리를 자루에 담고 자신들의 아지트로 헨리를 납치하는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 미친··· 손님이란게 이놈들인가 보네··· ]
어쨋던 헨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정말로 손님이 왔다. 밤손님인 것이 문제지만 어쨌든 사랑하는 헨리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고 싶었다.
[ 이 미친놈아··· 그러니까 술 좀 작작 처먹지? ]
오늘 내일 손님이 온다면서도 몇 시간 전까지 헨리는 1층 바에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먹었다. 그로 인해 허접해 보이는 좀도둑에게 납치되는 수모를 겪게 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아니지! 내가 미친년이지. ]
[ 이런 인간이 뭐가 좋아서··· 지금이라도 이 꼴 저 꼴 안 보고 속 편하게 승천해버릴까? ]
여느 집안의 흔한 여편네처럼 갈라섬의 미학을 잘 알고 있는 메리는 이 순간 심각하게 승천을 고려했지만, 그동안 해다 받친 것이 아까워 잠시 보류했다.
[ 근데? 이 씹다 뱉은 멸치 대가리 같은 것들이 내 금쪽같은 낭군님을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
[ 야~ 야~ 어딜 만져··· 그 손 안치워··· ]
헨리의 몸을 아무렇게나 만져 되는 것을 보자 메리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조그마한 주먹과 발을 납치범들에게 휘둘렀지만···
실체가 없는 메리의 주먹과 발을 허무하게 사내들을 통과할 뿐이었다.
“ 야~ 좀 싸늘하지 않아? “
“ 음~ 나도 좀 으슬으슬하네··· 빨리 끝내고 술이나 한잔하세···”
“ 그~그래··· “
기분 나쁜 한기가 몸을 관통하자 납치범들의 발은 더욱 빨라졌고 어느새 창고에 도착했다.
허름한 창고 지하에는 돌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복도가 나타났고, 그 복도를 따라 5분 정도 걸어 도착한 복도의 끝자락에는 두꺼운 철문이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 도대체 얘들 뭐하는 놈들이지? ]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납치범들을 보고 좀도둑이라 생각했지만 조금씩 그녀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 좀도둑이 이런 곳을 만들 수는 없을 테고? ]
철문 앞에 도착한 납치범들이 문을 두들기자 눈만 보이는 작은 창이 열렸다. 그리고 문 안쪽에서 납치범들의 얼굴을 확인한 후 철문이 열렸다.
철컹.
납치범들은 철문 옆을 지키고 있던 남자와 간단한 눈인사를 한 뒤 빠르게 내부로 들어갔다.
철문 안쪽에는 넓은 지하 공동이 나타났다.
학교 강당 정도의 크기를 가진 공동의 동서남북 네 방위에는 각각 철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집단인 관계로 출입구를 여러 개 만들어 놓아 유사시에 도망치기 위해서인듯했다.
지하 공동 내부에는 수십 명의 조직원들이 나름의 게임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쪽에 설치된 바(BAR)에서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지구의 당구대와 비슷한 테이블 옆에서 삼삼오오 모여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조직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지하 공동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리자, 조직원들의 눈이 모두 출입구 쪽으로 모였다. 그리고 조용히 바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몸을 일으켜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데리고 왔는가?? “
“ 네. 이 자루 안에 있습니다. “
위치가 중급 관리자쯤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납치범들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중년 남자는 자루를 보자 얼굴이 인상이 험악하게 변했다.
“ 아따~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자루가 뭐여? 자루가?? 안그냐? “
“ 예. 맞습니다. 형님··· “
중년 남자의 말에 지하 공간에 모여 있던 조직원들은 모두 폴더 인사를 하며 맞장구를 쳤다.
“ 들었냐? 이 양아치 새끼들아. 너희도 시대에 흐름에 발 좀 맞춰라. “
“ 우리 조직 구호가 뭐냐? “
중년 남자는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납치범 2인조를 닦달했다.
“ ‘신세계 흐름에 발맞춰 나아가는 선진 조폭, 멋진 흑사회를 만들자.’입니다. “
“ 그지? 근데 이게 뭐여? 2,500만 년 전에나 썼을 것 같은 자루가 뭐냔 말이여? “
“ 그 뭣이냐? 광입자 전송기나 다중 웜홀 발생기 이런 거 좀 쓰라고··· 이 새끼들아··· “
중년 남자의 말에 납치범들은 개미같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 그게~~ 그런 건 너무 비싸서···..요···. “
“ 아따 이 새끼 말대꾸하는 것 좀 보소··· 확 혓바닥을 뽀바블라~~~ “
남자의 위협에 납치범 2인조의 온몸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다.
“ 하하 농담이여··· “
“ 뭐 그래 졸고 그러는가? 여여 내려놓고 술이나 한 잔씩 하더라고··· 하하하. “
납치범들은 그제야 안심하고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에 내려놓은 자루를 벗기자 자루 안에서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고 있던 헨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 지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세상 편하게 자는 모습 좀 보소··· “
“ 아야~ 아그들아. 이거 깨워라. “
중년 남자의 말에 조직원 중에 한 명이 큰 물통을 가지고 와 그대로 헨리에게 쏟았다.
쏴~아~
“ 으~음~ “
졸지에 자다가 봉변을 당한 헨리는 졸린 눈을 힘겹게 떴다.
“ 여긴 어디야?? “
“ 어디긴 어디야? 네 무덤이지? “
“ 이 새끼 정신 아직 덜 차린 것 같은데··· 정신 좀 들게 해줘라. “
중년 남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헨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그들의 손에는 쇠 파이프와 같은 흉기들이 들려있었다.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헨리는 바닥을 기다시피 해 중년 남자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 뭔지 모르겠지만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
“ 그래? 어디 보자··· 안 되겠는데? 니 새끼 눈깔이 마음에 안 들어버려. 아그들아~ 뭐하냐? 조져불지 않고. “
자신에게 사정하는 헨리를 비웃으며 중년 남자는 바 옆에 있는 고급 소파로 돌아가 앉았다.
“ 아야~ 그시기 팝콘 좀 가지고 오고. “
남자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더 역동적인 일을 기대하며 팝콘을 먹기 시작했다.
헨리는 마지막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힘들게 바닥에서 일어났다. 어느 정도 정신은 돌아왔지만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어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오고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그냥 바닥에 다시 눕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둘러싼 수십 명의 조직원들은 제각각 흉기를 손에 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아~ 씨발. “
“ 안 되겠다. 이 새끼들 정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나와서 조져··· “
바닥에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던 헨리가 허공에 대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고 동시에 수십 개의 그림자가 조직원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한순간이었다.
수십 개로 분화한 그림자는 다시 하나로 모여졌고, 검은 그림자는 실체를 갖춘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헨리 곁에는 어느샌가 모습을 드러낸 킬리어가 듬직하게 서 있었다.
땡강~땡강~
바닥에 쇠파이프 떨어지는 소리가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다.
털썩~털썩~~
그리고 헨리를 둘러싼 수십 명의 조직원들은 모두 바닥에 엎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쟤~ 쟤 끌고 와···. “
헨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팔을 들어 누군가를 지목했다.
킬리어는 헨리의 명을 받고 소파에서 팝콘을 먹고 있던 중년 남자를 단숨에 제압하고 끌고 왔지만, 헨리는 아직 술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었다.
헨리의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연신 헛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런 그를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킬리어는 스윽하며 헨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킬리어의 손에는 푸른색 병이 들려 있었다.
[ 견디셔 ]
푸른색병에는 빨간색으로 대비되는 색깔로 ‘견디셔’라는 상표가 인쇄되어 있었다.
“ 숙취 해소 음료입니다. 최상급이니 먹으면 한결 나아질 겁니다. “
헨리는 킬리어가 건네준 숙취 해소 음료를 단숨에 마셨다.
효과는 확실했다. 어지럽던 머리가 맑아지고 연신 게워대던 헛구역질도 깔끔하게 멈추었다.
신기했다. 마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 이거 지구에서 팔면 대박인데···. ‘
헨리는 이 견디셔의 성분이 궁금해서 병 외부에 붙어있는 스티커에서 성분표를 살펴보았다.
성분표에는 해골 개구리 뒷다리 진액 10Mg, 천봉설산 털원숭이 오줌 20Mg, 천년 먹은 이무기 토사물 23.5Mg 마지막으로 똥 구더기 가루 40Mg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성분표 마지막에는 굵은 글씨체로 ‘우리는 천연재료를 사용하여 제품을 정직하게 만듭니다.’라고 문구가 친절하게 쓰여있었다.
으웩~
헨리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하였다.
끊임없이 토사물을 게워내기 시작했고 힘이 풀린 다리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한동안 끊임없이 들리는 4번 교향곡 구토의 아리아는 지하 공간에 아름답게 울려퍼졌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헨리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해골처럼 핼쑥해진 볼살에 턱까지 내려온 눈그늘, 퀭하게 쑥 들어간 두 눈이 그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했다.
킬리어가 준 견디셔 덕분에 정신이 맑아진 헨리는 의자에 묶여 있는 중년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 내가 너 때문에 뭘 먹었는지 알아···.. 니가 아냐고???? “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헨리의 분노가 중년 남자를 향해 폭발했다.
“ 환살, 더블 환살, 트리플 환살, 쿼드러플 환살··· 으아아악~ “
“ 죽어! 죽어! 죽으어~~~~ “
“ 마수 소환. 저 새끼 사지를 찢어버려~ “
헨리의 분노는 집요하고 잔인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인 공격기인 환살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 정신을 피폐화시키고 마수를 소환해 육체적인 고통을 가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킬리어마저 그의 잔인함과 악독함에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