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C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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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고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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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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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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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지옥굴

DUMMY

82.


스스로 몸을 던져 이 세계로 왔던 시조. 그때의 기억을 조금 되살린다면 우물 안의 통로는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었다.


그리고 시조는 자신의 원래 세계였던 대한민국으로 향하기 위하여 그곳을 오르고 있었다. 떨어질 때도 그 끝을 모를 정도로 깊었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오르는 것은 그보다 더 심하게 느껴졌다.


깊은 심연을 오르는 동안에 시조는 여마리와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였다.


“지구가 멸망한다뇨? 영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여마리의 지구 멸망 소리는 마치 TV 속에서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음모론 같이 느껴졌었다.


“영이란 지구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준다. 너희 세계에는 이를 중력이라고 하지? 만약에 중력이 지구 바깥으로 나온다고 노출이 된다고 생각해 보거라”


“점차···그 힘이 약해지겠죠”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영 또한 한정적이다. 종국에는 지구의 중력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다”


중력이 없어진다는 소리에 시조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중력이 없어진다는 소리는 이곳에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니깐 말이다.


하지만 저 말이 정녕 사실일까란 의구심 또한 들었다.


“이곳의 마법사들이나 무도가들 또한 영을 사용하지요. 이들이 사용하는 것은 괜찮았다는 말씀입니까?”


“우리들의 힘은 근본적으로 순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어떠한 힘을 쓰더라도 결국에 다시 영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지. 하지만 외지인들의 자원 활용은 전형적으로 소비야”


시조의 기억 속에도 자원 고갈의 위험성을 알리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시조는 여마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리라 믿으며 그녀의 명을 따르기로 하였다.




=====




“오라버니는 결국 오늘 안 왔네”


시조가 떠나고 그가 돌아오기만을 밖에서 기다리던 이서연은 날이 지고 나서야 주막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좀 걸리나 보지. 너무 기죽지 마”


이희건은 그런 그녀를 달래주었다. 평소라면은 이희건이 장난을 치고 이서연이 그의 장난에 싫어하는 티를 내며 받아쳐야만 되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오라버니를 만나고 이렇게 떨어진 적은 그때 빼고 처음이야”


과거 고마를 만나 여마리의 도움을 받았던 때. 그때는 시조와 자신이 떨어져 있었지만, 생존만 한다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늘 아침에 시조가 떠나기 전에 느꼈던 감정. 그리고 사라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서연은 시조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시조 형님을 믿어. 돌아온다고 했잖아?”


이희건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었다. 그저 시조를 믿고 기다리라는 말 밖에는···


“내일 일찍 들어올 테니까, 서연이 너도 들어가 쉬어”


“···좀 더 기다린 다음에···”


불안해하는 그녀를 이대로 두고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오픈 베타가 거의 임박한 시기였다. 더 많은 길드원을 모집하기 위하여 현재 비화를 비롯한 다른 청년들이 바쁘게 홍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도 손을 걷어붙여줘야 되었다.


이희건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두고 접속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내일 꼭 일찍 와”


접속을 해제하기 전, 그녀의 마지막 말이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다.




=====




“후우, 겨우 다왔네”


시조가 간신히 우물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해가 저물어가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나의 관광지로 변했었던 지옥굴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옥굴 앞에 흰 국화들이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기리고 있었다.


시조는 올라오면서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립다기보다는 안 좋은 추억만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 가족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곳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그저 빠르게 지구의 종말을 막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어디서 무엇을 해야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마리에게 듣지 못했던 시조는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도움을 받는다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의 그는 2년 전에 실종된 사람이었다. 그가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꽤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기는 하나, 다짜고짜 지구의 종말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면 사람들이 믿어주기나 할까? 오히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우선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된 시조의 머릿속에 문득 한 남자가 떠올랐다.


“이희건”


이희건과 정화연과의 이야기를 언뜻 들었을 때, 두 사람은 각각 S그룹과 HY그룹의 자식들이었다. 두 사람은 가끔씩 길드 관련하여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만난다고 한다.


“어떻게든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만나야 되는데”


시조는 수중의 돈을 확인하였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여마리로부터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의 그의 옷들이나 가지고 있던 소지품 따위를 돌려줬었기에 그때 당시에 갖고 있던 돈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다행히 없진 않네”


모자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린 채로 그는 서둘러 관광지에서 벗어났다. 도심 속에 있는 관광지였기에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선 근처 PC방으로 가서 S그룹과 HY그룹의 정보에 대해서 확인하였다.


이희건이나 정화연이나 아직 학생의 신분으로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자세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자택의 주소는 알 수 있었고, 다행히 정화연의 집이 이 근처에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시조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하늘에 태양 대신에 달이 들어선 시간이 되자마자, 정화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캡슐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가 샤워를 하고 이쁘게 옷을 갈아입고는 화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저녁에 이희건과의 약속이 있었고,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였다. 어렸을 적부터 봐왔던 사이였지만, 그때는 서로에게 완전히 이성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그에게 예뻐 보이기 위하여 꾸미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저 나갔다 올게요”


“또 희건이 만나러 가냐”


거실에는 오늘따라 웬일로 일찍 집으로 돌아온 자신의 아버지, 정영웅이 있었다.


“네”


“예전엔 싫다고 버팅길 땐 언제고···이제는 아예 대놓고 만나러 가네”


“그래서 싫어요?”


“허허허”


처음에는 이희건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나갔던 정화연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리 당당하게 나오니 정영웅은 웃음이 나왔다.


“아직 미성년자야. 외박만 하지마”


“하고 싶어도 못 해요. 어차피 내일도 일찍 접속해야 되거든요?”


그 말을 남기고 정화연은 밖으로 나갔다. 이희건과 약속을 잡은 장소는 두 사람이 항상 만나던 곳이었던 카페였다.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택들로 가득 찬 동네를 빠져나가려 하였다.


“뭐지?”


정화연은 불현듯 자신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로 한 남자가 그녀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동네였기에 당연히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할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동네에서 벗어나는 그녀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뒤에 있던 남성 역시 빨라졌다.


‘날 쫓아오고 있어?’


게임 속에서 사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근력이 키워지고, 그녀가 들고 있는 백 속에 호신용품도 있으니 얼마든지 제압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웬만하면 그러한 상황이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녀는 사람이 많이 있을 길거리까지 냅다 뛰어갔다.


‘조금만 가면 돼’


이희건을 만나 길드 일을 핑계로 데이트를 하고 자신을 쫓아오는 남자를 핑계로 이희건을 자신의 집까지 들여보낼 생각까지 머릿속에 구상해놓고 있을 무렵. 뒤편에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정화연의 정면에 나타났다.


“으읍!”


정화연이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에 남자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백 속에 호신용품을 꺼내려고 하자 정화연을 벽으로 몰아붙이고 두 손을 제압하였다.


그녀가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하였으나, 남자의 힘이 워낙에 강했던 탓에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비화야, 나야!”


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며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외쳤다.


“!”


정화연은 자신을 제압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저항하던 움직임도 멈춰버렸다. 어디선가 많이 본 남자였다.


더 이상 움직임이 없자, 남자는 조심스럽게 두 손을 정화연에게서 떼어냈다.


“···최강운?”


정화연의 말에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시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게 정화연을 금방 만난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이 게임 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식시켜 줘야 되었다.


“희건씨 만나러 가?”


“아니, 그걸 어떻게···”


그녀의 반응을 보건데 맞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시조···알고 있지?”


“네···네. 알고 있어요”


시조의 질문에 정화연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시조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가? 자신들은 그저 시조의 얼굴만을 공개하지 않았는가.


“그거 나야”


“···네?”


뭔 개소리냐고 묻는 듯한 정화연의 눈빛에 시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믿기지 않겠지. 정화연의 머릿속의 시조는 그저 인공지능이 높은 NPC로 기억이 되고 있을 뿐이니까. 그런 NPC가 현실에 튀어나왔다고 하니 당연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뭘 어떻게 해야 믿게 만들 수 있을까?


“···”


말주변이 없는 시조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벽에 한 손을 가져다 댄 시조는 벽을 움켜쥐듯이 힘을 주었다.


“어?”


시조가 힘을 준 부위만 벽이 잘게 부서져 깊이 파였고, 그 모습을 본 정화연은 믿기 힘든 장면을 실제로 보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이러면 믿어주겠어?”


시조는 손에 묻은 시멘트 가루를 땅바닥에 털어내며 말을 하였다.


“···어떻게 했어요?”


“내가 게임 속의 시조라서 그래”


“근데 거긴 게임 속인데?”


정화연은 자신의 양 볼을 꼬집었다. 이것이 정녕 실제 상황인지, 꿈속인지 구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저 무지막지한 힘을 보면 시조가 맞긴 한 것 같은데, 여긴 현실이잖아? 그러면 어떻게 NPC가 여기 있는 거야?


“아얏”


있는 힘껏 세게 꼬집은 양 볼이 아팠다. 적어도 지금 상황이 실화인데, 뭔가 뒤죽박죽 엉켜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꼬집어 줄까?”


“제 볼 뜯겨지긴 싫어요”


정화연은 자신의 양 볼을 손으로 보호하였다.


“잠시만 조금 전엔 최강운이라면서요!”


“둘 다 나라고”


“아···아? 저 이해가 안 되는데 설명 좀 제대로 해주세요”


게임은 비현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여전히 최강운과 시조가 같은 사람이라고, 동일선상에 놓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시조가 말로 설명해주어야만 되었다.


“설명해줄 게 잘 들어”


“네”


“우선 너희들이 게임이라고 직접 플레이하고 있던 검나라라는 곳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어”


“···네”


“내가 2년 전에 실종됐던 날 기억하고 있지?”


“그럼요, 잘 알고 있죠”


“그때 난 우물로 빠졌었고, 검나라로 가게 됐어”


“그렇다면···”


“지구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었던 거고, 그 세계가 검나라라는 곳이야”


“···”


시조의 설명을 듣고 나서 정화연은 그제서 마구 뒤엉켜있던 머릿속이 풀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럼 저희가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플레이했던 곳이 알고 보니까,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거네요?”


“그래”


여전히 정화연은 시조의 말이 믿겨 지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검나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에야 이러한 의심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이 직접 겪었다고 말을 하고, 증명해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시···최강운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돌아오신 거예요?”


“그 얘기는 희건씨와 만나고 그때 얘기해줄게, 비화야”


“네, 그럼 따라오세요”


이희건과 길드 일을 핑계로 데이트할 생각에 들떠있었던 정화연은 갑작스러운 시조의 등장에 아쉬워할 틈도 없이 이희건과 만날 약속을 잡은 카페로 이동하였다.


“저기···근데요”


“응, 왜?”


“제 본명은 정화연이에요. 여기서는 비화가 아니라 정화연이라고 불러주세요”


“알았어, 화연아”


작가의말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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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1 - 0 21.01.01 58 0 13쪽
91 90 - 0 20.12.31 54 0 12쪽
90 89 - 0 20.12.30 44 0 12쪽
89 88 - 0 20.12.29 46 0 14쪽
88 87 - 0 20.12.28 64 0 13쪽
87 86 - 0 20.12.25 47 0 12쪽
86 85 - 0 20.12.24 58 0 12쪽
85 84 - 0 20.12.23 63 0 13쪽
84 83 - 지옥굴 20.12.22 50 0 13쪽
» 82 - 지옥굴 20.12.21 50 0 13쪽
82 81 - 시조의 과거 20.12.18 48 0 13쪽
81 80 - 시조의 과거 20.12.17 70 0 12쪽
80 79 - 시조의 과거 20.12.16 52 0 13쪽
79 78 - 오랜 원한 20.12.15 76 0 13쪽
78 77 - 오랜 원한 20.12.14 97 0 11쪽
77 76 - 오랜 원한 20.12.11 58 0 12쪽
76 75 - 오랜 원한 20.12.10 75 0 12쪽
75 74 - 오랜 원한 20.12.09 57 0 13쪽
74 73 - 오랜 원한 20.12.08 51 0 12쪽
73 72 - 오랜 원한 20.12.07 75 0 12쪽
72 71 - 오랜 원한 20.12.04 57 0 15쪽
71 70 - 오랜 원한 20.12.03 56 0 13쪽
70 69 - 오랜 원한 20.12.02 4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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