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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막껍
작품등록일 :
2020.09.03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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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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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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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안돼

DUMMY

"사장님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한승기 단장의 말에 폰에서 눈을 뗀 진후는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소릴 하시는 거죠?"


평소와 다르게 약간 순진한 척하는 진후의 반응에 한단장은 느낌이 왔다. 이 건은 사장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항상 말할 때 약간 싸가지가 없던 인간이 이번엔 평소완 다르게 친절한 척 꾸며내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무언가 켕기는 게 있다는 것을 캐치해 낸 것이다.


이상함을 눈치챘다고 해도 추궁하거나 갈굴 수도 없는 상대였기에 한단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박대리를 데리고 조용히 관중석을 빠져나갔다.


한적한 곳을 찾아 걷는 와중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서울에서부터 바빠질 거라고 슬쩍 흘려 말했던 게 생각나면서 이어진 자신의 대답도 떠올랐다. 유망주로 바빠진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이건 그냥 유망주가 아니지 않나요.'


자신의 대답에 한탄하면서도 미친 재능에 미친 인성을 가진 유망주니까 확실히 그냥 유망주는 아니었다.


학폭 반대 법안을 상정해서 총재까지 날려버리면서 퇴로를 불살라버리고 도망갈 수도 없게 풀세트 군장이 채워진 한단장이 돌파해야 할 상대는 온 세상이었다.


이게 아두를 가슴에 묶은 조자룡의 심정인가 싶은 한단장은 이런 상황에 나오는 실없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하하. 그래 박대리 자세히 말해봐."


한단장의 서글픈 웃음처럼 울상을 지은 박대리는 천천히 얘기를 풀었다.


"네 유정고 1학년 학생한테 들은 얘기인데요. 어떻게 야구부에 들어 온 건진 모르겠는데 새끼 조폭이라서 야구부에서 훈련도 안 받고 아무도 터치 안 하던 형이었답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주 전쯤인가? 갑자기 감독한테 찾아와서 무릎 꿇고 야구 좀 시켜달라고 빌었답니다.


그동안 유령 취급을 하던 감독이 딱 한 번 기회를 준다고 하고 에이스 투수한테 공 한번 던져보라고 시켰는데 바로 홈런을 쳤다는데요."


전 야구부원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조폭이라는건 학교 전체가 다 알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슬쩍 덮고 지나가는건 말도 안된다는걸 깨달은 한단장은 다른 기본 정보를 물었다.


"이름은?"


"황덕만. 나이는 19세랍니다."


생각보다 많은 나이에 한단장은


"19세?"


"아무래도. 1년 꿇은 것 같습니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하필이면 이번 드래프트에서 뽑아야 하네."


시기도 최악이었다. 진후가 학폭 선출 금지법을 만들고 보스킹에서 원수현이 에이스 놀이를 하면서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팬클럽까지 창단된 시점이었기에 이번에야말로 학원 스포츠에서 폭력을 뿌리 뽑아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야구계의 시작 덕분에 모든 프로 스포츠에서 학폭 선수를 뽑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고 코치들의 폭력 문제도 연일 방송국으로 제보가 날아오는 상황이었다.


원수현의 복수의 대상으로 추정된 선수는 연일 이어지는 댓글 테러에 심적 부담이 컸는지 자진해서 2군에 내려간 상황이었고 가담자로 추정된 선수들을 보유한 다른 구단은 눈치껏 선수들을 군대로 보내버렸다.


야구판의 모든 사람이 민감해하고 국민적 관심사가 몰린 이때 한단장은 조폭 출신 야구선수를 영입해야 했다. 한국시리즈 등판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압박감 속에 크게 한숨을 내쉰 한단장은 무겁게 말했다.


"황덕만만 촬영하고 경기 끝나면 유정고까지 쫒아가서 정보 탐색하게 사소한 것도 놓치면 안 돼."


이어 전화기를 든 한단장은 자신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운영팀장 임성찬에게 전화했다. 황덕만에 대해 침을 튀어가며 설명한 한단장은 열정적으로 업무지시를 내렸다.


"정보 죄다 긁어모으고 비상대책 회의 진행해서 그 어떤 아이디어라도 모조리 짜네. 다행히 오늘 다른 팀 스카우터들도 안보인다. 난 경기 끝나는 대로 우선 쇼부 볼 테니까."


북명고나 유정고나 프로에 갈만한 선수는 없다고 평가가 끝난 상태였기에 드래프트를 앞둔 스카우터들은 고르고 고른 옥석 중에 비교하느라 바빠서인지 이 경기장엔 한명도 오지 않았다.


학폭이건 나발이건 팔콘스에겐 절대 놓칠 수 없는 선수였다. 한단장의 눈은 전투력으로 불타올랐다.


같은 시각 진후는 김실장과 통화 중이었다.


"한단장이 바로 눈치챈 거 같은데."


- 사장님 은근히 연기 못하시니까요.


진후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깜짝 놀랐다.


"나 연기 잘하는데? 무슨 소리지."


- 거짓말만 하면 사람이 갑자기 친절해지시는데 모를 리가요. 알아채거나 말거나 시나리오는 굴러갑니다. 아무튼 덕만이는 잘합니까?


김실장의 질문에 진후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 환상적이야."


- 그 고생을 했는데 당연히 잘해야죠.


"직접 보면 그런 소리 못 할거야."


통화하는 와중에도 덕만의 호수비 퍼레이드는 계속되고 있었다.


유격수 쪽으로 향하는 모든 공을 처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은 원초적이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료되는 느낌이 들게 했다. 아카데미 연습 영상과는 다르게 진짜 그라운드에서 날뛰고 있는 모습은 생동감이 넘쳤고 타석에서 친 공이 하늘로 쭉 뻗어 날아갈 땐 청량감이 느껴졌다. 이런 게 야구의 매력인가 싶은 맘이 들 정도로 진후마저 홀려버리는 덕만이었다.


빡세게 고생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한 덕분에 조금 있던 군살이 빠졌고 잘생긴 얼굴은 날카로운 매력이 더 해졌기에 입단만 한다면 팬을 끌어모을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저 녀석의 사생활도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모를 시한폭탄이란 것을 상기한 진후는 전담팀이라도 꾸려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관중석으로 한단장과 박대리가 돌아오는 것을 발견한 진후는 슬며시 통화를 종료했다.

진후의 곁에 다가온 한단장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고 진후는 한단장에게 말을 걸었다.


"일은 다 보신 건가요 바빠 보이시는데."


겉으로 의뭉을 떠는 진후에게 닥치고 황덕만의 정보나 내놓으라고 말하고 싶은 맘을 숨기기 위해 과장되게 웃느라 한단장의 볼이 살짝 떨려왔다. 부들거리는 얼굴로 한단장은 간신히 대답했다.


"뭐 이제부터 바빠 지는 거죠. 그런데 오늘은 일찍 안돌아가시나요?"


바쁘다는 핑계로 야구장에 오자마자 쓰윽 보고는 좋은 선수는 없는 것 같단 말만 하고 바로 돌아가 버린 경우도 있었기에 한단장은 옆에 앉은 짜증 나는 사람이 빨리 사라져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늘은 바쁜 일이 없어서요. 그리고 저 선수 잘하네요."


진후가 가리키는 손끝에는 이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덕만이 있었다.

놀리는 게 확실한 제스쳐에 한단장은 입을 닫고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한단장의 계획은 경기가 끝나면 유정고 감독과 황덕만을 설득해 2차 1번으로 무조건 뽑아 줄 테니 이 경기를 끝으로 더 이상의 고교대회 출전을 막는 것이었다. 뽑고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던 선수단 단체 삭발을 시키건 간에 뽑고 나서 버텨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고교 선수에게 드래프트를 미끼로 선수 운영에 관여하게 된다면 불법 청탁이었지만 평생 바르게 살아온 한단장이 불법을 불사할 만큼 황덕만에 목마른 상태였다.


이 경기가 조용히 묻히기를 바라는 한단장은 혹시나 기자들이 왔나 싶어 관중석으로 올라오기 전에 확인까지 했다. 기자도 없었으니 고교생이 홈런 하나 친 거 가지고 기사가 날 일도 없었고 이대로만 경기가 끝났으면 했다.


도와주는 김에 확실하게 좀 도와달라고 하늘을 바라봤지만 길었던 장마가 무색하게 오늘은 빗방울 하나 내릴 기색이 없었다.


이제 덕만의 타석. 제발 덕만이 아웃당하길 기도하던 한단장은 기도의 대상이 잘못됐다는 걸 느끼고 북명고 투수에게 간절하게 기원했다.


'이번에 삼진 잡으면 내가 책임지고 내년에 꼭 뽑아줄 게 아니면 제발 볼넷.'


한단장의 희망과는 다르게 북명고 투수는 굳은 얼굴로 덕만을 맞이했다. 주자도 없는 상황에 지난 타석에 홈런 한 방 맞았다고 도망을 친다는 건 에이스가 할 짓이 못되기에 북명고 감독도 대결을 지시했고 투수도 한번 싸워 보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초구 몸쪽 깊이 들어가는 속구에 덕만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자체 청백전에서 유정고 투수들은 전부 박살 내봤지만 유정고에선 이 정도로 수준 높은 몸쪽 속구를 구사하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타자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투수는 2구로 슬라이더를 선택했다. 전국에서 이름 좀 날리는 투수의 변화구를 처음 접해본 덕만의 방망이는 크게 헛돌았고 한단장의 얼굴도 환하게 펴졌다.


'같은 거 하나 더'


어느새 북명고 투수의 코치로 빙의한 한단장은 볼배합까지 정해가면서 간절히 두 손을 맞잡고 기원했다. 투수와 맘이 맞았는지 유인구 성으로 낮게 슬라이더가 볼로 들어 왔지만 덕만은 반응하지 않았다.


'선구안도 있는 건가?'


방망이가 따라 나갈만한 좋은 공이었다. 프로 수준엔 못 미쳐도 고교에선 충분히 헛스윙 삼진을 노릴만한 공. 볼카운트는 1볼 2스트라이크 투수는 유인구를 하나 더 던져 속이기보단 타자가 손 댈 생각도 못 했던 몸쪽 속구로 승부를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완벽한 속구에 초구 때랑 다르게 타자가 반응했다.


오른팔을 몸통에 딱 붙어 짧게 나오는 방망이가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허리 덕분에 힘차게 돌아갔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팔로 팔로우 스로를 하고 멋들어지게 왼손으로 방망이를 던져 빠던까지 한 덕만은 거만하게 자신의 타구를 감상했다. 결과는 중앙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


'여기서 티라노 타법이 왜 나와?'


완벽하게 들어간 몸쪽 공을 홈런으로 넘기는 건 현역 한국 프로 야구 선수 중에서도 극소수의 선수만 가능한 타격이었고 몸쪽 공을 대처하기 위해 팔을 최대한 몸통에 붙이고 힙턴과 허리힘만으로 담장을 넘기는 타격 기술을 가진 건 한두명 뿐이었다.


투수도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어안이 벙벙한진 멍한 얼굴로 포수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라운드는 침묵에 휩싸여있었다.


"와 시원하게 치는구나."


옆에서 손뼉을 치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사장에게 한단장은 처음으로 살심이 들었지만 일부러 쳐다보지도 않고 앞만 보면서 멘탈을 다스렸다.


'아직은 괜찮아. 연타석 홈런이라도 기사 한 줄만 나가서 단신 처리되면 막을 수 있다.'


고교야구 배트의 재질이 알루미늄에서 나무로 바뀌면서 홈런 수가 급감했고 연타석 홈런도 1년에 몇번 나오지 않는 시절이었기에 무조건 기사가 하나는 나가는 건 확정이고 다른팀에게도 이목을 끌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투수는 강판되지 않았다. 덕만에게 홈런을 맞은 건 전부 솔로 홈런이었고 홈런 때문에 멘탈이 흔들려 사사구를 내줘도 유정고 자체가 워낙 약했기 때문에 크지 않은 점수로 막았던 것이었다. 내년을 위해 에이스를 강하케 키워야 하는 북명고 감독 입장에선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다 치고 계속 경기를 끌고 가야 했다.


북명고 감독이 생각이 있다면 저 괴물 같은 놈과 승부는 하지 않을 테니 이제 덕만에게 남은 기록은 전부 볼넷이 될 거라 생각한 한단장은 초조하게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덕만의 3번째 타석 당연히 고의 사구가 진행될 줄 알았는데 북명고 감독은 볼넷을 염두에 두고 어렵게 승부할 것을 지시했다. 한단장은 승부를 나서는 북명고 감독을 당장 쫒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2번이나 홈런 맞은 타자를 극복해 보라는 감독의 지시를 받은 투수는 신중하게 승부에 임했다.


심판의 볼 판정이 후한 고교야구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맘먹은 북명고 배터리는 바깥쪽으로만 집요하게 공을 던졌다. 어느새 풀카운트. 단 하나의 공만 남겨둔 북명고 투수는 볼넷을 마음먹고 바깥쪽으로 던졌다. 자신이 노렸던 목표보다 안쪽으로 날아가는 공을 타자는 왼발로 배터 박스 끝을 밟고 팔을 쭉 뻗어 스윙했다.


딱 하는 소리와 관중석에 '안돼'라는 비명 소리가 동시에 울리면서 덕만의 3연타석 홈런이 완성됐다.



끝없이 울려대는 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하염없이 차장만을 바라보는 한단장과 진후는 말 없이 사무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오늘 진후 측 시나리오는 어떻게든 덕만을 이슈에 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카메라를 숨겨 배치하고 아마 야구 전문 기자도 섭외해 뒀지만 덕만이 알아서 스타로 등극해버려 자연스럽게 할게 없어진 진후는 흥겨운 마음으로 기사를 검색하고 있었다.


- 고교야구 대형 신인 등장 유정고 황덕만 3타석 연속 홈런!


- 16년 만의 대기록 깜짝 스타 탄생. 황덕만은 누구인가?


- 위기의 팔콘스를 구원할 인물이 내려오는가 그 이름 황덕만


작가의말
 감기 조심하세요. 날이 급 추워졌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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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가을 20.10.16 90 2 14쪽
47 누나 믿지? 20.10.14 115 3 12쪽
» 안돼 20.10.13 99 4 13쪽
45 사색 20.10.12 111 3 13쪽
44 이별남 20.10.11 129 2 14쪽
43 점검 20.10.09 129 3 13쪽
42 포에버 20.10.08 122 3 11쪽
41 자강두천 20.10.07 135 4 12쪽
40 사람이 문제다 20.10.06 136 4 11쪽
39 지져서? 20.10.05 146 6 12쪽
38 내비게이터? 20.10.03 139 4 12쪽
37 삼부완성 +1 20.10.02 143 6 13쪽
36 몸에 문제 있어? +2 20.09.30 167 4 11쪽
35 사람이 변하나요 +1 20.09.29 153 5 12쪽
34 야구가 하고 싶어? 20.09.28 159 3 14쪽
33 생존왕의 상태도 이상하다 20.09.26 162 5 13쪽
32 삼부지자 +2 20.09.25 187 5 15쪽
31 귀인님의 상태가 이상하다. +2 20.09.24 179 5 13쪽
30 무산 20.09.23 178 4 12쪽
29 자진 사퇴 +2 20.09.22 191 6 12쪽
28 착한 해드샷 20.09.21 186 4 12쪽
27 야구 같은 걸 왜 해요? 20.09.19 207 6 12쪽
26 은퇴하시죠 20.09.18 186 6 13쪽
25 요행수 20.09.17 197 6 16쪽
24 닭집아저씨 +2 20.09.16 201 5 15쪽
23 쓰윽 +2 20.09.15 20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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