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논 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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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백일
작품등록일 :
2020.09.05 23:48
최근연재일 :
2020.11.0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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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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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샛별 (4)

DUMMY

오전이란 말을 유독 강조한 주교.

유다는 설마 하는 마음에 계속 묻는다.


“아니, 잠깐만요. 정오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럼 방금 전까지 멀쩡했다는 소리에요?”

“비슷합니다. 일단 앉으시죠.”


주교는 요정들이 엉성하게 만든 의자를 권했다.

톡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나무의자.

둘은 불안해하며 엉덩이를 붙였지만,

둘이 가벼워서 그런 건지 의외로 의자가 튼실한 것인지 부서지는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주교는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인 안락의자에 앉은 채.

쓰러진 기사를 방치하고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없습니다.”

“응? 이름이 없다고?”

“버린 지 오래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주교나 사제라고 부르고 있고요.”


그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연륜과 신실함이 돋보이는 그의 모습.

수인은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배교자는 불편함을 느껴 괜히 헛기침을 한다.


“신기하네. 그럼 주교, 단도직입적으로. 나랑 유다는 떨어지는 빵가루를 얻어먹으러 온 거야. 목숨까지 걸고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새···흠흠. 제 성기사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곤욕을 치루지는 않았는지요.”

“딱히? 이건 그냥 범죄자 소탕이나 마찬가지잖아.”

“네?”

“탈주한 외신이나 무당들. 강해지려고 규율 어긴 놈들 때려잡는 일이라고. 우리는 그 놈들의 마력을 받아먹고.”


앨리스는 말을 이어가며 눈을 살짝 찌푸렸다.

조금 이상한 주교의 반응.

정확히 말하면 살짝 당황한 것이 눈에 보인다.

잠깐 크게 뜨였다가 되돌아오는 눈.


“아, 그렇지요. 여기서 자체적으로 교구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실은 성기사 하나뿐인 곳이라.”


그러나 그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주교의 노력이 통했는지 눈치를 채지 못한 유다.

유다는 곳곳에 있는 십자가나 성상을 보고 있었다.


“유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뇨. 저, 그게···여기저기 신성한 물건이 많아 보여서요.”

“하하하. 하기야 여기는 자치령인데 이렇게 버젓이 주교와 성기사도 모자라 천사까지 있다는 게 놀랍기는 하겠죠.”

“네에. 성기사 안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위축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유다는 슬쩍 간을 본다.


자치령 한가운데.

고립된 지역에서 천사가 있다며 천교를 전도하는 자.

교회의 개입이 금지되었는데 우연히 이곳에 고립된 이.


배교자의 눈에는 탐탁치 않았다.

우연이나 고립을 가장한 개입이 아닐까.

하다 못해 환대의 숲도 원래는 제국법에 따르면 접근 금지인데.

실제로는 북부에 머무르는 기사라면 한두 번 방문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외신이 환대의 숲을 통해 자주 빠져나오니.


반대로 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주교의 말대로 교리를 그대로 두고 양식을 바꾼 다음, 전례나 풍습 등을 받아들이면 외신들이 자신의 편이 되는 것인데.

제국 몰래 교회가 일을 꾸미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냥 내 상상이니까 신경 쓰지 마.


물론 모든 건 유다의 선생이었던 에말의 생각이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데 왜 안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

종교만큼 동조를 일으키는 요소가 없다면서 했던 투덜거림.

애초에 외신이 하늘을 믿을 리 없다며 웃으며 넘겼던 망상들.


헌데 비슷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더러운 진홍색의 주교복을 입은 사람이.

인간이 이곳까지 들어와 외신과 무당이 가득한 땅에 천교를 전도한 일이.

종교를 도구로 요정을 비롯한 가지각색의 외신을 부려먹는 작자가.

눈앞에.


“성기사라. 확실히 이곳의 사람과 반신, 그리고 외신까지. 당연하게도 싫어했지요.”


끼익끼익.

그의 음성에 대답하듯 안락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뒤로 흔들린다.

흔들림에 따라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는 주교.


“모든 건 천사 덕택이었습니다. 우상에 가깝기는 하지만 천교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저의 가르침을 따르고, 저희들의 보살핌에 적극 찬성하게 된 것까지.”

“그게 궁금해요. 도대체 그 천사라는 게 뭐에요? 외신 맞죠?”

“직접 보면 조금 깰 텐데.”


그 때까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천사를 찬양하던 그는 얼굴을 굳히며 혀를 찼다.

주교의 반응에 유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천사, 하늘의 사자는 생각보다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 그래서 외신이냐고요 아니냐고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유다.

큰 결례를 범했지만 주교는 꼼짝 않고 턱을 쓰다듬었다.

느긋하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그래. 아무래도 궁금하겠지요. 천사와 관련된 민간의 이야기가 하도 널리 퍼져서, 거기서 천사 모습의 외신이 탄생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유다가 가려워하던 곳을 시원스레 긁어준다.

그의 침착하고 정연한 태도에 입을 꾹 다문 유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희가 모시는 천사는 두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외신임과 동시에 진짜 천사이기도 하죠. 적어도 천사 본인이 하는 말에 의하면.”

“네?”

“무슨 소리야?”


주교의 발언에 놀라움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유다와 앨리스.

주교는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까닥이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지붕이 뻥 뚫려 잘만 보이는 겨울날의 하늘.


“저기서 여기까지 왔답니다.”

“그걸 믿으세요?”

“직접 보면 긴가민가 할 정도죠.”


유다가 코웃음을 쳤지만 주교의 태도는 여전했다.

부드러우면서도 위엄과 진중함이 돋보이는 모습.


“천사가 부리는 신비가 기적인지, 주술인지, 그것도 아니면 고위 마법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교님은 신성이 없으신가요?”

“네. 저는 마법사입니다.”

“어?”


그의 대답에 유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계적으로 정돈된 신비와 마력을 부리는 자들.

비전과 원소와 희생.

개중 비전학파 중에는 전번의 블론디처럼.

마력 자체를 다루며 마법의 종류가 가장 다양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때문에 마력덩어리들을 잘 잡는다는 점.

기사, 성기사 못지 않게 위협적이라는 점.

마력과 믿음으로 이루어진 외신 잡는 귀신.


유다가 주먹을 꽉 쥐고 경계하자 주교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주먹을 쥐었다가 펴자 손안에서 피어나는 불꽃.

앨리스-피샤-의 여우불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커다랗게 타올랐다.

주교의 마력을 연료로 삼아서.


“불···”

“보시다시피 저는 원소학파의 사람입니다. 제가 비전마법을 다루는 자였다면 이미 외신들에게 뭇매를 맞아 시체가 되었겠죠.”


훅.

손을 내리자 순식간에 사라진 불꽃.

유다도 조심스레 다시 자리에 앉는다.

멍하니 주교를 쳐다보는 앨리스.


“너 도대체 몇 위계야. 아무런 준비도, 주문도 없이 마법을 부리다니.”

“여기에 고립되기 직전에 4위계 서임을 받았죠.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기엔 5위계는 족히 돼 보이는데.”

“그 정도까지는.”


그는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홍색 수단.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순단의 핏자국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유다가 쳐다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는 주교.


“그럼 유다가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천사를 뵈러 가죠. 도적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을 소탕하는 아~주 중요한 일은 그 분에게 보고를 해야 하니. 아, 그 전에 일단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나서···”

“주교님!”

“네.”


주교의 끝없는 중얼거림.

유다가 또 주교의 말을 끊었지만 그는 짜증을 내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식은땀을 흘리는 유다.


계속, 계속해서.

주교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던 궁금증.

초면에 굉장한 결례가 되는 질문.

호기심 가득한 소년은 결국 입을 열었다.


“그···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유다. 나이 하나 가지고 너무 긴장한 거 아닙니까.”


결례를 범했음에도 소년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주교.

그는 반백의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수염이 듬성듬성 자란 턱을 쓰다듬었다.


“제가 어느 정도로 보이시나요?”

“음···쉰 하고 셋 정도?”

“마흔 아홉.”


가기 다른 대답을 내뱉은 무당과 외신.

늙은이는 두 대답에 쿡쿡 웃으며 기사를 업었다.


“전 올해로 스물 아홉입니다.”

“네?”

“???”


서른에 가까운 스물 줄의 늙은이.

겉보기에 쉰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주교.

여러 마을의 일을 보고 관리하며 갖은 고초를 겪은 그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늙은 감이 있다.


“가시죠. 목욕하러.”


주교는 온유한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다.


***


“아무리 생각해도 그 주교 이상한데.”


유다가 중얼거렸다.


“우리 주교님이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 만날 높은 사람처럼 굴려고 하고, 꿋꿋하게 저 수단만 고집하고, 어떻게든 있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기까지. 원래는 마법사인데 말이야.”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죠?”

“그럼. 우리 모두 멀쩡해.”


티오네의 대답에 유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냐. 뭔가 잘못 됐어. 백발이 다 돼 가는데 스물 아홉일 리 없잖아.”

“유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잖아. 어떻게 그 얼굴···그 외모로 스물 아홉이냐고?!”


경악할 정도의 외모.

결혼을 했다면 손주를 볼 나이.

그렇게 생각했는데 스물 아홉.

연륜이 묻어 나왔는데 스무 줄.

유다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듯한 존재를 보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런 소년을 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는 청년.

이런 자잘한 것에도 예민하고 감정적이다.

자신이 쓰러진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진 모르겠지만.

역시 자신의 사정을 숨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일 터.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신경 쓰네. 이게 목숨 걸고 손에 피 묻히러 갈 사람의 태도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누군가 해준 조언이에요, 들개.”

“그러다가 한 치 앞도 못 보고 어어? 하는 사이에 죽는 거야, 아가씨.”

“뭐야?”


목욕을 마친 셋은 응접실에서 천사를 기다리고 있다.

응접실이 따로 있을 정도로 호화스런 복층 저택.

마을과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저택은 나무나 지푸라기, 흙으로 만든 집과는 겉보기부터 달랐다.

질 좋은 벽돌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만든 집.


주교가 우상이라고 표현한 것답게 거주지부터 남달랐다.


머리를 다시 묶기 귀찮았던 유다는 기다란 머리를 내버려둔 채.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머리칼.

고개를 까닥거리면 아름답게 찰랑거린다.


“와우, 머리 움직일 때마다 예술이네. 안 그래 아가씨?”

“자꾸 아가씨라고 할래? 이건 엄마를 기억하려고···”

“네 어머니는 옆에 계신 분 아니셨나, 지모신?”

“둘 다 그만해. 그리고 티오네, 천사는 어때?”


툭 하면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

앨리스는 열흘 내내 둘의 싸움을 말리며 여기까지 왔다.


‘괜히 왔나. 두 사람 관계도 최악이고, 목숨까지 걸고 강해지려고 온 건데, 천사는 또 늦게 오고.’

“아, 천사님은 뭐···그냥 평범한 천사인데.”

“그러니까 평범한 천사가 도대체 뭐냐고.”

“모두에게 상냥하고 배려심이 넘치며 모두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만 장난끼도 넘치시고. 또···기적을 부리실 수 있다?”


성기사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말했다.


“기적? 동시이처존재라도 부리시나?”

“그냥 분신이라고 말하면 될 걸 되게 어렵게 말하네.”

“그게 옳은 표현이야, 이 멍청아. 분신은 나도 주술로 만들 수 있어.”

“야. 그건 분신이 아니라 인형이지 인형!”

“둘 다 아주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


갑작스레 들리는 묵직한 목소리.

유다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난 뒤에 있는데 뭣들 하고 있나.”

“아니, 주교님.”

“아이 씨, 깜짝이야. 또에요?”


주교의 말대로 그는 셋의 뒤에 떡하니 서있었다.

예의 그 진홍색 수단을 갈아입지도 않고서.

특히 제일 놀란 유다는 그를 바라보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한편 기사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살짝 놀랐을 뿐.


“어, 언제 아무 소리도 없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네. 자, 나 말고 다시 앞을 봐야지.”

“네?”

“오, 천사님. 오늘도 소리 없이 짠, 하고 등장하셨네요.”

“네가 그 천사?”


기사가 천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소리와,

천사에게 천사냐고 시큰둥하게 묻는 앨리스.

유다도 얼른 똑바른 자세로 앞을 바라보았다.


금발에 가까운 연한 갈색 생머리.

가늘고 긴 팔다리와 새하얀 피부.

레이스가 달린 하늘하늘한 원피스.

유다 이상의 아름다운 외모까지.


“어, 어···”


하지만 유다가 놀란 건 그런 요소가 아니었다.

아리따운 미녀의 모습을 한 것에 놀라지 않았다.


날개.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커다랗고 새하얀 물건이.

크고 작은 여섯 쌍의 날개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천사다.”


유다는 날개를 보고 잠시 황홀경에 잠겨 그렇게 중얼거리고 입을 멍하니 벌렸다.

찰나의 시간동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며 혀를 놀리는 천사.


“폰, 뭐하다가 이제야 온 거야.”


천사의 첫마디에는 애교와 투정이 가득했다.

누군가에게 애교와 앙탈을 부리는 것처럼.

천사의 육성을 듣고 정신이 멍해진 유다.

그건 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천사? 천사면 나이가 몇 천 살은 먹었을 텐데 애교를 부린다고?’

“천사님. 손님들에게 먼저 인사를···”

“딱딱하게 굴기야? 응?”

“저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주교, 폰은 이곳에 오며 버렸던 이름이 불리자.

민첩한 몸놀림으로 창문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쿵, 하고 벽에 박는 소리만이 들릴 뿐.

그는 보이지 않는 벽에 박은 머리를 감쌌다.


쿠흐흐, 조금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는 천사.

유다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앨리스를 껴안았다.


“폰. 너는 내 건데 어딜 도망가려고 그래?”

“천사님. 저 지금 집무실 고치느라 바쁩니다.”

“어머, 요정을 부리는 게 고치는 일이야?”

“집요정은 통제하지 않으면 장난을 치기 마련이니까요.”


주교는 꿋꿋하게 아픔을 참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재미없다는 듯 볼을 부풀리는 미녀.


“나중에는 반드시 놀아드릴 테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정말? 진짜지!”

“약조 드리는 바입니다. 그럼 이만!”

“꼭이야!”


죽교는 진홍빛 옷을 휘날리며.

창문을 와장창 깨부수고 화려하게 응접실을 탈출했다.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황상태에 빠진 유다.

입을 벌리고 멍하니, 흐린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유다의 품 안에 있던 앨리스는 무당의 볼을 톡톡 건드리며.


“유다, 유다. 정신차려.”

“아, 아···어.”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유다가 앨리스의 손에 반응하여 눈길을 준 순간.

몸이 으슬으슬 떨려 복슬복슬한 여우를 꼭 껴안는다.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자기 왜 추워지는 거야?”

“주교가 창문을 깨부수고 나갔으니까.”

“애가 얼마나 심약하면 이 정도 일 가지고 이러냐.”


옆에서 혀를 차는 성기사.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걱정.


두 사람과 외신 앞에서 천사는 그 광경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에게 허락을 받으러 왔다고, 티오네?”

“네. 형식일 뿐이지만 주교님은 이걸 강조하니까요.”

“하아. 그럼 이야기나 들어볼까.”


천사는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주교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입을 열기 전까지 보여주던 신비감 따위는 사라진 상황.

앨리스는 그런 천사를 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한 인물에게 집착하는 모습.

나이에 비해 어린아이 같은 행동.

인물에게 집착하는 행태까지.


‘그렇구나, 저 천사. 지금 딱 행동하는 게.’


유다랑 똑같다.

앨리스는 잠시 착각에 빠졌다.


***


유다와 앨리스가 번갈아 가며 하는 설명은 천 년을 산 천사에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뻔하디 뻔한 복수극.

복수극을 상영하기 위해 필요한 힘.

마력을 얻으려 여기까지 왔다는 이유.


‘지루하네. 폰이랑은 언제 놀지.’


천사는 기계적인 대답을 반복하며 유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는 소년.

호기심과 경계심, 긴장이 얽히고 설킨 눈빛.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이 아닌 천사.

마음의 창인 눈으로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


‘그래도 이 아이는 조금 재미있는 걸.’


그리움과 슬픔으로 점철된 복수의 마음.

흔하다면 흔하고, 드물다면 드문 마음가짐.

애틋함에서 비롯된 불길 같은 복수심.


천사는 그 마음을 읽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것들.

누구나 품고 있는 선과 악의 씨앗.


“···여기까지, 우리가 이곳에 와서 천사인 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자초지종이야.”

“흐음. 그렇구나, 여우야.”


때마침 수인의 설명이 다 끝난 참.

천사는 발아한 지 얼마 안 된 소년의 마음 속 새싹을 보고 활짝 웃었다.


“허락은 할 텐데, 몇 가지 궁금한 점만 물어볼게.”

“얼마든지요.”

“기사, 성기사, 반석. 몽땅 죽일 자신이 있어? 네 실력으로. 게다가 규율을 어긴 것들이라지만 동족이나 다름없는 외신이랑 무당까지 힘을 키우기 위해···”

“네. 손에 피를 묻힌 지는 꽤 됐습니다.”


천사의 말을 끊고 즉답하는 유다.

복수에 눈이 먼 소년은 한 치 앞도 보지 못했다.

반면 얼굴을 찡그리고 경계하는 앨리스와,

그건 질문하지 말라고 손사례를 치는 티오네.


“그렇구나~그럼 만약에. 정말 만약에 네가 복수를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고 난 뒤에, 복수를 마치고 나면, 뭘 하면서 살 거야?”

“네?”

“나는 네 품에 있는 여우처럼 엄청 오래 살았단다? 복수를 이룬 인간들이 이후에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지.”

“···”


놀리듯이 말을 늘어뜨리는 천사.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유다가 침묵하며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사이,

천사는 그런 유다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긴장을 풀라고 어린아이에게 그러는 것처럼.

하얗고 말랑말랑한 볼을 잡아 늘어뜨린다.

선의도, 악의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장난끼.


이윽고 천사는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가.

다시 펼치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였다.

유다와 한두 살 적은 미소년의 모습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본질에 가까운 모습으로.


“이쯤 되면 내가 어떤 천사인지는 잘 알겠지? 어릴 적부터 복수를 꿈꾸고 기사의 자리를 위해 노력하던 아이야.”

“네···당신은···루키페르(Lucifer). 오래, 아주 오래 전에 수많은 천사들을 이끌고 하늘의 왕좌를 찬탈하려다 추락한 천사···”

“어머,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네?”

“사실, 사실은 날개가 그렇게 많은 걸 보고 대충 눈치는 챘어요. 보통 천사는 아니구나, 하고.”

“흐응.”

“그리고 천사 치고 좀···좀 짓궂게 구시고. 그런데 엄청 강한 동시에 악랄한 천사 하면 떠오르는 게 것밖에 없어서요.”


천사는 히죽거리며 품 안의 외신을 바라보았다.

땅과 관련되고 암컷의 몸에 깃들었기에.

지모신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여우 외신.


“그 쪽은? 유다의 보호자인데 아무 말도 없네.”

“나이가 많다고 지혜로운 건 아니거든.”


앨리스는 패배를 시인하는 말을 읊었다.

5년 간 성서를 억지로 배웠지만 루키페르의 이야기는 못들어 본 여우.

소녀의 말에 쿡쿡 웃으며 즐거워하는 천사.


“하늘에 있을 때는 즐거웠는데, 여기는 따분해. 그 때는 하루하루가 축제이거나 전쟁이거나 했는데. 여기는 너무, 너무 평화로워.”


천사는 가슴 아파하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잊고 있던 격통이 찾아와서는.

그녀의 가슴과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리고 괴롭힌다.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가장 고통스러운 일.

격통을 넘어선 끔찍하고 괴롭고 험난한 고통.

지루함.


따분함과 심심함이 가득 찬 눈빛을 한 천사는.

벽에 박힌 촛대와 초를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루키페르의 행동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온 앨리스.


“난 땅바닥에 처박힌 신이라 모르겠네.”

“그런 농담도 하실 줄은 몰랐네요, 할머니.”

“내가 나이가 더 많은 걸 어떻게 확신해?”

“제가 아는 한 이 정도 수준의 지모신은 한 분 밖에 안 계시니까요. 저는 천 살이 될까 말까이고.”

“네? 그럼 앨리스 나이가···”


유다는 자신이 모시는 신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신은 눈길을 피했다.

놀란 얼굴의 귀여운, 그러나 마음 속에는 그리움과 분노로 가득 찬 소년.

유다를 바라볼 때서야 천사는 격통을 잊을 수 있었다.

지루함에 찌들어 타락한 천사에게 가엾은 인간만큼 즐거운 장난감은 없으니.


“어때, 나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지?”

“아, 네. 일단 감사합니다?”

“그럼 질문에 답을 해줘. 복수 이후는?”

“그건···”


유다는 망설였다.

무당이 망설이자 외신도,

여우도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옆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성기사까지.


이내 소년은 결심이 선 듯.

혀로 입천장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눈빛을 보고 좋아 죽는 천사.


그도 그럴 것이.

소년의 눈에는 타락한 천사가 좋아할 만한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신비함이 느껴지던 보랏빛이 죽고,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보랏빛이 눈을 대신한다.


“복수를 마치고 나면.”


모든 가엾은 인간이 지닌 감정.

루키페르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

마지막에 다다른 것들의 최후.


“저는 나락으로 떨어질 겁니다.”


광기였다.


작가의말

이백일:(벽의 힘을 빌려 그랜절을 박고 있다)

마그나:(헛웃음을 지으며)자네 지금 왜 그...그랜절?을 하고 있는 건가? 잘못한 거라도 있나?
이백일:네. 따지고 들면 제 잘못은 아니지만, 주교님 말씀대로 저는 표면상 글쓴이. 다시 말해 총책임자는 저이니까 이렇게 사과를 올려야죠.

마그나:(고개를 끄덕이며)흐음. 꽤 성숙하였구만. 1만자를 썼는데도 사과를 하다니. 그래서 사과할 내용이라는 게?
이백일:오늘부로 유다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납니다.

(마그나의 발차기에 넘어지는 유다)

이백일:아 왜요!

마그나:연중인가?! 연중을 하겠다는 소리야?!

이백일:끝까지 들으세요. 잠깐, 아주 잠깐만 끊기는 거에요.

마그나:그럼 휴재인 건가?
이백일:아뇨. 내일부터는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진행되던데요.

마그나:(잠시 생각에 잠겨 대화가 끊긴다)아, 그렇군. 이쯤이었나?

이백일:네. 이쯤이었습니다. 다른 인물을 조명하는 때가.


이백일:그러니까 여러분. 한참 즐거운 와중에 정말 죄송하지만, 원문의 순서에 따라 업로드를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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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너는 케파일지니 (6) 20.10.31 49 4 21쪽
45 너는 케파일지니 (5) +2 20.10.30 48 4 24쪽
44 너는 케파일지니 (4) +2 20.10.27 45 4 16쪽
43 너는 케파일지니 (3) +4 20.10.26 50 4 19쪽
42 너는 케파일지니 (2) +4 20.10.24 57 6 20쪽
41 너는 케파일지니 +2 20.10.23 59 4 16쪽
» 샛별 (4) +2 20.10.22 59 5 22쪽
39 샛별 (3) +2 20.10.21 62 5 16쪽
38 샛별 (2) +6 20.10.20 63 7 15쪽
37 샛별 +2 20.10.19 62 5 16쪽
36 땅의 짐승 (2) 20.10.17 68 5 19쪽
35 땅의 짐승 +2 20.10.16 67 5 17쪽
34 첫번째 뒷이야기 (4) 20.10.15 67 3 11쪽
33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4 70 3 18쪽
32 첫번째 뒷이야기 (2) 20.10.13 69 5 15쪽
31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0 79 3 12쪽
30 Deus Non Vult (5) +4 20.10.09 94 7 35쪽
29 Deus Non Vult (4) +1 20.10.08 97 3 17쪽
28 Deus Non Vult (3) +4 20.10.07 85 4 21쪽
27 Deus Non Vult (2) +1 20.10.06 87 5 18쪽
26 Deus Non Vult +3 20.10.05 147 4 20쪽
25 Deus Vult (4) +1 20.10.03 94 3 20쪽
24 Deus Vult (3) +1 20.10.02 107 5 19쪽
23 Deus Vult (2) +4 20.10.01 92 7 18쪽
22 Deus Vult 20.09.30 150 7 18쪽
21 괴물 (7) +1 20.09.29 157 6 19쪽
20 괴물 (6) +3 20.09.28 109 7 22쪽
19 괴물 (5) +2 20.09.26 104 9 17쪽
18 괴물 (4) +2 20.09.25 157 9 24쪽
17 괴물 (3) +4 20.09.24 137 11 20쪽
16 괴물 (2) +4 20.09.23 122 7 16쪽
15 괴물 +6 20.09.22 154 8 15쪽
14 길들임 (4) +1 20.09.21 115 9 14쪽
13 길들임 (3) +4 20.09.19 163 7 14쪽
12 길들임 (2) +3 20.09.18 123 9 16쪽
11 길들임 +1 20.09.17 140 8 14쪽
10 거울 (4) +2 20.09.16 125 8 18쪽
9 거울 (3) +1 20.09.15 138 8 13쪽
8 거울 (2) +2 20.09.14 132 10 14쪽
7 거울 +5 20.09.12 193 10 14쪽
6 재목 (4) +1 20.09.11 151 9 14쪽
5 재목 (3) +2 20.09.10 165 8 15쪽
4 재목 (2) +1 20.09.09 207 8 14쪽
3 재목 +2 20.09.08 233 10 14쪽
2 광대 (2) +3 20.09.07 307 15 13쪽
1 광대(도입부 수정) +9 20.09.06 533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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