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상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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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캡맨
작품등록일 :
2020.09.0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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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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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대담과 면담

DUMMY

오왕은 준마에 올라타서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으나, 해룡이 아무리 스스로의 기를 죽인다고 말은 공포에 떨었다. 십년 간을 공포에 떤 적이 없는 준마라고 하더라도 용 앞에서는 미물에 불과했다. 오왕은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말이 해안에 있는 용을 피하는 걸 깨닫고는 바로 말에서 내렸다. 병졸들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왕의 명령을 들었지만 들뜨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야, 저게 바로 용이구나.”

“생각만큼 크지는 않지만 저 정도면 사람 하나 정도는 그냥 집어먹겠어.”

“저 위에 있는 놈이 해주라는 녀석인가. 부럽구만.”


병졸들은 자리 앉아서 원을 이룬 체로, 해룡에 대해 평을 해대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들이 집어먹힐 상황이라도 일단 품평을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지라, 병졸들의 입은 쉬지도 않고 흔들렸다.


오왕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작게 말한다고 해도 웅성거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도 어렸을 때 해룡을 봤더라면 감탄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용머리만 해도 자신의 몸통보다도 컸다. 오왕의 준마 정도면 해룡의 머리 정도에 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해룡은 거대했다. 거대함과 높이에서 오는 위압감은 오왕 자신도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오왕은 오왕이다. 단순한 필부가 아니기에 이런 상황에서 긴장에 떨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다문은 오왕이 오자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오왕을 데리고 딱히 어디로 가려고 할 곳을 찾지 못했다. 같은 눈높이에서 대하면 안 될 것이라고 높은 곳을 물색해봐도, 해안에서 높은 곳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룡 머리에 올라서 있는 해주를 보고 내려오라고 하기에는 격식에 맞지 않았다.


정운은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왕이 올 때까지 해룡의 머리에 있다가 오자 내려갔다. 그것만으로도 오왕의 입장에서는 굴욕이었다. 본래 위에서 내려오는 것은 왕이나 할 모양새였다. 법률에 적힌 것은 아니었으나, 심적으로는 그것이 맞았다.


정운은 내려가서 오왕을 맞았다.

“오왕께서는 강령하신지요, 저는 군도를 다스리는 해주라고 하옵니다. 왕을 뵈서 반갑습니다.”

“반갑네. 해주께서는 이상한 능력이 있으신 것 같소. 이런 짐승을 데리고 오니 말이오.”


“하하, 별 것 있겠습니까. 제 애마이지요. 보아하니 오왕의 애마는 먼 길을 오느라 많이 피곤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제가 남은 여물이라도 드릴까요?”

“하하, 됐네. 말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서 말이지. 귀하게 큰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일세.”


“까다롭게 키우시다니, 오나라가 얼마나 부강한지 대략이나마 알 것 같군요. 전쟁도 없는 나라이니 데리고 오신 병졸들도 기강이 엄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기강이 엄한 곳에 와야 엄한 행동을 보이는 법. 여기서 위험한 것이 없는데, 어찌 긴장을 하겠는가?”


“저희 바닷사람들은 일이 언제 일어나는지 몰라서 항시 긴장을 늦추는 편이 없는데, 육지사람들은 그런 걱정이 없이 편하게 사니, 왕의 덕이 얼마나 큰지 저도 알 것 같군요.”


오왕은 해주가 자신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하자 화가 났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대놓고 반격을 한 것도 아니라서 오히려 자신이 화를 내야 하는데, 그것은 왕이 할 짓이 아니다. 오왕은 자만심이 있었고 자만심은 본인의 입으로 털어놓는 것이 얼마나 꼴볼견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해주는 한 단체의 장, 다문이 끼어들 수는 없었고 오히려 자신의 입담과 재기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데, 먼저 시비를 건 입장인 오왕은 제대로 말하기 힘들었다.


정운은 그것을 모르지 않았고 계속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숨이 막힐 것 같은 사람들은 옆에서 보필하는 나루호도와 다문의 몫이었다. 다문은 나루호도에 눈치를 보냈다. 해주의 말이 심하지 않느냐고. 또 나루호도는 다문에게 눈치를 보냈다.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오왕이 아니었냐고.


다문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생각이 부족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공평하지 않다.


다문하고 오왕에게 격의 차이가 있듯이, 해주와 오왕에게도 격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해주는 중앙권력에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한 지방군벌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군벌이 왕과 맞먹으려고 하는 태도가 잘못이 된 것이다.


나루호도도 해주가 좀 심했다고는 알고 있었다. 나루호도가 보기에도 해주에게는 격의 차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나루호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해주가 부인에게 하는 태도 등, 그것은 지방군벌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인이나 현인의 태도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좋았고 그것이 군도에서는 앞으로 핵심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까지도 왔다. 하지만 그것이 오왕에게도 통할 태도인가. 냉엄한 힘의 관계에서 도의나 의리를 논할 수 있는가.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은 오왕이었다.

“하하, 해주께서는 말을 잘 하시는 것 같군. 사신으로 온 나루호도가 어디서 말을 배웠는지 알 것 같소.”


비꼬는 것으로 끝이 나긴 했으나, 화해를 요청한 오왕이었다.


“하하, 무슨 말씀을 제가 나루호도에게서 배운 제자입니다. 제 말솜씨는 스승에 비한다면 비할 바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주께서는 오나라에 사신을 보낸 이유가 무엇이오?”

“그건 나루호도가 잘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런 허울말고 진짜 이유가 있지 않겠소? 자랑은 아니지만, 여余는 왕노릇 오랫동안 해먹었소. 그래도 무언가의 노림수도 없이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로 들리오. 어떻소? 내 생각이 어디 잘못 되었다면 말해 주시오.”


“흠. 오왕께서 그렇게 아신다면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왕노릇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실 것 같습니다.”

“하하, 그것만으로 여기 온 보람이 있소. 사신이 말한 것은 그대로 이행될 것이오.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내가 용을 가질 수는 없겠소?”


“애비가 자식을 파는 걸 보셨습니까?”

“시장 바닥에는 자주 있는 일이지.”


“군도에서는 있을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좋은 시간이었네. 다음에 이보다 더 좋은 곳에서 보길 고대하지.”


오왕은 그렇게 사라졌다.


+


다문은 오왕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오왕은 다문에게 말했다.

“그런 자리에서 네가 뭘 했으면 그게 문제가 되었을 것이야. 그리고 나는 왕이다. 왕이 신하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란 말인가. 자네의 겸손은 오히려 나까지 좀먹게 하고 있어.”


다문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왕이 다문에 말에 가볍게 받아주었다.

“감사하긴 뭘. 그런데 저 해주라는 놈. 뒷조사가 많이 필요하겠어. 군도 쪽에 간자間者를 좀 풀어놓게.”

“알겠습니다.”


“물론 군도에서 간자가 잘 통하지 않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대단찮은 정보가 아니어도 좋아. 일단 놈의 정체부터 밝혀야겠어. 용을 조종하는 놈이라 귀찮은 상대가 되겠군.”


+


나루호도는 해주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해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나설 자리가 아닌데, 그 무슨 말인가. 그래도 오왕을 여기까지 끌고 오다니 잘했어. 사실 반신반의했거든.”


“이런데 해안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그야 해룡을 이용하면 바로 올 수 있지.”


“말씀이 없으셔서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아, 일종의 깜짝 선물 같은 것이지. 네 반응도 한번 보고 싶었고.”


“그러셨군요. 다 계산 속에 넣고 계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일일이 다 말하면 오히려 일에 지장이 생길 것 같은 노파심에 말하지 않았네. 그렇다고 네 공이 없다는 말이 아니야. 앞으로 잘 부탁하네. 나루호도.”


+


나루호도의 귀향길은 평온했다. 임무를 해결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사라졌고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나루호도는 앞의 정운을 보았다. 뱃머리에서 바다를 보는 정운을.


“해주님. 해주님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나? 목표랄 것은 없다만.”


“그런 목표도 없으신 분이 오나라와 연을 맺으시고, 군도를 통합하셨습니까?”

“군도의 통합이야, 선대가 해놓은 것에 잠시 내 손을 올린 것에 지나지 않고, 오나라는 강성하니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안 한다고 하더라도 군도에 무슨 대단한 불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시는 것에는 연유가 있다고 봅니다만.”

“하하, 그런가. 내 목표는 단순하네. 그냥 평안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나만 평안하게 살면 무슨 평안인가? 내 사람들과 함께 평안하고 싶네. 내 식솔들과 내 사람들까지. 그리고 내 사람들의 사람들까지.”


“단순한 목표는 아니군요.”

“아니, 단순한 목표일세. 가는 길이 복잡할 뿐.”


+


백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사사로운 정을 붙이면 안 좋다고 뼈에 새긴 교훈이 아닌가. 그러나 그 뼈를 녹일 사람을 만난다면 뼈에 새긴 교훈이 다 무슨 소용이랴? 백의는 아직 젊었다. 피가 뜨거웠다. 골방에서 수련을 익히느라 멀리했던 것들이 복수를 이루고 나서는 너무도 가까이 다가왔다. 이것이 복수를 한 복수인가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백의는 일부러 아이들과 같이 수련하지 않았고, 거리를 두었다. 폭포에 몸을 던졌다. 몸이 차가워지면 이성적인 판단이 돌아올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을 뿐, 몸이 식으면 뜨거운 것이 너무도 그리웠다. 수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웃으면서 닦을 것과 따듯한 음식을 주는 여인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이것은 백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여자도 아직 젊었고 어렸다. 그러나 너무 어리지는 않았다. 여자도 백의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백전연마의 육체와 반반한 얼굴까지. 심성도 그녀가 만나온 어떤 남자보다 부드러웠다. 이런 남자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백의가 드러내고 있는 무거움에 그녀는 함부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밥을 해주고 따듯하게 대해주는 것.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의 전략은 생각보다 주효했다.


그녀의 태도가 오히려 백의를 안달 나게 만드는 것이다. 섣부른 행동으로 백의의 눈 밖에 날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조심하고 공손했다. 그런 면면들이 백의를 더 조바심나게 만들었다. 백의는 예전부터 여자가 그다지 친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거북한 편에 속했다. 그렇기에 말도 제대로 나누기도 뭣했다. 부인은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편했지만, 그의 곁에 머무는 건 잘 쳐줘봐야 식객일 뿐이었다.




더 재밌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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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너 내 동료 21.05.26 10 0 11쪽
64 64화, 인재채용 21.05.11 21 0 11쪽
63 63화, 스승의 후회 21.05.05 14 0 11쪽
62 62화, 도발과 대응 21.04.28 20 0 11쪽
61 61화, 명불허전 21.04.27 21 0 11쪽
60 60화, 퇴마사 이종 21.04.22 26 0 11쪽
59 59화, 일격필살 21.04.20 18 0 11쪽
58 58화, 의자매들 21.04.13 16 0 11쪽
57 57화, 제전장소 21.04.08 35 0 11쪽
56 56화, 모이는 중 21.04.06 19 0 11쪽
55 55화, 나, 도지사 21.03.18 21 0 11쪽
54 54화. 첨벙첨벙 21.03.09 22 0 11쪽
53 53화, 냉수온수 21.03.03 20 0 11쪽
52 52화, 이목지신 21.03.02 23 0 11쪽
51 51화, 도검매매 21.01.12 28 0 11쪽
50 50화, 제전논의 21.01.05 24 0 11쪽
49 49화, 두 명의 전달자 20.12.31 19 0 11쪽
48 48화, 제전임박 20.12.30 19 0 11쪽
47 47화, 서열정리 20.12.29 23 0 11쪽
46 46화, 주작등장 20.12.24 23 0 11쪽
45 45화. 패도는 10년 20.12.17 17 0 11쪽
44 44화, 대면면접 20.12.16 18 0 11쪽
43 43화, 옥수수의 탄생 20.12.15 21 0 11쪽
42 42화, 입장차이 20.12.10 21 0 11쪽
41 41화, 둥지 속의 이물 20.12.08 19 0 11쪽
40 40화, 붉은 실 20.11.27 19 0 11쪽
» 39화, 대담과 면담 20.11.26 52 0 11쪽
38 38화, 해안의 대화 20.11.24 22 0 11쪽
37 37화, 귤화위지 20.11.17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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