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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0.09.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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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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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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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함께 떠나다

DUMMY

"기다려줘서 고맙네."


등장만으로도 모두의 심장을 멈추게 만들어버린 알로 할아버지가 품에서 천을 꺼내 잘려나온 백작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

그 무감정하게 툭 던진 말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축제에 못간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일이 워낙 바빴던 탓에 가지 못 했네. 자네는 또 그 와중에 자기 편을 여럿 만든 모양이더군."

"딱히 한 것도 없는데요, 뭘."

"대부분의 분위기가 바뀌었네. 광기의 마왕은 이방인. 우리가 무서워해야할 존재는 아닌 것 아니냐고. 여론이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어."

"그거 의외네요."

"...그만 빼지. 이번의 일도 내게 양보한 것이 아니라 내게 강요한 것 아닌가. 내가 오는 것을 알고서."


바로 방금 옛 친구를 베어버린 알로 할아버지에게 괜한 기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알로 할아버지 말대로. 알로 할아버지가 제국에서 나와 이곳을 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알로 할아버지가 와서 내가 해야할 일을 대신해주는 것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정보를 흘려서, 알로 할아버지가 오게 한 건 나긴 해. 아마 그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시겠지? 괜히 나대다 얻어맞지 말고 얌전히 있자.


"다른 건 묻지 않겠네. 누구인가."


이건 어디까지 말해야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황태후가 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해도 과연 그걸 제국에서 믿을지 알 수가 없다.

그 사실을 알로 할아버지가 직접 말한다고 해도, 아마 대부분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으며 묻어버리려 할 확률이 높다.

이미 황태후라는, 제국의 중추나 마찬가지인 사람이 광신자의 일원이라면 그 밑에 과연 몇 명이나 광신자가 있을지 알 수 없잖아?

황성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다른 꽃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던 황태후를 생각하면, 중요 인물들 중 몇몇이 광신자이거나, 광신자에 넘어갔다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아마도...그, 황태후가..."

"그 말에 거짓은 없겠지?"


어라? 반응이 생각보다 많이 약하다. 콩트 백작을 베면서도 많이 망설였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칼같이 잘라낸다고?

알로 할아버지도 나름대로 조사를 하면서 황태후의 이상에 대해서 알아차린 건가? 세상에...그럼 더 개판인 거 아니야?


"제가 할아버지한테 거짓말해서 어쩌게요?"

"...그래. 후우...자네는 좋겠군. 연합도 휘청이고, 제국도 휘청이니, 이제는 더 적이 없겠어."

"하하...할아버지가 멀쩡하신데..."

"나 정도는 쉽게 밀어낼 방법을, 이미 계획 중인 것 아닌가?"

"...에이, 대영웅을 어떻게 쉽게 밀어내요?"


할아버지의 노검을 한 번 보고 따라해봤던 노권. 오늘 할아버지의 새까만 검을 보고나니 내가 붙인 이름이 얼마나 터무니 없던 것이었는지 실감한다.

혹시라도 제국 멸망 시나리오가 잘 안 풀려서 알로 할아버지가 폭주하기라도 하면 정말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저 정도면 진짜 조금만 더 강해지면 파멸 아저씨랑도 맞먹을 수 있지 않을까?


"자네 생각에 내가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어어, 어떤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건지?"

"제국이 영원토록 빛나고자 하는 자의 관점에서 말일세."


흐음...아직 제국은 멀쩡히 있어줬으면 하니까...


"사실 제일 좋은 건 모조리 싹 다 쳐내는 거긴 하죠."

"허나 그건 제국을 빠르게 멸망시키는 수단이기도 할 테지."

"그렇죠, 황태후가 뭐든간에 어쨌든 황제의 어머니인데 황제가 크게 충격 받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부모의 죽음이 얼마나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기는지, 두 번이나 겪어봐 알고 있는 내가 쉽게 꺼내선 안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건 어디까지나, 짚고 넘어가자는 느낌인거지. 이것말고는 다른 쉬운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뜻이고.


"우선, 이번의 백작의 죽음을 온전히 외부로 돌려야할 거에요. 그리고, 최대한 백작의 죽음을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일로 꾸며야겠죠."

"꽃의 존재는 숨겨야 된다는 의미인가?"

"알고 있다는 분위기라도 내비쳤다가는 바로 녀석들이 개입하려고 들테니까 최대한 모르는 척을 해야겠죠."


그냥 광신자의 계략에 당했다는 식으로 둘러대면 될 것이다. 이쪽엔 거짓 증언을 해줄 더드도 있으니 그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광신자에 의해 백작가 전체가 유린당했고, 그 와중에 그것을 알아차린 내가 더드를 보호했다고 하면 더 좋고!


"소운디에이 공작을 한 번 찾아가야겠군. 그래야, 잠깐이라도 제국의 분열을 멈출 수 있겠지."

"듣겠어요?"

"들어야지."


와우, 알로 할아버지가 직접 찾아가서 하는 부탁이라니, 덜덜 떨면서 제발 따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는 거 아니야?


"으음, 그래.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광신자라는 놈들을 방패로 세우는 것보다는 실체가 확실한 저한테 덮어씌우는 게 제일이긴 해요."

"그건 내가 그러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그러자고 할 것이다."

"막아주실 생각은...?"

"있네."


[퀘스트 발생! '스스로 증명하라' - 제국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셔야 합니다! 길고, 아주 길고 긴 여정이 될 테죠!]


...잠깐, 보상 없어? 너무하네 정말.


"다만, 그것만큼은 내가 제안할 수 없네. 나와 자네는 한때나마 함께 일을 했으니, 그에 대한 의심을 품은 이들이 있을 것이야. 그러니 자네가 직접, 제국을 찾아와 이번 일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에 대한 제안을 해야할 것일세."

"와아, 너무 귀찮은데."

"그럼 조용히 제국을 위한 제물이 되어주는 것도 괜찮을테지. 난 사양하지 않겠네."


스릉.


검집에서 조금 뽑혀나온 검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 나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다.

젠장...이제 자기 사람 아니라고 너무 막대하네...


"알겠어요. 그럼 같이 갑시다. 이번 일에 대해서 해명하려면 그런 모양새가 되어야 맞는 거잖아요?"


아이들에게 붙잡아 뒀던 더드를 데려 오라고 한다. 운이 좋다, 아직 개조 수술은 안 했으니까.

한숨과 함께 등을 돌리는 알로 할아버지의 뒤에서 파이와 조용히 마주보며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파이가 많이 약해져서 고생시키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이니까 이번에는 힘 좀 써줘야겠다.


"...조금, 적당히 하지 그랬나."

"네?"

"자네라면 이 친구의 막내가 저지른 일도 더 부드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원망하는 거에요?"

"그래."


서로 황족파와 귀족파로 파벌이 나뉘어 다투기는 해도 알로 할아버지는 콩트 백작을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황태후 아줌마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니 확실히, 방향은 달라도 바라는 것은 같은, 뭐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네.


"난 이 친구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았네. 내가 막 기사가 되었을 때, 그때 내 옆에서 알짱거리던 귀족 가문의 꼬마였지."

"...그래요?"

"황태후께서는, 그런 꼬마가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을 때 앞에서 박수를 쳐주던 꼬마였고..."

"...그래요..."

"그 꼬마들이 커서 늙는 것을 모두 보아온 내게, 참 너무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모든 기사가 따르고자 할 그 뒷모습이 참 쓸쓸해보인다. 보는 이도 없는데 잘 들리지도 않게 한숨을 쉬는 것이, 어른이란 것일까.

팔짱을 낀 채 살아오며 지켜보고 함께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노인의 안타까움과 슬픔.

...하여튼 참, 미워하기 힘든 할아버지다. 제국을 무너뜨리려면 빨리 정을 때거나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네, 내가 그때 자네가 열쇠를 훔치는 걸 그냥 넘어갔거나, 자네가 솜씨가 좋아 내게 들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더라면 지금의 이 모든 사실들을 그저 모른 채, 유유히 늙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


그렇게 말하면 나만 미안해진다. 광신자들이 이 사단을 내는 것도 모두 나 때문이니까. 나를 원망한다 말했으면서도 끝까지 내게 책임을 묻지 않으니 더 그렇다.


"나는 변하지 않았노라 굳은 의지로 검을 휘둘러왔다 생각했는데,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다니...자네는 이런 기분을 아는가?"

"뭐, 비슷하게는..."


알로 할아버지의 옆에 서서 따라 팔짱을 낀 채 싸늘하게 식어버린 백작을 내려다본다.


"멀쩡한 상태였으면 어려웠을 거예요. 이래저래 찾아보니까 보통은 아니더라고요."

"당연한 소리. 그는 백전노장이다. 아무리 자네가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룬 괴물이래도 쉽게 이길 수야 있겠는가."

"그런데 더드 그놈은 대체 왜 그 모양입니까? 사람이 너무, 짜치던데."

"아내가 죽으며 남긴 아이라 너무 오냐오냐했던 모양일세. 위의 두 형들도 나이차가 조금 있다보니 그 아이를 마냥 미워하지 못하고 많이 보살펴주었으니, 완전히 제 세상이었겠지."


그런 와중에 꽃과 마주쳐서 더 망가졌고? 들어보니 온갖 열등감이란 열등감은 다 가지고 있던데, 아마 꽃이란 것들이 옆에서 계속 말을 해댄 것이겠지.

누가 당신보고 이렇다더라, 누구는 어쩌고저쩌고, 그놈들은 그런 것이 특기인 것 같으니.


"요즘 제국에 뭐, 큰 문제 있어요? 이번 거 빼고."

"흐음...대마왕 중 하나인 고독이 나타났네. 희망의 대영웅이 남긴 흔적을 더듬어 오는 모양이더군."

"대마왕은 좀..."

"내가 따로 토벌을 하려 했으나, 어느 순간 단절된 공간에 숨어 던전을 만들어버렸네. 여러 이방인들이 토벌하려 들어가긴 했으나, 진전은 없는 모양이야."

"흠..."

"관두게. 고독은 자네와 상성이 좋지 않아."


뭐, 그렇다면야. 혹시 모르니까 고립된 바다로 편지나 한통 보내보자. 희망의 대영웅이 이겼던 고독이 살아서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고.

소환자 아저씨에게서 고독과 희망이가 싸운 이야기를 들었다면 자기도 희망이처럼 고독과 싸워보겠다며 달려올지도 모르지.

아니라면, 정의로운 마음으로 짜라란 등장할지도 모르고.


"이제는 정말, 내 눈이 제대로 된 길을 보고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군."

"해보면 알겠죠. 제국이 뭐 잠깐 휘청한다고 망할 덩치도 아니고."

"상처가 곯고 곯아 터질지도 모를 일이지."


잠시 뒤, 멍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더드에 빠르게 백작의 시체를 정리하여 제국으로 갈 준비를 한다.


"가는 길에 자네 이야기나 듣지."

"그래요...너무 기대하진 마시고."

"자네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남자야."


내 이마를 툭 치고는 앞장서서 걸어간다...걸어가는 거야? 제국 수도까지? 진짜?


"긴~여행이 되겠네요."

"일주일이면 짧지."

"......긴~~~여행."

"짧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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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인방인방 21.06.04 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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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근면성실-외전- 21.05.29 9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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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마왕이 말하는 평화 21.05.26 9 1 12쪽
239 희망은 마왕 21.05.25 1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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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기다림과 외로움 21.05.21 11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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