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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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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

DUMMY

"자네는 가진 힘에 비해 굉장히 신중한 편이군. 수를 계속 숨겨두었다가 헛점을 찌르는게 좋은 건가?"


몰려오는 몬스터 무리를 함정에 빠트려 죽이는 것을 본 알로 할아버지의 평가였다.

아니...내가 뭐, 당신처럼 어마어마하게 강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큰 기술이 쓰고 나면 못 움직이는 류의 기술인데 어떡해 그럼...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촌장님이 나서서 알로 할아버지의 말에 대답한다.


"말씀대로 신중하신 것이죠. 대영웅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인광님은 언제나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왔습니다. 그런 자들과 싸우려고 한다면 당연히 정공법보다는 신중하게 수를 읽고, 준비를 하여 어떤 강자라도 버티기 힘든 상처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수련이 부족하단 의미입니다. 쓸 수 있는 수가 많다면 그야 당연히 좋은 일이죠. 싸움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살펴보며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강하지 않다면 결국엔 예식용 검처럼 화려하기만 하여 날이 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허허허! 예식용 검이라니요, 비유가 참 특이하십니다. 다양한 도구로 무장한 베테랑 용병이 오히려 더 올바른 비유일테지요."

"허어, 어르신께서는 인광 군을 너무 오냐오냐하십니다. 그리고 그 비유라면, 제 눈에는 너무 많은 도구를 몸에 걸쳐 모두 다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르신이라니요...저와 기껏해야 10년 조금 차이 나는 나이에 자신을 너무 젊게 보십니다, 대영웅."

"아직은 제국을 짊어져야 하니, 젊게 살아야지요."


무섭다. 두 할아버지들의 점잖은 말다툼에 피부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불편함 느낌이 든다.


"저기, 두 분 다 적당히 하시죠? 에?"

"자네는 그 말투를 좀 바꿨으면 좋겠어. 그게 대체 뭔가? 뒷골목 양아치 같은 경박한 말투하고는."

"대영웅께선 자꾸 자신의 아랫사람을 자신의 기준대로 찍어내려는 모습이 보이십니다. 아직 젊으셔서 견문도 좁으신 분이라 그런지 꽉 막힌 말을 하시는지."

"...허허, 연륜은 못 당하겠습니다, 그래. 그 오랜 경험으로 인광 군을 조금 더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셨다면 참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이번 여행은 다른 사람 없이 촌장님과 함께다. 더드? 그건 일행이 아니라 짐이지.

파이는 여행에 데리고 갈 수가 없고, 아이엔은 파스티엔에게 열심히 훈련받는 중이고, 제국에게 화가 나서 찾아온 진이 모닥이와 창이를 붙잡고 훈련시키는 중이라 모닥이도 없다.

찍찍이나 자연이는 아랫것들 일시키기에 최적화된 능력을 가진 터라 한참 개발되어야 할 나라를 위해서 함부로 데리고 나갈 수가 없고.

기들핀은 새로운 무기를 받으러 가겠다며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우겠다 해서 현재 나라에 없다.


'...아니지, 걔네들 중에 누가 있어도 두 사람 사이에는 못 끼지...'


우리 일행 중 제일 어른이자 만능맨. 그 능력은 다른 모든 일행에게 인정받아서 아마 내가 없으면 촌장님의 내 대리를 해줄 것이고,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저번 파스티엔의 건으로 심력도 얻은 듯 하니, 점점 더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는 중이다.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성장이라니, 이건 내 탓이군. 후우, 나란 놈은 정말...!


"그, 저희들 출발한지 아직 두 시간도 안 됐는데 이러다 저희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이 돼도 제국에 도착 못 하겠어요?"

"걱정말게. 미리 연락은 했으니 적당히 늦어도 이해할 걸세."

"그거야 제국의 사정이지요. 인광님은 저희 인광국의 왕입니다. 집단의 우두머리가 자리를 오래 비워야쓰겠습니까."

"이방인들이 그런 걸 신경쓰진 않을 텐데요. 듣자하니, 이방인들 나름의 통신 수단도 있으니 자리를 조금 비운 것 정도는 상관 없을 테지요."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자리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모르시는 겁니까. 오랜 시간 황제를 보필해오신 분이 참 너무하십니다."


...거의 두 시간동안, 계속 이런 상태다.

알로 할아버지가 거의 70이고 촌장님이 80근처. 둘 다 겉으로만 봐서는 노신사라 점잖 빼고는 있지만 참 격렬하게도 말싸움을 한다.

그냥, 사람이 잘 안 맞는 사람이 있잖아. 내가 그냥 에롤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하게, 두 사람도 그냥 별 다른 이유 없이 서로가 미운 모양이다.


"그래도 어린애들처럼 치고박고 싸우진 않아서 다행이네요."

"...허허."

"...허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슬아슬한 건가?

등 뒤에는 관을 짊어진 허리에 검을 찬 할아버지와, 더드를 묶은 사슬을 손에 쥐고 등에 기관총을 맨 할아버지의 싸움이라.

그것 참...무슨 광경인지 모르겠네. 내가 말했지만 정말 이상한 조합이야. 그냥 그림만 턱 놓고 보면 천하제일의 탐정도 이유를 모르겠어.

그렇게, 또 다시 한참을 투닥거리며 어찌어찌,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의 마을은 모두 알아보았는데, 이런 작은 마을이 아직도 남아 있었군요."

"와, 그거 참 불길한 말이네요."

"그러게나 말일세. 대체로 그런 불길함과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은 이해하기 힘든 사건으로 돌아오곤 하지."


나라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촌장님조차 모르고 있던 작은 마을. 새로운 이벤트의 냄새를 솔솔 풍기는 조건들이다.

알로 할아버지와의 기념비적인 첫 여행이니, 이 정도는 즐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잘 됐네요. 관 싣고 다닐 작은 마차 같은 거 하나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그래, 마차를 끌 망아지도 한 마리 구할 수 있다면 더 좋겠군."


대영웅과 마왕의 앞에서 어떤 시련이 더 끔찍할까. 자신 있으면 뭐든 와보라고 해.

작은 마을에 사는 많지도 않은 마을 주민들이 굉장히, 너무나도 이질적인 우리들의 등장에 집안에서 살며시 문을 열고 틈새로 우리를 살펴본다.

전당 조각을 모으러 다니며 이런 적이 많았던지라 나름대로 익숙하다.

이러나저러나, 그리 호감이 가는 얼굴이나 차림새는 아닌지라.

그 모든 눈의 높이가 조금 낮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싹 다 애들인가? 아니면, 생쥐들처럼 다 큰 성인들도 키가 작은 종족인 것일지도 모르겠어.


"오늘은 이곳에서 숙박할 텐가?"

"노숙보다야..."


벽으로 나눠지지 않을 공간에 이 두 노인이 같이 있다가는 내가 기절하기 전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

...어쩌면, 알로 할아버지가 노리는 것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최대한 천천히 제국으로 향하는 것.

지금쯤 머리에는 내 나라를 무너뜨릴 비책을 떠올렸을지도 모르지.


똑똑똑.


아무곳이나 문을 두드려본다. 방금까지 우리를 훔쳐보고 있던 집이다. 안 그런 곳이 없긴 하지만.


"...누구세요..."


아주 조금 문을 열고 한쪽 눈만 빼꼼 내민 어린 아이가 겁에 질린 듯이 조금은 짜증이 난 것처럼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말한다.

으음~어른이 아니라 어린이가 나온다라. 우리를 쳐다보는 눈들도 전부 어린 아이였는데 뭐, 그건가? 어느날 갑자기 어른들이 모두 실종되었다거나 하는 그런 거?


"아! 안녕하세요. 옆 산에 새로 이사온 마왕 아조씨라고 해요."

"경박하기는. 만나서 반갑다. 난 위세 제국의 기사. 에이에알로 그란드 나티오날. 정견의 대영웅이라 불리는 자다."

"그러는 대영웅께서는 참 권위적이십니다. 아, 나는 촌장이라고 부르거라."

"사람 이름이 어떻게 촌장입니까. 참 짖굳으십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두 분 다 조금만 조용해주면 우리 아이가 뭐라고 하는지 한 마디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투닥거리는 어른들에게 질렸는지 문을 닫으려는 것을 달려들어 막고, 억지로 문을 비집고 들어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나가세요!"

"싫으세요!"

"자네 정말 아이처럼 왜 그러는가?"

"인광님 정도면 아직 어린 아이지요."

"흠, 그 말만큼은 저도 부정할 수 없군요. 확실히 인광 군을 어른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그렇지요, 뭔가...으음..."


집안을 둘러본다. 특별히 이렇다 할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집안이다.

그래그래, 보통 시작이 이렇지.


"얘야, 어른은 어디 갔느냐."

"......"

"꼬마야 말 안 하면 폐에 바람을 집어 넣어서."

"어허."

"아저씨랑 단둘이서 길고 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거든 아는대로 말하렴."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온 나를 경계하는 것인지 아이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으음, 뭔가, 실종은 아닌 것 같네. 그렇다면 뭘까. 이 아이들이 사실은 흑막이었다는 설정인가?

아니라면 뭔가, 비밀스러운 풍습이 있다거나 하는, 그런 거?


"아저씨들 누구세요?"

"방금 자기 소개 했잖아?"

"그런 사람들은 처음 들어봐요."

"그래?"


이런 산속의 작은 마을에 사는 아이라면 모를 법 하지. 이곳은 내 나라와도 조금 떨어져 있고, 제국에서도 조금 떨어져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소 묘한 반응이기는 하다. 아이인데도 아이답다는 느낌이 안 들어.


"이 마을에 어른은 없니?"

"......"

"없나보네."


아이의 이마를 툭 건드렸다. 이렇다 할 특이점은 느껴지지 않는, 그냥 불안해 하는 어린아이의 흐름이었다.


'...대체 무슨 상황이지?'


마을 전체에 특별히 일그러진 흐름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마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최근 나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기묘한 체험을 했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다~의심스럽단 말이지.

혹시 이곳에도 꽃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녀석들 자연 속에 녹아드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아서, 나도 그 흔적을 잡기가 힘들다.


"흥미가 생기네. 오늘 여기서 좀 자도 되니?"

"...싫은데요? 나가세요!"


쿵!


품속에서, 무거운 금화 주머니를 꺼내 식탁 위에 얹었다. 요즘 돈이 너~무 많아서 이 정도는 애들 용돈으로 주기도 부끄럽다니까?

아이에게 직접 보라고 손짓하니 주춤거리며 주머니를 여는데, 안의 내용물을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와 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본다.


"숙박비."

"...배는 안 고프세요?"

"허어, 자네는 정말, 사람을 글러먹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그냥 넘겨 들을 수 없는 말이군요."

"딱히 어르신을 겨냥한 말은 아닙니만,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지요."


무거운 금화 주머니를 들고 낑낑 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는 뒤로 하고 집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아이가 혼자 살기에는 다소 넓은 집인데, 정말로 어른은 없는 건가?


"어떻게 생각해요?"

"아이가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의 음식과, 식기, 아이의 몸에 맞지 않는 침대와 가구들. 대부분이 오래된 가구군."

"책도 꽂혀 있군요. 아이가 의자에 올라도 손이 닿지 않을 높이인데도 먼지가 쌓여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 꽂아 넣었거나, 최근까지 꺼내 읽었거나, 인데. 아이가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내용의 책이군요."

"어른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오는 길에 어른의 발자국이 없었으니 그렇게 보아도 되겠지. 그러나 그런 것치곤 아이가 너무 침착해. 이미 익숙한 것처럼 보였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지 않겠습니까."


원래는 없던 마을, 어른이 없는 마을, 아이들이 어른이 없어진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마을.

예를 들자면, 일종의 덫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평범한 아이가 아닐지도 모르고.

주머니 들고 가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진짜로 뭐가 있는 게 확실하다.


"첫날부터 평탄치가 않군."

"자주 있는 일이에요."

"자주 있는 일이지요."


촌장님과 함께 허허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혹시 뭔가 다가오고 있지는 않을까 집중하지만 바람소리만 들린다.


"...에이, 몰라! 난 잘 시간 됐으니까 두 분이 알아서 해요! 그럼 안뇽~!"


빠르게 로그아웃. 재미있어 보이는 이벤트면 끝까지 볼 생각이었는데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다.

알고보니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 이야기로 들으면 그만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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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인방인방 21.06.04 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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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세계의 희망은 21.06.02 7 1 12쪽
246 멸망한 세계의 괴물 21.06.01 5 1 12쪽
245 현실의 마왕 21.05.31 8 1 12쪽
244 부전녀전-외전- 21.05.30 23 1 6쪽
243 근면성실-외전- 21.05.29 9 1 8쪽
242 정의 집행 21.05.28 1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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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마왕이 말하는 평화 21.05.26 9 1 12쪽
239 희망은 마왕 21.05.25 10 1 13쪽
238 폐허로 21.05.24 9 1 11쪽
237 기다림과 외로움 21.05.21 11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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