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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0.09.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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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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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꽃의 도시

DUMMY

덜컹!


"각하!"


은색의 갑옷을 입은 굳건한 표정의 기사가 급한 발걸음으로 에이티 후작이 머무는 방으로 들어온다.

다른 후작의 보좌관은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고 방에는 초췌한 후작과 아름다운 외모의 보좌관 단 둘 뿐이었다.

후작은 기사의 방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보좌관은 기사를 향해 버럭 화를 내었다.


"기사님께서 전장을 비우시면 어찌합니까! 당장 돌아가세요! 후작 각하께서는 안정을 취하셔야 한단 말입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오!"

"광기의 마왕이 이곳을 공격하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자리를 지키세요!"


자신과 함께 오랜 시간 후작을 모셔온 여자였지만, 이렇게 종종 지나칠 정도로 단호하게 말을 할 때는 당장이라도 욕짓거리를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보좌관은 후작이 아끼는 신하들 중 하나이니, 기사는 차오르는 답답함을 꾹 참으며 말했다.


"마왕은 이곳을 공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치 저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습니다! 각하!"

"마왕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단 말입니까? 하! 당신은 대체 얼마나 천진난만한 것입니까! 이방인인 마왕의 말을 믿겠다고요?!"

"아쿠아 아가씨가 돌아왔습니다! 그 마왕이 아쿠아 아가씨와 함께 왔단 말입니다 각하!"


되도록 후작의 주의를 집중시킨 후에 하고 싶은 말이었으나, 계속되는 보좌관과의 말씨름에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그는 급하게 사실을 말하였다.


덜컹.


"뭐...뭐라? 지금 뭐라 하였느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초췌한 후작이 비틀비틀 일어나 간절한 표정으로 기사와 보좌관을 번갈아 바라본다.

아쿠아의 납치 이후 극도의 인간불신을 겪은 후작이 유일하게 방에 들이는 남자였기에 그의 말은 절대로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신뢰하는 보좌관이 그에게 직접 아쿠아의 근황을 보고해주었기에, 무엇이 옳은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아쿠아 아가씨는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는 상태라는 보고를 받았단 말입니다."

"당신이 보고를 들은 것이지만 나는 직접 보았소! 비록 몸이 많이 상하시긴 하셨으나 분명히 아가씨였단 말이오!"

"내가...내가 직접 보고 확인하겠다! 어서!"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려다 발이 엇갈려 넘어지려는 후작을 기사가 황급히 다가가 붙잡는다.

그 간절함에 푹 젖어버린 얼굴을 황제가 보았다면 도저히 그에게 도움을 청할 마음이 들지 않았을 정도로 처절했다.


"후작 각하! 마왕이 아쿠아 아가씨를 곱게 데리고 왔을 리가 없습니다! 사악하고 간악한 자입니다. 아가씨를 이용하면 이용했지 순순히 돌려주기 위해 왔을 리가 없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 눈이 잘못되었단 말이오! 그건 분명히 아가씨였고, 마왕은 전혀 싸울 마음이 없었소!"

"후작 각하! 마왕은 사이한 술법으로 사람을 홀린다고 알려진 자입니다! 아쿠아 아가씨를 닮은 괴물을 준비한 것일지도 모르고...정신을 지배한 것일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자신을 흘겨 보며 말을 하는 보좌관에게 기사는 버럭 화를 내며 살기를 담아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제는 자신마저 의심한다고? 함께 보내온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 그녀는 기사의 말을 조금도 믿어주는 기색이 없었다.

자신이 노려보자 흠칫 놀라며 눈을 돌려버리는 보좌관은 뒤로 하고, 기사는 깊은 한숨과 함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마왕이, 자신의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작의 도시에서 외부에서의 공격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잃었다고 하였습니다."

"마왕이...아버지? 그게 무슨 뻔히 보이는 헛소리입니까! 마왕은 이방인입니다! 아버지따윈 없단 말입니다!"

"각하...! 전 마왕의 눈에서 아가씨를 찾아 해매던 각하를 보았습니다. 서글픈 분노와 초조함, 간절함...그것은 마왕 이전에, 가족을 잃은 자의 슬픔이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심약해진 후작은 더더욱 그러했다.

당장 그를 믿을 수는 없더라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자신의 딸이라면, 자신의 딸을 찾아온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하고 싶었다.

자신을 받쳐주는 기사의 듬직한 말투와 당당한 그 눈빛에 후작도 같이 눈을 빛냈다.


"...반드시 가셔야 하겠습니까?"

"가겠다. 가서,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 아직 그 정도 판단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멀진 않았다!"

"...그렇습니까."


또각또각 보좌관이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어주려는 것인가 싶어 기사는 안도하며 미소지었다.


'자네 역시 각하를 걱정하기에 그랬던 것일테지. 후에 사과해야겠군.'


차칵!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문을 여는 소리가 아닌, 잠그는 소리였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기사를 향해 보좌관의 차가운 손이 닿는다.


"어...읏...!"


뼛속까지 얼어버릴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몸에 퍼지며 동시에 따스한 기운은 그녀에게 빼앗겨가고 있었다.

강인한 기사조차 꼼짝도 못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에 기사는 서서히 무너져내려갔다.


"각...하...! 도...망...!"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기사의 몸에서 서서히 수분이 빠져나가 죽지도 못한채 미라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기사의 뒤에서 후작은 지금까지 자신을 도와주었던 보좌관의 비열한 미소를 마주해야했다.


"참, 말을 안 듣는 남자네요. 항상."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말투에, 달리 도망갈 곳이 없는 방에서 후작은 검을 잡았지만 그는 검술이 그리 뛰어난 남자는 아니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보좌관은 후작에게 다가가 그 검을 가볍게 툭 쳐서 놓치게 했다.

가뜩이나 허약해져있던 후작에게 기사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차가운 손이 향한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후작 각하."

"...무, 뭐...뭐란 말이냐...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아쿠아는...아쿠아는 괜찮은 것이냐!"

"장님이 되긴 했으나 괜찮습니다. 광기께서 그녀를 잠시라도 돌봐주기도 하였고요."


슬쩍 질투가 스쳐가는 그녀의 표정에서 후작도 드디어 그녀의 정체를 깨닫는다.

최근 대륙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은 무왕국 멸망이라는 대사건을 일으킨 악의 조직, 광신자.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지만 대영웅에 의해 주의를 받았기에 후작도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


"광신자...!"

"광신자의 꽃. 네모필라,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쿵! 쿵!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 후작의 귀에 뭔가가 터지고 땅을 긁으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손길에 얼어붙은 몸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밖에는 거대한 꽃들이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꽃봉우리가 활짝 피어 푸른 꽃잎을 펼치자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조용히, 광기를 위한 제물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 당신이 꽤 좋았단 말입니다. 저 남자는 사사건건 절 귀찮게해서 싫었지만요."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후작은 뒤로 한채 희미한 숨을 내쉬고 있는 기사의 등을 짓밟는다.

몇 년이나 함께해왔지만 죽어가는 기사를 짓밟는 것에는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저는 후작 각하를 위해 제 평생을 바쳐 최선을 다 했는데, 후작 각하는 어째서 제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려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괴물...같은 년...목적이, 뭐냐!"

"말이 심하십니다. 제 덕도 많이 보셨으면서. 겨우 이 정도 일로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너야 말로! 어려서부터 부모도 없는 너에게 내가 어찌했는데!"

"맞아요. 그래서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는 그녀에게서 더이상 사람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 나간 광신. 자신의 모든 평생을 부정해도 좋을 정도로 푹 빠져 버린자. 정신이 나간자. 광신자.

말로만 들었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야, 후작은 대영웅이 왜 그렇게 주의를 주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은 광기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이곳으로부터 시작하여 제국은 차례차례, 그분의 손 아래에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그런 걸...!"

"아아~!"


그 광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는 쾌락을 느끼는지,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모르실 테죠. 후작 각하는 모르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저 세계의 밑바닥에서, 먼 옛 세계의 찌꺼기를 마주하고 세상이란 정원의 한 켠을 장식할 꽃이 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움직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도망칠 방법을 찾아보고,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애를 쓰지만, 이미 충분히 망가져있던 몸으로는 힘든듯 했다.

식은땀에 젖어 흘러내리는 후작의 새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을 단정하게 정리해주며 그녀는 여전히 웃었다.

하는 행동은 평생을 해온 그것과 같았지만, 그 속의 알맹이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이 세계는 멸망합니다. 그리고 사라질 겁니다...하지만, 하지만! 광기께서 그리하신다면! 세계는 다시 빛을 낼 것입니다! 완전한 자유를 되찾을 것입니다!"

"광기의 마왕은 이방인이다...! 네가 대체 뭘 착각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정신 차리거라!"

"이방인이라서. 그게, 중요한 겁니다. 후작 각하..."


스윽.


후작의 머리를 정리해주던 그녀의 손이 천천히 그의 머리를 감싼다. 이제 끝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믿어 왔던 것에 대한 극심한 배신감, 허무감을 느끼며, 후작은 질끈 눈을 감았고, 그때!


쿵!


바깥에서 나는 소리와는 현저히 다른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묵직한 것이 부드러운 카펫 위에 툭 떨어진 소리.


"오오! 처음 해본 건데 이게 또 의외로 되네? 저거 봐! 우리 머리 위로 원통형으로 구멍이 뚫렸어. 원래 그랬던 것처럼. 크으~흐름 만세!"

"...저는, 안 보인다니까요?"

"알아."


낯선 남자의 목소리 뒤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고생을 한 것인지 조금 쉰 것 같은 소녀의 목소리에 후작이 번쩍 눈을 떴다.


"...아쿠아...?"

"아버지?"


덩치 좋은 남자의 등에 업힌, 칙칙한 눈동자의 소녀. 상하긴 했으나 그것은 분명 후작이 그토록 찾아해매던 그의 딸, 아쿠아였다.


"과, 광기시여! 아아! 세상에!"

"그래그래! 세상에 마상에 맘마미아!"


쾅!!!


아쿠아를 조심스럽게 내려주고 잔뜩 상기된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네모필라를 향해, 인광은 검게 물든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후작의 눈에는 그렇게도 위험하고 강력해 보였던 그녀가 힘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혀, 가루가 터지듯이 터져나갔다.

곧이어 가루가 되어 사라진 것 같던 배에서 벽을 무너뜨리고 밖으로 자라나는 거대한 꽃줄기가 피어올랐다.


"윽! 끄아아아!!!"

"쯧, 역시 이 노권 이거, 숙련도가 너무 낮아."

"하아! 하아! 광기시여! 모든 것은...당신을 위해! 부디!!!"

"그랭!"


인광이 힘을 모으자 더 짙은 검은색을 띄게 된 주먹으로 그녀의 머리를 내려찍자, 그녀의 몸에서 여러 줄기의 꽃줄기가 뻗어나와 성을 무너뜨리고 그 거대한 꽃을 피워낸다.


"이게 말이야 사실 나선의 힘을 응용하거거든. 예전에 어디에서 본건데 너무 빠른 발전을 거듭하자 남은 것은 소멸 뿐이더라, 뭐 그런거."

"발전을 하는데 왜 소멸하는 건가요...?"

"그러게. 하여튼, 잘 들어가면 그냥 소멸시키는 건데, 이번엔 잘 안 들어갔네."


성의 절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꽃의 굵직한 줄기를 툭툭 건드리며 인광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시 절반이 꽃이 되어버렸네? 으음, 판타지."


스스로 주제를 돌리듯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짧게 터져나오는 한숨에 제자리에서 빙글 돌아 후작을 바라본다

후작의 눈에 좀 전의 네모필라나 인광이나, 둘 다 똑같이 미친 인간처럼 보였다.


"에이티 후작? 만나서 반가워요."


미라가 되어버린 기사를 발로 툭 건드려 그에게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아쿠아의 손을 잡아 후작의 앞까지 끌고 온다.


"영웅 등장~!"

"......"


이런 인광을 두고 마치 인간적인 사람인양 말했던 기사도 사실 광신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후작은 그저 조용히 아쿠아의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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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3배로 늘려주마 21.06.08 6 1 12쪽
250 천상천하 유아독존 21.06.07 7 1 14쪽
249 인방인방 21.06.04 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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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세계의 희망은 21.06.02 7 1 12쪽
246 멸망한 세계의 괴물 21.06.01 5 1 12쪽
245 현실의 마왕 21.05.31 8 1 12쪽
244 부전녀전-외전- 21.05.30 23 1 6쪽
243 근면성실-외전- 21.05.29 9 1 8쪽
242 정의 집행 21.05.28 12 1 13쪽
241 정리 21.05.27 9 1 12쪽
240 마왕이 말하는 평화 21.05.26 9 1 12쪽
239 희망은 마왕 21.05.25 10 1 13쪽
238 폐허로 21.05.24 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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