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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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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남자

DUMMY

"후우..."


사방이 온통 새하얗게만 보이는 추운 대지 위에 세운 철의 성 위에서, 라이드가 긴 숨을 내뱉는다.

이상할 정도로 페이가 좋은 퀘스트가 들어와 수락하고 들어왔더니 하루 종일 하는 것이라고는 추운 곳에 사는 몬스터조차 피해가는 곳을 하루 종일 감시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최근 그의 고민이었다.


"시발...군대 다시 온 것 같네..."

"어? 이방인도 군대에 갑니까?"

"어어, 우리 나란 그래."


그나마 같이 초소 근무를 서주는 npc가 하나 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새하얀 눈밭을 바라보다 눈이 멀어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npc와 잠깐 잠깐 대화나 나누던가, 게임을 하면서 그 게임을 하는 방송을 보는 지경에 이르러 버린 것은, 필연이었다.


"그럼 라이드 님은 병사였습니까?"

"전역한지 한참이야. 소름끼치는 소리하지 마."

"이방인 세계도 군대는 영 별로인가 봅니다?"

"...여기보단 낫...지?"

"하긴, 여긴 4교대로 땅만 파대니, 여기보다 나쁜 곳도 없을 겁니다."

"내 말이...그래도 파는 만큼 돈은 주니까 그건 좋아."


철의 성 가장 깊은 곳에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초록빛의 얼음을 깨고, 깨고, 또 깨며 내려가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마치 현실의 채석장 같은 것이 떠오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에 라이드는 그 지긋지긋한 초소 근무가 끝나 채빙장에 갈 때가 되면 차라리 초소 근무가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저 처음 왔을 때에 비해서 지금은 이방인 분들이 많이 오셔서 요즘 일하기가 진짜 편해졌습니다."

"응, 잘은 모르겠는데 여기서 일하면 채석 스킬이 빨리 오른다고 많이 오는 것 같더라."

"아, 그거 칸진 씨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얼마 전에는 칸진 씨가 얼음으로 검을 만들었던데, 보셨습니까?"

"야, 그거 여기 말고는 쓰지도 못해. 이거 봐라."


막 꺼냈을 때만해도 뜨거웠던 핫팩이 꽝꽝 얼어 얼음처럼 변해버린 것을 들어 흔들며 다른 다 쓴 핫팩 위에 쌓아둔다.

한 시간에 하나가 소모되기 때문에 쌓인 핫팩의 양만 봐도 남은 근무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족히 반나절은 더 가는 핫팩이 이곳에서는 한 시간이면 얼어버렸다. 이런 곳이 아니라면 얼음으로 만든 검 따위는 쓸 수도 없을 것이다.

꽝꽝 얼어붙은 핫팩을 보며 서로 키득거리던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긴 한숨을 내뱉는다.


"너는 여기 왜 왔냐? 돈 많이 준데?"

"저희 어머니가 병이 깊으셔서...여기보다 돈이 많이 준다는 곳을 못 봤습니다."

"쯧쯧, 무슨 병?"

"그, 무기력증입니다. 병을 고쳐주는 약도 없고, 보약이라도 끓여먹으면 조금 낫다던데,

그건 또 너무 비싸서..."

"어, 그 병 그거 잠잠해진 거 아니었어? 추가 감염자도 없다고 들었는데."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최근 다시 비상이랍니다. 라이드 씨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방인들 중에서도 몇몇 걸린 분들 봤습니다."

"으으, 뭐 그런 게 다 있냐."


품에서 아웃포스트 사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핫팩을 주물럭거리며 다시 한 번 새하얀 입김을 뿜어낸다.

잠시 눈앞이 가려질 정도로 짙은 입김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자 얼어붙은 새하얀 대지 위에 보라색의 점이 하나 나타났다.


"...응? 저게 뭐야? 야, 너도 저거 보여?"

"뭐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라이드 씨처럼 눈이 좋질 않아서 잘 안 보입니다."

"아니 저기, 저어기~보라색 점 같은게..."


그런데, 원래 이 지역에 들어오는 녀석들이 있던가?


덜커덕!


어째선지 수가 점점 늘어나는 눈밭 위의 보라색 점들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한 채 라이드는 급하게 수화기를 들어 본부에 연락을 넣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웃포스트 사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수화기에서는 연결이 끊어진 것인지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어! 저, 저기! 라이드 씨 저기 뭐가 있습니다!"

"나도 알아! 아이 씨...! 다른 초소에도 연락이 안 되잖아!"

"저, 저희 어떡합니까?! 이거 적습입니까?!"

"야! 닥치고 본부로 달려가서 현재 상황 알려! 가는 길에 2번 초소 지나가는 거 알지! 그쪽에도 지금 상황 알려주고! 거기 있는 놈들한테 다른 초소에 연락 넣으라고 해!"

"라, 라이드 씨는 어쩌십니까...?"


철컥!


등에 매고 있던 사람 키만한 거대한 크기의 저격총을 꺼내어 곧장 새하얀 눈밭 위의 보라색 점을 겨눈다.

라이드도 이곳에서 알바를 할 정도로 나름 고레벨의 플레이어였기에 월드 게이트 특유의 갑자기 터져 나오는 이벤트에는 썩 익숙한 편이었다.


"나는 여기서 시간 벌테니까 얼른 달려 새꺄!"

"네, 네!"


오갈 때마다 매번 쌓인 눈을 쓸어주어도 어김없이 눈이 내려 얼어붙는 계단을 넘어지고 구르며 달려내려가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젖는다.

유저들은 하나 같이 고레벨로 뽑았으면서 정작 npc들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녀석들만 뽑았다는 것이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후우...어디, 어떤 놈들인지 볼까?"


조준경을 통해 바라본 눈밭 위의 보라색 점들, 그것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을 때 라이드는 순간 놀라 몸을 움츠렸다.


"아이 씨...! 놀래라! 뭐야 미친!"


월드 게이트의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표현에 나름 고어한 것에도 익숙해진 라이드, 하지만 이런 종류의 괴이함은 없었다.

인간의 얼굴을 포토샵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늘려댄 것처럼 생긴 이상한 가면에 반바지 차림. 목에 두른 머플러는 나름 추위에 대비한 것이라고 한 것일까?

머리가 순간 멈춰버릴 정도로 정신 나간 차림새였지만, 다행히도 라이드는 방송을 통해 저것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뭐라더라...정의의 팬티맨? 쌉고인물이라던데..."


그 고인물이 사람들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는지, 그 영상도 봤기 때문에 라이드는 덜컥 겁이 났다.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분명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라이드가 있는 이곳은 현재 알려지지도 않았고, 정보 보안도 엄격했기에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고인물놈들이 하려고 하면 뭔들 못하려고..."


앞이 깜깜했지만, 라이드는 돈을 받은 만큼은 일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깊게 숨을 내뱉으며 저격을 준비한다.


'저 눈밭에 지뢰성 마법이랑 보안 마법, 인식 저해 마법이 잔뜩 쳐져있다고 했었지...저 녀석들은 아직 어디에 이 성이 있는지 모르는 걸지도 몰라.'


실제로 보라색의 가면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분명 아직 성을 찾아내진 못한 것이리라.


'유령탄으로 교체. 초정밀 조준. 탄속 상향. 소음 억제. 관통 억제. 타격 범위 증가. 타겟 설정. 경로 예측.'


저격수로서의 각종 다양한 버프 스킬과 저격총 자체에 붙은 아이템 스킬까지 써가며 라이드는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긴다.


탕!


소음 억제 스킬을 썼는데도 크게 울리는 소음은, 다행히도 쉴새 없이 몰아치는 이곳의 얼음 같은 칼바람에 묻혀줄 것이다.

그리고 마법이 새겨진 총열을 지나간 마탄이, 거침없이 눈밭 위를 가르며 나아가 보라색 가면 하나가 피를 흩뿌리며 눈밭에 쓰러져 눈밭을 빨갛게 물들인다.


"미친...장비도 안 입은 것 같은데 왜 총알이 제대로 안 박힌 것 같지?"


보라색 가면은 하나 같이 반바지 하나만 걸치고 있었을 뿐인데도, 분명 일격에 죽이기는 했지만서도, 데미지가 잘 안 박히는 것 같다는 이미지를 받았다.

동료가 한 명 쓰러지자 다른 보라 가면들이 황급히 눈속으로 몸을 숨기려 하지만, 이미 라이드의 스킬로 인해 위치는 모두 들켰고, 예상이 되었다.


"몇 명이야 이게...1, 103? 미친..."


그래도 라이드는 침착하게 탄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기를 반복한다. 하나 둘, 새하얀 눈밭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다.

관통력을 억제하여 저들의 몸을 뚫지 못하니, 눈밭에 박힌 총알로 라이드의 위치를 알아낼 수도 없을 것이다.


콰직!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저 보라색 가면의 사이에는 세계의 흐름을 잃을 수 있는 괴물이 있었으니.

초소 외부에 박힌 불타는 새까만 사슬을 보며 라이드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초소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쾅!!!


몸을 둥글게 만채 초소에 돌진하여 초소를 폭파시키며 순식간에 성으로 들어오는 보라색 가면.


쿵!


화려한게 공중을 몇 바퀴나 빙글빙글 돌아 눈위에 안착한 그 가면은 초소에서 몸을 던진 탓에 계단을 몇 바퀴나 구른 라이드의 바로 앞에 당당하게 두 발로 선 자세로 착지했다.


"정의의 보라 가면...여기 등장!"

"저, 정의의...팬티맨...!"

"...대체 왜 그렇게 이름이 퍼진걸까..."


탕!


다급하게 품속의 권총을 꺼내어 그를 향해 쏘아내지만 분명히 머리에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잠깐 움찔할 뿐.

이마에 찌그러진 마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지, 정의의 팬티맨은 라이드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항복하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너도 돈 받고 일해 봐! 그냥 쉽게 항복할 수 있는지!"

"...많이 받았나요?"

"이만큼!"


쾅!


주머니에서 기폭 장치를 꺼내어 버튼을 누르자 팬티맨의 이마에 박혔던 탄이 돌연 폭발했다.

그 작은 탄이 폭발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폭발에 팬티맨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고, 라이드는 폭발에 휘말려 더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끄으! 망할 거! 그놈은 사람 부르라니까 왜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


계단 위에서 폭발로 만들어진 매캐한 구름을 손짓으로 한 곳에 끌어모으는 팬티맨의 가공할 능력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라이드는 다시 크게 숨을 내뱉고 도망친다.


"더럽게 세네 시이발!"


기괴한 커스터마이징에 기본 장비로만 돌아다니는 캐릭터는 조심하라. 게임계에 떠도는 그 말의 실체를 실제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왠지, 자신도 나중엔 저렇게 놀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났지만, 지금 그 충동은 잠시 뒤로 하기로 한다.


위이잉~!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부대를 향해 달려가는 도중 이제야 들려오는 경보 소리에 라이드는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이제 곧 지원이 올 것이다. 다른 이들도 현재 사태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저 고인물이라도 어쩌진 못할 것이다!


"빨리도 울린다! 하아! 하아!"

"그러게 말입니다."

"으억!"


한참을 부대를 향해 달려가던 중, 느닷없이 불쑥 나타난 목만 덜렁 남은 토끼 가면에 라이드는 제대로 멈추지도 못하고 넘어지고 만다.

자세히 보니 눈밭에서는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새하얀 옷을 입은 덩치 큰 생쥐 가면을 쓴 남자가 그 토끼 가면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옷에 놓인 금색 자수가 아니었다면 한참을 토끼 가면이 둥둥 떠다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히 재머는 발동을 했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저쪽에 전자기기 관련한 전문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 남자는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안내역으로 써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정의의 보라 가면님?"

"음!"


뒤에서 발소리도 없이 조용히 다가와 탄 흔적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의 팬티맨이 라이드의 뒷덜미를 잡아 강제로 일으킨다.


"하...항복...!"

"역시, 유저들이 말은 참 잘 통해. 그럼, 안내 좀 해주실래요?"

"...어디로...?"


쾅쾅!!


마치 공중 폭격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잘 보이지도 않는 하늘 위에서 각종 마법과 폭탄이 쏟아져 내려온다.

마치 조금만 늦었더라면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었다는 걸 말해주듯, 라이드의 귓가에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 전투의 소음이 때려박혔다.

차라리 운이 좋았다 생각하는 라이드에게 팬티맨은 그 기괴한 가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제일 중요한 게 있을 것 같은 곳으로!"

"...가시죠!"


어차피 퀘스트 보상 제값에 받긴 글렀으니, 라이드는 팬티맨의 편에 붙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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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감상-외전- 21.07.19 7 1 7쪽
282 다른 사람 21.07.16 7 1 16쪽
281 파스티엔(?) 공략 21.07.15 6 1 12쪽
280 불굴의 마음으로 21.07.14 9 1 12쪽
279 요정의 호수 21.07.13 8 1 12쪽
278 다시 한 번 중앙으로 21.07.12 7 1 12쪽
277 닿지 않는 친절한 마음 21.07.09 9 1 15쪽
276 친절의 과거 21.07.08 9 1 12쪽
275 친절함 21.07.07 1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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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괘씸죄 21.06.28 12 1 12쪽
267 던전 브레이커 21.06.25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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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이글거리는 이빨 21.06.23 13 1 12쪽
264 이 자는 누구인가? 어떻게 죽었는가? 21.06.22 11 1 12쪽
263 신대륙 탐험대 21.06.21 12 1 11쪽
262 이번엔 제 차례가 아닐까요?!-외전- 21.06.20 10 1 6쪽
261 서러움-외전- 21.06.20 9 1 5쪽
260 동생-외전 +1 21.06.19 10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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