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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0.09.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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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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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현실의 마왕

DUMMY

"후우..."


내게 얹어진 머리 두 개를 치우며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일어났다.

커다란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자는 모닥이를 살며시 흔들어 깨운다. 오늘 일에 데리고 갈까 싶기도 했지만 모닥이는 파이 곁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우웅...왜에...?"

"아들, 아빠 나갔다 올테니까 엄마 잘 지키고 있어."

"이히히...아이...다녀나지..."

"...눈이나 제대로 뜨고 말하자?"


눈도 제대로 못 뜨는 모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방을 나온다. 파이에게는 어제 미리 말을 해뒀으니 괜찮을 것이다.


"아, 아저씨."

"오오, 딸넴. 준비는 됐는감?"

"네."


나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엔이 여유롭게 머리를 묶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집을 찾아왔을 때와 비교하면 이래저래 많이 자라긴 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성장하지 않는 모닥이에 비해 먹는 만큼 자란다는 느낌이다.

가만 보다보면 무럭무럭, 하고 소리가 들릴 것처럼 눈에 띄게 몸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그만큼...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숙녀라고 표현해야할까? 전사라고 해야할까.

얼굴에 회장이 남긴 성형 수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본인이 배신녀를 잊기 싫다며 남긴 것이니 더 군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저희들끼리 가는 건 아니죠?"

"창이한테 연락 넣어뒀어. 짐작 가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 오빠는 현실에서도 아저씨한테 휘둘리는 것 같네요."

"휘둘리기는, 상부상조하는 거지."


듣기론 저번 현도리의 회장 연구실 습격 사건 이후에 갑자기 현도리 그 녀석이 실종이 되어 버려 찾는 와중에 얻은 정보라고 한다.

때마침 창이 본인도 게임 속에서 김민식 씨와 유사한 사례를 발견하여 조사하려던 참이었다고도 하고.

잘 됐지 뭐, 지금 내 위치가 애매해서 회장에게 제대로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인데 창이 측도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면 그나마 한시름 놓인다.


"밥은 먹었고?"

"빵 먹었어요."

"...집에 네 머리만한 빵 한 덩어리만 있었을 텐데...하긴, 성장기니까 많이 먹어야지. 나가자."


이번에 확인한 김민식 씨 사태, 과연 회장의 짓인가 아닌가에 대한 확인을 해야겠다.

이거저거 시험해보던 혼돈이 저지른 일일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일인만큼 회장이 저질렀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회장이 저지른 짓이라면 뭔가 달라지는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다르다.

회장은 어찌되었든 현실에 있고, 회장을 견제하는 창이 쪽 애들이 있기 때문에 그 행동이 마냥 자유롭지 못하다.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고.

반면 혼돈은 게임 속에 있기 때문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것쯤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회장이 저질렀다. 그 편이 일이 조금은 더 수월해진다. 아주 조금은.


"후우...현실은 참, 이제는 뭔가 좀 어색해."


이른 아침, 자동차가 바쁘게 도로를 달리고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시간에 나와 아이엔은 아파트 옥상에 서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임에서와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이상하게 차분해지는 느낌이 드는 탓에 뭔가...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고, 그탓인지 뭔지 어색한 기분이 든다.

이것도 게임 중독 아닐까? 게임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고, 게임 속의 마왕 김인광으로 지낸 시간이 길어지니까 사람이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거지.

나름, 게임이라는 인식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 정도라면 최근 유저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나눠지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저씨, 아저씨도 학교에 다녔었죠?"

"응. 왜, 너도 가보고 싶어?"

"흥미는 생겨요. 내 나이 또래 애들은 다 학교에 다니잖아요. 그렇죠?"

"네가...이제 16인가? 딱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기는 하네."


학교라. 특별한 나쁜 기억은 있어도 이렇다 할 좋은 기억은 남아 있지 않은 공간이다.

가고 싶다고 한다면, 글쎄...말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아이엔은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애가 관심을 가지는데 초장부터 안 된다고 못 박는 것도 조금 그렇고.


"부러워?"

"...딱히. 저도 수련원에 오래 있어 봐서 학교 다니는 느낌이 뭔지는 잘 알아요."

"거긴 학교보단 군대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흥미 생기면 말해. 방법을 찾아볼게."

"주민 등록도 안 되는 사람을 어떻게 학교에 보내요."

"그거지, 어렸을 때 실종되었다가 이제야 다시 사회로 돌아와서 겨우겨우 정신을 차렸니 어쩌니 해서, 새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하, 기억상실도 덧붙일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네."


눈을 보니 진심인 것 같은데...그런데 이게, 진짜로 되는 일이긴 한 걸까? 꽤 이국적인 외모니까 뭐, 한국에서 잠깐 살던 외국인이 낳고 도망간, 그런 스토리가 되려나?

엄마 아빠 멀쩡히 있는 아이에게 할 짓은 또 아닌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없으니까 의외로...


"형!"

"왔냐."


언제나 최선을 다 하는 창이의 등장이다. 최근엔 게임 속에서도 주가를 올리고 있으니, 조만간 현실에서도 크게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많이 성장하기도 했다. 게임 속의 진의 가르침 덕이 아닐까 싶다.

나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현재 자기 조직에서도 나름대로 영향력을 가진 것 같기도 하고.


"창이 오빠 안녕."

"응. 자, 여기 부탁했던 거."


창이가 아이엔에게 검을 건내준다. 바닥에 닿을 때의 소리를 보니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것 같다.

게임에서야 무기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걸 구하려고 했다가는 신고당하니 아이엔의 힘이 반감이 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솔직히 특별히 아이엔의 힘이 필요할 일도 없으니 구하려고 하지 않은 것도 있긴 있다. 하려고 했으면 검도 배우는 학생인양 꾸며놓고 들고 다니게 하는 것도 가능했지.


스르릉.


"물건 좋다."

"그렇게 말하니까 나쁜 일 하는 것 같잖아!"

"허가되지 않은 사람의 도검 소지는 위반이니까 나쁜 일 맞는데?"

"아...!"


악을 처단하기 위해 악행을 행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에 대한 고뇌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지금은 없어선 안 되는 물건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상대는 회장이니까.

저저, 검 잡자마자 푸른 검기가 생겨나는 모습 봐. 완전 판타지야 진짜. 이렇게만 보면 정말 이 세상에도 은둔고수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장소가, 어디라고 했지?"

"슈퍼 리얼이 구매한 부지 중 하난데, 계획으로 그 자리에 뭐 친환경 어쩌고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하더라고."

"사진 봤어. 넓더라. 원래 산 있던 자린데 깨끗하게 밀어버렸던데?"


슈퍼 리얼을 사서 활동하기 전부터 회장은 여기저기 손을 뻗어 여러가지를 준비해왔던 모양이다.

최근 들어 슈퍼 리얼의 대외적인 활동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그 준비해왔던 작업들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정말, 식겁했다.

거의 뭐, 나라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봐도 무방할 정도다.

회장 입장에선 이세계에 날아와서 그 세계의 경제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그런 거지. 빌런은 난데 그런 나도 회장에 비해서 그렇게 똑똑하거나 강하지도 않고.


"하아...그래, 당장 평화로운 걸로 만족해야지."

"아저씨 혼자 중얼거릴거면 입밖으로 꺼내지 마세요."

"너 요즘 파이가 좀 귀여워 해준다고 덩달아서 입 거칠어지고 그런다? 나중 가면 아주 말 놓고 쌍욕하겠어?"

"......"

"...어?"


딸내미가 크는 것이 조금 무서워진다. 마냥 어리게 사는 모닥이가 이럴 때는 참 안정감이 있는데.

잡담은 이쯤하고, 이제 출발하도록하자. 우리가 빨리 출발해야 뒤에서 대기중인 창이 친구들도 긴장이 덜 하겠지. 결론 없이 토의만 길어지면 밑에 사람은 괜히 불안해진다니까?


"네 애들한테 말해, 이번 임무는 전투는 피하고 정보 수집이 목적이니까 알아서 몸 사리라고. 나대다 걸려서 싸움 나면 버리고 갈 거니까 그런 줄 알라고 해."

"형...! 뭐든 말! 말이 중요한 거야! 에휴, 일단 그런 식으로 전할게."

"그럼 괜히 눈에 안 띄게 검은 놓고 갈까요?"

"아니? 꼬우면 싸울 거니까 챙겨. 네 애들한테도 그렇게 전하고."

"...눈치껏 조심하라고 할게."


하아...이번 일, 너무 커질 것 같아서 귀찮음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거의 뭐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 아닐까?

김민식 씨가 구해온 사람들 중에서도 외국인들도 여럿 보였다. 게임이 글로벌하게 잘 나간다고 나쁜 짓까지 글로벌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 중에는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서 있지도 않을 과거를 말하는 사람들이나 기억이 남아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을 모두 구해야 된다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해진다. 나 지금 파멸 아저씨랑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제대로 싸우기도 힘들단 말이야...


"하아...어쩌다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쓴 채로 지붕 위로 골목 사이사이로 다니며 목적지로 향한다.

어지간한 자동차보단 빠르게 움직이니 괜찮긴 한데 다음에는 버스라도 빌릴까 싶다.

뭔가, 너무 일상에서 벗어나 버린 느낌이라 내가 게임을 끄고 현실로 돌아와 느끼는 안정감도 같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진짜...진짜 회장 조져버릴 거야 진짜."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


혼돈 탓에 계획이 틀어져서 당장은 뭘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는 상황이라는 것이 너무 암울하다.

진짜...그 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데, 혼돈 덕분에 전부 무너졌다.

물론, 천천히 해도 되긴 할 것이다. 그러다 도중에 나이 들거나 아님 병 같은 걸로 회장이 픽 쓰러져 버리면 딱히 한 것도 없이 이득을 챙기는 셈이 되겠지?


"저기예요?"

"그래. 근데 친환경 어쩌고 했으면서 분위기 한 번 되게 살벌하네."


조심스럽게 숨겨둔 곳이라면 경비 인원도 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건물들도 하나 같이 네모 반듯하게 생겨선 벌레 잡아놓은 상자처럼 생겼다.

그래, 회장의 인식이 딱 그 정도일테지. 쓸모 없는 인간은 쓰다 버려도 된다, 쓸모 있는 인간은...쓰다 버려도 된다.

애초에 이런 생각도 없겠지? 그냥 자기가 해야될 일에 필요하면 그게 뭐든, 찬장에서 간식 꺼내먹듯이 아무 생각없이 꺼내 쓰겠지.


"이제와서긴 한데. 잠입하려면 밤에 왔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허, 우리 딸넴이 내가 누군질 잘 모르는가 보네?"


잠입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싸우지 않고 정보 수집하는 게 목표라고 했지. 무엇보다도, 밤 시간에는 게임과 잠이라는 컨텐츠가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안 된다.


"내가 이래봬도 어둠 할배랑 친구 먹은 인간이야."


손을 뻗어 내어 어둠을 저 감옥을 향해 뿌려버린다. 갇힌 이들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심연과도 같은 어둠을.

이러면 상대가 화들짝 놀라서 중요한 거 들고 튀는 거 아니냐고? 그거 노린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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