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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0.09.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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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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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버려진 구역

DUMMY

"솔직히, 이번 일 조금 아쉬운 느낌이 없잖아 있어."


무너져내리는 암시장의 외벽에 난 버려진 구역으로 통하는 구역으로 가는 통로의 안. 커다란 봉인된 문 앞에 서서 멍하니 문을 바라보다 툭 말을 던졌다.

통로를 통해 공허수가 암시장을 덮칠 것을 우려해서 몇 겹이나 겹겹이 세워둔 문은 버려진 구역으로 들어가는 데에만 한 세월이 걸리게 해, 머리에 별의 별 잡생각이 떠올랐다.


"뭐가?"

"아니, 뭔가, 기승전광기같은 느낌이라서 조금 그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알아? 그러니까, 내가 뭘하든 결국에 광기로 끝이 난다는 거지."

"효율적으로 잘 사용한 거잖아."

"그래도, 기왕이면 조금 더 박 터지는 긴장감을 느끼고 싶었어."


긴장감이 없지는 않았다. 펜트 하우스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역 스킬을 발동시켰고, 관리자의 상상이상의 힘에 사슬이 버티지 못하고 끊어져 버릴 가능성이 있어 하마터면 싹 다 뺏기고 쫓겨날 뻔 했다.

마지막 즈음에는 영역 스킬의 지속 시간도 거의 끝나가서 관리자가 한 번 더 에라 모르겠다 하며 사슬을 당겼다면 사슬이 끊어지고 내기는 졌을 것이다.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광기에 전염된 관리자의 눈에는 그런 것까지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 덕에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긴 하다.


"그러고 보면 관리자는 마지막엔 결국 광기의 힘에서 벗어났군요."

"어느 정도 힘이 있는 녀석들은 알아서 자연 치유되는, 뭐 그런 거 아닐까요? 광기가 불치병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저 처럼 계속 인광 님의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길면 한 달 정도면 광기가 몸에서 빠져나갈 겁니다."


광기는 불치병이 아니다. 하지만 한 번 전염된 사람은 두 번은 더 쉽게 전염되고 다음은 더, 그 다음은 더, 결국엔 혼자서 광기를 뿜어대는 숙주가 될 테지.

지금 생쥐 병사들이나 테스터 시절의 오소리들이 그런 식이다. 조금 늦게 합류한 고블린들은 그나마 멀쩡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


쿠웅, 끼이이익!


"이 문이 마지막입니다. 이 앞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버려진 구역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고마워요 닌자 사이보그!"

"...그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버려진 구역으로 가는 두꺼운 철문을 열어준 닌자 사이보그가 내게 문을 여는 열쇠를 넘겨주고는 더 오래 있기 싫다는 듯이 사라졌다.


"...뭐 어쨌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다면 그때는 광기의 힘은 쓰지 않고 하고 싶어."

"좋은 생각이십니다. 뭐든 뚝딱 이루어주는 물건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죠."

"그쵸? 좋아! 다음에 기회 생기면 그렇게 하자구!"


마지막 문을 넘어 천천히 걸어나가는 통로는, 어지간히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지 높이 달린 전등은 멀쩡한 것이 없고 통로의 벽이며 바닥에는 회수되지 않은 모험가들과 공허수로 보이는 생물의 시체, 피, 악취까지.

어쩌다 한 번 확인만 하러 들어간다더니 딱 들은 대로 관리는 전혀 되지 않은 모습이다.

조금 더 걸어들어가면 말로만 듣던 공허수의 등장을 확인할 수도 있는 건가.


"찍찍아."

"예! 주인님!"


그렇다면 지금부터 생쥐 병사들을 모두 꺼내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제대로 된 관리인을 구하기 전까지는 찍찍이에게 생쥐들의 관리를 맡기기로 하자.


"지금부터 네가 생쥐 대장이야. 원래부터 그렇긴 했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하자고."

"감사합니다!"

"애들 마음껏 데리고 놀아."

"예!"


내 말대로 자유롭게 생쥐들을 분류하기 시작하는 찍찍이를 보며 나는 잠시 통로의 벽면에 등을 기댄다.

이미 한 번 영역 스킬을 발동했기 때문에 통로 너머에서 벌어질 예측불허의 사태에 대응하려면 어느 정도 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닌자 사이보그라는 몰입도가 와장창 깨지는 것을 봐버려서 다시 이 월드 게이트에 몰입할 시간도 필요하다.


"혹시, 여기 나중에 업데이트로 따로 공개하려던 지역이었던 건 아닐까?"

"지하 왕국처럼?"

"그래, 지하 왕국처럼. 그래서 버려진 구역이라고 암시장 애들이 손도 못 대는 지역을 만들어둔 거지. 나중에 잔뜩 레벨 업하고 온 유저들 맞춤형 고레벨 사냥터로."


전의 지하왕국과는 다르게 나를 쉽게 들여보낸 것을 보면 의외로 별 거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만, 두 손으로 암시장 외벽을 뜯어내는 관리자도 어쩌지 못했단 걸 생각하면, 의외로 가능성 있는 예상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합심해서 덤벼도 공허수 한 마리 상대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상상 그 이상으로 공허수가 너무 많아서 그냥 숫자에 짓눌릴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다수에 유리한 광기를 쓰면 해결 되긴 할 텐데, 지금 하양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하고 변칙적인데다 결정적인 히든카드 같은 느낌으로 광기를 쓰려니 기분이 좀 그렇다.

방어구 없이 고인물 플레이를 하고 싶은데 정작 캐릭터가 너무 세서 한 방이면 보스고 몬스터고 다 죽어나가는 느낌이라 별 긴장감이 없다.


'...계속 같은 생각만 드는 거 보면 정말 어지간히 별로 였던 모양이네.'


관리자와의 대화를 그런 식으로 끝낸 것이 백 번을 생각해도 백 번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이때까지처럼 그냥 한 번 생각해보고 말 것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다.


'하양이가 오면 그때,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걸로.'


미로의 숲을 돌파해야 될 이유가 하나 더 만들어졌다. 목적성이 생기는 어쩐지 괜히 기운이 난다.


"주인님. 생쥐들의 분류를 마쳤습니다. 번식에 사용할 생쥐는 따로 그림자 속에 넣어두심이 어떠신지요."

"어? 어어, 그래. 고생했어."

"그리고 주인님, 전의 마지막 나무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쥐 병사들 중 몇몇이 지금 특이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 번 확인해보심이 어떨지요."


그래, 그렇지 않아도 그런 기미가 보이기는 했지. 마침 잘 됐다. 한 번 제대로 확인해보도록 하자. 어쩌면 찍찍이처럼 새로운 진화를 이룰 지도 모르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 생쥐들을 쭉 들러 보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그놈이 그놈인 징그러운 모습이라 오래 보고 싶지는 않다.


"너니?"

"찍!"


찍찍, 열 마리가 사사삭 내 앞으로 기어나왔다. 얘네들이 그 나무 전투에서 살아남은 애들인 건 알겠는데, 그냥 걸어나올 것이지 소름돋게 뭐 저렇게 기어나오는 거야.

만약 얘네들이 진화한다면, 찍찍이처럼은 아니더라도 멀쩡하게 걸어다니는 애들로 진화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징그러워.


"다 아는 얼굴이구만."

"!!!"


진화해서 똑똑해지면 이런 믿지도 않을 말에 감동하는 일은 없어지겠지? 그건 좀 아쉽다.

그래도 찍찍이처럼 이상한 충성심이 가지지만 않으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찍찍이 저놈은 다 좋은데 은근히 자기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나를 이용해서 그런 충족감을 채우는 것 같다.

말도 못했던 생쥐였던 무렵이 차라리 더 귀여웠다.


[생명력이 충만한 생쥐 병사 10 마리가 진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진화를 위해서는 초월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응? 자연이?"

"이것들은 나무와의 전투에서 나무가 흩뿌렸던 생명력을 주워먹은 녀석들. 확실히 저와 비슷한 기운을 가진 것들이긴 해요. 하지만 아버지, 정말로 이것들이 도움이 될 까요? 이런 하등한 징그러운 것들이 진화를 해도 아버지에게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아요."

"왜, 진화시켜주려면 네가 뭐 줘야 돼?"

"제 생명력을 나눠줘야 해요. 회복은 할 수 있으니 그건 상관이 없지만, 괜한 곳에 힘을 쓰는 것이 현명한 일인 걸까요?"

"어허, 미래를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단다, 딸. 세상은 어찌될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당장 찍찍이도 자연이도 심지어는 모닥이까지도. 자연이가 말한 대로 생각했더라면 이 세상에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너희 모두의 존재가 내 광기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알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초월체에의해 생쥐 병사들의 생명력이 개화됩니다! 종족 진화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오오, 종족 진화 퀘스트라니. 내가 반마인이 됐을 때 했던 그런 거랑 비슷한 건가?

...그러면 이 생쥐들도 어디에선가 업보를 쌓게 되는 건가...으음...얘네들은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는 애들이어야 할 텐데. 나같은 성격이었다가는 레비 같은 게 열은 더 늘지도 모르는 일 아니야.

레비 같은 건 하나로도 벅차다. 하나가 더 늘어나면 머리만 아파지고 좋을 것도 없다.


[진화 퀘스트 '수 백의 생명 위에서' - 그들의 몸에는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영혼의 그릇을 늘리기 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공허수의 심장 0/ 10]

[현재 공허수의 심장에 대한 정보가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공허수의 심장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


이건, 대나무를 연구할 때 한 번 봤던 텍스트인데...잘못해서 전처럼 다 터지고 무너지는 결말이 되면 어쩌지...대나무 숲은 지금 무슨 결정화된 녹아내리는 암석 거인 같은 것이 돌아다닌다던데.

이번에도 그때와 비슷한 대폭발이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벌어지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공허수를 잡는 건 필수네. 그래! 찍찍이! 여기 10명 진화시켜야 하니까 안 죽게 지휘 잘하고! 가자!"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정비도 끝났고, 영역 스킬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준비가 끝나니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버려진 구역으로 들어가볼 시간이다.

제발 공허수가 수는 많은 데 개개인은 약해서 생쥐들 먹이로 적당한 녀석들이어야 할 텐데.


[버려진 구역 'E-1' 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구역의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허수의 울음소리에 내성이 부족한 이들은 환청을 듣게 됩니다! 오랜시간 버려진 구역의 무거운 공기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환각을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버려진 구역에 진입하자마자 갖가지 상태이상이 부여되며 내성이 없는 생쥐 병사들은 순식간에 패닉에 빠졌다.

촌장님마저 잠시나마 혼란을 느낀 것을 봐서는 어지간한 내성으로는 버틸 수 없는 것 같다.

유사 사자후가 있으니 애들 제정신으로 만들 수는 있을테지만, 그래서는 내가 없을 때 이 녀석들이 이곳에서 버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찍찍, 네가 상태이상 해제할 수 있겠어?"

"예. 하지만 지속 시간이 짧아 상태이상 해제에 신경을 쓰게 되면 전투에는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일단 너는 상태이상 회복이랑 지휘에 신경 써. 그렇다고 너무 즉각적으로 회복하지는 말고 여유있게. 이 친구들이 여기에 적응은 하게."


그러다 보면 적응하지 못하는 녀석들은 죽을 거고, 적응한 녀석들만 살아남아 계속해서 그런 성질을 유전시키겠지.

이런 식으로 맹수인 늑대가 우리들의 가족인 개가 된 거 아니겠어? 당장 생쥐 병사 처음 만들 때도 살짝 이용했지.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공허수라는 먹이도 준비가 되어있으니, 그때 애들보다는 지금 애들이 정신적으로 안정적이겠지?


"깊이 들어가보자."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는 덕에 이곳의 지리를 알 수 있었는데, 표현하자면 그냥 무너진 도시 같은 느낌이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고 인간들의 사회는 무너진 그런 아포칼립스 말이다.

그래, 어쩌면 이곳에 아직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운 좋게 안전한 구역을 찾아서 그곳에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이곳은 꼭, 암시장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군요."

"모르죠, 어쩌면 원래는 이곳 전체가 멀쩡히 사람 사는 곳이었는데 뭔가 일이 나서 이 모양 이꼴이 된 걸지도 모르죠. 암시장은 겨우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도시라거나."

"호오, 굉장히 그럴 듯 한 가정이군요. 어쩌면 그에 대한 단서가 이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애들보고 찾아보라고 해요."

"허허, 알겠습니다."


철퍽.


천장에서부터 떨어져내린 진액이 끈적하게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갈라진 틈 사이로 흘러내리며, 그것은 갑자기 등장했다.

빛이라고는 우리가 가지고 온 불빛이 전부인 이곳에서의 삶에 적응하여 눈이 퇴화된 그것은, 반투명하고 짓누른 몸에 철판을 덧붙이고 흐늘거리는 촉수같은 것을 팔다리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어째 생긴 것이 슬라임의 진화체처럼 생겨 먹었다. 입이 생긴 슬라임이 사람의 실루엣을 따라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저거, 먹을 수 있을까?"

"역겨운 소리 하지 마."

"...해파리 냉채!"

"닥쳐! 상상하게 하지 마!"


굶어죽겠다 싶으면 집어 먹겠지. 우선 생쥐들끼리 저 공허수와 싸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도자.

반투명한 몸의 중앙에 보랏빛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저 심장만 깔끔하게 때어낼 수 있으면 그때부터 연구를 하고.


철퍽. 철퍽. 철퍽.


하나, 둘, 셋, 점점 늘어가고 있다. 무너진 건물의 비좁은 틈에서, 빛이 닿지도 않는 돔 천장에서 기어나오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인간이 되다만 슬라임 같은 것들이 멈추지도 않고 계속해서, 아마도 우리가 내는 소리에 이끌리듯이.

과연...이런 식으로 거의 아무런 소리도 없이 어둠 속에서 슬쩍 나타나면 어지간해서는 당할 것이다.


"일단, 실력 좀 보자."


눈에 보이기로는 흐름이 심각하게 뒤틀려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닌, 굉장히 단순하고 직선적이라 건드리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지만, 흐름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 주먹으로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해보자.

그리고 먹을 수 있는 지도 확인하자. 그게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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