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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게임하는 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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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0.09.07 13:54
최근연재일 :
2021.09.17 12:00
연재수 :
3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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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16
추천수 :
630
글자수 :
1,996,842

작성
20.12.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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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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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4쪽

현실이 되었다.

DUMMY

"실수했어."

"구랭?"


쩝쩝.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정육점에 들러 대량으로 산 고기를 바닥에 앉아 열심히 씹어먹는 모닥이의 배를 배개 삼아 누워 투덜거렸다.

회장 건물에서 보았을 때는 닿기만 해도 살갖이 타들어가는 뜨거운 몸이었는데 지금은 꼭 전기장판 마냥 따땃하니 기분이 좋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와 매혹적인 고기의 향기가 풍겨와서 최고야...


"...솔직히 말해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안 했거든? 무려 세계가 멸망했는데도 살아남은 인간이니까."

"그런데?"

"그런데 설마, 이렇게까지 차이가 심할 줄은 몰랐어."


회장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 했지만, 아무리 봐도 가벼운 장난처럼 보였고, 나는 회장과 진지하게 싸웠는데 생채기 하나 내지 못 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아마 굳이 따지자면 회장도 대영웅급의 인물인 것일테지. 오싹오싹하다.


"그래도 아빠, 실수했다는 것 치고는 뭐 엄청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다 알고 한 거 아니었어?"

"아니? 그냥 그렇지 않을까? 를 그렇다! 고 말한 거야. 그랬더니 사실이 아니었던 것까지 사실이 되었잖아. 그치?"

"오오! 유도한 거구나!"

"하하, 모양새가 그래서 그렇지 회장한테 무릎 꿇고 빌러간 거나 다름없지."

"오오...! 그렇구낭?"

"제발 부탁입니다. 우리 애 좀 멀쩡한 상태로 돌려보내 주세요. 여기 회장이 좋아할 법한 상황도 만들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제발! 방법 아는 거 다 알아요!"

"헤헤."


잘 먹히기는 했지만, 싸움이 생각 외의 방향으로 흘러갔고, 생각보다 많은 수의 희생자를 만들어내었다. 갑자기 건물을 태워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보아하니 건물 내에서 누가 주섬주섬 다친 사람들을 옮긴 것 같긴 하던데...그렇게 살아남은들 회장에게서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배신녀도 설마설마 하는 마음에 꺼낸 말이었는데 진짜로 지금 제정신도 아니고 연구실에 붙잡혀 있다고 하잖아. 재편성이 어쩌고 말하기도 했으니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갈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정말 정예들만 남겠지. 만화 인간 측에 미안한 짓을 해버렸어. 기왕이면 그쪽 친구들이 이겨줬으면 하는데."

"하하! 만화 인간이라니 그게 뭐야?"

"있어, 어제까지 싸웠던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크오오오! 용서 못해~!' 라면서 화낼 것 같은 사람."

"흐음~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그럴 거면 왜 싸웠담? 목숨 걸고 싸웠던 거 아니야?"

"그렇지."

"멍청한 사람이네! 좋아! 난 이제 그 사람을 멍청이라고 부를게!"

"...아들...생각보다 총명한 걸? 여윽시 우리 아들이야!"

"이히히!"


내 인간성이 저기 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듯도 하지만, 신경쓰지 말자. 내가 누굴 신경 쓸 입장이 아니다.


삑삑삑. 삐~익 삐~익!


"뭐야?! 무슨 소리야?!"

"으음, 손님이 왔다는 소리지."


이래저래 싸움에 지쳐 있던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역시나, 파이였다. 비밀번호 바꾸고 말해준다는 걸 깜빡하고 말을 안 해줬다.


"뭐야, 이제 외부인 취급할 거야?"

"깜빡했어."

"늘 그런식이지."

"...어어...데헷!"


딱.


파이의 감정 실린 딱밤 한 대로 오늘의 일은 묻어가게 된다. 아니 그런데! 내가 뭐, 잘못했어?! 응?! 내가 아주 큰 잘못 한 거야?!


"파이 안녕!"

"어머, 모닥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잠깐, 설마 그 성 중앙에 있던 거 설마."

"어, 찌꺼기더라."

"...그럼 아이엔은? 걔는 어쩌고?"

"해결하고 온 참이야. 금방 다시 만나겠지."

"아, 그래."


모닥이 옆에 앉아 복슬복슬한 털을 만지작거리는 파이. 우리 애가 좀 귀엽긴 해. 보면 막 한 번 쓰다듬어 보고 싶기도 하겠지.


"애 목욕한번 해야겠다. 몸에서 피냄새가 나네."

"으익! 싫어! 나 목욕 안해!"

"물로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불로 한 번 소독하면 냄새도 덜 나겠지."

"다른 애들은 어때?"


다들 급하게 버려진 구역으로 보내긴 했다. 내가 키우던 애들이니까 갑자기 그곳에 떨어진다고 크게 다치거나 할 일은 없겠지만, 걱정은 되었다.

뭐, 그 구역을 보고 의구심을 키우고 땍땍 소리 지를 아이엔이 없으니 걱정이 조금은 줄어든다.


"말랑이가 활약하고 있어. 공허수랑은 완전히 극상성인 모양이더라고. 공허수 놈들, 걔가 지나가기만 해도 기겁을 하던데?"

"호오, 과연...어둠 속성인 녀석들이 빛 속성인 말랑이를 무서워하고 있는 건가!"

"말랑이가 놈들을 혐오하는 것도 있어서, 이번 기회에 진화하지 않을까 싶어."

"괜찮네, 애들이 계속 강해지면 나야 좋지."


본격, 주인공이 가장 약한 모험자 파티의 탄생이다. 주인공은 늘상 얻어맞고 회복하면서 어그로 끌고 얻어맞기만 하는데 파티원들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렇게 될 거면 차라리 방패라도 드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처럼 몸으로 마냥 버티는 것도 정도가 있다.


"너는?"

"회장이랑 싸워봤는데, 상상이상이더라. 상대가 안 돼."

"포기할 거야?"

"어허! 쓰읍!!! 안 돼요! 그 단어는 앞으로 금지! 금지합니다! 하지 마세요!"

"어어...싫어."

"......"


젠장. 젠장할...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걸까?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건가? 힘들고 귀찮고 머리 아프고 싫은데...그래도, 해야 하나?


"계속 게임만 해도 되는 거야?"

"세상의 찌꺼지를 게임 내에서 건드릴 수 있다고 한다면, 계속해서 게임을 하는 게 회장을 상대하기에는 더 수월할 거야."

"예를 들면?"

"그건..."


예를 들면...지금 파티를 전부 현실의 인간으로 바꾸고 한꺼번에 회장을 친다거나 하는, 뭐 그런 거 있잖아...

알아! 나랑 비슷한 인간들 여럿 모아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거 나도 알기는 해!

다만, 지금 당장은 아무런 방법이 안 떠오르는 걸 어떡해. 아무것도 모르겠는걸 어쩌냐고. 애들 모아놓고, 상황을 전부 보여주고 판단하게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 말이야.


"글쎄."

"마땅한 계획은 없다는 거네?"

"구체적인 건 없는데...최후의 수단은 있지."

"...너도 참, 대단하네."


얘가 왠일로 이렇게 순수하게 칭찬을 다 한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이러고 누워 있는 것도 계획의 일부야?"

"아침 될때까지 회장이 아무 말도 없으면 당장 달려가서 회사를 폭삭 무너뜨려버리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는 중이야."

"그거 괜찮네. 도와줘도 되지?"

"너 없으면 못해."


이미 회장과 싸우면서 많이 지쳐버렸다. 뭐가 뭔지도 모르게, 뭔가 무협스러운 이벤트조차 전혀 없었는데 환골탈태라도 해버린 것 같은 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회장과의 싸움은 타격이 크다.

팔이 저릿저릿 떨리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눈앞은 흐릿한 것이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도 힘들 정도다.


'더 강해져야 한다.'


이런 소설 주인공같은 독백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점점 내게 딸린 군식구가 늘어날 것 같은데, 언제까지나 항상 지금만 같아라라는 마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도르핀을 찾아가야 하는 걸까? 도르핀이 이 이상 내게 뭔가를 가르쳐줄 수는 있을까? 난 이미 흐름에서는 내 재능의 끝을 본 것이 아닐까? 요즘은 거의 뭐 무의식적으로 써버리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면, 차라리 진에게 멸을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배울 수 있나? 나 그렇게 재능이 출중한 사람이었어?


"아~! 아이엔 언제 와~!"

"싸우고 돌아온지 얼마나 지났다고."

"...두 시간? 이제 곧 새벽이란 말이야! 착한 아이는 코 잘 시간!"

"그럼 너는 아직 잘 시간이 아니겠네."

"네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잠깐의 침묵에, 내 머리는 다시 아이엔의 일로 어지러워졌다.


"엄청 무섭겠지?"

"그렇겠지."

"선배로서 조언은 없어?"

"난 처음부터 멀쩡했어. 잠깐, 정체성의 혼란을 겪긴 했지만."


지껄인 것이 전부 사실이었던 회장 습격 사건을 떠올리며, 나는 괜히 머리에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파이에게 말을 걸었지만, 파이도 원래 그리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파이의 이야기를 듣고 더 우울해져버렸다. 아이엔이 파이처럼 혼란을 쉽게 이겨낼 것 같진 않은데.


"아이엔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 하고 싶은대로 해."

"그게 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파이의 말은 너무 무책임한 듯 들리기도 했지만, 내게 맡기겠다는 신뢰가 느껴지기도 했다.

도대체 내 뭘 믿고 그런 신뢰를 보여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힘 내보자.


"다쳐서 오지만 말았으면 좋겠는데."

"걔도 강하잖아."

"그래도 아직 애야. 아직도 영웅을 동경하는 순수한 아이."


그래서 걱정이 컸다. 오히려 말랑이였다면 이렇게 걱정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걔는 의외로 뻔뻔한 면이 있었으니까.

레비였다면 정령씨도 같이 붙어 있을 테니 더 걱정할 것도 없었다. 촌장님은...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낯선 세상이 얼마나 무섭겠어."

"...그랬던가? 내가 제일 무서웠던 건 나 못 알아보고 죽이려고 했던 너인데."

"아, 아니야! 아이엔은 달라! 척 보면 딱 하고 알 수 있다고! 그거 알아? 사람은 각자 다 다른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거? 지문처럼."

"그런데 난 왜?"

"테스터 시절엔 흐름을 몰라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니까?"

"핑계 좋네."

"핑계라니..."


어쨌든. 마지막 그 순간에 울먹였던 녀석이다. 기사니 뭐니 매일 강한 모습을 보여도 결국 여린 아이다.

애시당초 마냥 강하기만한 성격이었으면 진즉에 나를 어디 감옥에 처넣었겠지. '그래도...' '사, 사람은 좋아!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는 녀석이니 내가 아직까지 자유롭게 행동하는 거다.


'싫다 싫다 하면서도 그런 부모에게 꼬박꼬박 생활비 보내고 부른다고 냉큼 가는 것만 봐도 뭐...'


똑. 똑.


그때였다. 누군가가 힘없이 문을 두드렸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문을 두드렸다.

문앞의 인물이 누구일지는 바로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나는 괜히 호들갑 떨지 않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앞으로 다가가자 그 뒤로 모닥이와 파이가 따라온다.

나는 모닥이를 내 옆에 딱 붙이고 파이는 살며시 뒤로 숨긴 채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아...저씨...?"


문이 열리고 나타난 한 아이가, 나와 모닥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이고 이런..."


예상 범주 안이었다. 내 눈앞에 서 있는 아이엔의 모습은, 내가 생각해본 여러가지 모습들 중 하나였다.

온몸에 칭칭 감긴 붕대, 그 사이로 보이는 수술의 흔적들,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와 두려움에 바싹 마른 입술.

게임에서는 내 눈높이에 보이던 정수리가 이제는 내 어깨 높이에 있고, 단련되지 않은 가녀린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그래, 대충 상상이 가는 상황이다.


"아...아, 저씨...나..."


게임 속의 나와 이곳의 나, 분위기는 다를지 몰라도 얼굴은 다르지 않았기에 아이엔이 알아보기에 큰 이상은 없었을 것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옷자락을 힘겹게 붙잡고, 붉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올려다 보는 눈동자.

새삼스래 파이가 운이 좋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스륵.


나는 조용히 아이엔을 껴안았다. 애시당초 세상을 휩쓸고 다녔던 파이와 아이엔은 다르다.

파이도 루시 로웰의 모든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아이엔도 그럴 것이고, 파이와 다르게 아이엔은 지금 세상 모든 것에 혼란스러울 것이다.


'난, 난 누구지?'


그런 생각에 흘린 눈물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나를 붙잡은 것이다.

내가 누군지 묻지 않고서는 지금의 아이엔의 머리속에는 배신녀의 기억과 본인의 기억, 어쩌면 본인이 게임 속의 인물이었다는 사실마저 들어가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아이엔."


굳이 이름을 한 번 부르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나도 덩달아 깜짝 놀라서 다급하고 초조해져서 어벙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엔도 덩달아 혼란해진다.


"딴 생각하지마."


덜덜 떨리던 손이 내 옷자락을 더 강하게 움켜쥔다. 배신녀의 호리호리한 가녀린 몸인데도 상당한 힘이 느껴진다.


"지금 당장은 불안할 수도 있어. 뭐가 뭔지 혼란스럽겠지."


네 상황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 말하는 것과 모르겠다 말하는 것에서 나눠지는 것은 사람의 격이다.

모름에도 안다 말하면 신뢰가 가고, 알 것 같은 것도 모르겠다 하면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잘못하면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이 되어버릴 테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딱 하나만 생각하고, 딱 하나만 봐. 지금 네 눈앞에 있는 게 누군지."


솔직히 말해, 이게 옳은 말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이게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아이에게 해도 되는 말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네 존재의 의의를 내게서 찾으란 말이, 정말로 옳은 것일까?

하지만 아이엔은 촌장님과 더불어 가장 많이 내 뒤에 섰던 사람이고, 가장 오래 내 옆에 서 있던 녀석이다.

결국 이 꼴이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어 다음 말은 꺼내기가 힘들었지만, 그 덜덜 떨리는 몸으로 나를 슬쩍 올려다 보는 아이엔에게 그런 죄책감을 보일 수는 없었다.


"걱정하지 마. 믿어."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이엔이 천천히 고개를 떨구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덩달아 나를 껴안았다.

지금에야 생각한다. 더 좋은 말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럼에도 별 수 없이, 난 지금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별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나를 마주친 이 아이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내게 묶여 버린 이 아이에게, 내가 쉴 곳이 되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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