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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게임하는 게이머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연재 주기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0.09.07 13:54
최근연재일 :
2021.09.21 12:00
연재수 :
331 회
조회수 :
30,775
추천수 :
630
글자수 :
2,009,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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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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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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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괴리감

DUMMY

우당탕! 콰직!


호프본의 노점상이 달려가는 중갑의 사내에게 부딪혀 박살이 난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충혈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남자에게는 쉽게 한 마디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젠장! 이게 다 이 사진의 이놈 때문이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불굴의 영웅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야?"

"너 이놈 본 적 없어? 당장 찾아야 돼!"


오히려 주민들은 호프본에 밀려들어오는 광기를 받아들이고 이어나갔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많은 이들이 과도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넘쳐흐르는 광기에 체계를 집어 넣은 것은, 새까만 피부에 보라색 눈을 빛내는 자그마한 수인의 한 마디였다.


"여기 15명! 이방인 '귤마싯따' 를 리더로 한 팀으로 규정한다!"

"뭐야 넌! 저리 꺼져!"

"이 팀이 목표를 생포하면 각자에게 천 만 골드를 지급! 다른 팀과 연계시 추가 보너스 지급!"

"...전부 모여주세요! 브리핑합니다!!!"


각개전투의 무질서함에서 공통의 이득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제안하고 연합의 중요성을 심어둔다.

이미 잔뜩 광기에 찌들어 흥분이 식지 않는 이들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광기를 폭발시켜 나간다.


"...굉장해...!"


그리고 여기, 그런 광기에 전율을 일으키는 사람이 한 명 있다. 특색 없는 얼굴에 주변의 색과 구별하기 힘든 색체의 옷을 입어 자연스럽게 배경에 녹아든 남자.


"이게, 광기란 말인가?"

"저희들의 신이지요."


인광에게 정원사의 정보를 은근슬쩍 제공한 꽃은 정원사의 옆에서 조심스럽게 떨고 있었다.

설마 이정도였을 줄이야. 자신에게 큰 호감을 가진 이들을 서슴없이 이용하여 들 줄은.

내 편이었다면 그녀도 정원사와 함께 전율했을 테지만, 지금 저들이 쫓는 이가 이 정원사라는 것을 알았기에 꽃은 자신이 광기의 적이 된 것 같아 공포를 느꼈다.


"광기께서도 대단하시군! 나 하나를 잡기 위해 이렇게 많은 이들을 동원하실 줄이야!"

"이곳은 위험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셔야 합니다."

"안 돼! 이 정도로 짙은 광기, 이런 광기를 도대체 어디에서 얻을까! 가시는 곳마다 자신의 광기를 자리에 남기고 다니는 분이 내리는 이 축복! 이것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광신자라는 그 규모를 짐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거대한 집단에서도 유독 광기에 미쳐있는 자들.

혼돈의 직속인 이 남자는 인광이 만들어낸 광경에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서로 드잡이질을 하고 싸우고 피를 흘리고 의심하고 그런 와중에도 사랑이 싹 트는 공간, 혼돈이 바라던 세상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나도 저 틈에 끼고 싶을 정도야...그래, 내가 지금 저 사이에 나타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혼돈이겠지!"


뿌리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원사들도 또한 어지간한 힘은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진심으로 자신이 있었고, 고민이 됐다.

당장 그러지 않는 것은, 혼돈이 그것을 말렸고 광신자는 언제나 때를 기다리는 이들이기 때문.


"별 수 없지...아쉽지만 지금은 우선 물러나는 게 좋겠어..."

"예, 그럼 이쪽으로."


쿵!


남자가 자리를 피하려 할 때, 나타난 것은 거대한 손에 새까맣고 단단한 손톱이 자라난 거대한 덩치의 괴물.

짐승이 수인이 되려다만 것처럼 생긴 그 뒤틀린 괴물은 촉수같은 혓바닥을 날름 거리며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찾. 았. 다."

"저 괴물은, 투기장에서 본 기억이 있군. 손톱이었던가?"


뚝뚝 끊어지는 말, 붉게 타오르는 눈빛과 짙게 풍겨대는 살기. 손톱은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손톱이 좁은 통로에서 크게 팔을 휘둘러 남자를 붙잡으려 들었지만 양옆의 집이 박살나고 그 안에서 비명소리만이 삐져나올 뿐, 남자는 손톱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아아! 이 무슨 광기의 산물! 아름답구나!"

"찾았다! 저기다!"


손톱이 만들어낸 소음에 한 무리가 남자를 포착했고, 순식간에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를 잡기 위해 도시를 들쑤시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똑같은 메세지가 전송되었다.


[누군가가 목표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목표에게 표식이 찍히게 됩니다! 목표 도주까지 남은 시간 10분!]


메세지와 함께 남자의 머리 위로 큼직한 화살표가 생겨났다.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고 넘겼지만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는 한층 더 강한 초조함 피어올랐고, 그 초조는 금방 흥분으로 바뀌었다.


"어어?! 한 시간이라며! 이런 건 숨은 조건도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시간 없어! 공격!"

"생포다 생포! 잡기만 하면 천 만 골드야!!!"


손톱의 뒤에서 나타나 일제히 남자에게 달려드는 유저들. 덮쳐오는 묵직한 공기에 남자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묘한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절대로 그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 한 명 한 명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저렇게 다수로 몰려온다면, 그에게 승산은 없었다.


"너 하나 잡으려고 내가 아끼고 아껴뒀던 영약까지 싹 다 꺼내 먹었다!"


인광처럼 인생을 게임에 갈아넣고 있는 인물. 인광이 말하는 최전선의 고인물들. 이미 저마다 영웅급의 힘을 가지게 된 캐릭터들.

1 대 1로는 인광 파티의 딜러 투톱 중 하나인 아이엔도 고전을 면치 못할 실력을 가진 고인물들이 온 힘을 다해 달려드는 것은 아무리 남자가 약하지는 않다고 해도 받아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남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표식이 찍힌 순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진짜다! 저기 있네! 뺏어 뺏어!"

"천 만...! 천 만!!!!"

"야! 어딜 넘봐! 우리가 먼저 찾았어!"

"먼저가 어딨어 비응신아~! 잡는 놈이 임자지!"

"저 새끼가! 돌격!"


자신을 둘러싼 수 많은 칼끝, 남자는 그 칼끝의 중앙에서 조금만 벗어나 칼을 든 서로가 마주보게 하여 서로서로 찌르게 만든다.

모두가 개인이었다면 동맹이라도 맺으려 했겠지만, 따로따로 팀이 나눠진 지금, 모두가 모두의 적이었다.


'광기께선 이 모든 것을 계산한 것이겠지...!'


"야! 내가 잡으면 200줄게! 지금은 그냥 꺼지라고!"

"헛소리 하네! 내가 뭘 믿고! 너희 팀이 혼란을 틈타서 도둑질 하는 거 다 봤어!!"

"즈그는 드럽게 착한가 보네? 느그 두 팀 다 똑같어! 으이?! 다 죽이뿌라!"


마치 작은 전쟁이라도 보는 것처럼 욕설과 피가 낭자한 곳에서 남자는 감당하기 힘든 희열을 느끼며 가볍게 빠져나왔다.

자신과 함께온 꽃은 그 자리에 남았지만, 그 정도에 어찌될 인물도 아니거니와, 목표로 지정되지도 않았으니 큰 문제도 없으리라 생각하며 남자는 본격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허! 어딜가!"

"쯧, 귀찮게 하기는."


마치 축제처럼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를 달리니 사람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기에, 그는 바닥에 떨어진 천을 주워 손에 감으며 수건도 무기처럼 사용하는 무술의 고수처럼 자세를 잡는다.


"어?! 저놈 저거 좀 하는 저건가?"

"껄껄! 저거라니! 이미 인간성을 내려놓았구나!"


쩍!!


당황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유저를 향해 남자는 손바닥을 날려 그를 기절시키고 뒤따라오는 그의 팀도 차례차례 쓰러뜨려간다.


"처, 천은...!"

"피튀면 닦으려고 주웠네. 문제라도?"

"!!!"


콰직!


마지막 한 명의 팀원의 짓밟으며 남자는 유유히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고 천을 버렸다. 천을 무기로 사용하는 방법 따위 애초부터 몰랐던 것이다.

그저 아주 잠깐의 틈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었던 일이 생각보다 너무 잘 먹혀 들어가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팀 한 입만 전원 사망! 표적의 표식이 더 커집니다!]


"이런, 그런 시스템이었던 건가? 광기께서 돈 꽤나 쓰셨겠군."


유저가 퀘스트를 발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퀘스트가 되기에 충분한 이야기 혹은 권력. 그리고 그 내용의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이다.

그도 투기장에서 돈을 꽤나 잃은 경험이 있기에 인광에게 그 정도의 돈이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투자를 하는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군, 내가 시장의 사무실에 들어간 것이 들킨 것이 아니었던 건가?'


꽃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인광의 능력에 감탄하며 호프본을 떠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잘 알려진 인광의 성격이라면 남의 일에 이렇게까지 큰 지출을 볼 리가 없었다.


'...쯧, 화원 녀석들이 손을 쓴 건가.'


그에게 있어 정보망을 피해 숨어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닐 뿐더러 지금의 인광이 가진 정보망으로는 도저히 그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지금도 인광의 어둠 생쥐가 그를 숨어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였으며, 뿌리치려 한다면 얼마든지 쉽게 떨쳐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꽃과 열매들이 있는 화원이 이 일에 개입했다면 말이 달라진다. 그들은 뿌리에게도 숨어 버리는, 그림자에 숨어 사는 광신자들의 그림자. 어디까지고 반드시 쫓아다닐 그림자처럼,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냥 도망가선 안 된다. 이번 일에 관련된 꽃을 찾아야 한다. 분명히, 그 여자이겠지. 순순히 이번 일의 전말을 말해줄 때 이상하다 생각했어야 했는데, 광기께서 움직인다는 것에 너무 흥분했던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시의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남자는 전력을 다해 최대한 유저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써가며 조심스럽게 도시를 뛰어다닌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쉽게 붙잡힐 리가 없었다. 저들에게 남자는 그저 불어가는 한 줄기 바람보다 희미한 것으로 인식될 터였다.


"찾았다!"

"쯧, 표식이 방해되는군."


아무리 그가 조심하려고 해도 머리 위에 새겨진 그를 가리키는 표식은 점점 거대해져 마치 어두운 무대 위에서 홀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처럼 눈에 잘 띄었다.

이대로 갔다가는 지평선 너머에서도 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표식이 거대해지겠다 싶을 때, 그의 머리 위로 인영이 하나 뚝 떨어졌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실루엣, 자신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을 느끼며 남자는 저도 모르게 환호했다.


'드디어 광기께서!'


"빌런!"


나타난 것은 등에 진을 업은 Zl존 어쩌고, 창이었다. 희망이 태어난 마을에 다시 한 번 희망이 강림한 순간이었다.

광기, 인광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던 남자의 입장에선 그다지 바라지 않던 인물의 등장이었지만, 창이 어떤 인물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기에 남자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툴툴 거렸다.


"...음, 뭐, 자네도 나쁘진 않아."


남자가 실망하고 창이 어리둥절한 그 타이밍에, 기다렸다는 듯이 파이가 착란 마법을 사용했다.

이후 호프본의 모두는 보았다. 광기로 얼룩진 마을, 무너져가는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희망처럼 하늘에 구멍이 뚫리며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원래부터 어둡지도 않은 적당히 날이 좋은 맑은 날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방송인의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과 진에 의해 어느 정도 마법의 효과에서 벗어난 창 정도일 것이다.


"이, 이게 뭐죠?! 무섭습니다, 스승님!"

"걱정말거라. 조금 화려한 연출일 뿐이지 않더냐. 곧 네가 걷는 길이 이리 될 터이니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익숙해지거라!"

"제, 제가요?"

"...여기선 그러지 않겠느냐. 난 너를 믿는다 제자야."


찬란하게 쏟아져 내려오는 빛의 사이로 천사들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유저들은 연출에 감탄하고 npc들은 다시 보지 못할 역사적인 순간을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물론, 저들은 진짜 천사가 아니다. 천사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인광이, 버려진 구역에서 데리고 온 어둠 생쥐를 파이가 마법을 이용해 천사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뒤이어 그 천사들 사이에서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천사는, 손톱에 이어 두 번째로 진화한 그림자. 단언컨데 실수로라도 천사라고 부를 생김새는 아니었다.


[지금 여기, 희망이 강림하였다.]


하늘의 천사는 그윽한 눈빛으로 창을 바라보며 딱 한 마디만을 던졌다.

분명 짧은 한 마디였지만 지금쯤 귀에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울려퍼지고 있을 npc들의 의지를 고취시키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한 마디였다.

게다가 이곳은 호프본, 희망이란 말이 가지는 무게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세상에...'


진 덕분에 그림자의 본모습이 천사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창은,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새까만 망토를 걸치고 푹 눌러쓴 후드의 아래에는 아무런 빛도 없이 한 쌍의 눈동자만이 자유롭게 그 속을 헤엄쳐다닌다.

두 다리는 사복검이고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새빨갛고 얇은 수많은 실이 뻗어나와 망토에 핏줄처럼 뻗어 자유롭게 망토를 조종하는 그 모습, 어디서도 보기 드문 괴물의 모습이지 천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 하하하!! 광기께선,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하하하! 그런데 대체 어디 계신거지? 왜 보이지가 않는 것이야? 투기장에 계신 것은 보았는데..."

"오래 말 섞지 말거라. 떠들다 방심하면 안 될테니."

"네! 크흠, 그건 내가 물을 말이다! 형은 어디에 있는 거지?!"

"내게 물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군. 자네는 아직 내 앞에 설 급이 아니니 지금은 조금 자제하게."


[퀘스트 갱신! '희망의 첫 걸음!' : 세상에 다시 등장한 희망의 새싹! 그를 도와 목표를 제압해주세요!]

[성공 보수 - 공헌도에 따라 보상금 차등 지급! 최대 천 만 골드!]


창도 이 게임을 그리 오래 하지는 않아 이 게임의 화폐 개념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천 만 골드 쯤 되면 말도 안 된 게 거대한 금액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아마, 절대로 누구도 천 만 골드를 얻지 못하겠지.'


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npc들은 희망이라는 존재 자체에 잔뜩 흥분하였고, 유저들은 한 없이 낮아진 인간의 존엄성 위에서 물욕에 미쳐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과연 인광이 계획한 것일까.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계획이었다면 창은 소름이 돋아서 인광과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자자! 얼른얼른 움직이거라! 요 꼬맹이는 워낙 즉흥적이라 다음엔 또 어떻게 말을 바꿀지 모른다!"

"...그렇겠죠?"


진의 말에 창은 자신이 괜한 걱정은 한 것이었겠거니, 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고 눈앞의 빌런에게 집중했다.

처음 만났던 날에도 이렇게 빌런이 정신이 팔린 순간에 기습을 하지 않는다며 인광에게 혼이 났던 것을 떠올리며 이번엔 말도 없이 순식간에 빌런을 향해 달려들었다.


뻑!


진에게 멸을 배우기는 했지만 그 시간이 짧고 본래 소질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원래라면 남자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었어야 할 창의 공격은, 이상하게도 잘 먹혀 들어갔다.


"크헉! 대, 체! 무슨!!"

"생각보다 그리 강하진 않네요!"

"입 다물고 공격하거라 공격! 상대는 네가 떠드는 걸 기다려주지 않는다!"


퍼버벅!


이어지는 연타에 남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탐색 기술 하나만큼은 정말 남달랐기에 이상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꽃...!'


남자를 팔아넘긴 꽃이, 인광과 나란히 서서 남자를 향해 주술을 걸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저들을 학살했던 남자가 창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꽃이 계속 인광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 난리 속에 분명히 두각을 드러냈을 인광을 남자가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 남자의 마음에 피어오른 감정은 분노가 아닌 질투, 배신당했다는 분노보다 어째서 너 같은 것이 광기의 옆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질투!


"네 년이...!!! 감히!!!"

"어후야, 너무 소름끼친다, 너."


피식 웃으며 골목에서 불쑥 튀어오른 인광은 순식간에 사슬로 남자를 묶고 바닥에 내리꽂았다.

굉장히 세게 내리꽂았는데도 바로 기절하지 않은 남자에게 인광이 몇 번이고 주먹을 내리치고 나서야 남자가 정신을 잃었고, 광란의 퀘스트도 끝이 났다.


"아~! 깔끔하게 끝났네!"


시스템이 계산한 공헌도에 자신과 창의 닉네임 외에 죽어서 없는 이들의 이름만 작게 표시된 것을 보며 인광은 미소 지었다.

큰 지출을 감수하고 저지른 일이었다. 언젠가 창에게 호프본으로 오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오늘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후 계획을 짜며 오랜 준비가 필요한 대규모 정신 착란 마법을 준비도 없이 파이에게 급하게 부탁했고, 다소 희생은 있었지만 마법은 멋지게 성공하였다.

npc들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일 그림자에게도 그럴듯한 대사를 떠올리지 못해서 딱 한 마디만 하고 폼 잡고 있으라는 말만 하였는데, 너무 잘 먹혔다. 게다가 이제는 천사가 언제 사라졌는지 관심을 가지는 인물도 없다.


'...너무 깔끔하게 끝났어.'


이럴 때일수록 조심에 또 조심. 인광은 분명히 반발하고 나설 유저들을 달래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거 참! 일이 이렇게 됐으니, 참가자 전원에게! 특별 선물을 증정하겠습니다!"

"...쯧, 그래. 그 정도면 뭐, 어차피 못 잡을 것 같긴 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뭐라도 하나 떨어지면 이득이지. 죽은 놈들만 아쉬운 거야~아니지, 죽은 놈들은 추가 보상이 있으려나? 아이고~! 나도 죽을 걸!"


유저들은 어느 정도 납득은 해주었다. 나름 재미는 있었고, 떨어지는 것도 있었던 데다, 슬슬 미친 듯이 끌어올랐던 그 광기가 식어가던 차였기에 타이밍은 더 없이 완벽했다.


"오오...! 오오 영웅이시여! 불굴의 영웅이 희망을 부르셨다!"

"저게...저게 영 . 웅...?"

"엄청나...! 이 무슨 어마어마한 초월자의 위용이란 말인가!"

"그럼...불굴의 영웅이 신이라는 말이야?!"


npc들에게서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호감도는 높아져간다. 이후 무너진 호프본을 싼값에 재건해주면 당장 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될 것이다.

싼값에 일도 해결하고, 특별히 미움받지도 않고 원하던 결과도 얻었다. 기분은 찝찝했지만, 인광은 파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기분은 좀 풀렸어?"

"...어? 아, 뭐야. 전에 했던 이야기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어?"


무너진 호프본의 폐허 위에서 내려오며 파이에게 무너진 호프본을 본 감상을 묻는 인광.

후환이 두려워 이 이상 일을 진행시키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언제라도 다시 무너뜨려 줄 기세를 보이는 인광을 보며 파이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네..."

"다행이네."


싼값에 너무나도 많은 걸 이루어낸 인광은 어깨에 남자, 정원사를 짊어지고 투기장으로 향한다.

기분 좋게 일을 처리했으니 기분이 좋아야할 인광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잘난 척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어째선지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아 흠칫 놀라며, 파이는 터벅터벅 걸어가는 인광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불길해...'


20년이 넘는 인생이 엉킨 실타래에 본드 부은 것 마냥 엉키고 설킨 채로 굳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망진창으로 살아온 인광.

아이엔의 일부터 해서 모든 일이 척척 잘 해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자, 그의 마음에 자그마한 불안감이 생겨났다.

이마저도 회장의 장난인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그러면서도 이제야 보상을 받는 것 같다는 안도감. 보상따위보다 그딴 인생 없던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세상과 자신을 향한 혐오감.

그런 복잡하고 본인도 정리하기 힘든 마음을 안고 인광은 웃는 얼굴로 칭송 받으며 거리를 내려간다.


"...씨발..."


너무나도 괴이한 괴리감에 누군가에게 툭 털어놓기도 애매하여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인광이 꺼낼 수 있던 말은, 축복과 환호성 아래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담은 그 짧은 한 마디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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