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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0.09.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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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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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진 슬라임

DUMMY

인광씨가 촌장님과 함께 떠나갔습니다. 그것도 훌쩍,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훌쩍.


"...말랑아, 나는 잠깐 밖에서 몸 좀 풀고 있을게."

"에, 네? 가, 갑자기요?"

"뭐가 갑자기야. 평소에도 사냥 하기 전에 매번 하던 건데. 아저씨 오면 돌아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네? 어, 아, 안 가면 안 될까요?"

"하루라도 공부를 게을리하면 잠이 안 오는 성격이라. 고생해!"


무, 무슨! 도망갔어요! 저와 이 어색한 분만 남기고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서는 도망갔어요!

...평소라면, 평소라면 괜찮았겠지만, 오늘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평소에는 항상 저를 품에 껴안고 다니면서 주물럭거리는 인광 씨가 왠일인지 두 번이나 저를 품에서 때어놓았기 때문이에요.

이게 전부 루시라는 저 여자의 갑작스러운 등장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네요!


"크흠흠! 어, 저기, 잠깐 괜찮을까요?"

"뭐."


히익! 반응이 무서워요...! 생긴 거랑 다르게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가진 분이 내려다보며 말하시니까 너무 무서워요...


"이, 인광 씨에 관한 건데요!"

"왜 성질이야?"

"아니요? 아닌데요?!"


정말이지! 인광 씨는 평소에도 이것저것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니 이렇게 촌장님만 데리고 훌쩍 떠나버린 데에도 분명히 무언가 이유가 있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자기 몸의 일부분이라도 되는 양 다뤘으면서 이제와서 타인 취급하는 건 너무 한거 아닐까요? 몬스터인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이 말입니다!


"인광 씨랑은 무슨 관계세요?"


촌장님도 인광 씨도 시장으로 가버린 지금, 바로 지금이야 말로 이 루시라는 분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기에 제격인 시간일 거예요.

도대체 당신이 무엇이기에 인광 씨가 당신 앞에서는 그렇게 맥을 못 쓰고 우리에게 당신을 숨기려고 하는 지 알아내야 겠어요!


"관계?"


마차에 앉아 챙이 넓은 모자를 벗어 만지막거리던 부드러운 인상의, 꼭 마녀 같은 분이 저의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어요.

으으, 저 눈빛! 저 매혹적이고 고혹적인 눈빛 좀 보세요! 저 눈빛으로 인광 씨를 홀린 것이군요! 과연 마녀! 연륜마저 느껴집니다!


"알아서 뭐하게?"

"알려줄 수 없는 건가요?"

"중요해?"


...이건, 차갑다고 표현하는 것도 이상할 정도로 무감각하네요. 사람이 맞긴 한 걸까요?

감정을 온도나 색으로 표현하자면, 이분의 지금의 감정은, 그냥 투명합니다. 온돈조차 느껴지지 않아요.

네...마치, 마치 속이 텅 빈 인형 같아요. 감정이 너무 과다하게 집결되어 있는 인광 씨랑은 정반대네요.

아, 혹시 그거 일까요? 감정이 넘쳐 흐르는 인광 씨에게는 온전히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대이고 감정이 부족한 이분에게는 인광 씨는 자신을 감정으로 가득 채워주는 그런?

오오, 뭔가, 뭔가 로맨틱한 관계네요! 서로서로가 서로가 아니면 완전할 수 없는 존재라니! 천생연분이라고 하던가요?


"네, 중요해요. 인광 씨는 저에게 빛을 보여준 분이에요. 그런 분이 곤란하게 대하는 사람이니까 꼭 알아야겠어요!"

"빛......"


이분, 인광 씨와 있을 때는 그래도 조금 사람다웠는데 지금은 정말 어쩜, 안타까울 정도네요.

지금 이 자리에 아이엔이 없는 게 다행이에요. 아이엔이 이런 모습을 봤으면 정말 적극적으로 이분의 말을 물고 늘어졌을 거예요. 이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여튼 아이엔은 너무 착해서 문제에요. 제가 하수도를 나와서 인광 씨와 함께 본 세상은 아이엔 같은 여리고 착한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해요.


"그 사람이 빛나는 것 같니?"

"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잖아요."


평소에도 그렇진 않지만요. 확실한 목표가 있을 때의 인광 씨는 주변의 그 누구보다 반짝반짝 찬란하게 빛을 내요.

평소에는...으음, 옅은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다고 할까, 보나마나 촌장님이랑 뒤에서 안 좋은 일을 하고 있을 거예요!

매번 주기적으로 받아가는 제가 만드는 정화수도 어떻게 써먹고 있을지 두려울 정도예요!

하수도가 갈수록 깨끗해지는 것을 보면 약속은 잘 지키고 있으신 것 같지만, 불안함은 지워지지가 않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처음 만났을 때는 어딘가 좀 부족한 사람 같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말할 때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더라고."


아! 드디어 감정이 보여요! 제가 이분에게서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성공했어요!

...그런데 왜 하필 그 계기가 인광 씨인 거죠? 진짜 둘이 무슨 관계에요? 이방인은 이곳 말고도 따로 살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호, 혹시 그곳에서 두 분이 뭔가 깊은 관계인 건가요?!

묻고 싶어요...너무너무 묻고 싶은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만약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아니면 또 '알아서 뭐하게?' 같은 대답을 들으면 미쳐버릴 지도 몰라요! 인광 씨처럼!


"왜, 너도 그 사람에게 관심 있니?"

"네?"


...으음, 복잡한 문제네요. 저는 도대체 인광 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소유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그래요, 인광 씨는 인광 씨대로 저를 자기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저도 저 나름대로 인광 씨를 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몰라요.

그렇잖아요? 지금 당장 인광 씨의 품은 오직 저에게만, 아, 아드님인 모닥이에게도 허락되었군요? 으으, 내가 유일했는데!

하지만 확실히, 처음엔 정말 무서웠죠. 뭐 이런 괴물 같은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앞뒤 가리지 않고 싹 다 부수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저보다 더 몬스터 같았어요.

그런데 인광 씨의 진가는 그런 곳에서 드러나지 않아요.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적을 상대할 때, 많은 이들을 자신의 등뒤에 두었을 때, 그때야 말로 인광 씨가 가장 빛이 나는 순간이죠.

솔직히 저번의 대악마 전,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나기는 했지만 멀리서 전체적인 상황을 보았던 입장에서 말하자면 정말 저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어요.

아이엔도 인광 씨도 정말 끔찍하게 다쳐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몇 번이나 입었으니까요.

그때마다 무력하기만 한 제가 얼마나 한심하던지, 제가 방어 마법을 익혔더라면 두 분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인광 씨는 그런 상태임에도 제가 실수로 대악마의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가 어김없이 공격을 받게 되면 반드시 몸을 던져 저를 구해주셨어요.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저를 다독이며 조심하러 일러주셨었죠. 전투 처음부터 도와주려다 제가 죽겠다 싶으면 그냥 말로 부르라고 하기도 하셨죠. 어찌나 아껴주시는지.


"저는 보다시피 몬스터예요."

"그러네."

"인광 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미 예전에 다른 수많은 몬스터들에게 잡혀 죽어버렸을 거예요."


맞아요. 인광 씨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제 목숨을 구해주고 제가 타락한 자에게 죽을 때는 그 누구보다 불같이 화를 내며 기어이 타락한 자의 날개를 뜯어내기도 했었죠.


"인광 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관심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닐까요?"

"...그렇지, 네 말이 맞아."


그러니 저도 이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여 인광 씨에게서 죽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 최선이자 마땅히 해야할 일이에요.

죽음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져버린 저는, 인광 씨가 죽어 사라지기 전까지는 죽을 수도 없어요.


"......"


주욱.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마치 인광 씨처럼 제 몸을 잡아서 주욱 잡아 늘립니다.

저는 보기만 해도 주무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그런 몸을 하고 있는 걸까요? 왜 다들 저를 한 번씩 찔러보고 꼬집어 보는 걸까요?


"......나도......"

"으에?"

"말랑아, 아저씨 왔어."


무언가 말을 하려했지만 아이엔이 불쑥 고개를 내밀어 다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입을 꾹 다물게 되었어요.

으으! 아이엔! 좋은 부분이었는데 이게 무슨! 당신이 분위기 전부 망쳤어요! 조금만 더 했으면 이것저것 들을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나 왔! 어...뭐야? 분위기 왜 이래?"


커다란 가방에 한가득 물건을 챙기고 갈 때는 촌장님이었지만 올때는 이상한 엘프분과 돌아온 인광 씨가 반갑게 인사하려다 조용한 분위기에 본인도 급 조용해지셨어요.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루시 씨랑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그래?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나 봐? 뭘! 싸우면서 친해진다잖아! 심지어는 우리는 지금 싸우러는 가니까 끝나고 나면 다들 친구가 되어 있지 않겠어?"


가끔...아니 자주 이상한 말을 하곤 한다니까요.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이 안 가서 난감해요.

마차에 짐을 풀어 놓은 뒤에 인광 씨는 저를 평소처럼 끌어안고 마차 안이 아닌 마부씨의 옆에 앉았어요.

다른 이야기지만, 이분은 왜 자기를 마부라고 부르라고 하는 걸까요? 무언가 저주에라도 걸린 걸까요? 저조차도 이름이 있는데...불쌍해...


"자, 그럼, 말랑아, 너와 나누어야할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있어."

"저랑요?"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저만 데리고 마부석에 앉은 것이었어요! 솔직히 왜 루시 씨랑 같이 안 앉았고 저 같은 거 붙들고 있으세요? 라고 물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요!


"말랑아, 나는 너의 존재에 항상 하늘과 같은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단다."

"알아요."

"우리 말랑이, 조금 뻔뻔해졌구나? 뭐 어쨌든.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하면!"

"네!"

"루시 씨랑 무슨 대화를 했는지 들려주지 않으련?"

"......싫어요.'


짜증나 진짜!


"에이~그러지 말고~! 그냥 마음에 걸렸던 부분만 슬쩍 말해주면 안 될까?"

"왜요? 제가 왜요?!"

"아하하! 뭐가 좀 걸리니까 그렇지. 혹시 알아? 저기 루시랑 내가 전에 한 번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사이일지."

"흥! 그러면 인광 씨가 기억하고 있어야죠!"

"아하하...나 평소에 뇌 빼고 다니는 거 알잖아. 좀만 봐주라."

"...후우...다음에는 이런 거 할거면 저한테도 말해주세요! 하여튼! 맨날 맨날 촌장님이랑만 비밀 이야기 하고! 촌장님이랑 사겨요?"

"야야! 말을 해도 꼭! 미안하다니까~응?"

"치이......"


조물조물 저를 만지작 거리는 딱딱한 손바닥에서 이제는 익숙함 마저 느껴지네요.

뭔가, 뭔가 점점 애완동물이 되어가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저만의 착각일까요? 나중에 혹시라도 실수로 인광 씨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으음, 그러니까 말이죠?"


간단하게, 하지만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조금 두서없이 루시 씨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인광 씨에게 말해주었어요.


"...아하...그래?"

"네, 맞아요."


가끔은 저렇게, 제가 하수도에서 처음 마주했던 그 광기 어린 눈을 보일 때가 있지만, 지금 저 눈이 향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그런지 그때처럼 무섭지는 않네요.


"고마워...계획을 조금 생각해봐야겠네."

"네? 루시 씨 사냥하려고요?"


마치 악동같은 미소, 본인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얼굴에 만들어보였을 그 미소를 띄우며, 인광 씨가 조용히 속삭이듯이 말했어요.


"필요하다면, 그것도 하고."


으음, 루시 씨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인광 씨에게 크게 데이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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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연애상담 20.11.25 71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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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선배와 후배 20.11.13 61 1 20쪽
89 시험의 탑 20.11.12 105 1 18쪽
88 영웅의 전당 20.11.11 103 1 21쪽
87 건드려서 좋을 거 없다 20.11.10 64 2 18쪽
86 집에 가고 싶다. 20.11.09 51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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