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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0.09.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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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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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

DUMMY

"말 안 하려고?"


괴로워하는 그녀를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턱을 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내가 그 다음으로 이어나갈 텐데, 그녀는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빈약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었으면 한다.


"그럼 내가 말해볼까?"

"무...슨...?"

"예를 들자면 회장이 내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루시 로웰이라는 한 때 부하 직원이었던 사람을 고용해서 내게 마치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위장시켜 접근 시키려 했다던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회장이 굳이 내게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있는가? 나를 사용하여 어떠한 결과를 보고자 함인가? 사회 실험 같은 거?

그래서 파이에 대해서 루시 로웰에게 주입하여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이게 아니라면 자기를 버린 회장에게 어떤 복수를 하기 위해서 회장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고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나를 이용하기 위해 루시 로웰 개인이 직접 다가온 것."


파이와 연관이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은 슈퍼 리얼의 컴퓨터라도 해킹했겠거니 생각하면 그만한 능력이 있는가는 둘째치고 어찌저찌 앞뒤는 맞는다.

다만, 두 가지 다 동기가 부족하다. 첫 번째 이유는 회장이 굳이 나에게? 라는 이유로, 두 번째 이유는 나 말고 차라리 이 비서 씨에게 접근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부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해주길 바래. 지금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조금 홧김에 움직일 수도 있어."


여기서 루시가 내 판타지 뇌를 자극하는 말이라도 꺼냈다가는 정말로 미쳐서 무슨 짓을 저지를 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감이 안 잡힌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사는 현실에서 흐름이 보여서 그 흐름으로 사람 하나를 꽉 붙들고 있다는게,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 붙잡힌 사람은 흐름을 제어 당해서 한 눈에 보아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고, 심지어는 내가 게임에서 만났던 그 파이와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 그게 믿을 수나 있는 말인가?


"그냥..."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꺼낸 그녀의 흐름이 순간 격하게 흔들렸다. 지금 꺼내려는 말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알겠지만,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으면 나는 모른다.


"내가 납득하게 말해야 될 거야..."

"그냥, 보고 싶어서..."


꽈드득!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조금 강하게 움켜쥐었다.

보고 싶다니? 누가? 나를? 누가? 네가? 왜? 내가 언제 너랑 만났냐? 아직도 자기가 파이라고 되는 양 굴 셈인가? 파이는 게임 캐릭터다.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고, 일단 루시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도대체 이놈의 세계는 나를 어디까지 미친 놈으로 만들어야 만족하는 걸까? 내 앞에 자기가 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옳다구나 좋다하고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내가? 그 누구보다 나를 신뢰하지 않는 내가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믿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나도...안 믿겨..."

"그럼 네가 아는 걸 말해야지. 내가 언제 네 감상 궁금하데?"


누군 지금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과거를 억지로 떠올려서 밤에 잠도 못 자게 생겼는데 자꾸 이상한 소리나 하면 다음엔 진짜 으깨버릴 거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것보다 이거나 놓고 말하게 해. 숨, 막혀 죽을 것...같아..."

"싫어."

"...내가 언제 네...감상 궁금하데...?"


...다소 쌀쌀맞아 졌군. 몸안이 뒤틀렸을 텐데 잘도 떠들어댄다. 아니지, 어차피 흐름이 내 착각이라면 몸 안이 뒤틀렸을 거란 것도 내 착각이니 당연한 건가?


"도망치면 어떡해?"

"20년을 기다려서...겨우 만났어...도망 안 가..."

"너 진짜! 내가 뭐 때문에 화내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구나?"

"...하아...내가 미안해..."

"뭐가? 뭐가 미안한데?"

"너 이렇게 될 줄은 알았어...그런데 내가 갑자기 너 찾아가면...너 놀라고 의심할까 봐...천천히 가려고 했었어."

"대체 언제까지 파이인척 하려는 거야? 너 걔가 어떤 애인줄은 알고 그러는 거야?"


사실은 나도 잘은 모른다. 그리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으니까. 우리가 나눈 건, 서로서로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을 나누었지. 나나 파이나 둘 다 익숙하지 않은 일 뿐이었지 서로가 서로에게 최초가 되었음 분명했다.


"넌 진짜, 파이가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막 내뱉는구나?"

"......어떤데?"


허 참, 이제 와서 모르는 척을 하네?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진짜.


"무슨 의미긴, 현실에서든 게임에서든 20넘어 처음으로 눈 마주치고 기억하는 인간이지. 그거 아냐? 내가 이때까지 눈 마주치고 눈독들였던 것들은 전부 망가지고 없어진 거? 미친 그게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아?"

"...없애버리고 싶었단 말이야?"

"또 없어질까 봐 겁이 나는데 그래도 욕심이 날 정도란 의미지. 사람 말귀 더럽게 못 알아 먹네!"


루시에게는 파이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말 했던 것 같은데 이걸 이렇게까지 못 알아듣는 건 대체 뭐야? 내가 지금 0과 1로 이루어진 비존재 지적 생명체에 관심 가지는 거 보고 약점 잡아 쥐고 흔들 셈이야 뭐야?

흥! 겨우 그딴 말에 흔들려서 멘탈 망가질 거라면 진즉에 저세상에서 여가 시간 보내고 있었어!


"한 번 생각해보라고, 어느 미친놈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 도와주겠다고 자기 목숨을 걸겠어? 어디 그뿐인 줄 알아? 이 못난 놈 옆에서 계속 챙겨주고 믿어주고, 심지어 걔가 나한테 무기를 만들어주는데 그 이름 뜻인 뭔지 알아? 나의 빛이란다 나의 빛! 내가 살아생전 언제 그런 애를 만나겠어?"

"......음"

"물론 나나 걔나 서로 표현하는 걸 힘들어 해서 막, 그렇게 괜찮은 대화를 많이 나누지도 않았고 다소 거친 표현들로 나를 대하기는 했어!"

"......크음."

"마지막에야 겨우 이름으로 불러주지를 않나, 그러면서 걱정이란 걱정은 전부 다 하고 사람 헷갈리게 말이야."

"......"

"나도 진짜 내가 게임 캐릭터에 이렇게까지 흔들리고 집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진짜, 내가 과거를 완전히 잊게될 정도로 완전 푹 빠져 있었지. 나도 뭐,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랬구나 생각하는 거긴 하지만 그냥 무의식적으로 딴 건 몰라도 파이 걔는 내 옆에 있었으면 한 것 같더라고. 그래서 외뿔이 그 당치도 않는 놈에게 되도 않는 우정을 느끼면서까지 파이를 맡겼는데, 외뿔이 그놈 그거 별 말 안 들리는 걸 보면 어디 딴 곳에서 뒤졌거나 파이 버리고 어디서 딴짓하고 있는 거겠지. 죽여벌라."


...어라? 이야기의 핀트가 나간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뭐, 하여튼 그래. 네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왜 나에게 접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이용하려 했다는 점, 내가 기억하고 싶은 추억에, 그 일부인 척 쳐들어왔다는 점. 때려 죽여도 화가 안 풀릴 것 같은데, 뭐 할 말 있어?"

"...흥, 걔를 진짜로 사랑하기라도 했나 봐?"

"뭐?"


......그런가? 그런 건가? 아니, 분명히 나도 그런 부분에서 엄청 고민하기도 했고, 많이 망설이기도 했는데, 지금 내 감정은 사랑이라는 것인가?

사랑...사랑이 뭔데! 도대체 뭘 기준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난 그런 거 모른다고!

어? 내 감정 이거, 그냥 집착 아니었어? 물건에대한 강한 소유욕 같은 거? 아닌가? 어? 사랑이야? 어, 아니지 않을까?


"몰라 그건...!"

"그런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

"그거야 뭐, 네가 내 거에 손을 대니까."

"그래 봤자 데이터 덩어리잖아?"


루시의 가벼운 잽에 집중력이 완전히 흐트러져버려 붙잡고 있던 흐름을 놓쳐 버렸고, 루시는 한층 더 유창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젠장, 바로 조금 전에 쉽게 안 흔들린다고 생각한 참인데...!


...그, 그런데, 풀려났으면 조금 떨어져 줬으면 좋겠는데...


"데이터 덩어리라고 가볍게 볼 거 같으면 게임 몰입해서 못 하지!"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몰입해서! 그 캐릭터를 사랑하게 됐느냐고!"

"...어? ......어어?"


크, 큰일이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게임에서만큼 침착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잘 안 된단 말이야!

내게 한층 더 얼굴을 들이밀며 얼른 대답해보라며 나를 부담스럽게 노려보는 루시. 도대체 목적이 뭐지?


"왜, 왜 이래!"

"네가 대답을 똑바로 안 하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뭐가! 내가 뭘 대답을 안 해!"

"사랑하냐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우리 방금까지 엄청 진지하고 섬뜩한 분위기 아니였어? 왜, 갑자기 사랑 이야기가 주가 되고, 나는 거기에 휘둘리는 거지?


"아니! 전혀!"

"그럼 내가 그 파이인척을 했을 때는 왜 그렇게 화를 낸 건데? 여기, 여기 멍든 거 보여?!"

"야, 야! 왜 갑자기! 얼른 가려! 그리고 그건 네가 수상하게 행동해서 그렇게 된 거잖아!"

"뭐가! 내가 뭐가 수상해! 너 전부터 말하는 게 은근히 자신감도 없고 계속 뒷일을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지?' 고민하는 모습이 종종 보여서 조심스럽게 다가간 건데 내가 뭐!"

"그게 수상한 거잖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파이라고 해도 안 믿을 거 면서 왜 자꾸 물어봐!!"

"그래! 안 믿을 거야!"


팟!


갑자기 나를 밀치더니 벌떡 일어나서는 휙 돌아 가버린다. 뭐지? 지금 이게 뭐하자는 짓거리지? 미쳐버린 건가?


"야! 어디가!"

"닥쳐! 말해도 안 믿는다는데 내가 뭐가 아쉬워서!"


연기인지 진짜인지 헷갈릴 정도로 감정이 가득 담긴 말을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루시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고 확 잡아 당겼다.

뭔가, 드라마나 영화같은 분위기가 되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거지? 조금 전까지는 판타지 소설 분위기랑 내용 아니었어? 어라?


"제대로 된 설명은 해줘야 내가 믿건 말건 할 거 아니야! 아무런 설명도 안 해줬으면서 믿으라면 누가 믿어줘!"

"내가 나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안 해줘도 그땐 쉽게만 믿었으면서!"

"아, 아니! 어어? 와아, 미치겠네 진짜. 그래, 그쪽으로는 나도 할 말 있어! 네가 파이라면, 어? 루시 로웰일 때는 자기 과거 줄줄 다 말했으면서 왜 파이일 때는 나한테 성만 덜렁 말해주고 자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해준 건데? 그냥 완전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잖아 네가!"

"네가 내 과거를 들어서, 그래서 동정하게 되는 게 싫어서 그랬다! 왜! 사람 이름 세글자 이상 발음 안 하는 놈이 이름은 또 왜 궁금한데!"

"가르쳐는 줘야 할 거 아니야! 기억은 하고 있다고! ...가끔! 까먹기는 해도!"

"이거 봐! 내가 말해줬어도 잊어버렸을 거 아니야! 어차피 너 내 이름을 헤파이로 기억하고 있었고 그 이상 관심도 없었으면서 왜 이제와서 관심 있던 척이야!"

"아, 아니...게임에서는 성이 없이 이름만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랬던 거지! 지금도 당췌 이 게임이 어떻게 생겨 먹은 게임인지 모르겠는데 테스터 시절이라고 뭘 알았겠어?"

"20년 동안 기다리다 겨우겨우 방법 찾아서 나왔더니 이렇게 생긴 애가 실실 웃으면서 다가온다고 눈 뒤집어져서 멍청하게 쳐웃고 앉아 있고! 돌아온다며! 옆에 여자끼고 돌아올 생각이었나 보지?!"

"그으으거는...아니! 너도 나랑 약속 안 지켰잖아! 기다리고 있으랬더니 왜 타락의 마녀라고 불리면서 불쌍하게 여기저기서 욕먹고 다니는 거야! 사람들이 네 이름만 나왔다 하면 눈에 불을 키고 굳었던 혀에 모터 달고 욕을 하잖아!"

"너 찾으려고 그랬다 너! 내가 너 언제 올 줄 알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냐고! 그리고 실제로 20년이나 기다렸단 말이야!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아주 쭈글쭈글 추한 할망구 됐을 텐데 그때는 너 나 쳐다도 안 봤을 꺼잖아!"

"너! 도대체 날 뭐로 보고! 야! 난 사람이랑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는 호군데 네가 어떻게 생겼던 내가 알게 뭐야!"

"거짓말! 내가 늙어서 주름 하나 생기면 옆에 준비해둔 여자로 갈아탈 거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럴 거 같았으면 20년 지난 거 안 시점에서 너 찾으러 안 돌아다녔어! 내가 너 하나 찾아보겠다고 엮이기도 싫은 인간들하고도 엮이고 있는데! 네가 기다린만큼 나도 여기서 너 보고 싶었어!"

"......진짜지?"

"그래...네, 네가! 네가 진짜 파이라면 말이야!"


하마터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괜찮은 분위기로 들어가서 진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홀려버릴 뻔 했다!

휴우, 힘겹게 제정신을 차렸다. 아아, 위험했다 위험했어! 당장 파이인지 아닌지도 모를 사람에게 홀라당 넘어가버릴 뻔 했네!


"아가,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니?"


루시의 어깨를 붙잡고 서로 긴박한 심리전을 보내고 있던 탓에 누가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탓에 새롭게 들려온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버렸다.

루시도 이제야 눈치를 챈 것인지 눈가에 고인 눈물을 급하게 닦아내더니 갑자기 나타난 인물을 돌아보았다.


"어."


굉장히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마치 세계적인 조각사가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것 같은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새하얀 미인.


"...또 여자야?"

"만나서 반가워~나야. 알지이?"


옷차림은 달랐지만 허리까지 오는 빛나는 금발에 머리에 돋아난 하얀색의 양뿔...도, 도르핀이다.


"상태 안 좋아 보여서 보러 왔는데 괜찮아 보여서 이 할미는 안심했단다."

"...이거 진짜 판타지 소설이야?"


가볍게 하하 웃는 도르핀을 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내가 미친 거라면, 거기 어디 간호사씨, 제발 약 시간 한참 지났으니까 약 좀 가져다 줘요 제발. 환자가 헛것 보잖아!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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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버려진 구역 20.12.04 6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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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찝찝한 영웅님 20.11.27 56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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