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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무문어
작품등록일 :
2020.09.12 17:44
최근연재일 :
2020.09.2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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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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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 소년가장(2)

DUMMY

9

김씨 부부는 한시우의 연기를 보고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한시우의 연기에 푹 빠져버린 김민지와는 달리 둘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저게 가능한 건가···.’


보는 이들에게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의 비애를 주는 저 눈빛과 몸짓은 김씨 부부에게 있어 매우 충격적이었다.


배역에 완전히 몰입하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는 최고의 연기였다. 헌데 그 최고의 연기를 경험이 없는 신인이 펼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축구로 치면 공을 처음 차 본 애가 무회전 슛을 차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그것도 우연히 무회전 슛을 때린 게 아니라 무회전 슛의 감각을 확실히 이해하고 무회전 슛을 때린 것이다.


자신들이 이런 감탄을 하는 와중에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어디선가 지우개나 매점음식들이 날아오지는 않을까 경계하는 디테일은 가히 일품이었다.


김지영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그녀는 한시우를 보며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자신의 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은 존재했었다.


몇몇 아이들이 왕따를 당했고, 자신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않고 그저 신경쓰지 않으려 무시했을 뿐이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끼어들면 자신에게까지 화가 미칠 테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 느꼈던 죄책감이 자신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 죄책감이 지금, 한시우의 연기를 보며 증폭되고 있었다. 김선봉은 그런 아내의 변화를 눈치채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김지영은 괴로운 표정으로 김선봉의 품에 안겨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도 한시우의 눈동자를 멍하니 응시했다.


한시우의 눈동자는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 같기도, 도와달라고 소리를 치는 것 같기도 했다. 몇 시간 같았던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한시우가 연기를 멈췄다.


그는 대본에서 시선을 떼며 김민지와 김씨 부부를 조심히 둘러봤다.


“···어땠나요.”


한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세 명의 시선에 당황했다.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베테랑들이 보기엔 부족했던 것일까.


“죄송합니다. 피드백을 주시면 고치겠습니다.”


한시우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 김민지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한시우에게 쉰 소리로 물었다.


“너 연기한 적 있어? 아역배우라든가.”


“이번이 처음인데요.”


“아이씨, 이게 말이 돼?”


김민지는 방금 전까지 느꼈던 그 감각을 되돌아보며 투덜거렸다. 한시우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울컥했고 눈가가 시큼해졌다.


한시우가 펼친 연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시우와 어울리지 않았다.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폭발했던 그 연기는 일개 고등학생이 펼칠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선봉은 잠시 입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우 학생, 실례일수도 있겠지만···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여보!”


김지영이 소리치자 김선봉이 찔끔했다. 하지만 한시우는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적은 없어요. 그래도 학교에서는 별 말 없이 조용히 있는 편이라··· 비교적 몰입하기 쉬웠어요.”


“조용한 편이라고? 완전 인싸같이 생겼는데.”


김민지가 한시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내뱉고 소파 등받이에 누워 앓는 소리를 냈다.


“연기에 천재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씁쓸하네.”


“피드백은요?”


한시우가 묻자 김선봉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우리는 시우 학생에게 조언을 할 입장이 아니야. 김대현 피디가 인재를 물어왔군.”


“사실 걱정 많이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네요.”


김씨 부부는 한시우의 연기를 보며 굳혔던 안색을 회복하고 금세 웃음꽃을 피웠다. 김선봉이 눈을 똘망하게 뜬 한시우를 보며 칭찬했다.


“실전경험도 없는데 그 정도의 연기를 펼치려면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겠어. 우리 딸이 시우 학생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네.”


“아, 그러고 보니 자식이 있으시겠네요.”


“시우 학생처럼 고등학생이야. 내년에 고삼.”


“저보다 나이가 많네요.”


김지영은 딸 얘기가 나오자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공부에 집중하면 좋겠는데, 우릴 따라 배우가 되겠다고 난리를 피워서···.”


김선봉의 표정은 김지영과 달랐다. 딸이 배우가 되겠다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어때, 열심히 연습도 하고 오디션도 꾸준히 참가하는데.”


“그럼 뭐해요, 성과가 없는데. 프로필은 유명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이상에야 통과하기 힘들고 혼자서 하기엔 한계가 있죠.”


어느새 자식 이야기에 집중하는 부부를 보며 김민지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또 시작이다···. 이럴 때는 저 둘과 거리를 벌리는 게 상책이야.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지거든.”


한시우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유심히 김민지를 쳐다볼 뿐이었다. 김민지가 한시우의 강렬한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뭐, 뭘 그렇게 봐?”


“결국 피드백을 못 얻었잖아요. 그럼 고칠 수도 없고···.”


이번에는 김민지가 한시우를 묵묵히 응시했다. 한시우는 그녀의 짜게 식은 눈을 보며 의아해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자존심 상해서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고, 한 가지만 이야기해주자면 지금 그 연기를 그대로 촬영 때 펼치면 그 누구도 너한테 뭐라 할 수 없을 거야.”


“듣기 좋은 말만 해주실 필요는 없어요.”


“···이건 또 이것대로 골치아픈 타입이네.”


실력이 뛰어나면 자연스레 교만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김민지는 그런 배우들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한시우같은 배우는 처음 본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가장 아래에 서있다고 착각하는 사람. 이건 이것대로 재수없었다.


“그래, 인생이 다 재능이지 뭐 있겠냐. 재능이 없으면 없는 대로 발악하며 살아야지.”


“그게 피드백인가요? 제 재능이 부족하다는 게?”


“아, 너 진짜 싫어. 아까 전에 눈치 빠르다고 했던 말 취소.”


한동안 한시우는 김민지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촬영장에서의 팁들을 알아갔다. 김민지는 자신이 아는 것들을 가감없이 담백하게 말해주었다.


“바닥에 화살표 스티커가 있는데 그게 동선이야. 넌 별로 신경 안 써도 돼. 동선이 짧은 편이니까.”


“촬영장에서는 수신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배우들도 그걸 익혀두면 도움이 될 때가 있으니 새겨들어.”


과연 경험자의 조언은 값진 것이었다. 한시우의 수첩엔 김민지가 말했던 정보들로 꽉 채워졌다.


시간이 흐르고, 대본 연습 시간이 끝에 다다랐다. 그 말인즉, 이제 촬영시간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조명 위치 확인하고!”


“피디님, 이쪽 카메라 명도 괜찮습니까?”


웅성거렸던 촬영장은 촬영이 시작될 때가 다가오니 더욱 시끄러워졌다. 한시우를 비롯한 배우들은 세트장 옆에서 대기 중이었다.


김대현 피디와 박경현 피디가 배우들에게 다가왔다. 두 피디 옆에는 어린 남자아이 한 명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김민지가 한시우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애가 네 가족 역할이야. 이름은 김빈. 네가 부양하는 남동생.”


“그렇군요.”


한시우가 김빈에게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김빈도 한시우를 보며 손을 마주흔들었다. 자신의 여동생인 한시현이 떠올라 한시우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지시사항 전달하겠습니다.”


박경현 피디는 배우들을 쭉 둘러보며 지시를 시작했다.


“처음은 중년 부부의 일상을 찍을 겁니다. 광고에서도 제일 처음에 나오는 장면이죠.”


박경현은 자기네 회사가 쓸 광고이므로 평소보다 더 꼼꼼히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표정, 몸짓, 시선 등등 신경쓸 것이 많았다.


“김민지 씨는 피곤한 표정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삼겹살 집에서 동기와 술을 마실 때에도 어딘가 피곤한 웃음을 지어야 해요.”


“네.”


배우들은 피디와 능숙하게 소통하면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갈피를 잡아갔다. 그에 반해 한시우는 뭐가 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말도 빨랐을뿐더러, 업계사람들만 사용하는 은어들이 많았기에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한시우의 불안함을 눈치챈 것인지 김대현이 그에게 다가와 긴장을 풀어주었다.


“넌 다른 배역에 비해 신경쓸 게 적어. 동선보다는 표정이 더 중요하니까. 네가 하던 대로 해.”


“······.”


“···뭐야, 왜 대답을 안 해?”


김대현은 한시우가 쳐다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김미자와 이유리가 한시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응원인가···.’


김대현이 피식 웃으며 한시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박경현은 한시우에게도 지시를 하러 왔다.


한시우는 군기가 바짝 선 신병처럼 몸이 굳었다. 박경현이 종이파일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신입은··· 솔직히 따로 지시할 게 없어. 다른 배역에 비해 동선이 복잡한 것도, 신경써야 할 것도 적으니까.”


“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연기를 잘 해야 돼.”


박경현은 안경을 꿰뚫을 듯한 날카로운 눈매로 말을 이었다.


“간단한 연기이기에 너의 실력이 여과없이 카메라에 담길 거야. 연차가 쌓인 배우들도 이런 역할은 힘들어하지.”


오로지 표정 연기 하나로 배역의 임팩트를 살려야 하기에 그 어떤 배역보다도 뛰어난 연기가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한시우가 맡은 배역의 특징이었다.


“솔직히 신입인 너한테 이 역할을 맡긴 것도 좀 의구스러운데, 김대현 피디님이 추천하셨으니까 그냥 넘어간 거야. 테이크 낭비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 말은 학교에서나 통하는 거고 여기서는 잘하겠습니다, 라고 해야지.”


“잘하겠습니다.”


박경현은 한시우의 대답을 듣고 김빈에게도 지시사항을 전했다. 한시우를 대할 때와는 달리 김빈에게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전달했다.


한시우는 김빈의 태연한 표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빈이는 안 떨려?”


“이런 거 많이 해봤어요.”


“···그래. 잘 부탁합니다, 김빈 선배님.”


***


지시를 마친 박경현은 신지환 감독의 옆자리로 가서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신지환이 그런 그를 힐긋 쳐다봤다.


“신입은 잘 갈구고 왔어?”


“그저 지시 몇 개 한 게 다예요.”


“그 지시를 듣고 저번 신입은 눈물콧물 쏙 뺐지.”


신지환의 농담에 박경현이 미간을 좁혔다.


“잘하면 뭐라 한답니까? 배우들 연기에 모든 게 달려있는데 당연히 잘해야죠. 못하면 자기뿐만 아니라 모두가 피해를 보는 건데.”


“그래도 조금씩 풀어줘야 제 기량을 발휘하는 배우들도 있잖아.”


“그렇게 말하는 감독님도 저 신입을 그렇게 반기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박경현이 의외의 방향으로 치고 들어오자 신지환은 신입 배우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상적인 비율에 잘생긴 남학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감도 없잖아 있지. 중요한 배역인데 기왕이면 경험자를 채용하고 싶었거든.”


“한 번 교체할 시간 정도는 남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바꾸면···.”


“그냥 쭉 갈 거야.”


신지환은 한시우를 바라보는 배우들의 면면을 살폈다. 풍부한 경험으로 무장한 김씨 부부,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김민지.


그들의 실력은 신지환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한시우를 보는 눈빛엔 신뢰가 담겨있었다.


“박 피디는 김대현 피디 안목을 못 믿나? 저놈 은근히 염세적인 놈이야. 뭐든지 부정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도 저 학생을 데려온 거야.”


“그건 저도 압니다. 그래서 길길이 날뛰고 싶은 거 참고 있고요.”


“참 고맙군.”


신지환이 카메라 감독, 조명 감독과 시선을 교환한 후 팔을 들어올렸다. 이제 자신이 팔을 내리면 촬영이 시작된다.


신지환은 팔을 내리면서 생각했다.


배우들의 신뢰하는 눈빛.


김대현 피디의 스카웃.


이 두 가지가 합쳐지니 영문 모를 기대감이 치솟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어디 한 번, 내 감이 정확한지 보자고.’


신지환이 신호를 내렸다.


“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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