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아카데미의 무한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SF, 게임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0.09.14 23:20
최근연재일 :
2020.11.30 18: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172,660
추천수 :
7,825
글자수 :
367,520

작성
20.11.15 11:05
조회
2,170
추천
137
글자
11쪽

신 연합 (1)

DUMMY

합중국의 재합류 후 크로스 델타에는 대대적인 개편이 시작됐다.


연합 측이 메타 코어와 관련된 기술을 전면 공유하는 조건으로 미합중국이 파견한 제 13, 17, 18 함대와 사령부는 연합 산하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크로스 델타로의 수용 역시 시작됐다.


당연히도 그 와중에 진통은 있었으며 대부분은 합쳐지는 진급 체계 속에서 발생한 자존심 싸움이었다.


합중국에선 파일럿에게 영관급 지위를 부여했지만 연합에선 에이스인 율 테이가 대위로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나를 비롯한 코어키 지급자들은 모두 소위로 임관했으며 리안 엘리엇 소위는 중위로 특진했다.


전공으로 따지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던 내게도 특진 제의가 왔지만 아무래도 동기들과 멀어질 것이 저어되어 고사했다.


그리고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훈련이란 것은 당연히 존재할 수가 없었고, 우리는 각자의 메타 코어의 특성 파악과 그걸 활용하기 위한 개인 기체의 건조 문제로 바빠졌다.


퍼스널 어빌리티라는 말은 즉 양산 체계가 적용될 수 없는 오더메이드 제조방식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자신의 기체를 만든다는 것 나름의 두근거림도 있을 것이다.


정작 이미 완성된 기체를 가지고 있는 나는 그런 문제에서 한발 자유로웠지만.


물론 그렇다고 맘 편히 있을 수도 없었다.


“요즘 뭐 힘든 일 없지?”


“네~!! 그래요!! 그러니까 그만 좀 물어봐요!”


내 질문에 신물이 난다는 듯 짜증을 내며 맥주잔을 들이키는 레아.


아무래도 잘못되고 만 미래를 보고 온 나는 자꾸만 그녀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걱정보단 차라리 기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는 건 어때?”


타냐가 말했지만 내가 정비병도 아니고. 그런 충고는 차라리 피터나 웨이에게 묻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 술집에 모인 건 처음 셔틀에서 보았던 4명이다.


나름 즐거운 동창회 느낌으로 타냐가 소집한 자리였지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 미성년이라 음주를 할 수 없는데다 프로젝트 M에 선발되지 못한 메이는 혼자 뚱한 표정으로 감자튀김이나 집어먹고 있었고 말이다.


“기체에 관한 건은 괜찮아요. 저도 나름 생각하고 있는 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뭐랄까······.”


그녀는 테이블에 팔을 개고 엎드린 상태에서 나를 힐끔 봤다.


“최근에 뭐 불안한 일 있어요? 안절부절 못하는 게 꼭······.”


뭐 마려운 개처럼. 분명 그렇게 말하려 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부끄러운 언행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레아는 흠칫 말을 멈추고 다시 안주를 집어먹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도 공격은 계속될 거고 그에 대한 대응을 단단히 해야 한다는 거지.”


내가 말했지만 그걸 진지하게 듣는 이는 없었다. 뭐 너무 당연한 말이기도 했고, 취기도 올랐으니.


하지만 난 정확히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격이 행해질지를 알았고 그렇기에 자꾸만 이야기를 꺼내 그들에게 인지 시켜야 한다는 의무가 있었다.


너무 지나치게 아는 척을 했다간 의심받을 여지가 있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래그래. 그 이야기는 충분히 했으니까 다른 건 없어? 가족 이야기라던가~”


타냐가 화제를 돌려 보려는 듯 내게 물었다.


가족. 이라고 하니까 어머니에 대한 생각 그리고 시뮬레이션에 이어 다시 테트라의 습격이라는 키워드를 거쳐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버린다.


아니 이제 그만 해야지.


"우리는 이제 군인이잖아? 목숨을 건 전투도 앞으로 수두룩할 거고.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타냐는 웃고 있었지만 조금 울적해보였다.


그답지 않은 자신감 없는 발언. 마치 불안감을 숨기기 위한, 최후의 만찬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결국 각자 나름의 회포를 풀기 위해 모인 자리였던 것 치고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채 우리는 술집을 나가게 되었다.


*


“나는 잠시 볼 일이 있으니까 먼저 들어가.”


가게를 나가자마자 타냐가 우리와 떨어져 나가 손을 흔들었다.


요즘들어 부쩍 함께 행동하는 것을 꺼리는 느낌이랄까. 물론 우리가 싫어졌다는 감각은 없었지만.


사실 그의 지나친 친화성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를 보낸 우리 세명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기숙사 방향으로 향했다.


메이는 여전히 별로 말이 없었고 가장 거나하게 취한 레아는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팔랑이며 활기차게 걸었다.


나는 아직까지 두루뭉술한 기분으로 두 명을 지켜보고 있었고 말이다.


이렇게 세 명의 기분이 다르기도 힘든데 말이다.


“부대 분위기가 이래서는 약속은 못 지키겠네요.”


레아가 어느새 내 어깨 근처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메이가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순간 그녀가 말하는 약속이라는 단어에 테트라의 공격을 막아 비극을 방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기억을 떠올렸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백화점에 가서 반지를 사주겠다던 약속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이렇게 어수선한 시점에 할 수 있는 개인행동이라고 해 봐야, 기껏 부대 근처의 술집을 찾는 것이 전부겠지.


하지만 딱히 그녀의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비밀로 하고 이야기를 하는 우리를 보는 메이가 더 불쾌해 보였다.


얘도 어린데 고생이구나. 원래의 미래든 바뀐 미래든 살아남아서 최전선에서 싸우는 건 변치 않는 것 같고.


난 손을 뻗어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다음 취해서 해롱대는 레아를 데리고 여자 숙소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혼자 습격까지 남은 날짜를 계산하며 어두운 부대 안을 돌아다녔다.


“어?! 태선 씨~”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향하니 익숙한 2인조가 과자 꾸러미를 늘어놓고 화단 앞 간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안뇽······.”


내가 인사를 받자 미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과자를 집어넣었고 사키는 먹던 과자를 삼키고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렸다.


그녀가 병문안을 온 뒤로 몇 번인가 마주쳤지만 여태껏 보였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불안해 보이는 소심한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고집이 오히려 동료를 죽게 만들 뻔 했던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지만 내 상정보다도 훨씬 회복이 더디달까.


설마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이거······. 먹어라.”


그녀는 옆에 놓인 주전부리 중에서 초코우유를 집어 들고 내게 건넸고 난 그걸 받아들었다.


“고마워.”


“취한 것 같으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과자를 입에 오물오물 집어넣었고 난 앉아있는 그녀들 앞에 서서 우유를 마셨다.


“그러고 보면 너희한테는 이야기를 안했네. 몇 달 뒤 테트라의 공격이 시작되면 정면에서 상대하려고 하지 마라.”


미래 레아의 이야기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파일럿이 대기권에서 질량체에 그대로 짓눌려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미코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그때까지 싸움을 계속했던 것 같지만 사키는······.


레아와 사키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그때 그녀의 얼굴에 드러나는 죄책감의 깊이는 그렇게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말이다. 설사 내가 죽고 회귀를 하게 되더라도 여전히 그 세계선은 존재하는 채로 남아 멸망의 일로를 걷게 된다는 걸 알게 된 시점에서 게임에 임하는 듯한 마음가짐은 날아가 버리고 만다.


“요즘 너무 민감하게 구는 것 아니에요? 물론 최근 위기가 많았지만 아군 전력은 늘었고 또 적의 기세도 눈에 띄게 사그라들었으니 당분간은 평화를 즐겨도 괜찮잖아요? 그지?”


미코가 다리를 펴고 웃으며 사키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그녀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뭐.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않나 싶기는 하다. 적에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하아······. 그래?”


여전히 찌그러져있는 친구의 자신감을 보고 한숨을 쉬며 미코는 나를 쳐다봤고 난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내 잘못은 아니잖아?


결국 우리는 조금 더 쓸데 없는 농담이나 주고받았다.


난 그녀들이 쥐여준 초코바 하나를 가지고 내 숙소로 향했다.


*


“자네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근거가 부족한 것 역시 사실이야. 거기다가 지휘체계가 재편된 지금 합리적 판단 근거가 없이는 상부에서 허가를 해줄 리가 없어.”


페소다 박사가 내 요청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치며 말했다.


난 지금으로부터 3개월 뒤. 들이닥칠 게 뻔한 습격에 대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했지만 별 다른 근거 없는 공포감 조성은 오히려 의심을 사기 좋았던 것 같다.


그래도 아군 전력의 증대라는 큰 틀은 대다수가 동의하는 대전제였기에 독특하고 비효율적인 제안 정도로 치부해준 것 같지만.


‘그리고 주의해야 해요. 군 내부에는 분명 내통자가 있어요. 정체불명의 괴물을 물리치기 위한 전쟁이란 프레임은 연합의 실책 대부분의 원인이었죠.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문명을 이룩했으며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자들이에요. 인간간의 전쟁과 다를 바 없다는 거죠. 오히려 이쪽에선 어떤 책략을 시도할 수 없기에 더욱 불공평할지도.’


난 레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적의 습격만큼이나 내부의 적 역시 주시해야한다는 소리. 처음 엘렌 데노어 중장을 미합중국 쪽의 사주를 받은 자가 아닌가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는 테트라와 결탁했다고 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이 우리의 절멸이 아닌 지배라는 점에서 더더욱 전향의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앞잡이라도 할 생각이었겠지.


박사는 힐끔 아래층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신규 연구부를 내려다봤다.


물론 기술 공유를 약속한 건 연합 측이었고 그들의 출입은 매우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결과였지만, 바로 한 달 전까지 아웅다웅 대던 두 세력이 정말 온전히 협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고 오히려 과한 것이리라.


“아마 당분간 귀찮은 간섭이 들어올게야. 저쪽 역시 라 플람의 파일럿인 자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필요 없는데······.


박사를 따라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더럽게 수염을 기른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파일럿 슈츠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투원. 하지만 저렇게 제멋대로인 외형을 할 수 있다는 건 어지간한 꼴통 아니면 상당한 입지를 가진 자라는 것.


그리고 그의 옆에는 숏컷으로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여자가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 대비가 또 특이해 눈길을 끌었다.


어라. 눈치 챘나?


난 슬쩍 나를 올려다보는 두 명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다른 곳을 쳐다보는 척을 했기에 그 뒤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앞으로의 준비기간 동안 순전히 테트라의 공격에 대한 대비에만 전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을 느꼈다.


작가의말

숨은 설정: 레아의 주량은 500cc 1잔 반


어제는 제 생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선작 증가는 선물인가요ㅋㅋㅋ


g6039_rlaalstlr786 님. 팔부귀중 님. Kaeyan 님. 케밀 님. Lapiaz 님. 시빌리우스 님. whgud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파일럿 아카데미의 무한 회귀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5 리베라테 메 (2) +49 20.11.30 1,824 111 19쪽
64 리베라테 메 (1) +20 20.11.28 1,143 74 13쪽
63 땡땡이 (2) +19 20.11.27 1,125 80 11쪽
62 땡땡이 (1) +14 20.11.26 1,137 78 11쪽
61 1st=저울 (4) +13 20.11.24 1,232 78 12쪽
60 1st=저울 (3) +10 20.11.22 1,409 103 11쪽
59 1st=저울 (2) +16 20.11.21 1,335 86 14쪽
58 1st=저울 (1) +9 20.11.21 1,395 68 11쪽
57 서든 스트라이크 (5) +12 20.11.20 1,614 92 13쪽
56 서든 스트라이크 (4) +10 20.11.19 1,664 97 12쪽
55 서든 스트라이크 (3) +12 20.11.18 1,869 110 12쪽
54 서든 스트라이크 (2) +20 20.11.17 1,932 113 12쪽
53 서든 스트라이크 (1) +19 20.11.16 2,010 122 12쪽
52 신 연합 (2) +33 20.11.15 2,150 154 13쪽
» 신 연합 (1) +18 20.11.15 2,171 137 11쪽
50 나의 지구를 지켜줘 (3) +49 20.11.14 2,593 165 11쪽
49 나의 지구를 지켜줘 (2) +28 20.11.13 2,210 133 12쪽
48 나의 지구를 지켜줘 (1) +12 20.11.12 2,225 110 12쪽
47 화성 침공 (5) +8 20.11.11 2,071 103 11쪽
46 화성 침공 (4) +19 20.11.09 2,137 111 13쪽
45 화성 침공 (3) +9 20.11.07 2,135 105 13쪽
44 화성 침공 (2) +11 20.11.05 2,201 105 12쪽
43 화성 침공 (1) +17 20.11.04 2,259 110 11쪽
42 병문안 (2) +8 20.11.02 2,179 124 12쪽
41 병문안 (1) +14 20.11.01 2,229 126 12쪽
40 439th=머나먼 길 (2) +12 20.10.31 2,185 110 13쪽
39 439th=머나먼 길 (1) +13 20.10.29 2,179 109 12쪽
38 438th=우주 아이돌 (4) +10 20.10.28 2,164 119 11쪽
37 438th=우주 아이돌 (3) +10 20.10.27 2,161 106 11쪽
36 438th=우주 아이돌 (2) +16 20.10.26 2,282 12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