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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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작품등록일 :
2020.09.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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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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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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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DUMMY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오늘은 어머니께서 쉬는 날이어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기로 했다. 항상 바쁘신 어머니셨지만 오늘 같은 날엔 항상 교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모처럼이니 달려가서 안겨드리는 퍼포먼스라도 한번 해드려야겠다.


‘절대 내키진 않지만, 오늘 반찬이 달라질 테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어머니께서는 유독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텅 빈 운동장에서 이제 어머니 보다 나를 더 따르는 미호와 놀아주고 있었다. 그때 다급한 표정의 이모가 차에서 내리셨다.


“강철아 미호야 빨리 차에 타. 어서!”


어두운 표정의 이모는 어딘가로 차를 급히 몰고 가셨다.


“이모님, 지금 어디 가시는 겁니까? 어머니는요?”


떨리는 목소리로 이모가 말했다.


“강철아, 엄마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 엄마 보러 병원에 가야돼.”


무언가 느끼는 게 있는지 미호가 얌전해졌다.


“이모, 엄마 보러 왜 병원에 가?”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있어.”

“엄마가 아파? 엄마 아픈 거 싫어!”


눈물을 터트린 미호를 보면서도 나는 뭔가 담담한 기분이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응급실에 도착한 우리에게 의사선생님이 오셨다.


"김미영 씨 보호자 분이십니까?"

"네 제가 동생입니다. 언니는 괜찮은가요 선생님?"


의사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던 이모는 갑자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의사선생님은 이모의 옆에 있던 우리를 보더니 말을 거셨다.


“너희가 강철이 미호구나.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까.”


한참을 망설이던 의사 선생님은 힘겹게 입을 땠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다. 잠시 의식을 차리시곤 강철이와 미호를 많이 찾으셨어.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나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의사 선생님은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미안하구나.”


한참을 그렇게 의사 선생님은 말없이 우리 앞에 서 계셨다. 이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나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영상이다.”


영상 속의 어머니는 상처투성이에 창백한 얼굴로 애써 웃어 보이셨다. 힘이 없으셨는지 평소와 다르게 쥐어짜내는 목소리로 말을 하셨다.


“사랑하는 강철이 미호야.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아. 너무나 할 말이 많지만, 너희들 엄마로 있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 미안해 엄마가 더 같이 있어 줄 수 없어서, 같이 많은 시간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사랑한다. 미호야 오빠 말 잘 듣고 언제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라. 언제나 어른스럽고 든든한 내 아들 강철아 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해. 강철아 미호를 부탁해. 내 사랑하는 아들딸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 미안해... 미안해···”


어머니는 나에게 필요한 존재. 딱 그 정도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의 죽음은 수도 없이 겪었다. 아까처럼 담담한 마음인 게 당연할 테다.


그런데 ‘이 들끓는 감정은 무엇일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변화에 나조차도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어머니의 영상을 돌려 보았다. 어머니는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에도 온통 우리 걱정뿐이었다.


‘왜 항상 당신은 나에게 미안하다고만··· ‘


지금까지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따스한 눈빛, 어떤 순간에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던 마음, 나를 꼭 껴안아 주던 따스한 품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었다.


어떤 순간에도 오롯이 내 편인 사람. 죽어가는 순간에도 내 걱정이 먼저인 사람.


‘이런 게 가족이란 건가.’


폭풍처럼 밀려오는 이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임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어떤 삶을 살았던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이야말로 진정으로 어머니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아아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머니란 존재는 나도 모르게 내 가슴에 스며들어 그렇게 진짜 가족이 되어 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 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 때는 그 가치를 알 수 없었다. 잃고 난 후에서야 이렇게 후회하는 것이다.


한 번만 더 안아드릴걸, 한 번만 더 사랑한다고 말할걸.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녀에게도 유일했을 가족인 나와 미호. 혼자서 쓸쓸히 눈감았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미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오빠 왜 울어? 미호가 초콜릿 줄게 울지마.”


정신이 확 들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기엔 한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슬픔에 계속 빠져 있기엔 내가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미호가 받아 드리기엔 너무 힘든 현실일 것이다.


‘어머니, 다음이 또 있다면 한 번만 다시 제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사랑합니다.’


살아계실 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어보며 다짐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 꼭 지키겠다고. 나는 울먹거리는 미호를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먼지가 들어가서 그래.”


이 작은 아이가 애써 나를 달래려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 생에 처음 가져보는 가족이자 이제 유일한 가족인 미호. 내 꿈을 이루는 것은 이 아이가 행복해진 후로 미루는 것으로.


그렇게 나의 세상은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


어머니 사건의 가해자는 사고 당시 만취 상태였다고 한다. 사고 당시 그 자리에서 즉사해서 복수도 할 수 없었다. 가해자의 가족들은 보험금 배상 문제로 선처해달라며 여러 번 우릴 만나길 원했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 한번 없이 돈 얘기만 하는 저런 파렴치한 인간들을 만나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보험사에 전적으로 맡겨 두었다. 이곳이 메를린 대륙이 아니라는 것에 저들은 평생 고마워해도 모자랄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는 조촐하게 끝났다. 친가 쪽 친척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와 연을 끊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릴 때 이모와 함께 보육원에 맡겨져 이모 이외엔 가족이 없었다.


장례식 중 한가지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의 직속 상사라는 팀장 아저씨였는데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가족보다 더 서럽게 우셨다.


“강철아, 너의 부모님에게는 내가 갚지 못한 큰 빚이 있단다.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주저 말고 아저씨한테 꼭 연락하거라.”


나 정도 오랜 세월 산전수전 다 겪어 온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이 어느 정도 진심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가족 이외에 고인을 위해 이렇게 진심으로 슬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셨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많은 것이 변했다. 어머니는 벌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자식 둘을 모자람 없이 키우시기 위해서 아낌이 없으셨기에 보험금을 제외하면 집 한 채 정도의 재산만이 남았다. 미호와 나는 모두 미성년자였기에 이모가 법정대리인이 되어 주기로 하셨다. 그렇게 이모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다.


“강철아, 미호야, 어릴 때처럼 편하게 지내.”

“엄마는? 이제 정말 못 보는 거야?”


미호는 아직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내가 좀 더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어머니의 빈자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나 어린 미호에게는 더 그랬다.


“이모, 나 초콜릿 먹고 싶어.”

“안돼. 미호, 이제 군것질 그만해.”

“왜 안돼? 수철이는 초콜릿 사줬잖아, 나도 먹고 싶어!”

“어디서 어른한테 말대답이야! 미호 혼나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으아아앙.”


미호가 안타깝지만 졸지에 애 둘을 맡게 된 이모의 처지도 이해해보려 했다. 너무나 바뀐 환경에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이모는 바빠서 졸업식에는 오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런 것들은 나에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니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내가 졸업하면 당분간 학교를 혼자 다닐 미호가 걱정이 될 뿐이다.


“미호야, 오빠랑 사진 찍자. 축하 안 해줄 거야?”


미호는 오늘따라 유난히 풀이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일까. 살아온 세월로 치면 여기 있는 누구보다 많을 나이지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도통 모르겠다.


“미호야, 이거 봐봐. 미호가 좋아하는 아몬드 초콜릿이야! 오빠가 힘들게 구했다고.”


“안 먹어.”


문제가 심각하다.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다.


“미호야 왜 그래? 이거 미호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자 아~ 해봐.”

“안 먹어!”


미호가 초콜릿을 땅에 던져버렸다.


“김미호! 오빠 졸업식 날 왜 그래?”

“졸업하면 오빠도 엄마처럼 날 떠날 거지?”

“그게 무슨···”

“이모가 그랬어, 말 안 들으면 보육원에 버려버린다고. 오빠도 더 크면 미호를 떠날 거니까 이모 말 잘 들어야 된다고 그랬어.”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오빠 나 버리지마. 응? 미호가 말도 잘 듣고 이제 먹는 거도 많이 안 먹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울먹이는 미호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 미호를 잘 돌보기로 약속했다. 항상 밝게 웃으며 자라기만을 바랐는데 이 조그만 아이가 어떤 것을 감당하고 있는지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울고 있는 미호를 감싸 안았다.


“오빠는 절대 미호를 떠나지 않을 거야, 약속해.”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약속!”


미호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약속하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내 영혼에 새길 약속이다. 내가 죽어서도 지킬 약속.


그날 나는 이모에게 통보했다. 이 집을 나가겠다고. 이모는 길길이 날뛰었다.


“내가 남의 새끼 키우느라 얼마나 뼈 빠지게 고생했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나간단소리야? 안돼!”

“제 결정에 변함은 없습니다.”

"니가 어떻게 미호를 데리고 둘이 살겠다는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당장 방에 들어가지 못해?"

"제 결정에 변함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미호에게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 따지고 싶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은 어머니의 혈육이다. 되도록 좋게 해결하고 싶었다. 꾹꾹 화를 삭히던 중 이모가 어떤 서류를 내밀었다.


‘재산 양도 각서’ 이모가 내민 서류의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내 나이 또래의 어린아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내용이었지만 어머니가 남기신 재산을 양도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의 나가고 싶으면 여기 사인하고 가! 그래도 너희 엄마 살아있을 땐 돈이라도 꼬박꼬박 줬었는데 이때까지 너희들 돌봐준 은혜도 모르고 말이야. 배은망덕한 것. 누굴 닮았는지 원.”


마치 오래전에 준비한 듯이 내밀어지는 서류에 나는 분노가 미친 듯이 치밀었다. 결국 반대하던 이유는 돈 때문이 었다.


“당신···”


나도 모르게 살기가 발산된 것 같다. 창백하게 질린 이모의 얼굴을 보며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모는 겁에 질린 듯 했다.


“뭐...야... 꼴도 보기 싫으니까 썩 꺼져!”


이모는 허겁지겁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득 소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인간만이 욕망을 위해 가족, 친구를 희생시키기에 거리낌이 없다고 했던가···’


나 혼자였다면 고민할 거리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미호를 위해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미성년자였고 미성년자가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것은 아직 제도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때 문득 어머니 장례식에서 처음 보았던 팀장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아저씨는 그이후로도 틈틈히 나에게 잘있는지 연락을 하시곤했다. 어떤 기대를 한 건 아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김미영 씨 아들 김강철입니다.”

“강철아. 잘 지냈지?”

“아저씨 혹시 한번 뵐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다음날 바로 나를 보러 오셨다. 나에게 자초지종을 들으신 아저씨는 길길이 날뛰시며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사를 내비치셨다. 그렇게 나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미호와 함께 이모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남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현실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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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다오랑
    작성일
    20.09.17 12:40
    No. 1

    ^^추천! 잼있게 읽고갑니다. 화이팅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개스바
    작성일
    20.09.20 16:51
    No. 2

    헐...... 이건 예상못했네..... 와... 전 그냥 그만 볼게요 ..... 전편만해도 그냥 화목한가정에 아들이 재능충만하고 어머니와 정답게 지낼줄알고 좋아했는데... 충격을 좀 먹어서 전 그만 보겠습니다.
    건필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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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하고 싶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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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및 작가의 말 20.09.16 108 0 -
11 먹잇감(2) +1 20.09.22 83 3 13쪽
10 먹잇감 20.09.21 73 1 12쪽
9 첫 친구 +1 20.09.20 89 3 12쪽
8 아이 이길 바랬다 +1 20.09.20 99 1 14쪽
7 조밥이야 20.09.19 101 1 13쪽
6 넌 뭐야? +1 20.09.18 118 2 13쪽
5 독립 20.09.17 109 0 13쪽
» 나의 어머니 +2 20.09.17 122 2 13쪽
3 가족이란? +2 20.09.16 129 2 12쪽
2 백수 하고 싶다 20.09.16 142 2 12쪽
1 프롤로그 +1 20.09.16 17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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