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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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작품등록일 :
2020.09.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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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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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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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

DUMMY

“이번 중간고사에서도 우리 반에서 전교 1, 2등이 다 나왔구나. 1등 김미호. 2등 박예리. 다들 박수”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와 예리를 번갈아서 쳐다보고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더 분발할 수 있도록 하자. 오늘 조례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반장 선거에선 단연 1등으로 뽑힌 예리가 선생님께 경례를 시켰다. 예리와 나는 그날 점심도 이제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뒷동산에서 먹었다.


“야 너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해?”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너 내가 과외받는 선생님들 과외비가 얼마인 줄 알아? 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사람들이야.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다는 씨도 안 먹히는 말은 하지 마.”


숨겨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더 빼는 것도 예리한테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오빠한테 배웠어.”

“오빠? 이 도시락 싸주는 그 오빠?”

“응. 어릴 때부터 오빠한테 전 과목 다 배웠어.”

“너희 오빠 고등학교도 안 갔다며? 뭐 하는 사람이야?”

“나도 잘 몰라···”


매일 마주하고 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오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해야 나와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오빠였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나 때문에 많은 걸 포기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오빠는 뭘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한 사회에서도 아직도 날씨를 정확히 예측 할 수 없는 걸 보면 자연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다. 나중에 우산 없이 나간 미호를 데리러 가야겠지만 지금은 못처럼 갖게 된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


-흑염룡 내가 한타를 열겠다.

-믿겠다. 파트너.

-갑니다. 음머어어어어어어!


수많은 전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의 전투 센스와 에테르로 활성화된 나의 초감각이 어우러져 이제 나의 경지는 내가 소인지 소가 나인지 모를 정도의 인우일체의 경지를 이루었다.


-이야 이걸 이겼어.

-역시 소장인

-우리 원딜도 대단하다. 생존기도 없는데 딜 오졌다.


한 라인에서 무조건 짝을 이뤄야 하는 서폿과 원딜은 그야말로 영혼의 단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로 믿음이 없이는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바로 다음 게임을 위해 나의 파트너 흑염룡과 대기를 탔다.


-파트너, 나의 영혼에 잠들어있는 흑염룡의 피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파트너뿐이다.

-흑염룡의 힘 제대로 보았다. 이번 판도 우리의 힘으로 적에게 파멸을 안겨주도록 하자.


-끓어오른다 으아아아!

-음머어어어어어!


흑염룡은 내가 초보 시절 유일하게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였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위축되지 않고 ‘음머어어어어!’ 울부짖는 나의 투지에 그의 영혼이 반응했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와 있으면 나도 전투 본능이 한 것 고조되는 느낌이다.


-흑염룡, 이제 나약한 인간들을 구원하러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벌써? 아쉽군.

-미안하다. 내가 쌓은 카르마가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대를 기다리고 있겠다. 이 세상이 끝나더라도···


정말 현실로 돌아와 미호를 데리러 갔다.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오늘은 어떤 음식으로 미호를 즐겁게 해줄까 생각하며 길을 걷던 그때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아악! 이거 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봤을 때 거리가 제법 있었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미호의 학교 주변이다 보니 남 일 같지 않았다. 빠르게 달려가 현장에 도착해보니 한 사내가 여학생 앞에 서 있었다. 일단은 저 사내를 제압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퍽!


그 사내가 팔을 겹쳐 내 발차기를 막았고 사내의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끌며 밀려났다.


‘막았어?’


발차기에 실린 힘은 일반인이 막을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 사내를 자세히 보니 몸에 미세한 에테르가 퍼져있었다. 에테르를 연공했다기보다는 수많은 단련으로 에테르가 몸에 스며들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런 골목길에서 마주칠만한 수준의 사람이 아니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아가씨. 아가씨 제 뒤로 숨어 계십시오. 동조자가 또 있었군. 어디서 보냈지?”

“어라?”


쓰러져 있던 여학생은 그 사내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어··· 그게··· 비명이 들려서 도와주려고 했는데요.”


그 사내는 우산 아래로 보이는 나의 얼굴이 앳돼 보여서 놀란 것 같았다.


“학생··· 인가?”


이럴 땐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를···”


부리나케 뛰었다.


“학생 잠깐만 기다려!”


기다리란다고 기다렸으면 뛰지도 않았다. 미호와 같은 교복을 입은 걸 보니 그 여학생도 미호와 같은 학교 학생인 것 같았다. 어쨌든 무사해 보이니 다행이다.


“아가씨 학교 밖에 나올 땐 꼭 알리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큰일 날 뻔했습니다!”

“헤헤··· 아저씨 미안, 담배가 떨어져서···”

“하··· 아버님이 아시면 정말 큰일 납니다.”

“비밀이야 알겠지? 근데 아까 그 사람 누굴까?”


여학생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러게요. 저도 궁금합니다.”


아직도 학생의 발차기를 막은 양손이 후들거렸다. 수많은 강자와 싸워왔지만 이렇게 긴장이 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가씨 어서 돌아가세요. 끝나고 모시러 가겠습니다.”

“알았어.”


***


잠시 후.


“예리야 왜 체육복 입었어?”

“아 옷이 좀 젖어서.”

“근데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비 맞았어? 열나는 거 아니야?”

“너무 잘생겼더라. 몸도 좋고.”

“응 무슨 말이야?”

“누굴까?”


예리가 살짝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전교 1등 소식에 기뻐할 오빠를 기대하며 교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리야 잘 가.”

“미호도 잘 가.”


예리는 항상 그렇듯 기사 아저씨의 차를 타러 갔다. 예리처럼 편안한 기사 아저씨는 없었지만, 나에겐 멋진 오빠가 있으니까 괜찮았다.


“미호야!”

“오빠!”

“배고프지? 집에 가서 밥 먹자. 오빠가 오늘은 미호가 좋아하는 제비집 요리해놨어.”

“우와 오빠 최고!”


우산속으로 모습을 감춘 남매의 옆으로 예리가 탄 차가 지나갔다.


***


오늘은 미호의 학예회가 있는 날이다. 항상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괜히 미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 테니 미호를 위해서 큰마음 먹고 양복도 한 벌 준비했다. 곧 다가올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미호에게 격려를 해주러 대기실로 가는 복도에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한 사람을 마주쳤다.


“안돼··· 안돼··· 조금만 더··· 제발···”


그 사람은 어딘가 아픈 듯이 안색이 노랬다.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어디 안 좋으세요?”

“오지 마··· 오지 마···”


왠지 발작 증세가 있는 것도 같아서 급하게 떨고 있는 그 사람의 두 팔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림이 멈추지 않아 힘을 조금 더 세게 주었다.


“안돼!!!”


푸드덕 푸드덕 뿌우우웅.


이 소리. 이 냄새. 내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 같다. 큰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휴··· 쌌네 쌌어.”

“더러워...”


그 사내의 얼굴은 모든 걸 초탈한 듯 평온해 보였다. 저런 것이 열반에 든 자의 모습일까? 그때 진행요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복도에서 누군가를 다급히 찾았다.


“김태원 씨! 김태원 씨! 어디 계세요?”


진행요원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김태원 씨? 아우 이게 무슨 냄새야.”


주저앉은 사내는 인제야 수치심이 밀려오는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좋은 생각이 난 듯이 빙긋 미소를 짓더니 진행요원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김태원이에요.”

“응?”

“빨리 갑시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 저 아닌데요···”


진행요원이 다시 그 사내를 쳐다봤다.


“저 사람 맞아요. 피아니스트 김태원 씨 내가 콘서트도 갔어!”


절실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에이 김태원 씨 시간없어요. 농담하지 말고 빨리 갑시다.”


진행요원이 날 잡아끌었다. 얼떨결에 나는 무대에 올라와 있었다.


“오늘 특별히 대한고등학교 출신으로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태원 씨가 무대를 빛내주시러 와주셨네요.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내가 무대로 올라오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김태원 씨가 저렇게 잘 생겼었나?”

“조명 때문에 그런지 진짜 빛이 나는 것 같은데?”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짐작은 됐다. 나름 유명한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똥쟁이'가 될 순 없었을 거다. 나의 잘못도 어느 정도 있으니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간단하게 한 곡 정도 들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나를 지금 김태원으로 알고 있고 이곳은 사회 주요 인사들이 많은 관계로 동영상 촬영도 금지되어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김태원 씨 나날이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아지고 계신대요. 오늘은 어떤 곡 들려주시겠습니까?”

“리스트에 라 캄파넬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곡은 기교가 너무 어려워 잘 치기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곡이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 공연 끝나면 바로 올라갈 거니까 2반 친구들 준비합시다.”

“역시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다르구나! 정말 잘 친다.”

“나는 그쪽은 잘 몰라서···”


무대 옆 대기 장소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예리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람을 보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그때 그 사람?”

“응 예리야 무슨 소리야?”

“무대 위에 저 사람···”

“어 우리 오빠네?”


예리의 목이 휙 돌아갔다.


“너희 오빠?”

“어 우리 오빠. 왜 저기에 있지?”


무대가 끝나자 사람들의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나왔다. 이 맛에 관심받는 거겠지만 이번 생엔 이런 지속적인 관심은 사양이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가끔 받는 찬사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무대를 내려오자 대기 장소에 미호가 있었다.


“오빠! 오빠가 왜 거기서 나와?”

“아 사정이 좀 있었어. 나중에 얘기해 줄게. 공연 잘하고 화이팅!”


오빠가 내려가고 나서 무대에 오를 시간이 됐다. 긴장감이 올라와서 손에 땀이 났다. 합창곡의 가사를 되뇌고 있을 때 아주 거친 숨소리가 내 고막을 때렸다.


“습하··· 습하···”


예리의 코가 벌렁거리고 있었다.


“예리야 왜 그래? 긴장돼서 그래?”

“너무 긴장돼서 심장이 벌렁거려요. 아가씨.”

“아가씨? 얘가 왜 이래. 정신 차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아이들은 부모님들과 같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시간을 가졌다.


“미호 오늘 잘했어. 멋졌어!”

“정말?”

“저기···”

“어 예리야 인사해 우리 오빠야.”

“아··· 안녕하세요.”

“어 그래 반가워. 네가 예리구나. 미호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근데 어디선가 본 것 같네?”

“오빠, 예리 유명한 애야. 뉴스 같은 데서 봤겠지.”

“그런가?”


미호의 친구인 예리에 관해서는 미호에게 많이 들었다. 엄청난 집안의 사람답지 않게 소탈하고 바른 친구라고 들었다. 처음에는 미호가 힉경[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예리 덕분에 잘 적응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을 비비 꼬는 걸까. 어디가 아픈 것 같았다.


“예리 부모님은 오늘 안 오셨어?”

“오늘 일이 있으셔서 못 오셨어요.”


아무래도 큰 기업을 이끄시다 보니 바쁘신 것 같았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평생 한 번뿐인 순간들을 가족과 같이할 수 없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일 것이다. 왠지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저기···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될까요?”

“그래 오빠 다 같이 한 장 찍자.”

“아니 너는 말고···”

“어?”


미호에게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수줍음이 많은 친구인 것 같다. 미호가 좋은 친구를 만나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


잠시 후.


“아저씨, 이 사진 누군지 기억해요?”

“그때 그 학생? 어떻게 아가씨가 같이 사진을 찍으셨습니까?”

“미호 오빠에요.”

“네 미호 아가씨요?”

“이사람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해 오세요.”

“알겠습니다.”


예리의 눈이 먹잇감을 찾은 맹수처럼 빛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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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및 작가의 말 20.09.16 108 0 -
11 먹잇감(2) +1 20.09.22 83 3 13쪽
» 먹잇감 20.09.21 73 1 12쪽
9 첫 친구 +1 20.09.20 89 3 12쪽
8 아이 이길 바랬다 +1 20.09.20 99 1 14쪽
7 조밥이야 20.09.19 101 1 13쪽
6 넌 뭐야? +1 20.09.18 118 2 13쪽
5 독립 20.09.17 109 0 13쪽
4 나의 어머니 +2 20.09.17 122 2 13쪽
3 가족이란? +2 20.09.16 129 2 12쪽
2 백수 하고 싶다 20.09.16 142 2 12쪽
1 프롤로그 +1 20.09.16 17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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