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om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9.17 23:25
최근연재일 :
2021.06.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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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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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심심한 날의 분노

DUMMY

가족. 부모. 형제.

더 길게 가면 조부모.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 조카.

뭐하나 걸리는 게 없네 씨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조경수. 1978)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니, 인상적이라고 하기 뭐하구만.

다 읽지도 않았으니까.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끼의 자서전이 있어. 번역자의 머리말을 읽어보기 전까지는 누군지도 몰랐어. 우리가 모르는 문학가는 많고, 우리가 미쳤다고 그걸 다 읽고 죽을 순 없잖아? 고리끼. 고리끼. 일단 이름이 어디서 좀 들은 것 같고 이름도 특이하잖아. 고리끼를 코끼리로 기억하는 사람도 좀 있을걸. 음...


러시아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부패 자본주의 색채’란 이름으로 문학가 예술가들을 숙청하고 이미 죽은 작가들도 명예적으로 숙청 격하하고 금서로 지정했지.

하지만 소설 내용이 극도로 힘든 노동들이 나열되는 고리끼의 소설은 프롤레타리아 노동자혁명에 어울린다 생각했고, 소비에트정부는 그를 인민작가 인민영웅으로 추대했어.


그 자서전에서 고리끼는 어려서부터 노동을 시작해 힘겹게 살다 우연히 작가가 됐다. 원고를 보내도 출판사들은 ‘이런 하층민의 저급한 생활’을 왜 출판해주나 번번이 거절했다. 현대에 [사살주의]라는 개념이 오기 전까지, 서구사회의 문학과 연극은 좀 표현주의적이고 격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리끼의 글은 너무 리얼한 노동자들을 그리고 있었다.


고리끼가 어렸을 때는 황제와 귀족이 있던 제정러시아 말기야. 서민은 귀족 층을 떠받치는 부속물에 불과했지. 고리끼가 처음으로 노동을 시작한 건 초등학생 때로, 열 살 정도 된 고리끼는 증기선에서 화부 보조로 몇 달을 일해. 그게 노동이야? 학대에 가깝지. 죽을 지경이었지. 일하다 기절도 하고.


당시 러시아 사회는 하급노동자를 때리고 욕하고 인간 취급도 안 하던 시절이야. 처음으로 처절한 노동을 경험한 어리고 어린 고리끼는 반년 만인가 집으로 돌아와. 고리끼 부모는 잘 언급되지 않아. 죽었는지 이혼했는지 나오지 않고 조부모가 고리끼를 키웠어. 고리끼는 비뚤어지고 거칠어졌어.


돌아온 날,

밤길을 어린 고리끼와 할머니가 걷는 장면이 나와.


고리끼는 끔찍한 노동의 시간을 보내고 오랜만에 따스한 대접을 받아. 고생한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할머니가 걸어가는데, 고리끼가 질문해.


“할머니는 왜 나에게 잘 해줘?”


당시 ‘잘해주는’ 사람은 할머니가 유일했어. 어린 고리끼는 증기선의 경험으로 몸과 마음이 이상해졌어. ‘이상하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지. 노동이란 강제적인 강압, 호통, 구타 일색이었어.


난 그게 뭔지 알지만 말로는 힘들어.


세상의 밑바닥에 떨어져 개 좆도 아님을 깨닫는 시간. 어릴 적 꿈은 어림도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나고.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나 충격을 받지. 닥치기 전에는 몰랐던 거야. 그 힘든 시간 속에 세상 대부분 사람이 자신에게 잘 ‘안’ 해준다는 걸 깨달은 거야. 집에 오니 새삼 할머니란 존재가 얼마나 자기편이었는지 깨달아.


할머니가 대답하시지.

“어린아이들은 다 귀엽다만, 핏줄이란 건 어쩔 수 없나 봐. 난 네가 제일 마음이 가.”


그래. 세상 사는 맛이 이런 것이지. 아무리 뭐래도 이런 건 누구라도 있어야 하는 거지. 아무리 불행해도 누군가가, 아무리 힘들어도 딱 한 사람이라도 다정한 사람이 필요해. 그 사람 인생에 정말 중요한 거지. 지랄하는 부모들은 제 분에 못이겨 아이들이 평생 지우기 힘든 표본을 심어줘.


난 없어.

한 놈도.

한 년도.


그리고 난 지금 집을 위해 정말 노력하지만, 감당이 안 되는 것들이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황하는 고아 같은 기분이 들어. 여전히. 뭐가 비어 있는 상태로 자란 거야. 애를 낳자 아내는 나더러 항상 그랬지.


“애 앞에서 인상 좀 펴! 제발!”


내가 그런 거야. 그런 표정인지 몰랐던 거야. 진심으로 사랑하는 애와 같이 있으면서까지 말이야.


뭘 경험해 봤어야지.


잘해준다는 말보다는 너무 자세하고 세밀한 것들이 많아. 아내와 아이의 맘을 못 읽는 거야. 남의 것만 봤지. 그것도 텔레비전에서. 웃기지. 현상은 보지만 그것의 자세한 걸 몰라.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


하지만 포기하지 않아. 애가 나 같은 인생을 산다는 건 끔찍해. 내가 똥 냄새도 더럽다는 순사 짓을 하는 것도 가족 때문이고. 돈만 벌어다 준다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란 건 이제 대중적이지. 맞아. 옳아.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구시대적으로 젖 같았던 제 애비와 애미를 여전히 흉내는 사람도 많아. 텔레비전 SOS 프로그램. 그 사람들은 자기가 뭘 하는지 몰라. 애들을 그렇게 해도 나쁜 건지도 몰라.


즉, 제 자식에게 개차반인 인간은,

손자 손녀에게까지 뼈아픈 것을 물려주는 거야.

자기 포함해서 3대를 친히 망치는 줄 몰라.


더 갈 수도 있지.

손주가 제 할애비와 똑같이 하고 있으면 가관이겠지?


항상 웃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

그러려면 내가 웃어야 하는데,,,


그러나 나도 인생이 있지 않겠니?

그렇게 살아온 것도 내 인생 아니겠니?


나 자신에게 비어진 부분은 영원히 안 채워질 거란 생각이 들어.

아내와 아이들에게 온통 신경을 쏟고 나서 문득, 혼자 있으면 그래.


나는?

그럼 나는?


그렇다고 못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래. 난 뭔가.


나의 빈 부분은 어떻게 채워야 하나. 술을 퍼마신다고 안 채워지는 거 누가 몰라. 모르면 병신이지. 술은 그냥 술 먹는 시간을 즐겁게 하는 것뿐이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잖아. 어쩌면 술은 술 먹고 떠들어서 좋은 것 같다.


요즘 자꾸 생각나.

나는?

그럼 나는?

나는...

나는 사람 아닌가...

나는 권리가 없나...

날 망친 새끼는 원망할 칼로리도 아까워.

그 새끼가 만든 세상에서 자란 버릇,

그 사라지지 않고 힘든 나는?

나도 좀 떡 하나 줘라 씨발.

내가 불쌍하단 소리가 아니나,

그냥 떡 하나 달라고.

나는 입 없냐!


나이 다 차서 기력 떨어지기 전에,

세상을 박살 내고 싶다.

나는 범죄를 막는 경찰관이니,

껀수만 걸려봐라.

내가 누군지 보여주지.

내 목숨이 달아나도 격하게 한판 바란다.


누구 한 명 결정적일 때

그런 말 한마디 해주면 안 됐나.

“난 널 제일 좋아한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이 흔한 말이 그립다.


어린애가 멍청하게도 평생을 기억할 그런 말 한마디.

짬을 내서 구라라도 한번 속삭여주지 그랬어. 누구라도

돈 드냐. 씨발놈들아?


문득 나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며 날 깨달으면,

텅 빈 기분이 든다.

그래도 난 병신같이 잘하는 남편,

좋은 아빠가 될 거다.

난 비극의 사슬을 끊어야 해.


어쩌면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일지도 몰라. 내일도 뭐가 터질까 항상 불안 불안하다. 그래서 오늘이 즐겁지 않고 행복과 거리가 멀어. 불행?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보다는, 재미가,, 재미가 없는 게 더 큰 문제 아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폭발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가 새롭게 결정하는 것이 없다. 온통 과거에 연결된 것밖에. 나도 그 안에서 여러 책임이 있고 뭘 저지르기도 했다. 나도 과거의 변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른다. 눈을 떠보니 이렇게 살고 있다. ‘눈을 뜬다.’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모른다. 아예 눈을 뜬 채로 사는 놈들을 많이 봤으니까. 위험한 놈들이지. 내가 있던 꿈은 ‘사회’였다. 인간관계였다.


“아, 코카콜라 마시고 싶어.”

와이프 없을 때.


삶의 주인이 나인지 의심스럽다. 누구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겠지. 난 아니야. 생각해보니 내가 진심으로 바라서 한 일이 없어. 너무 없어. 먹고 산다. 먹고 산다. 그거지.

‘왜’라는 걸 물어보면 바보 취급당한다.


남들이 보면 내 삶은 적당히 안정적이다. 그리고 거미줄에 묶여 있는 것 같다. 생선 좌판의 동태처럼 꼼짝을 못 하겠다. 거미줄에 묶인 나. 어느 줄 하나만 당기면 내가 막을 수 없이 출렁이는...


내 위에 누가 날 누르고 지시하는 것이 싫다. 그나마 머리를 숙일만한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나보다 못하고 직급만 높은 놈들 많아. 재 주옥 같은 아가리들.


세상의 눈이란, 안 뜰 수도 있다. 못 뜰 수도 있다.


나는 떴다.


눈 뜨니 더 그런 실체가 물리적으로 보이고, 확 까부셔 버리고 싶다.


누구나 떠드는 자유로운 영혼, 자유로운 인생. 존재나 하는지 모르겠다. 난 놓고 싶고, 언제든지 놓을 수 있지만, 주변에서 놓지 못하도록 잡고 또 잡는다. 그 거미줄 와중에서 나는 연기하고 있고 진심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난 선한 사람 연기를 하는지 모른다. 난 적당히 그저 그런 경찰관이다. 마지막 쇼부로 범죄와 결단을 보고 싶다. 속에서 꾸물꾸물 근질근질하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다 끊는 방법은 너무 과격한가.

내 과거와 이름까지 까먹고 싶다.

연관된 모든 사람과 끊어지고 싶다.


지워진 채로 새롭게, 다만, 그 시점부터는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만 충실히 따라서... 살아도 살고 싶다. ‘의미’란 것조차도 다 억지로 만들어진 것. 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억지.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맞춰왔다. 이 사회적 연기를 연기인 줄도 모르게 까먹어가는 사람이 많지만, 난 이미 깨였다.


‘뭔가 화끈하려면 권총 받아서 나올걸.’


이 삶은 뭔가. 이게 나인가. 저게 나인가. 나란 건 여기 있는 건가? 생각의 주체로써 완벽하게 사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가. 꿈에 오래 있었더니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 하고 싶은 걸 떠올려보니 중구난방 그저 허접.


난 인생을 즐기지 못해. 사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나란 성격도 그 굴레 안에서 나왔어. 난 내가 최고인데 너무 죽이며 살고 연기해.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나.


이걸 허무라고 표현하면 듣는 사람 얼마나 이해가 편하겠냐 만은, 허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더는 연기력이 안 나와. 연기가 불편해. 연기가 내 인생은 아니야. 결코, 아닌 거다. 연기에 숨어 있다가 어이없이 죽는다. 인생이란 단어조차도 가짜다. 그럴듯하게 꾸민다.


피카소의 그림이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것이지, 우린 피카소의 그림을 강제로 설명을 듣고 비싼 거라고 이해까지 해줘야 돼? 피카소의 그림이 나에게는 0원이라면 날 이상하게 보겠지.

(물론 공짜로 주면 팔아먹어야지. 난 분유 값 전사다.)


너희들은 모르지.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피카소는 꺼지고, 내 캔버스에 뭘 담으려고 했어야지. 난 공포의 독재자가 되어 내 뜻대로 남발하며 살아도 만족할까 말까다.


이제부터 나를 믿다가, 날 우습게 보다가 큰 탈 날 놈이 누군지 보자.


군대 말로 시범 케이스 하나 걸려라. 내가 누군지 보고 싶다.


하지만 지치지 말아야지.

노력해야지.


‘오늘 같은 날, 저 집에서 뭐가 터지면 안 되겠니?’


‘저 안에 그 자식. 내가 죽이고 나오지 않을까 날 감시할 심정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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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산에 살리라 1 21.04.08 210 6 11쪽
64 28사 병장 2 21.03.25 217 5 12쪽
63 28사 병장 1 21.03.18 232 2 12쪽
62 글록 파이터 2 21.03.11 157 2 11쪽
61 글록 파이터 1 21.03.04 153 3 12쪽
» 심심한 날의 분노 21.02.25 155 2 12쪽
59 섬진강 3 21.02.18 145 1 12쪽
58 섬진강 2 21.02.09 168 3 11쪽
57 섬진강 1 21.02.04 191 5 11쪽
56 이성적 배신자 3 21.01.25 125 2 12쪽
55 이성적 배신자 2 21.01.18 133 4 12쪽
54 이성적 배신자 21.01.11 152 4 11쪽
53 믿습니까!!! 2 21.01.04 120 3 12쪽
52 믿습니까!!! 1 20.12.28 137 4 12쪽
51 폭력의 서막 2 20.12.21 118 3 13쪽
50 폭력의 서막 1 20.12.16 15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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