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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pin
작품등록일 :
2020.09.20 18:03
최근연재일 :
2021.06.19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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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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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절규의 동굴

DUMMY

69화 절규의 동굴


머시너리 일행은 푸른 산맥에 처음 들어섰을 때 무척 상쾌한 기분이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드물었고, 멀리서 겹겹이 보이는 산(山)은 풀이 적어서 매끈해 보였다.


주변의 풀잎에는 이슬이 맺혔고, 골짜기에는 탁 트인 곳이 많아서 일행은 시원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일행은 ‘절규의 동굴’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에 길을 헤매는 일도 없었을뿐더러, 안솔의 감각 덕분에 몬스터와 마주치는 일조차 드물었다.


게다가 이신우가 그들에게 지급한 탐사 장비가 상등품인 덕분에, 일행은 야영도 꽤나 할 만하다고 느꼈다. 이유정과 안솔은 0년 차 사용자답지 않은 훌륭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것들 역시 이신우가 지급한 돈으로 맞춘 것이었다.


그러나 며칠 동안 산지와, 분지, 협곡을 여러 차례 지나면서 일행의 피로도는 점차 높아져갔다.

가장 힘겨워한 사용자는 역시 안솔이었다. 그녀는 ‘절규의 동굴’이 가까워지면서 강해진 언데드의 기운에 피로한 기색이 역연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계곡을 내려가면 동굴이 나올 거예요.”

“모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 이런 데서 쓸데없이 마력 낭비하기 싫으니까.”


안소연이 목적지에 접근했음을 알렸고, 고연주는 일행에게 주의를 주었다.

일행에 사제는 안솔뿐이었기에 고연주의 경고는 타당했다. 그러나 이유정과 안솔은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알겠어요.”

“조,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정하연과 신상용은 무척 피곤한 낯빛으로 대답했다.

정지연은 신상용의 로브를 꼭 잡은 채 타발타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9명 중에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차소림과 고연주뿐이다. 평소에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안소연마저도 고단한 기색이다.


“으··· 언니, 못 가겠어요.”

“나 잡아.”


계곡은 구름처럼 뿌연 물줄기가 아래로 쏟아지는 중이다. 바위에는 이끼가 잔뜩 껴 있고, 몇몇 구간은 뛰어내려야 할 정도로 바위 사이의 간격이 넓다.


안솔은 이유정에게 매달리다시피 해서 계곡을 내려갔다. 다른 인원은 순조롭게, 혹은 조심스럽게 발밑을 살피며 계단처럼 평평한 바위를 디뎠다.


한동안 계곡 밑의 돌길을 걷던 일행은 마침내 ‘절규의 동굴’을 발견했다.


“드디어 온 거야? 진짜···”

“이제 시작이야, 집중해.”

“···네.”


이유정은 좀만 쉬었다 들어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연주의 모습이 김수현이 대장일 때와는 아주 딴판이라고 생각했다.


고연주는 본래 매사에 꼼꼼하고 철저한 성격이다. 그런데 김수현이 애들을 팽팽히 죌 때는 그녀가 일행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맡았다. 이유정은 오히려 탐험에 나섰을 때의 고연주가 평소보다 상냥하고 편하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이번 탐험에서 고연주는 농담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장이 된 고연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안소연과 차소림도 필요한 말만 하는 성격이다 보니, 일행의 분위기는 탐험 내내 서먹했다.


‘오빠 빨리 보고 싶다. 차라리 안현이나 신우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유정은 요즘 들어 참기 힘들 정도로 아카데미에 간 동료들이 그리웠다. 그녀는 자신을 데려가주지 않은 김수현을 조금 원망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건 됐으니 빨리 모두를 보고 싶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


“가까운 곳에 몬스터는 없어. 그래도 항상 함정에 대비해야 해. 집중력을 잃지 마.”


동굴 안에서는 끔찍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연주는 일행에 진입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동굴 안에 데스 나이트(Death Knight)와 리치(Lich)가 있음을 일행에게 미리 일러 두었다.


동굴 입구는 바닥이 갈색빛이면서 전체적으로 축축한 느낌이다. 동굴의 왼쪽 벽은 회색빛에 드문드문 이끼가 꼈다. 그런데 오른쪽 벽은 황금빛에 드물게 은빛이 섞여서 마치 값비싼 조각 같다.


양쪽 벽은 겹물결로 굽이치고, 동굴 입구의 윤곽은 삼각형 모양에 가깝다. 통로는 일행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졌다.


“라이트는 지연이만 써.”

“네.”


동굴의 천장은 하얀색과 푸른색이 섞여서 마치 눈과 얼음으로 만든 듯하다. 달리 보면 연푸른 수정 같은 색감이기도 하다. 또한 천장에는 종유석이 달려 있다. 종유석은 사악한 기운을 끌어 모은 양 새까맣게 빛났다.


푸른빛을 내는 마법 물품이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박혀 있지만 현재 작동하는 것은 몇 개 없다. 정지연이 띄운 빛나는 구체를 따라서, 일행은 천천히 탐사를 진행했다.


“전에 브리핑한 대로 동굴의 일부 포인트만 돌 거예요. 최대한 빠르게 공략을 진행하겠어요.”


일행은 사제가 1명뿐이라는 것이 약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애초에 속전속결로 공략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이신우가 넘긴 정보에 알짜 보상이 잠든 지역도 표시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갈림길로 들어선 이후 한참을 걷던 일행은 갯과 짐승과 인간 형태의 동상(銅像)이 깨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유정은 단검을 굳게 쥐었다. 그녀는 여지껏 아무 활약도 못한 것이 분하고 답답했다.


이유정은 안현이 허준영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수련에 열중했다. 그녀는 안현이 돌아오면 그 콧대를 꼭 눌러줄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유정이 그러던 중에, 차소림이라는 강자가 갑작스럽게 일행으로 합류했다.

차소림의 등장은 이유정에게 또 다른 자극이 되어주었다.


‘저 사람도 진짜 강하네.’


이유정은 차소림의 눈부신 몸놀림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더욱 커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이러다가 클랜 내에서 계속 꼴찌를 전전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녀는 김수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약한 탓에 김수현에게 버려지고 마는 악몽까지 꿨을 정도였다.


“레이스가 나올 거야. 준비한 대로 대응해.”


마법사들은 저마다 신성 주문이 깃든 스크롤(Scroll)을 사용했다. 차소림, 고연주, 이유정의 무기에 신성 부여가 적용됐고, 성스러운 빛이 퍼져 나가 동굴을 정화했다.


안소연이 금빛 화살을 쏘아내자, 그것을 신호로 차소림과 고연주가 동시에 레이스에 달려들었다.


안소연의 고유 능력 ‘붕괴의 화살’은 푸른 산맥에서 최고의 효과를 발휘했다. 그녀의 ‘파사(破邪)’는 이번 탐험을 마치고 나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었다.


고연주는 레이스가 다시 부활하는 것을 보고 일행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 그녀는 그림자 군단을 일으켜 한번에 레이스 무리를 처치했고, 부활 주문은 다시 발동하지 않았다.


일행은 한동안 잡다한 언데드 무리를 처치하면서 쉼 없이 전진했다. 안소연은 앞에 공터가 나타나자 일행을 수신호로 멈춰 세웠다.


“아마 여기가 그 마법진이 있는 곳인 것 같아요.”

“스크롤 준비해. 정화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빠르게 마법진을 해체해야 돼.”


일행은 공략에 필요한 정보를 숙지한 상태였다. 덕분에 그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안솔이 신성 주문을 외웠고, 그와 동시에 마법사들이 스크롤을 발동했다.


정신계통의 환혹 마법은 스크롤의 정화 효과와 상쇄되어 효력이 약해졌다. 그 사이에 안소연은 ‘붕괴의 화살’로 천장에 위치한 결계의 핵을 파괴했다. 고연주와 차소림은 마력을 불어넣은 무기를 던져서 마법진을 망가뜨렸다.


마법은 수십 개의 마법진이 정교하게 맞물려서 작동하는 구조였기에, 일행이 핵과 마법진 하나만 파괴했음에도 완전히 파훼되었다.


“비비앙, 지금부턴 마수 군단을 소환해요.”

“알겠어.”


주변의 공간이 꽤 넓어지자, 고연주는 비비앙의 마수 군단을 앞세워서 동굴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데스 나이트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능력을 아낄 생각이었다.


골렘과 언데드, 온갖 함정을 돌파한 일행은 ‘비밀의 방’에서 큰 보상 또한 얻었다. 고연주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느꼈다. 그러나 일행이 마지막 관문인 데스 나이트에 도전하기 전에 이변이 발생했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동굴 바닥이 우르릉우르릉 흔들렸다. 고연주는 이것이 던전의 함정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녀는 일행에 방진을 이룰 것을 지시했다. 마법사들이 보호막을 중첩했지만 동굴의 붕괴를 막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어, 어떡해?”

“꺄~! 아악!”

“에엑···.”


박쥐 시체를 밟은 안솔이 몸서리쳤고, 그녀 옆에 있던 정지연도 덩달아 놀랐다.


신상용은 동굴의 붕괴를 막을 방법을 급박하게 생각했다. 한편으로 그는 동굴이 무너진다고 해서 과연 큰일이 날까 싶기도 했다.


심리적으로는 무척 동요할 만한 상황이지만 냉정하게 계산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지구였다면 이제 죽었구나 싶었겠지만 나는 마법사다. 어떤 상황에서도 머리를 차갑게 해야만 한다.


‘천장 최대 높이가 100m라고 했을 때, 중력 가속도를 9.8, 아니 10으로 잡자. 그러면··· 등가속도 운동에서 t는 루트 20이니까··· 루트 20이면, 45의 제곱이 2025니까 4.5보다 조금 작겠네. 그럼 대략 지면 근처에서 암석 속도는 45m/s라고 생각할 수 있어. 화살 속도가 50~60m/s 정도니까 그래 봤자 엄청 대단한 수준은 아니야. 여기 있는 마법사들 수준이라면 충분히 막을 만해.’


신상용은 홀플레인에 들어온 지 오래된 탓에 자신의 계산이 느려졌음을 한탄했다.

이 바쁜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이 지구로 돌아가면 연구소에 취직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상용 씨, 지금 헛생각할 때가 아니에요. 어서 ‘중력 역전’ 마법을 준비해야 해요. 천장이 무너지면 큰일이라고요. 아, ‘조화의 마방진’으로 ‘중력 강화’를 섞으면 어떨까요?”


정하연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나 신상용은 이마에 주름이 잡힌 채로 고개를 저었다.


“천장이 무너지는 것 자체는 큰일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마법을 계속 얻어맞는 게 문제입니다. 우선 통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중력 조작을 방어 목적이 아닌, 반격 목적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통로요?”

“천장에서 떨어지는 종유석의 충격량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방어 마법으로 버틸 만합니다. 나머지 마법사들은 동굴의 잔해를 이용해서 계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사이에 고연주 님과 차소림 씨가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군요.”

“음··· 그럼 저랑 상용 씨가 ‘중력 역전’이랑 ‘중력 약화’를 섞어서 통로를 만들어요. 지연이랑 같이 비비앙 씨가 보호막을 맡아주세요.”


비비앙은 맡겨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어는 나 혼자로 충분해. 정지연은 라이트나 유지하고 있어.”

“알았어요.”

“할 거면 빨리 하는 게 좋아.”


고연주는 동굴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별 긴장감이 없었다.

그녀는 덤덤한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다만 고연주는 바깥에 있는 적들의 정체에 주목했다.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집단은 부랑자뿐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코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재밌네.’


고연주는 부랑자들 사이에서 절대 맞상대하면 안 될 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녀는 누가 감히 자신을 건드렸는지 얼굴이나 보고 싶다는 심정이었다.


“화살아,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화살을 쏴. 아무 때나 쏘지 말고. 보호막 방어력 올려야 되니까, 알겠지?”


비비앙의 말에 안소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으로 생성한 보호막은 기본적으로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공격까지 막아낸다. 하지만 숙련된 마법사는 보호막의 성질을 변화시켜서 한쪽의 충격만 흡수하게 만들 수 있었다.


마침내, 동굴이 크게 흔들리며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신상용과 정하연은 눈을 맞추고 서로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이 마법 조합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발동에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둘의 호흡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조화의 마방진(Magic Square of Harmony).’

‘중력 역전(Reverse Gravity).’

‘중력 약화(Gravity Weakening).’


일행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잔해들이 속도를 늦추었다.

어떤 것은 보호막 위로 쏟아져 내렸고, 일부는 느릿느릿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비앙은 더블 캐스팅으로 보호막 주위의 잔해들을 치우면서도, 보호막의 범위를 위로 차츰차츰 넓혀 나갔다. 고연주와 차소림은 마법사들이 만든 계단을 타고 민첩하게 위로 올라갔다.


“지금!”


비비앙이 보호막의 성질을 조정한 사이, 안소연이 안쪽에서 화살을 쏘아냈다. 그리고 고연주와 차소림도 보호막 범위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깥의 풍경은 탁 트인 벌판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고, 태양은 동굴 안까지 빠짐없이 모두를 비춘다. 일행은 햇빛이 꽤 눈부시다고 느꼈다.


“어디서 온 애들이니?”


수십 명의 부랑자는 풀밭을 밟으며 슬금슬금 진형의 간격을 넓혔다. 그들은 고작 2명을 상대로도 매우 신중하게 움직이는 기색이었다.


고연주는 나른한 표정을 짓다가 한순간에 태도를 바꾸었다.

그녀는 살기를 뿜어내며, 차가운 눈으로 부랑자들을 쏘아보았다.


“하, 이것들 봐라. 감히 대답을 안 해?”


안소연의 두 번째 화살은 궤적이 휘어지면서 동굴 밖의 부랑자들을 쫓았다. 그러나 그 공격은 부랑자들에 의해 금세 무위로 돌아갔다.


그 틈을 타서 고연주는 은밀하게 그림자를 옮겼다.

그러나 그녀가 그림자와 위치를 바꾸려는 순간, 환한 빛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준비를 제대로 해온 모양이네.’


고연주는 직감적으로 적이 자신에게 충분히 대비하고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일부러 황금 사자의 부랑자 척살대가 푸른 산맥에 가는 날짜에 맞춰서 탐험 일정을 조절했다. 부랑자의 시선이 다른 곳에 쏠린 사이에 안전하게 탐험을 진행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랑자들은 황금 사자의 척살대를 상대하면서도, 이쪽을 귀찮게 할 여력이 있다는 듯했다. 수십 명의 부랑자는 고연주와 차소림, 고작 2명과 대치하면서도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다시 한번 어마어마한 빛과 폭음을 쏟아내는 마법이 발동했다.

고연주와 차소림은 그들에게 향하는 화살과 마법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고연주의 그림자는 환한 빛속에서 무용지물이 되었고, 다수의 폭발 마법이 아래로 떨어지며 비비앙의 보호막을 타격했다.


“야, 이제 더는 못 막아. 빨리 다음 공격 대비해. 나 마수 군단 소환한다?”

“스승님, 죄송하지만 일단 방어에 집중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 씨, 답답하네. 비겁한 자식들.”


비비앙은 정통 마법에 특화한 마법사가 아니다. 그녀는 엄연한 연금술사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전공도 아닌 방호 마법만 사용하면서 굼벵이처럼 계단을 올라야만 하는, 이 거지 같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때아닌 어둠이 찾아왔다.

주변은 한순간에 달도 별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 되어 버렸다.


어둠을 불러온 것은 거대한 보랏빛 결계였다.

결계는 드넓은 벌판과 동굴의 잔해를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무지막지했다.


계단을 오르는 일행은 정지연의 라이트 마법에 의존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마법사들은 적의 마법 공격에 대비해서 보호막을 전개하며 움직였다.


한편 부랑자들은 머시너리의 지원군이 등장하자, 주저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달아났다.

그러나 끈적한 기운이 그들을 감싸며 붙잡았다. 악령들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부랑자들의 발을 묶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는 말을 탄 채로 계속해서 마법을 난사했다.

바람의 칼날이 부랑자들의 몸을 베었고, 검은 벌레들은 부랑자의 옷 속을 파고들어 안에서 폭발했다.


부랑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마법사는 기계적으로 마법을 발동했다.

결계를 뚫고 도망치려던 부랑자들은 불의 장벽에 가로막혔고, 고연주의 단검과 차소림의 창에 찔려 쓰러졌다.


그러나 고연주조차 모든 부랑자를 붙잡지는 못했다. 그녀는 단검을 돌리며 로브를 입은 마법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한편 다른 일행은 완전히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들은 부랑자의 시체가 풀밭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우욱··· 우엑···.”

“보지 마.”


안솔이 구역질할 정도로 시체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벌레에 파먹히거나, 온몸이 난도질당했거나, 색이 검푸르게 변했거나, 불에 탔거나 혹은 여러 장기가 빠진 채인 것도 있었다.


부랑자 무리는 그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음에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도망쳤다. 그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탓에 고연주는 몇몇 부랑자를 놓치고 말았다.


‘웃기는 것들이네?’


고연주는 그것에 신경질이 났다.

그녀는 뒤늦게나마 잔당을 추격하려 했지만,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사는 후드를 덮어쓴 채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가 타고 있는 말도 로브처럼 온몸이 순흑빛이었다.


“누나, 추격조는 이미 보냈어요.”

“···신우?”


고연주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마법사가 이신우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리치라도 이 정도로 불길한 기운을 내뿜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연주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예상한 대로 안솔은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안솔이 두려워하는 것이 이신우인지, 이 잔혹한 풍경인지 몰랐다.


“오랜만이에요, 다들.”


이신우가 후드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고연주를 비롯한 일행을 향해 씨익 웃어 주었다.


“신우야!”


이유정은 이신우에게 달려가다가 어정쩡한 거리에서 멈추어 섰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이신우가 마치 보스 몬스터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얼른 감정을 추스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넸다.


“너 그 옷 뭐야. 완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잖아.”

“그래요···? 그 정도인가?”


이신우를 감싸고 있는 무언가는 재앙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만 같았다. 고연주마저도 그 꺼림칙한 기운에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이건 어때요? 이것 덕분에 빨리 온 건데.”


이신우가 힘차게 말에서 뛰어내렸다.


말은 안장까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이신우가 말의 갈기를 쓰다듬자, 말은 어두운 기운으로 변했다. 기운은 구(球)처럼 뭉친 채 이리저리 서성대다가 이신우 주위를 뱅뱅 돌았다.


“신, 신우야. 오, 오랜만이구나.”

“상용이 형, 진짜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그, 그런데 나, 나도 적응이 안 되는구나. 대체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신우가 웃는 낯으로 머시너리 일행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안목’으로 그녀의 사용자 정보를 확인했다.


‘차소림이라고?’


이신우는 차소림이 왜 여기 있는지 몰랐다.


차소림은 꽤 나중에 머시너리에 합류하는 인물이다. 설마 이 시기에 뮬에 있었을 줄이야. 연주 누나가 데려온 건가?


그는 고연주에게 잠깐 의문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곧 얼굴을 굳히고 고연주와 마주 섰다.


“연주 누나, 대모님한테 정보를 준 사람이 누나죠?”

“그건 어떻게 알았어?”

“저도 정보원이 생겼거든요. 하여튼, 일이 복잡하게 됐어요. 어쩌면 대모님이 위험하실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신우는 그동안 일어났었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고연주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검후를 함정에 빠뜨린 게 황금 사자 내부에서 벌인 짓이라고?”

“분명해요. 검후가 도영록이라는 황금 사자 간부의 지원 요청 때문에 협곡으로 갔다고 했어요. 검후는 거기서 함정에 빠졌고요.”

“도영록은 말도 안 돼. 대간부라는 인간이 첩자일 리가 없어. 도영록이 썩은 건 사실이지만 자기 권력은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놈이야. 부랑자 편을 들 리가 없는 놈이라고.”


이신우는 잠깐 무언가를 말할까 고민하는 듯했다.

그는 가라앉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요. 저는 제가 맡은 일을 해야겠죠.”

“갑자기 무슨 소리니.”

“아니에요.”


이신우가 생각을 털어버리듯 고개를 흔들었다.


“신우야, 근데 저거 다 네가 한 거야?”


이유정이 손으로 여기저기 마구 널려 있는 시체들을 가리켰다.

이신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잠도 줄여가면서 왔다고요.”

“고생했어. 그런데 어떻게 알고···”

“솔이 누나랑 비슷한 사람이 알려줬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모두 무사해서.”

“야, 근데 그거 진짜 벗으면 안 돼? 기분 너무 이상하단 말이야.”

“그래요? 음··· 알았어요.”


이신우가 아공간에 로브를 집어넣었다.

로브의 악령은 반항하다가 아공간으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연주 누나, 탐험은 어떻게 됐어요?”

“중요한 건 거의 다 건졌어. 그런데 데스 나이트를 못 잡았어.”

“그럼 마무리해야겠네요. 어서 가요.”

“뭐? 이 상황에 탐사를 하자고?”


이신우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일부만 무너졌네요. 작정하고 무너뜨렸으면 귀찮을 뻔했는데.”

“정말 괜찮겠어? 추격조도 보냈다면서.”

“그 사람들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사람들이 아니라서요.”


이신우가 웃는 낯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표정은 이신우답게 천진했다.

그러나 고연주는 그가 어딘지 모르게 변한 것 같다고 느꼈다.


작가의말

05/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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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68 미니초코
    작성일
    21.05.11 09:13
    No. 1

    흑신우는 강하다 이말이야!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rupin
    작성일
    21.05.11 13:41
    No. 2

    흑신우가 되어버렸군요 ㅋㅋㅋ
    앞으로 활약해주길!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abcdee2
    작성일
    21.05.12 00:09
    No. 3

    신상용의 침착한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나중에 부랑자랑 정면대결 할 때가 와도 과연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재앙의 로브 겨우 한 번 썼는데 벌써부터 이상징후가 느껴지면 후반부엔 얼마나 변할런지 ㄷㄷ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rupin
    작성일
    21.05.12 13:09
    No. 4

    빛상용 ㄷㄷ
    아마도 정지연이 원작과 달리 살아남아서 책임감을 더 느끼는 듯합니다
    지킬 존재가 있을 때 더 빛나는 갓상용... 하지만 살인에 대한 거부감은 원작과 똑같을 듯하네요 ㅠㅠ
    부랑자랑 잘 싸울 수 있을지 저도 걱정입니다
    신우가 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라 금방 영향을 받은 듯하네요
    얼른 자신을 되찾아야겠어요 ㄷㄷ
    댓글 감사드립니다!
    얼른 써야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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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로렌스(Laurence) +4 21.05.17 90 4 16쪽
72 71화 세 번째 탐험을 마치다 +4 21.05.15 116 4 20쪽
71 70화 절규의 동굴(2) +4 21.05.12 91 4 17쪽
» 69화 절규의 동굴 +4 21.05.10 97 5 21쪽
69 68화 검후(劍后) 남다은 +4 21.05.08 117 4 13쪽
68 67화 사라 제인(Sarah Jane) +4 21.05.07 111 7 21쪽
67 66화 흉금(胸襟)을 털어놓다 +4 21.05.05 103 4 12쪽
66 65화 선택하다 +6 21.05.03 110 4 14쪽
65 64화 예언자를 만나다 +4 21.05.02 114 3 15쪽
64 63화 영입 성공 +2 21.05.02 106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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