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으로 들어가다(Memorize 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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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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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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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9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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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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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두 번째 회상

DUMMY

73화 두 번째 회상


남 대륙 중앙 대도시 웨이지.


메를리누스는 발코니(Balcony)로 나와서 아름다운 성(城)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음유시인의 노랫소리와 악기 연주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마리포사 성 곳곳에는 관목과 덩굴이 어지럽게 자라났다.


시선을 조금 먼 곳으로 보내면, 미로 같은 정원(庭園)이 있다. 정원의 풀들은 성의 다른 장소와는 달리 깔끔하게 손질된 상태다. 그러나 메를리누스는 정원사의 가위질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저 강박적인 미로정원을 마주할 때면 머리가 얼떨떨했다.


정원 중앙에서는 커다란 분수가 물을 뿜는 중이다.

붉은 장미는 분수 주변을 둥글게 둘러쌌는데, 분홍색 장미는 더 큰 원을 그리며 그 붉은 꽃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메를리누스는 생각했다. 여행자가 멀리서 마리포사 성을 바라보면 이곳은 마치 산(山) 같을 것이라고.

키 큰 나무와 난만(爛漫)한 꽃밭으로 둘러싸인 이 성채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였다.


베누스 가문의 본성(本城)이자, 에트루리아 왕국의 왕궁인 마리포사는 긴 전란 속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메를리누스는 다른 대륙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가 흔치 않음을 알았다. 북 대륙과 서 대륙에서 거주민의 영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메를리누스는 남 대륙의 사용자 중에서 홀플레인의 역사에 해박한 축에 속한다. 그리고 그는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덕분에 선지자라는 별명이 썩 잘 어울렸다. 남 대륙의 사용자들은 항상 경의를 품고 그를 대했다.


메를리누스는 언제나 다른 대륙에 관심이 많았고, 요즘에는 다른 대륙의 정세에 더더욱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는 로렌스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로렌스는 이미 오랫동안 연락을 보내오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계획이 실패했음을 뜻했다.


정말 로렌스가 죽었다면 서 대륙의 혼란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고, 북 대륙의 강철 산맥 원정도 덩달아 위태로워질 것이다. 서 대륙의 피난민들이 남 대륙으로 향할 것이고, 북 대륙과 서 대륙은 전쟁을 치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 대륙은 수월하게 원정에 나설 수 있다.’


메를리누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선지자라고 부르지만 사실 자신은 그런 인간이 못 되었다. ‘성자(聖者)’라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녀뿐이지 않을까.


몇 년 전부터 메를리누스는 북 대륙에 자신과 비슷한 사용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자신이 선지자라고 불린다면, 그녀는 ‘나이팅게일’이라고 불린다고 했던가.


‘성녀라는 클래스를 갖고 있다고 했지.’


북 대륙의 성녀는 오갈 데 없는 거주민과 사용자들을 거두어 키운다고 했다. 한때는 메를리누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신규 사용자를 보살폈다. 그러나 그는 엘도라를 만난 이후로 다른 사용자를 키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메를리누스는 14살의 엘도라를 만나자마자 그녀가 남 대륙의 희망임을 직감했다. 그 뒤로 그는 엘도라를 육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엘도라의 재능은 대단했고, 그녀는 ‘남 대륙의 수호자’로서 대륙을 이끌어 나가는 존재로 성장했다.


‘설마 그 완고한 요정들을 설득할 줄이야···.’


메를리누스는 엘도라의 올곧고 선한 성품이 아니었다면 결코 요정과 동맹을 맺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요정은 인간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종족이다. 그래서 메를리누스는 인간을 상대하는 것보다 요정을 대하는 편이 더 어려웠다.


그런데 엘도라는 스승의 걱정을 우습다는 듯 떨쳐 버렸다. 그녀는 요정의 숲에 들어가서 요정과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이제껏 남 대륙의 어떤 사용자도 해내지 못한 대단한 성과였다.


“멀리너스.”


엘도라가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노인을 불렀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멀리너스의 옆모습을 볼 때마다 경외심이 피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엘도라, 오늘 수련은 어땠나요.”


멀리너스는 따스한 눈빛으로 엘도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동료 중 누구도 그를 본래 이름대로 불러주지 않았다. 엘도라는 그를 멀리너스라고 불렀고, 어떤 이는 그를 멀린이라고 불렀다.


멀리너스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뭐라고 부르든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유명한 마법사-혹자는 드루이드(Druid)라고도 하지만-에게서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으므로.


“많은 공부가 됐어요. 에르윈의 솜씨는 정말 대단하니까요.”


엘도라가 푸른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멀리너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얼마 전 ‘원탁(Round Table)’에 합류한 에르윈은 요정이면서도 검술에 능했다. 본래 요정은 활과 정령술에 특화한 종족이다. 그런데 에르윈은 특이하게도 검술 실력마저 그리 녹록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멀리너스, 이안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어요. 드디어 그 기록을 완전히 해독했대요. 얼른 같이 가봐요.”

“이제 새로운 대륙으로 가는 길이 열리겠군요.”

“네, 북 대륙에 뒤처질 수는 없어요. 황금 사자가 강철 산맥 공략을 곧 시작한다고 하니까 우리도 서둘러야죠.”


멀리너스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엘도라를 바라볼 때면 언제나 포근한 마음이 되었다. 자신에게 손녀가 있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녀에게는 젊고 눈부신 열정이 있다. 그런 그녀의 장점이 단점이 되지 않도록 자신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멀리너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엘도라의 뒤를 따랐다.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영광스러운 자리를 찾을 수가 있다면

눈과 마음에 깃든 영혼의 악을 없앨 수만 있다면

내 생명도 비로소 신들의 운명처럼 고귀해질 것이니

도끼와 검을 들고 싸우자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검은 태양과 추운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


음유시인의 나직나직한 노래는 쉬지 않고 흘러갔다.







*

[회상(Reminiscence)]


“대장,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곱슬머리를 적당히 기른 여자는 김수현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담배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는 바닥에 던져서 짓밟았다.


“너도 한 대 달라고?”


여자는 배꼽이 드러난 옷을 입고 있었다.

김수현은 그녀의 가슴에 시선이 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대장은··· 어째서 저를 받아주신 겁니까.”


여자는 피식 웃었다.


“갑자기 왜 그래. 또 누가 쿠사리 먹였냐?”

“아닙니다. 그냥··· 제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장은 0년 차 사용자들은 안 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저만···”

“믿을 만한 놈 같아서.”


여자가 쪼그려 앉자, 김수현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믿을 만한 놈들만 받는다. 네가 이제 곧 1년 차라고 했던가? 애송이가 벌써 뭘 해줄 거라는 기대는 안 해. 너 우리 캐러밴 들어와서 뭐 느낀 거 없냐?”

“···다들 좋은 사람들 같습니다.”


김수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캐러밴에 들어가서 미끼 역할을 하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0년 차 사용자는 온갖 괄시를 받으면서 굽실거리는 게 일상이다.


처음 이 캐러밴에 들어왔을 때 매일같이 핀잔을 들었던 것도 지금은 그럴 만했다고 인정한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부족한 사용자였다. 그는 대장이 왜 자신을 동료로 받아주었는지가 의문이었다.


‘처음에는 미끼로 쓰려는 줄 알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캐러밴 사람들은 점차 김수현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다.

그에 따라 김수현도 다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캐러밴처럼 실력 좋고 가족 같은 분위기인 곳이 또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었다.


“내가 이래뵈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 넌 누구한테 배신당하면 당했지, 누굴 배신할 사람은 아니야. 홀플레인에서 믿을 만한 동료를 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너도 그걸 곧 알게 될 거다.”


여자가 김수현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떼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내용은 김수현도 이미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바였다.







*

김수현은 과거의 기억을 털어냈다.


그때 캐러밴은 푸른 산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절규의 동굴로 들어선 일행은 둘만 빼고 모두가 전멸당했다. 그리고 대장은 생존자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머시너리는 지금쯤 절규의 동굴 공략을 완료했을 것이다.


일행에는 10강인 고연주가 있다. 그들은 천사의 정보 덕분에 공략을 순조롭게 준비했을 터였다. 게다가 만약을 대비해서 차소림을 찾아보라는 조언까지 건넸다. 클리어를 실패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다. 그때 내게 대장은 하늘 같은 사용자로만 보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녀를 평가하자면 잘 쳐줘야 중상급 수준의 인재에 불과하다. 머시너리에 들어올 최소한의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래도 그녀는 한 캐러밴의 대장을 맡을 자격은 있는 사용자였다. 마지막까지 동료를 구하려다가 데스 나이트에게 온몸이 찢긴 채 죽었으니까. 그녀는 동료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 사용자였다. 실력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당장에 영입하러 갔겠지.


그러나 그때 대장의 판단은 완전한 무리였다. 우연히 발견한 절규의 동굴이었다. 그대로 공략을 밀고 나갔던 건 정말이지 미련한 짓거리였다. 그 데스 나이트만 아니었더라도 공략은 성공했을 테지만.


‘캐러밴이 해체되고 나서는 다연이의 소개로 이스탄텔 로우에 들어갔었지.’


김수현은 1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심호흡을 한 뒤 회의실 문을 열었다. 한소영을 만나기 전에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일찍 오셨군요.”

“혹시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김수현은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했나.’ 하고 후회했다. 지금도 약속 시간보다 20분 전이긴 하지만 한소영은 유달리 약속에 일찍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저도 방금 왔어요.”


김수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한소영 맞은편에 앉았다.

둘은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게 이스탄텔 로우 영입 명단이에요.”


김수현은 한소영이 건넨 종이를 받아들었다.

진수현, 백한결, 구예지, 송희선, 표혜미, 김수정, 이우석. 7명의 이름이 종이에 적혀 있다.


“겹치는 생도가 있을까요?”


김수현은 살짝 의아한 기분이었다.

한편 한소영은 종이를 쳐다보는 김수현을 유심히 관찰했다.


“진수현 생도와 백한결 생도가 겹치는군요. 그런데 이 둘은··· 이미 특별교관이 영입을 성공했다고 보고한 인원입니다.”


이신우는 김수현에게 진수현과 백한결, 맹아라 영입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김수현이 보기에도 영입은 성공임에 틀림없었다. 진수현과 백한결, 맹아라는 이신우의 방에 틈만 나면 드나들었으니까. 특권 남용이라고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말이다.


“이신우 교관님은 머셔너리 로드에게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영입 권한은 로드에게 있다면서요.”


김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소영과 영입 문제로 다투고 싶지 않았다. 진수현과 백한결은 분명 최고의 재능이지만 한소영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은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는 마음을 정하고 입을 열었다.


“우선권을 양보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이스탄텔 로우의 영입 제의를 거절한다면 그때 머셔너리에서 접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군요.”


한소영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신우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자 기분이 이상해지는 듯했다.


‘···근데 한소영 교관님이 부탁하면 수현이 형은 아마 양보할 걸요?’

‘어째서죠? 둘은 재능이 무척 뛰어난 인재예요. 특히 진수현 생도는 겉으로 드러난 성적도 아카데미 수석이고요.’

‘음··· 아마 한소영 교관님이랑 잘 지내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그게 무슨 뜻이죠?’

‘하하, 전 잘 모르겠어요.’


한소영은 인재 욕심이 매우 많은 편이다. 그녀는 이신우가 백한결과 진수현 영입에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담판을 지으러 그를 찾아갔었다.


그런데 이신우는 느긋한 태도로 한소영을 맞아주었다. 그녀로서는 예상 밖의 대응이었다. 이신우는 김수현과 이야기하면 잘 풀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긴 채 도망쳤다.


한소영은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신우는 그녀를 꽤 노골적으로 피하곤 했다.


한소영은 이신우가 수호자의 지위 때문에 자신을 멀리한다고 오해했지만, 사실 이신우는 ‘초감각’이 두려워서 그녀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초감각은 ‘EX’ 랭크였는데, 그것은 홀플레인 안에서 절대 흔한 수준이 아니었다.


“···영입은 포기하도록 하죠.”


한참 만에 한소영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둘을 영입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김수현을 떠보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김수현 쪽에서 한소영이 포기하는 것을 말렸다.

한소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김수현을 마주보았다.


“머셔너리 로드는 공과 사를 좀 더 구분하시는 게 좋겠어요.”

“···예?”


김수현이 눈을 크게 뜨면서 되묻자, 한소영은 거슬린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되묻는 것도 그만하시면 좋겠고요.”

“아, 죄송합니다.”


김수현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탓에 억울한 심정이었지만 곧장 사과했다.

그는 괜히 다시금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근데 이건 제법 의외인걸. 로드는 눈이 까다로운 편인데···.’


구예지와 표혜미는 자신도 잠깐 영입 후보로 고려했을 만큼 괜찮은 사용자들이다. 하지만 송희선, 김수정, 이우석이라는 이름은 의외다. 로드의 초감각은 인재 영입에도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왜 이런 사용자들을 영입하려고 하는 것일까.


“지나친 참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송희선이라는 사용자는 왜 영입하시려는 겁니까? 현대에 있을 때 연예인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특징은 없는 것 같은데요.”

“총무가 행정 업무 볼 사람 뽑으라고 난리를 피워서요.”

“비전투 사용자라면··· 그럴 수 있겠군요.”


김수현은 납득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한소영은 의미심장하게 김수현을 바라보았다.


“머셔너리 로드는 역시 안목이 대단하군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덕분에 제 판단에 확신이 생기네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머셔너리 로드와 보는 눈이 비슷한 것 같아서요.”


‘역시 들켰나.’


김수현은 한소영의 사용자 정보를 훔쳐본 적이 있었다. 최대한 은밀하게 ‘제3의 눈’을 사용했는데도 ‘초감각’에 감지된 듯했다. 그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바로 확신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가까이서 지내다 보니 능력을 사용하시는 모습을 여러 번 봐서 확신하게 됐어요.”


김수현은 한소영에게라면 ‘눈’을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한편 그는 역시 한소영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로드는 내 모든 것을 알아채고 말 테니까.’


김수현은 벌써부터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한소영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연합을 결성한 이후가 되어야 한다. 형과 로드, 그리고···


‘유현아라···.’


김수현은 또 한 명의 사용자를 떠올렸다. 갈색 머리카락을 기르고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주제에 가슴은 누구 못지않게 큰 여인. 그는 김유현과 대화한 뒤로 생각이 변해가는 자신을 느꼈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형의 비판은 매우 뼈저렸다.

2회차는 2회차다. 이미 많은 것이 변했는데 1회차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심정이지만, 만약 정말로 유현아까지 포함해서 연합을 구성할 수가 있다면···


춘추전국시대를 거치지 않고, 북 대륙 최강의 전력으로 강철 산맥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수현은 눈을 빛내며 한소영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

이신우는 고연주에게 많은 일을 맡기고 말았다.


그는 원작을 읽은 탓에 자신이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으면 결과가 나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그가 서부 헤일로와 푸른 산맥, 동부 산맥을 동시에 살피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이신우는 고연주에게 임한나와 남다은 영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는 고연주에게 도영록과 대모에 관한 일 처리도 부탁했다. 그는 자신이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매번 고연주에게 도움만 받는 듯한 느낌이 든 탓이었다. 그는 나중에라도 고연주에게 정말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근데 출발할 때랑은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네.’


이신우는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일행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야영을 위한 천막이 있고, 천막 앞에는 커다란 횃불이 날름거리며 냄비를 데우는 중이다. 사람들은 냄비를 둘러싼 채 신나게 이야기를 나눈다.


김덕필은 음유시인보다도 더 매끄러운 혀를 가진 듯했다. 연혜림은 김덕필의 무용담에 맞장구치느라 바빴다. 다른 이들도 즐겁게 듣는 기색이다. 사라와 아스카만이 이 흥겨운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요새에는 비밀 계단이 있었는데, 부랑자 놈들이 노새를 타고 그 비밀 계단으로 도망쳤어. 그래서 나는 소용돌이처럼 부랑자 사이로 들어가며 도끼를 휘둘렀지. 난 놈들의 시체를 밟으며 계단을 올랐는데, 그때 화살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김덕필은 자신이 왜 ‘부랑자 도살자’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는 도끼를 휘두르며 자신의 활약상을 재현하는 중이었다. 연혜림은 손바닥을 치면서 깔깔대고 있다.


‘저 조합은 뭐야, 둘이 붙어 있으니까 무시무시한데. 관우랑 여포가 같이 있는 느낌인가.’


이신우는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공찬호와 차승현을 쳐다보았다.


공찬호의 모티브가 아마 여포일 거고, 수라마창의 원형은 방천화극일 듯하다. 차승현은 관우 포지션인데 청룡언월도는 안 들고 있는 모양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그런 무기들이 없었다고 하지만, 내가 읽은 건 어디까지나 ‘삼국지 연의’였으니까.


하여튼, 저 두 사람은 전투를 치르면서 서로의 실력을 인정한 덕분에 많이 친해진 듯하다.

가온누리 클랜 조승우와 리버스 클랜 허유리도 마법사끼리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잘 섞여서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잘 된 거긴 한데···.’


아마 일행은 함께 전투를 치른 탓에 동료애가 생겨난 것 같다. 이신우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찝찝했다.


사용자로서의 자신이 지구의 자신과 크게 달라지게 되면, 나중에 닥쳐올 결과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이 그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소설 속의 지구에서 살아간다면 어떨까.’


이신우는 그 선택지도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소설 속의 지구로 가는 일이 가능할지는 불확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원래의 이신우였다.


‘내가 여기 눌러앉으면 원래의 이신우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신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남겠다는 그런 연약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신우의 삶은 이신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세계로 돌아가서 나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신우는 잡생각을 떨쳐내기로 했다.


그는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기엔 너무 이르다. 대격변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왔고, 그 다음엔 부랑자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누가 보면 제로 코드 이미 얻은 줄 알겠네.’


이신우는 빨리 사용자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는 그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작가의말

05/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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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68 미니초코
    작성일
    21.05.20 00:12
    No. 1

    김사패씨 오늘도 은혜를 모르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rupin
    작성일
    21.05.20 13:07
    No. 2

    ㅋㅋㅋㅋ 배은망덕한 수현 ㅋㅋ
    그래도 조금씩 갱생되기를 바라봅니다 ㅎㅎ
    빨리 와주셨네요! 제가 얼른 써야겠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yp******..
    작성일
    21.05.20 09:26
    No. 3

    재밌네요!!건필하세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rupin
    작성일
    21.05.20 13:07
    No. 4

    감사합니다 ㅎㅎ
    열심히 쓰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abcdee2
    작성일
    21.05.20 23:49
    No. 5

    메를리누스? 신규인물인가 했는데 멀리너스였군요 저 사용자 원작에서읍읍!! 아무튼 이후 행보가 기대되는 인물이네요 ㅎㅎ 그나저나 김유현하고 빨리 만난게 효과적이긴 하네요 유현아랑 동맹맺을 생각을 하다니.. 너도밤나무랑 척지진 않아도 끝까지 무시하며 지낼줄 알았는데 많이 유해졌네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rupin
    작성일
    21.05.21 14:47
    No. 6

    아 멀리너스 ㅋㅋㅋ 원작에서 선지자답지 않은 트롤을 해버린 인물이죠 여기선 어떨지 ㅋㅋ
    남 대륙도 힘냈으면 좋겠네요
    네 수현이가 김유현 효과로 생각을 바꿔나가는 중입니다. 서서히 갱생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결말까지 가는 길이 편해질 듯합니다 ㅋㅋ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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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83화 천계 회의(4) +6 21.06.15 76 4 21쪽
83 82화 천계 회의(3) +4 21.06.14 67 4 25쪽
82 81화 천계 회의(2) +4 21.06.12 75 4 17쪽
81 80화 천계 회의 +8 21.06.10 210 5 15쪽
80 79화 레지나(Regina) +4 21.06.09 80 5 19쪽
79 78화 두 번째 통과의례를 마치다(수정) +6 21.06.04 99 4 38쪽
78 77화 마지막 주말 모임 +4 21.06.02 89 4 16쪽
77 76화 메모라이즈(Memorize) +4 21.05.30 82 4 19쪽
76 75화 루시퍼 +2 21.05.30 75 3 17쪽
75 74화 사용자 아카데미로 돌아가다. +4 21.05.28 74 4 15쪽
» 73화 두 번째 회상 +6 21.05.19 104 4 20쪽
73 72화 로렌스(Laurence) +4 21.05.17 90 4 16쪽
72 71화 세 번째 탐험을 마치다 +4 21.05.15 116 4 20쪽
71 70화 절규의 동굴(2) +4 21.05.12 91 4 17쪽
70 69화 절규의 동굴 +4 21.05.10 97 5 21쪽
69 68화 검후(劍后) 남다은 +4 21.05.08 117 4 13쪽
68 67화 사라 제인(Sarah Jane) +4 21.05.07 111 7 21쪽
67 66화 흉금(胸襟)을 털어놓다 +4 21.05.05 103 4 12쪽
66 65화 선택하다 +6 21.05.03 110 4 14쪽
65 64화 예언자를 만나다 +4 21.05.02 114 3 15쪽
64 63화 영입 성공 +2 21.05.02 106 6 13쪽
63 62화 섬광(閃光) 차소림 +4 21.05.01 120 5 15쪽
62 61화 대모의 계획 +6 21.04.29 122 4 16쪽
61 60화 유키즈키 아스카(雪月明日香) +4 21.04.26 120 3 12쪽
60 59화 진수현과 김수현 +6 21.04.25 126 3 16쪽
59 58화 학살자 시몬 +6 21.04.23 13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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