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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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끼리94
작품등록일 :
2020.09.2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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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3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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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44장. 데이트

DUMMY

*


“우와...”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모든 이목을 받고 있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오하린...”

“늦었네, 빨리 가자”

“어? 아 응...”


뒤늦게 도착한 나는 멍하니 그녀의 뒤를 쫓았다. 저 옷은 분명...


‘실크 드레스잖아?’


내가 선물로 준 드레스를 입고 온 그녀는 여전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와 얼굴을 본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다니


“진짜 정신 나갔네”

“뭐?”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빨리 가자”

“그래”


그녀가 길을 걸을 때 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몰려 들었다. 마치 마법이라도 쓴 것 처럼 보였다. 신기한 광경... 그리고 그녀에게 시선이 쏠리는 만큼 내게도 시선들이 몰려 들었다.


‘눈치 보여...’


어쩔 수 없지, 그녀와 함께할 때면 언제나 이랬으니까 오랜만이라 조금 익숙하지 않은 것 뿐이다. 나는 그렇게 중얼 거리며 그녀의 옆을 나란히 걸었다.


“오랜만에 입었네... 그거?”

“...기억은 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그거 만드는데 얼마나 고생을... 이 아니라... 생일 선물로 준 거니까”

“그러고 보니... 네 생일은 못 챙겨줬네”

“감옥에 있었으니까, 뭘 너무 신경쓰지마”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내 생일을 챙긴 적이 없다. 그래서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

“?”

“연극은 1시에 시작하니까, 그 전에 점심부터 먹자”

“그래, 뭐 먹을까? 연극은 네가 표를 줬으니까 밥은 내가...”

“내가 이미 예약해 뒀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녀가 이렇게 주도적으로 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조금 멍하니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 이거”

“너 좋아하잖아”

“아니 좋아하기는 하는데...”


나는 라면 가게를 한 번 둘러 보며 말했다.


“그래도 너...”

“랍스터 라면이랑 조개 라면 1개씩이요.”

“예입!”


저런 옷 차림으로 라면 가게라니... 나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나를 배려해준 것 같아서... 아니 배려해준 것 같은 게 아니라 배려해준 거겠지


“여기있습니다~! 랍스터 라면과 조개 라면 옆에 만두 튀김은 서비스입니다!”

“감사합니다.”

“먹자”

“아 그 전에 사장님 여기 혹시 앞치마 없어요?”


나는 앞치마를 받아 그녀에게 건넸다.


“입고 먹어 국물 튄다.”

“비싼 옷이라고 챙기는 거니?”

“그럴리가 있냐 그냥 너 불편할까 봐 그런 거지”


그렇게 말한 나는 랍스터 라면의 국물 부터 떠먹었다. 여전히 맛있었다. 이 라면의 맛은...


‘예전에는 자주 왔었지’


나는 그렇게 중얼 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우아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라면을 먹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내 앞에 놓인 접시에 젓가락을 뻗었다.


“그러고 보니 그 애는 안 만나니?”

“그 애라니?”


내가 묻자 그녀가 답했다.


“그 어린 여자애”

“어린 여자애를 안 만나냐는 말은 뭔가 이상한데... 한소희라면 연락이 안 돼”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지, 밖에 나와서 연락이 된 적이 없다. 뭐 그 녀석인 만큼 별 일 없겠지만...


‘옛날에 사건에 휘말렸던 경우도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해 볼까’


“그래, 뭐 그 애는 건강해 보이니까 괜찮겠지”

“그렇지.. 그런데 너 오늘 이상하다?”

“뭐가 말이니?”

“아니 그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데, 평소랑 분위기가 달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평소랑 다르다는 것 하나 만큼은 확실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왜 그렇게 쳐다 봐?”


그녀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됐으니까 이제 극장에 가자 시간 되겠다.”

“......”


무슨 생각인 걸까? 이 녀석...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중얼 거렸다. 평소랑 다른 분위기 그리고 말투, 평소에 날이 서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한다면 지금은 뭐랄까 조금 상냥한...


“손조합?”

“어? 어 뭐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연극 보기 싫어서 그래? 그런 거라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딱히 정신 없을 만한 상황이 아닌데 그리고 조금 전 부터 뭔가 가슴이 답답하다.


“설마... 아니겠지”


그녀를 만나지 얼마나 오래 됐는데, 그래 아닐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녀와 함께 극장에 들어섰다.


“와아... 여기 자리 엄청 비싼데 아니야?”

“그러게... 선물로 받은 건데, 좋은 자리를 받았네”


우리는 VIP석인 2층 테라스 자리를 받았다. VIP석이라 그런지 일반 좌석이 아니라 소파가 놓여 있었고, 옆에는 음료를 마실 수 있게끔 작은 냉장고도 있었다.


‘연인석 처럼 보이는데...’


기분 탓... 일리가 없나 영락없이 자리가 딱 붙어 있으니까


“이러다 숨막혀 죽겠네”

“응? 뭐라고 했니?”

“아니 그냥 이쪽 이야기”


하아~ 괜히 온다고 했나... 아직 연극은 시작도 안 됐는데, 나는 벌써 부터 후회가 됐다.


‘저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말이지’


나는 그녀의 옆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중얼 거렸다. 차분한 표정, 그녀는 여전했다. 오늘 분위기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내가 평소에 봐오던 그녀 다웠다고 할 수 있다. 시크하지만 주위를 잘 챙기고 배려를 해주는 그런...


“오하린 너...”

“저기 봐, 연극 시작하나 봐”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 말대로 연극이 시작 되려고 하고 있었다. 막이 걷히면서...


연극의 이야기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랬다.


어렸을 때부터 랩터가 되고 싶었던 남자가 나이를 먹고 랩터가 되었지만, 랩터가 되면서 만난 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바뀌게 된다.


남자는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노력가였고,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랩터 생활을 이어 나갔다.


“나는 반드시 1등급 랩터가 될 거야”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얼마 가지 못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점점 랩터 생활에 질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계속해서 동기부여를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이라는 생물이 원래 그렇다. 남자는 결국 점점 나태해져 갔다.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가끔씩 버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을 이어 나갔다.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다.


“괜찮으세요?”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여자였다. 같은 랩터, 하지만 그녀는 1등급 랩터였다. 자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존재, 그런 그녀를 본 남자는 첫 눈에 반했다.


게이트에서 그녀는 사람을 구했다. 평범한 랩터인 남자였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이런 작은 게이트에 그녀가 온 건 이곳에서 얻어야할 아이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녀는 그곳에서 남자를 구했고, 덕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그녀에게 그는 첫 눈에 반했다는 그런 이야기다.


‘평범한 이야기네’


나는 그렇게 중얼 거리며 연극을 지켜봤다. 내가 조용히 연극을 지켜보는 만큼 오하린도 그저 조용히 연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어쩐지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남자는 여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스토킹... 까지는 아니지만, 워낙에 유명한 사람이라 몇 번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보들이 수두룩 했다. 마침 자신과 동갑인 여자였다. 29살, 그런 그녀는 1등급 랩터로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나랑은 너무 다르네...”


남자는 자신과 동갑인 나이에 이미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녀의 프로필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랩터가 된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1등급 랩터가 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고, 팀원들과 함께 으쌰 으쌰 했었다.


하지만 성장하지 않는 자신과는 달리 팀원들은 더 큰 길드로 몸을 옮겼고, 결국 그는 혼자가 되어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어?”

“어라? 그 사람이죠? 그 때 게이트에서 본 우연이네요.”

“...아, 네”


그녀를 만난 그는 술에 절어 있었고, 옷 차림도 후즐근 했다. 친구들과 한 잔 하고 오는 길이었는데 마침 그녀를 마주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한 그에게 그녀는 더없이 상냥하게 말했다.


“술은 너무 마시면 몸에 안 좋아요. 랩터니까 건강 관리 잘해야죠.”

“아... 네에, 네”


그는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쪽팔리고, 한심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걱정해줘서 기쁘고 어쨌든 그랬다.


“아 저기!”


그래서 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혹시... 혹시라도 1등급 랩터가 되면 저와 사귀어 주실래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남자 본인도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어처구니가 없다고나 할까 뜬금없다고나 할까?


“음... 1등급 랩터라 생각은 해볼게요.”


그녀는 고민을 하듯 중얼 거리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런 그녀의 말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반드시 1등급 랩터가 되보이겠습니다!”

“무슨 전개가 이래...?”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 거렸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심코 말이 튀어나와 버린 거다. 아무리 그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렇지 저런 식으로 고백을 한다고? 아니 그 전에 그녀를 얼마나 봤다고 고백을 해?


내가 그렇게 중얼 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옆에 앉아 있던 오하린은 극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래? 나는 나쁘지 않은데...”

“?”


나쁘지 않다고? 하긴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반드시 1등급 랩터가 될 거다. 그래 반드시!”


남자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열심히 노력을 했다. 처음의 모습과 비슷했다. 다시 동기부여가 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가 1등급 랩터가 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 물론 연극이니까, 1등급 랩터가 뿅! 하고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1등급 랩터가 될 수 있을리가 없지’


말이 안 된다.


“하아... 하아...”


부지런한 생활, 계속되는 노력 남자는 꾸준히 노력을 했고 그 결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연출은 나쁘지 않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극의 중반부가 지나고 그에게 한 번더 고비가 왔다. 하지만 그는 그 고비 마저도 넘어서서 1등급 랩터가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고비를 넘어서게 되었다. 가 맞는 표현일 거다.


여자 랩터는 위기에 빠졌다. 게이트에 들어가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찾으러 나섰고, 그 안에서 1등급 랩터로 각성 덕분에 여자 랩터를 구해서 나올 수 있었다.


“흠...”


다른 사람을 위해 강해진다는 건 어떻게 보면 나와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조금 달랐다. 나는 모두를 위해서고 그는 그녀를 위해서지만, 어쩄든 연극은 후반부로 접어들었고 1등급 랩터가 된 그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고백을 하게 된다. 여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그의 고백을 받아 들이고 둘은 사귀게 된다.


그 후,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연극은 마무리 되었다. 해피 엔딩... 이기는 하나 나는 뭔가 찝찝함이 남았다. 왜지?


‘왜 이렇게 찝찝할까... 그가 나와 달라서?’


“갈까?”

“그래... 가자”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3시간 짜리였구나 길기도 길었네...’


3시간을 극장에서 시간을 보낸 나와 그녀는 밖으로 나와 숨도 돌릴 겸 걷기로 했다. 그녀의 옷 차림이 걷기에 딱히 편한 차림은 아니라 나는 입고 있던 져지를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입을래?”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고, 나는 좀 그랬기 때문에 그녀에게 옷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침묵을 하다가 옷을 받으며 위에 걸치며 입을 뗐다.


“방금 연극 재밌었니?”

“뭐... 나름대로? 중간에 좀 이상하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어”


연기도 나쁘지 않았고, 연출도 좋았다. 배우들이 노력을 많이 했겠지, 그렇게 답하자 그녀가 말했다.


“난 재밌었어”

“그래 보이더라”

“...손조합”

“내가 만약 1등급 랩터가 되면 사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뗐고, 그녀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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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78장. 운명의 시작 21.04.10 533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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