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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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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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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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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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lost)

DUMMY

분노의 악마, 레이라.


로스트는 그 레이라를 맞닥트리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극상성이라는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마음을 잃어 다른 이들을 망가트리는 것으로 만족하던 로스트.

마음을 다잡고 다른 이들을 위해 분노하는 레이라.


극과 극에 위치한 힘이지만, 타인에게 힘을 얻지 못하는 로스트는 레이라보다 강할 수가 없다.


“건방지게, 승리를 확신하다니···”


승리를 확신한 여자를 짓밟아서 절망시키는 게 좋다. 로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식사였다.


하지만 그것은, 승리를 확신한 것이, 착각일 경우에만 가능한 식사일 뿐이다.


레이라는 착각이 아니다.

필승이다.

필승이 확실하다.


‘그래도.’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다.


로스트는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휘감았다. 고대 영웅 이프조차 상대해낼 수 없었던 오러 블레이드를 모두 이끌어냈다.


이 힘이라면.


검사로 돌아온 이프조차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왜 이 순간에까지 이프가 떠오를까.


로스트는 알 수 없었지만, 알아낼 수도 없기에 생각을 뒤로 하고 검을 휘둘렀다.

막강한 기운이 휘몰아치며 레이라를 덮쳤다.


하지만 레이라는 그 기운 속에서 로스트의 텅 빈 마음을 보았다.

어째서 로스트는 마음을 잃어버렸나.

그것은 세상이 아프기 때문이다.

아픈 세상이 로스트의 마음을 계속해서 갉아먹어, 결국 없애버린 것이다.


이런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한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분노를 검에 실어 레이라는 휘둘렀다. 세상이 아파하며 울부짖었고, 로스트의 오러 블레이드는 힘없이 흩어졌다.


“큭···!”


로스트는 뒤로 재빠르게 물러났다.

그런 로스트에게 레이라는 천천히 다가갔다.

로스트는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고, 레이라는 천천히 다가오는데도 어째서인지 거리가 좁혀져갔다.


“로스트, 너는 식탐의 악마였지.”


“그래, 그게 뭐!”


“왜 하필 식탐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거리가 좁아질수록 레이라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여간다.

슬퍼하는 것인지, 화를 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로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색욕의 악마이기도 하지.”


“그게, 뭐, 어쨌냐고.”


“왜 하필 색욕일까?”


어느새 거리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다.


“7대 죄악 중에 하필이면 식탐과 색욕이 된 너··· 그 이유를 따져보자.”


레이라의 슬픔과 분노가 섞인 숨결이 느껴진다, 로스트는 그 숨결을 맡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악마의 권능이다. 벗어나야 한다는 것쯤 알고 있는데, 그 어지러움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 벗어날 수 없었다.


“교만은 자신이 이미 훌륭하다고 착각하는 것, 분노는 감정에 삼켜진 것, 나태는 아무 것도 필요 없는 상태, 질투는 반드시 타인과의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탐욕·인색은 소모하기 싫어하는 습성에 가깝지.”


“그런데 식탐과 색욕은 아니다.”


“식탐은 손에 잡히는 대로 먹어치워 속을 채우려고 하지. 색욕도 손에 잡히는 대로 몸을 섞어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너는 마음을 잃어서, 그 잃어버린 마음을 채우고 싶어 식탐과 색욕에 미친 것이 아닌가?


로스트는 그 말에, 잠깐이지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감각만 따져보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기도 한데, 어째서인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을 수는 없으니까.


마음에서 흘러나와야 할 눈물 또한 흘릴 수가 없었다.


“하.”


로스트는 팔에 힘을 줘서 레이라를 밀쳐냈다. 레이라는 순순히 뒷걸음질 치며 밀려났다. 밀려난 레이라를 향해 로스트는 중지를 치켜올렸다.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런데 너무 늦었어. 이미 마음을 잃어버렸는데 어쩌자고?”


레이라가 텅 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텅 빈 마음이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로스트는 자기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강간, 살인, 식인, 전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텅 빈 마음을 잠깐이나마 채울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멈추지 못했었다.


강간이든, 살인이든, 식인이든, 무엇을 해도 텅 빈 마음을 영원히 채울 수는 없었음에도.


“나는 죽어도 돼. 어쩌면 슬슬 죽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 오랫동안 금욕한 채로 살아간다는 것도 지랄 맞은 일이니까.”


그 순간, 로스트에게서 어두운 기운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어도 너한테는 죽고 싶지 않아.”


“그럼 누구한테 죽고 싶지?”


“그건 나야 모르지! 적어도 너는 아니란 것만 알 뿐!”


어두운 기운이 터져 나오고, 사방에 워프 게이트가 열렸다. 워프 게이트에서는 킹 몬스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킹 몬스터들? 이제 와서 이런 것들을 데려와 봤자 무엇을 할 수 있지?”


“너 말이야, 이상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


“······?”


“왜 킹 몬스터가 죽으면 새롭게 쌓아온 마력조차 빼앗기는 걸까?”


그 말과 동시에 분홍색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건 바로, 색욕의 권능을 썼기 때문이야. 나한테 마음을 바친 녀석들의 힘을 전부 빼앗을 수 있지.”


분홍색 기운이 킹 몬스터들에게 닿는 순간, 마력들이 타고 흘러 로스트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로스트는 그 힘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기운이 강해져갔다.


“잔혹한 자가 죽기 전에는 체기를 썼었단 말이야? 그 녀석의 저주가 나한테도 적용되는 바람에 전성기 시절보단 약할 수 있겠지만···”


모든 힘을 흡수한 순간, 레이라는 믿을 수 없었다.

극상성이 사라졌다.

로스트가 흡수한 힘이 하나의 마음을 만들었다.

그 마음은 바느질로 억지로 이어 붙인 탓에 빛조차 흐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생겨났기에 레이라의 극상성이 통하지 않았다.


“이걸 쓸 날이 올 줄은 몰랐네. 프랑켄슈타인 하트라고 이름 붙여봤는데, 어때?”


“너처럼 비극적이군.”


“재미없기는.”


로스트는 모습을 감췄다.

아니, 빠르게 레이라를 향해 달려왔다.

로스트는 전성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이 힘이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방에 끝내겠어.’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프랑켄슈타인 하트는 어디까지나 봉제해서 만든 엉터리 마음일 뿐.

오래 가지 않는다.

채우려고 해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 가짜 마음을 붙인 거니까.


‘아무리 오러 블레이드, 검강의 경지를 넘어가려고 해도 넘어갈 수 없었지만.’


검강의 다음 경지에는 심검(心劍)이 있다.

심검은 심즉살(心卽殺)의 경지며, 죽이겠노라 마음 먹는다면 반드시 죽일 수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 힘은 마음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으므로 로스트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다만, 지금은 가짜 마음이라도 있기에 심검을 사용할 수 있다.


‘진짜 심검은 아니지. 엉터리 심검이야.’


그래도, 엉터리라고 해도 심검은 심검.

심즉살의 경지를 분노 따위가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기껏 얻은 마음으로 허튼 짓이나 하다니. 안타깝군.”


······


마음 없는 심장이 칼로 꿰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라.”


심검의 발동이 취소된다.

그래, 심검이니 뭐니 아무리 특별한 힘을 쓴다고 해도 먼저 공격당하면 무의미하다.

로스트는 심장이 파괴되어 역으로 치솟는 피토를 참지 못했다.

피가 역류하여 식도와 기도를 다 틀어막아 기침을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할 때마다 검붉은 피가 튀어나왔다.


레이라는 아무 말 없이 검을 뽑았다.

로스트는 힘없이 쓰러졌다.

쓰러진 채로 벌벌 떨며 반대편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로스트를 레이라는 슬픈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대로,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아···”


로스트는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피가 튀어나왔고.

억지로 몸을 비틀며 나아갈 때마다 힘은 줄어들어갔다.


그럼에도 로스트는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어디로 기어가는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로스트는 마음을 잃어버렸고, 어느 순간부터 길까지 잃었기에 어디로 가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로스트의 몸이 다시 커져간다.

힘을 되찾아서 커지는 것은 아니었다.

색욕의 힘을 얻은 덕에 아름다워졌던 모습이, 다시 과거의 최유정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색욕의 힘으로 되살아났기에, 죽음이 가까워지니 색욕의 힘이 사라져갔다.


“이프, 이프···”


어디로 가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인생이었다.

어디를 가든 박해 받았고, 사랑 받는 장소는 어느 길로 들어가도 도달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는 하나씩의 안식처가 있다고 하는데, 왜 나에게만 없을까.

그것이 미웠고, 언제부터인가 타인의 안식처를 망가트리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 감정은 질투일까?


모든 죄악은 질투와 연관성이 깊다··· 어쩌면 질투에서 시작된 죄악이 식탐과 색욕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건 죽어가는 로스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저 로스트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안식처를 향한 이정표를 보고 싶었다.


처음 이프를 만났을 때, 로스트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저 이프 또한 먹을 음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죽었다가 색욕의 악마로 다시 부활하고, 베르제브의 식탐을 다시 빼앗고.

끝내 이프에게 복수하려고 다가갔을 때.


이프의 무의식을 엿보고 안식처를 발견했다.


이프의 무의식에는 수많은 병자(病者)들이 들어가 있었다. 세상에 상처 입어 아파하던 이들이 이프라는 안식처 안에서 평온함을 만끽했다.


나도 이프 안에 들어가고 싶다.

이프와 하나가 되고 싶다.


그러고 싶어서 이프한테 더욱 더 싸움을 걸었다. 이겼음에도 죽이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이프는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다. 살려주는 것을 보니 무슨 사연이 있겠지, 그렇다면 무의식으로 이끌 수 있어.


어쩌면, 그건 과대해석이고.

그냥 이프는 검 없이 이길 수 없으니까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찌됐든.


로스트에게 이프는 안식처였고, 이프에게 가는 길은 안식처를 향한 길이었으며, 이프의 존재는 이정표였다.


“한 번만 더.”


가짜 마음이라도 얻은 지금이라면, 지금 이프를 만난다면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 만든 마음인 만큼, 들어가는 게 자신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일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마음이 없었던 로스트인데, 다른 존재로 변한다는 문제가 성립될까?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다시 한 번 이정표가 보였다.

안식처라는 빛이 보였다.


“이프?”


이프가 눈앞에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이프가 있다.

아직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으니까 죽음은 이프에게 당하고 싶다.

그럼 죽음은 개죽음이 아니라 평안한 안식이 될 테니까.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피를 바닥에 질질 흘리며 기어갔다.

아팠지만 아픔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기어갔다.


그리고 이프를 코앞에 두고 말했다.


“나를 죽여줘.”


“이프한테 죽고 싶어.”


“그러니까 제발 이프 네가 나를 죽여줘.”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 아, 이프가 나를 죽여주려는 거구나.


로스트가 기뻐 미소를 지으려는 때,

이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칼렛도··· 루비아한테 죽고 싶어 했는데. 루비아한테 죽었으면 진정으로 평안한 안식을 취했을 테지.”


어라, 아니다.

이 목소리는 이프가 아니다.

이프는 여자인데, 어라, 왜 남자 목소리가.


“유감이지만 난 이프가 아니야.”


─나는 성진혁이다.


그게 로스트가 생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작가의말

Azera님께서 1만 골드를 후원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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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에필로그 +2 21.01.08 392 6 11쪽
104 질투 21.01.08 221 4 13쪽
103 미래 +2 21.01.07 128 4 13쪽
102 이프 +2 21.01.07 129 4 13쪽
101 리릴 +2 21.01.06 139 4 13쪽
100 나태의 저주 (6) 21.01.06 127 4 12쪽
99 나태의 저주 (5) +2 21.01.05 123 4 12쪽
98 나태의 저주 (4) +2 21.01.04 110 4 12쪽
97 나태의 저주 (3) +3 21.01.01 126 4 12쪽
96 나태의 저주 (2) 21.01.01 102 4 12쪽
95 나태의 저주 (1) +2 20.12.31 127 4 13쪽
94 에리나 (5) +2 20.12.30 108 6 13쪽
93 에리나 (4) 20.12.29 88 5 13쪽
92 에리나 (3) +4 20.12.28 108 6 12쪽
91 에리나 (2) 20.12.25 112 6 12쪽
90 에리나 (1) 20.12.25 128 5 13쪽
89 모순 20.12.24 110 5 13쪽
88 가시의 책임 20.12.23 120 4 12쪽
87 질투와 탐욕 20.12.22 125 5 12쪽
» 로스트(lost) +2 20.12.21 320 5 12쪽
85 분노의 악마 +4 20.12.18 120 5 12쪽
84 최유정 (5) 20.12.17 131 5 12쪽
83 최유정 (4) +2 20.12.16 139 5 12쪽
82 최유정 (3) 20.12.15 147 5 13쪽
81 최유정 (2) 20.12.14 119 5 12쪽
80 최유정 (1) +2 20.12.11 12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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