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없이 야구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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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구
그림/삽화
k-young
작품등록일 :
2020.09.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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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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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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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 패스트볼(3)

DUMMY

“여보세요?”

- 금강 선수시죠? ING스포츠의 김선달 대표입니다.

김선달? 그는 유명한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다.

만난 적은 없지만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아는 인물이다.


“네, 안녕하세요.”

- 반갑습니다. 금강 선수. 지금 바쁘신가요?

“아니오. 호텔 체크아웃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그 호텔 커피숍에서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듣던 대로 김선달 대표의 추진력은 대단했다.


“시간은 됩니다만······.”

- 그럼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 사무실이 멀지 않으니 2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김선달 대표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성질이 참 급하다.


***


“금강 선수, 점핑 패스트볼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김선달 대표는 명함을 건네자마자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아뇨. 처음 듣습니다.”

“저도 처음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의 얼굴을 보니 꽤 흥분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혹시 나와 에이전시 계약을 하자는 걸까?

한국시리즈 마무리 투수가 된 나를 영입하려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직원을 보내면 될 일이다. 대표가 아침부터 급하게 찾아온 건 이상했다.

게다가 ING스포츠는 국내 업무보다 메이저리그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에이전시다.


“금강 선수, 메이저리그에 갈 생각 있습니까?”

아직 술이 덜 깼나? 메이저리그라니? 내가?

이럴 땐 침묵이 금이다.

“······.”


“아니 왜 그런 표정을 짓습니까? 메이저리그 얘기하면 선수들 눈이 이렇게, 이렇게 커지던데?”

그가 그렇게 말할수록 나는 눈에 힘을 꽉 줬다.

커지지 않으려고. 괜히 바람 들지 않으려고.


“전 KBO리그에서 겨우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메이저리그라니······.”

“그렇죠. 이제 시작이죠. 그런데 이왕이면 메이저리그에서 시작하자는 겁니다.”

김선달 대표는 내가 할 말을 다 예상한 것처럼 척척 대답을 내놨다. 에이전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전 메이저리그에 갈 실력도 안 되고, FA 자격을 얻기까지 꽤 많이 남았습니다.”

“금강 선수, 스포츠맨이 왜 이리 자신이 없습니까? 내가 괜히 이런 말 하는 것 같습니까?”


어쩌다 보니 난 김선달 대표에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날 멸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뭔가를 북돋고 있다.


“······.”

나는 침묵을 이어갔다. 그의 말이 더 듣고 싶었다.

“FA부터 얘기하죠. 금강 선수는 언제 FA가 됩니까?”


어쩌다 보니 난 취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입단 후 몇 년 동안은 나도 FA 연한에 꽤 신경을 썼다. 4년쯤 지나서는······, 아예 포기했고.


“프로 7년 차인데, 자격연한을 2년 못 채웠을 거예요.”

“거봐요. 금강 선수도 다 계산하고 있잖아요.”


뜨끔했다.

나도 입단 후 3년까지는 서비스타임을 채웠다.

네 번째 시즌의 절반은 2군에 있었으니 연한을 채우지 못했다. 수술을 받은 작년은 통째로 쉬었다.


“아직 멀었죠.”

“안 멀었습니다. 해외진출 자격은 7시즌 후에 주어지잖아요?”

“네? 포스팅을 통하자는 건가요? 메이저리그 팀이 이적료까지 주면서 저를 데려간다고요?”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빠르면 내년에도 갈 수 있어요.”


이쯤이면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에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를 속여서 뭐 얻을 게 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털어봐야 먼지밖에 안 나올 텐데?


“내년 시즌을 정상적으로 치르면 서비스타임 6년이 되죠? 그리고 내년에 올림픽이 있습니다.”

“!”

“국가대표팀 소집기간을 FA 등록일수로 인정받아요. 그러면 네 번째 시즌과 합쳐서 한 시즌이 됩니다.”


이 정도라면 김선달 대표를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몰라서 내 FA 연한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 나보다 더 정확히 계산한 뒤에 이 자리에 나왔다.


“저는 아직 군 문제도 남아있는데요.”

“그러니까 더더욱 올림픽 대표팀에 뽑혀야죠. 동메달 이상 따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가 열변을 토했다.


“큭.”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의 열의에 놀라기도 했고, 그가 말하는 계획이 너무 거창하기도 했다.

“금강 선수, 난 사업하는 사람입니다. 투자 대비 효율을 따져요. 가능성이 없었다면 여기 안 왔을 겁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ING스포츠에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10명 이상 소속돼 있다.

잘하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고, 못해도 FA 대박이 가능한 이들이다.

돈 때문이라면 1군 최저 연봉을 받고 있는 나에게 오지는 않았겠지. 그것도 대표가 직접 말이다.


“제가 정말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난 선수를 비싼 값에 파는 입장이니까요. 중요한 건 구매자의 의지입니다,”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받을 차례다.

“저를 원하는 구단이 정말로 있을까요?”

김선달 대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태블릿PC를 꺼내 이메일을 보여줬다.


“오늘 아침 제가 받은 이메일입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단장으로부터 왔어요.”

이런, 영어 메일이었다.

메이저리그 중계에서 많이 본 Saint Louis 말고는 아는 단어가 보이지 않았다.


“그쪽 단장님이랑 친하신가 봐요?”

기껏 한다는 말이 이 모양이다. 새삼 나에게 실망했다.

“친분이 중요한 건 아니고요. 그쪽에서 금강 선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관심이요? 카디널스 구단이 저를 안다고요?”

“모르죠. 하지만 이제부터 알고 싶어 하는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KBO리그의 모든 야구장에는 투구 추적 시스템이 설치돼 있어요. 오늘 잠실에서 던진 공의 궤적, 회전, 구속을 미국에서 다음날 아침에 알 수 있어요.”


“아······.”

나도 투구 추적 시스템에 대해 듣기는 했다.

그게 그만큼 정확하고 방대한 데이터로 만들어지고, 전송되는 줄은 몰랐다.


“카디널스 단장이 KBO리그에 관심이 많아요. 스카우트 팀으로부터 한국시리즈 데이터를 보고 받았다고 합니다. 금강 선수의 데이터를 본 거죠.”

“제 어떤 데이터 말씀이시죠?”

“4차전에서 김대후 맞힌 공 있죠? 그 데이터를 보고 금강 선수의 자료를 확보하라고 스카우트 팀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사구 때린 걸 굳이······.”

“그러니까 더 흥미로워했다고 합니다. 금강 선수가 7차전에서 던진 데이터도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금강 선수의 피칭 영상도 보내줬어요.”


갑자기 술이 깨기 시작했다. 김선달 대표의 말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요?”“금강 선수가 김대후를 삼진으로 잡은 공을 보고 카디널스 단장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김선달 대표가 이메일을 가리켰다.

왜 자꾸 영문 메일을 보라는 건지. 나는 눈에 힘을 줬다. 그래봐야 아는 단어가 보이지 않았다.


“KK 어쩌고 하네요?”

“네. 금강 선수의 영문이름을 Kum Kang 이라고 알려줬더니, KK라고 줄여서 부르는 겁니다. 그거 말고 여기······.”

김선달 대표는 집요했다. 자꾸 이러면 곤란한데.

드디어 아는 단어가 보였다.


***


7년 전, 서울 라이거즈 사무실에서 신인 선수 상견례가 열린 날이었다.

그해 신인 선수와 부모를 초청해 구단 사장, 단장, 감독이 인사하는 자리였다. 라이거즈 3~5년차 선수들도 몇몇 있었다.


“다음은 2차 8라운드에 지명된 금강 투수입니다.”

사회자가 날 소개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했다.


사람들 앞에서 내 번호가 매겨졌다.

1차 지명도 아닌 2차, 그것도 라이거즈가 8번째로 선택한 신인.

지명을 해도, 안 해도 대세에 지장 없는 선수.


이 자리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수라는 걸 굳이 확인해줬다.

이미 난 지명 순위와 입단 계약금을 통해 아주 객관적으로 등급이 매겨졌는데 말이다.

힘없는 박수소리가 들렸다. 더도 덜도 아닌 딱 2차 8라운드 지명 선수에게 어울리는 만큼이었다.


“금강 투수. 자기 소개해 주세요. 프로에서 이루고 싶은 꿈도 얘기해 주시고요.”

사회자의 말을 듣고 난 잠시 머뭇거렸다.

앞에 소개된 동기들이 같은 질문을 받았기에 나도 준비한 말이 있다.


그런데 2차 8라운드 지명을 받은 선수가 이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썰렁한 분위기는 뭔가? 에라, 모르겠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광진고를 나온 금강입니다. 저를 지명해주신 서울 라이거즈의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중엔 메이저리그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꽤 한참 허리를 접고 있었다.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들자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사장과 단장은 내 얘기를 듣지 않고, 둘이서 속닥이고 있었다. 감독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선배 선수들은 웃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김대후였다.

라이거즈 입단 후 신인왕을 차지한 엘리트. 프로 3년 만에 중심타선을 차지한 천재 타자.

그는 날 비웃는 것 같았다.


짝. 짝, 짝.

사회자가 박수를 치자, 동기들 몇몇이 따라했다.

“네. 원대한 포부 잘 들었습니다. 메이저리그 가기 전에 라이거즈를 꼭 우승시켜야 한다는 당부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하하하.”

사회자의 정리 멘트에 어색한 분위기가 풀렸다. 김대후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고교 1학년 때만 해도 난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키가 187㎝였고, 어깨도 떡 벌어졌다.

열여섯 살에 시속 140㎞의 공을 던진 파워피처였다.


제구도 뛰어난 편이었다. 패스트볼 로케이션이 좋았고, 슬라이더와 커브도 스트라이크 존에 던질 줄 알았다.

성격도 침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덕분에 난 1학년 때부터 2학년 선배들보다 등판 기회를 더 많이 얻었다.

한 스카우트로부터 이대로 잘 성장하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물론 다 믿진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꿈, 성공, 돈, 명예.

언젠가는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난 아버지의 희망이기도 했다. 내가 열 살 때 어머니를 잃은 뒤, 나 하나만 바라보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성공하고 싶었다.


잘 되고 있었다.

더 잘 될 줄 알았다.

빌어먹을 팔꿈치 부상만 아니었다면······.


“어이, 금강!”

상견례를 마치고 구단 사무실을 나오는 길이었다. 누군가 날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그 얼굴이 보였다. 김대후.


“예. 선배님.”

나는 꾸벅 인사했다.

“부모님 안 오셨나봐?”

김대후는 내 주위를 살폈다.

혼자 있는 걸 알면서 굳이 왜 묻는지 모르겠다.


“예. 아버님이 일을 하셔서요. 저도 다 컸으니 안 오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 하긴 크기는 컸지. 그래도 너무 큰 꿈을 꾸지는 마라. 나중에는 그게 더 괴롭거든.”

김대후는 이죽거리며 웃었다.


“네?”

“너 야구 좀 했다며? 팔꿈치 수술 받고서 1년 노는 바람에 지명 순위가 뒤로 확 밀렸다던데?”

김대후는 나에 대해 꽤 아는 것 같았다.

“네.”

“그래서 계약금도 3000만원이었고.”

“······.”


김대후의 말이 날카로웠다.

프로 선수가 되고도 아버지께 경제적인 도움을 별로 드리지 못하는 내 마음을 찔렀다.


“여기 왕년에 야구 못했던 사람 없다. 다 부상도 있고, 사연도 있어. 그러니까 건방은 적당히 떨어라. 응?”

김대후는 손바닥으로 내 뒤통수를 툭툭 쳤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고교 때 ‘줄빠따’도 수없이 맞아봤지만 이렇게 마음이 상한 적은 없었다.


김대후는 배시시 웃으며 돌아섰다.

저벅 저벅.

그의 발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이대로 김대후를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에게 소리쳤다.


“저기, 김대후 선배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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