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없이 야구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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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구
그림/삽화
k-young
작품등록일 :
2020.09.29 14:25
최근연재일 :
2020.11.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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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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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먹튀 프로젝트(5)

DUMMY

“그래? 무슨 일이야? 천천히 해도 되는데.”

윤승환 투수 코치는 여독이 가시지 않아 보였다.

막 잠을 자려는데 내가 그의 방문을 두드린 것 같았다.


항상 그랬듯, 나는 이번에도 좋은 타이밍을 잡는 데 실패했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이 말은 본격적으로 스프링 트레이닝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게 좋았다.

졸린 얼굴의 윤승환 투수 코치는 나를 방으로 들어오라 했다. 객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앉았다.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아무래도 오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윤승환 투수 코치는 하품을 했다. 역시 타이밍 미스였다.


“응. 설마 타자로 전향하려는 거야?”

그는 졸음을 쫓으려 농담하는 것 같았다.

하긴, 내가 투수 중에서는 방망이를 꽤 치기는 한다.

그의 말에 나도 잠시 긴장을 풀었다. 그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했다.


“선발 투수를 하고 싶습니다.”

“응?”

윤승환 투수 코치의 눈이 커졌다.

내 한마디에 시차 적응이 된 모양이었다.


“제가 선발을 하고 싶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경쟁할 기회를 주십시오.”

“음······. 갑자기 선발은 왜?”

그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진지하게 내 말을 들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갑자기는 아닙니다. 투수라면 누구나 선발을 꿈꾸죠.”

윤승환 투수 코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심각해진 걸까?


“선발로 던지면 좋긴 하겠지. 그런데 너는 불펜을 오래했잖아? 공도 꽤 빨라졌고.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던진 공을 또 보여주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네. 그럴 자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너도 잘 알겠지만, 구원과 선발은 준비 과정부터 완전히 달라. 네가 애써 만들어 놓은 걸 잃을 수 있어.”


“프로 1~2년 차에 선발로 8경기 던져봤습니다. 지금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운 것 같았다.

“······.”


내가 할 말은 다했다.

이제 그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다.


“사실 말이야. 난 너를 우리 팀 마무리로 쓸 생각을 하고 있어. 김승헌이 공은 빠르지만 피칭이 단조롭잖아. 여러 면에서 네가 낫고 생각해.”

윤승환 투수 코치로서는 내게 최상의 제안을 했다.

스프링 트레이닝을 시작하기도 전에, 파이터스 간판 선수였던 선배의 자리를 내게 준다는 것이다.


“김승헌 선배, 아직 좋은 것 같은데요.”

나는 괜히 말을 돌렸다.

“나 좋자고 하는 말이 아니야. 네게도 불펜이 좋을 것 같아. 우리나라에 특급 불펜이 앖잖아? 나중에 FA가 돼도, 어설픈 선발보다 확실한 마무리가 나을 걸?”


윤승환 투수 코치의 말이 맞다.

그게 가장 일반적이며, 안정적인 선택이겠지.

난 일반적인 처지가 아니다. 금강불괴의 팔을 얻었지만,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내 미래는 불안정하다. 그래서 남은 야구인생을 걸고 승부수를 띄우려는 것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선발진 구상을 하실 때 저도 후보에 넣어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윤승환 투수 코치도 별 수 없었다.

“그래. 알았다. 감독님과도 상의해볼게.”

“감사합니다.”

나는 윤승환 투수 코치에게 꾸벅 인사했다.


***


나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형, 맥주 한 잔 드실래요?”

룸메이트 박현중이 맥주 캔 하나를 흔들었다.


“아니. 나는 술 안 마셔.”

“어? 그러세요? 축승회 때 드셨던 거 같은데.”

“그때도 맥주 한 캔 겨우 마셨지. 수술 받고 1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 후로 난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 데다, 마시지 않을 이유도 있었다.


“역시 형은 자기 관리가 대단하세요.”

“유리 몸인데 관리라도 잘해야지.”

“아······.”

박현중이 곤란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또 괜한 말을 했다.

툭툭 던지는 내 말버릇을 고쳐야 한다.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다보니, 습관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후배 녀석이 살갑게 다가온 건데, ‘유리 몸’을 들먹이다니. 선배답지 못했다.


“그냥 하는 말이야. 나는 술 잘 못하니까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시원하게 마셔.”

나는 빙그레 웃어줬다.

적성에 맞지 않는 좋은 선배 노릇하기가 쉽지 않았다.

“155㎞ 던진 투수가 유리 몸이라뇨?”기특하게도 녀석은 나를 위로할 말을 찾아냈다.

“계속 잘 던져야지. 그래서 이번 캠프에서는 내가 유리 몸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려고.”

“네?”

“지금 윤승환 코치님 방에 다녀오는 길이야. 선발 경쟁을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어.”

“!”


박현중이 깜짝 놀랐다.

그는 파이터스 5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입장이다. 올해는 선발 로테이션에 드는 게 박현중의 목표일 것이다.

그에게 선발 투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불펜에서 자리잡은 내가 갑자기 끼어든다고 하니 당황할 만도 했다.


“너는 꼭 4선발 해라. 나는 5선발만 해도 생큐야.”

이게 내가 박현중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격려였다.

프로야구 선수는 아침에 눈 떠서 밤에 눈 감을 때까지 경쟁을 반복해야 한다.

상대를 이기는 것보다 동료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우선이다. 내 자리가 있어야 내 몫도 있는 것이다.

녀석도 스물세 살이 됐으니, 이제 그걸 알겠지.


“에이~. 4선발이 쉽나요?”

박현중의 말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파이터스 구단은 지난해 뛰었던 외국인 투수 에릭 테임즈, 폴 헤이먼과 모두 재계약했다.

이변이 없다면, 이들이 1, 2선발을 나눠서 맡을 거다.

3선발은 이용하가 차지할 것이다. 4~5선발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후보가 많았다.

솔직히 박현중은 4~5선발 후보들 중에서 앞 순번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박현중보다도 뒤일 것이다.


그러나 야구가 어디 계획대로 되는가.

계획대로라면 KBO리그 10개 구단 모두가 우승하겠지.

테임즈와 헤이먼이 지난해처럼 잘 던진다는 보장은 없다. 2년 차 젊은 투수 이용하는 리스크가 더 크다.


선발 로테이션이 잘 굴러가다가도 한 시즌이 몇 번씩 펑크가 나는 법이다.

평균 6이닝을 2~3실점 정도로 꾸준히 막는 투수가 있다면, 10번째 선발 후보라도 반드시 기회가 온다.


난 기회를 기다릴 것이고, 찬스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프지만 않다면, 자신 있었다.


“나도 해보려고 하는데, 네가 왜 못해?”

나는 박현중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보려 했다.

선발 경쟁을 하게 돼서 미안한 게 아니라, 그에게 말을 부드럽게 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순서는 상관없어요. 우리 둘 다 선발로 뛰었으면 좋겠어요.”

박현중이 특유의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그는 또 싱글거리며 맥주를 마셨다. 난 그의 성격이 부러웠다.


***


3개월 전, 한국시리즈 우승 다음날이었다.

우승 기념 회식 다음 날, 그러니까 동윤이가 입원한 병원에서 깜빡 잠들었을 때였다.

‘먹튀 프로젝트’ 운운하던 녀석이 이상한 말을 꺼냈다.


- 킁킁. 혹시 술 마셨어?

“응. 어제 맥주 조금.”

- 술도 잘 못하면서.

“그래도 우승 축하연이었잖아? 분위기도 있고 해서.


- 형, 내가 술 마시는 거 봤어?

동윤이가 술 마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술자리에 가도 녀석은 콜라만 홀짝댔다.


“아니, 너 술 못하잖아?”

- 틀렸어.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왜?”

- 우리 가문 내력이야. 내가 할아버지 얘기했지? 도내 씨름 대회에서 우승해서 황소 열 마리쯤 받았다는 거.

“응. 기억 나. 너희 집안이 대대로 피지컬이 장난 아니라며?”


- 내가 야구 시작할 무렵에 아버지가 해주신 말이 있어. 우리 집안 남자들은 장사의 몸을 타고난 대신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게 있대.

“응? 그게 뭔데?

- 술, 담배, 여자.

“헐.”


- 우리 집 가훈이 그래서 금욕이야. 금욕. 크크크.

녀석이 진담하는 건지, 장난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술, 담배, 여자를 가까이 하면 망하는 거야?”

- 그렇대. 형도 내 인대 이식받았으니까 조심해야지.


뭐 이런 황당한 말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동윤이가 건강할 때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건 사실이다. 여자 만나는 것도 못 봤다.


“술, 담배는 그렇다 쳐도? 여자도 못 만나? 결혼도 못해?”

- 우리 집안도 결혼은 하지. 그러니까 나도 태어났지. 크크.

“그럼 결혼할 여자만 만나야 하는 거야? 내 나이에?


나는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동윤이의 몸 일부가 이식된 팔이다.

이 손으로 술잔을 들면 안 되는 것인가?

담배는 원래 안 피우니까 상관없다.


이 손으로 여자도 만질 수 없는 것인가?

난 지금 여자 친구가 없다. 뭐, 상관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다른 문제다.


- 그건 나도 모르지. 그래도 난 형이 멋진 여자를 만나서 연애했으면 좋겠어.

“여자를 만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 크큭. 여자 만날 생각은 있구나.


물론 생각은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랬다.

만날 여자가 없었을 뿐이다. 아는 여자도 별로 없다.

동윤이의 말을 듣고 난 무기한 금욕 생활을 시작했다.


아니지. 나는 원래 금욕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런데 억지로 그래야 한다니 좀 막막하고, 답답했다.

박현중이 쭉 들이켜는 맥주가 참 시원해 보였다.

남에게 금욕을 강요받자, 일탈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도 참기로 했다. 참는 건, 내가 잘하는 거니까.


***


- 형, 떨려?

“아니.”

- 올~. 강이 형, 이제 강심장인데?

“내가 말했지? 강속구를 가지니까 강심장이 되더라고.”

- 크흐. 멋지다.


한 달 반 동안의 스프링 트레이닝은 그런대로 잘 끝났다. 시범경기도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매년 봄마다 두려움을 느껴왔다.

오프 시즌 동안 잘 쉬고, 열심히 훈련한 성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정확히 말하면 겁이 좀 났다.


라이거즈 시절부터 체력훈련 기간에는 난 항상 에이스였다. 체력 평가에서 나는 전 항목 3위 안에 들었다.

그러나 실전 경기가 시작되면 난 구석으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패스트볼 스피드는 해마다 조금씩 감소했다.

열심히 노력했으니 제구와 변화구 구사는 매년 나아졌다. 그래도 실전에서는 별로 소용없었다.


그 기억 때문에 올해 나는 더 신중했다. 겨우내 완벽하게 트레이닝을 했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캠프에서 불펜 피칭을 할 때,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가 시속 143㎞ 정도였다.

청백전에서는 구속을 끌어올리지 않았다.


마지막 청백전에서 윤승환 투수 코치가 약속을 지켜줬다. 날 선발로 등판시킨 것이다.

선발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경기에서 나는 80% 이상의 힘을 썼다.

불펜에서 던질 때보다 더 빠른 공을 던졌다.

득점권에 주자가 나갔을 때는 일부러 더 빠른 패스트볼을 보여줬다.

5이닝 동안 80개를 던지며 3피안타 1볼넷 무실점.


윤승환 투수 코치와 김세진 감독이 깜짝 놀랐다.

선발로 단 한 경기를 던졌을 뿐이지만, 내 피칭은 꽤 강한 임팩트를 줬다.

청백전이기는 해도 파이터스 선발 중에 나만큼 안정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준 투수가 없었다.


외국인 투수 2명은 캠프에서 굳이 힘을 쓰지 않았다. 국내 투수들은 지난해 우승을 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무리했다. 그래서인지 구위가 꽤 떨어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내가 깜짝 호투를 했다. 선발로 70개의 공을 던질 때까지 구속이 떨어지지 않은 게 핵심이었다.

당연했다. 나는 1회와 2회 140㎞ 초반의 패스트볼로 시작했다.

그러다 마지막 5회에서는 148㎞의 빠른 공을 2개 연속으로 던졌다.


미국 스프링 트레이닝을 무사히 마쳤다.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두 차례 시범경기 선발 등판 기회를 얻었다.

첫 경기에서 4이닝 5피안타 2볼넷 1실점, 두 번째 경기에서 5이닝 3피안타 1볼넷 1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난, 서울 파이터스의 홈 개막전 선발 등판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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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먹튀 프로젝트(2) +2 20.10.10 1,313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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