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불패(2)
휴대폰 화면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일단 박지연 아나운서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지난밤에 답장도 못하고 잠들었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먼저 전화까지 걸어온다면?
나는 또 얼마나 어리바리할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보세요.”
- 금강 번호 맞나? 나 김경달 감독이야.
응? 김경달 감독?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말인가?
“아, 네······.”
- 요새 네 경기 잘 보고 있어.
“감사합니다.”
순간 김선달 ING스포츠 대표 말이 스쳤다.
8월 열리는 올림픽 대표팀에 뽑힐 수 있다는 말.
메달을 따면 당장 내년에 메이저리그를 노릴 수 있다는 그 황당한 계획 말이다.
- 어깨랑 팔꿈치 수술 받았잖아? 지금은 안 아파?
“네. 괜찮습니다.”
- 하긴, 괜찮으니까 150㎞ 넘는 공을 던졌겠지. 선발로 던져 보니까 좀 어때?
“편합니다. 컨디션 관리하기 더 좋습니다.”
- 그래. 네 피칭을 아주 인상적으로 봤어.
“감사합니다.”
- 이렇게 잘 던져주니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참 고마워. 허허.
김경달 감독은 정말 날 뽑을 생각인 것 같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그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내가 그런 걸 잘할 리 없지.
“네. 더 잘하겠습니다.”
- 아냐. 지난 3경기를 보면 충분히 잘했어. 한 달 후에 올림픽 예비 엔트리를 발표하는 거 알지?
“네.”
- 그때까지 무리하지 말고 평균자책점 10위 안에만 들어봐. 그렇다면 난 자네를 뽑고 싶네.
여기까지 들었는데도 난 믿기지 않았다.
내가 국가대표가 된다고?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에 도전한다고?
메달을 따면 병역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정말 메이저리그에도 갈 수 있는 건가?
“가, 감사합니다.”
이 짧은 대답을 하는 데도, 난 버벅거렸다.
- 자네, 군대는 안 다녀왔지?
아, 김경달 감독님이 핵심을 찔렀다.
“네······.”
- 그게 문제야.
“······.”
군대 다녀오지 않은 게 문제라니.
금강불괴의 팔을 가졌는데도, 문제가 있는 건가?
- 예전에는 비슷한 기량이면 군 미필 선수를 우선적으로 뽑았는데 말이지. 지금은 반대라고.
“아······.”
- 국가대표가 되어 병역 특례를 받는 것에 대해 여론이 안 좋잖아. 그러니까 더 잘해야 돼.
“알겠습니다.”
-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지금처럼 하면 내가 뽑지 않을 이유가 없지.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김선달 대표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구나.
이렇게 하면 국가대표에 뽑힐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김선달 대표는 어떻게 알았지?
김경달 감독과 사촌쯤 되나?
어쨌든 구체적은 목표가 생겼다.
한 달 후에 평균자책점 10위 안에 드는 것.
보통 상위 10명 중 5명 이상은 외국인이다.
국내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야 한다.
가능할까?
할 수 있을까?
***
닷새 후 서울 파이터스와 대구 히츠의 경기.
나의 첫 완봉승 다음 등판이었다.
대구에서 벌어진 경기에 많은 팬들과 미디어가 관심을 가졌다.
나는 아주 신중하게 던졌다.
오른 어깨 근육이 나흘 내내 뭉쳤기 때문이다.
아픈 건 아닌데, 신경이 쓰였다.
선발 투수로서 3경기를 던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트라이드를 좁혀서 폼이 바뀐 탓일까?
어쨌든 전력으로 던질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1회 말 볼넷을 내준 뒤 히츠의 4번 타자 호세 로마리오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다.
바깥쪽으로 던진 하이볼을 그가 잘 밀어 쳤다.
시속 148㎞의 패스트볼이었다.
올 시즌 들어서 내가 가장 놀란 장면이었다.
아무리 외국인 4번 타자라고 해도, 내 공을 밀어서 홈런을 만들다니.
이후 5회 말까지 나는 5피안타 2실점으로 꾸역꾸역 막고 있었다.
[금강 선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 보입니다. 최고 스피드가 148㎞인데, 그게 홈런 맞은 공이었어요.]
[투구 내용을 보면요. 거의 안 던지던 커브를 15개나 던졌습니다. 슬라이더 비중은 줄었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오늘은 스피드가 나오지 않다 보니까 오프스피드 피치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난 벤치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5회까지 투구 수가 75개야. 6회 말까지 던질 수 있겠어?”
윤승환 투수 코치가 물었다.
오늘 제구와 구속 모두 썩 좋지 않았다.
지난 3경기보다 이닝 당 투구 수도 꽤 많았다.
윤승환 투수 코치로서는 걱정이 됐을 것이다.
“예. 6회까지는 던져야죠. 동점이니까요.”
“그래. 이번 이닝까지만 막자고. 괜히 승리 욕심 내지 말고. 벌써 3승이나 했잖아.”
누가 그걸 모르나.
나는 내 1승이 필요한 게 아니다.
수비와 타선의 도움, 그리고 행운까지 작용하는 승리 투수라는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는다.
선발 투수로서 가치만 보여주면 된다.
굳이 기록 욕심을 낸다면 평균자책점 정도다.
국가대표에 선발된다는 것은 내 계획을 1년 단축할 기회니까.
6회 말 히츠 공격은 2번 타자부터 시작한다.
● 히츠 우타자 김민우
-타율 0.315 / 출루율 0.411 / 홈런 2개
-우투수 타율 0.297 / 우투수 홈런 1개
-강점 : 바깥쪽 상위 18% / 변화구 상위 19%
-약점 : 몸 쪽 하위 31% / 패스트볼 하위 30%
-통산 상대 전적 : 15타수 7안타
김민우는 예전부터 나에게 꽤 강했다.
변화구, 특히 슬라이더 대응이 좋은 타자다.
오늘도 3회 말 두 번째 타석에서 슬라이더를 받아쳐 안타를 만들었다.
3번, 4번 타자 앞에서 그를 출루시키면 안 된다.
슉-.
퍽!
“스트라이크!”
김민우 바깥쪽으로 패스트볼을 꽂았다.
시속 145㎞.
2구째는 변화구를 기다리겠지?
슉-.
퍽!
“볼.”
이런, 빗나갔다.
몸 쪽 패스트볼을 찔렀는데, 살짝 빠졌다.
세게 던진 것 같았는데, 시속 144㎞였다.
“후우~.”
내가 충분히 힘을 쓰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힘을 써도 이 정도인 건가?
3구째는 커브를 선택했다.
오늘 그나마 가장 잘 듣는 변화구가 커브였다.
2스트라이크 이후 패스트볼로 승부를 걸면 된다.
슈욱~.
딱!
[쳤습니다! 우전 안타!]
[타이밍이 늦었는데, 툭 밀어 친 타구가 안타가 됐어요. 김민우 선수의 배트 컨트롤이 좋았습니다.]
[금강 선수, 오늘 운이 안 따르네요. 커브가 잘 떨어졌거든요.]
[오늘 구위가 썩 좋지 않습니다. 투수 교체를 고민해야 할 타이밍으로 보입니다.]
선발 투수에게는 이런 날도 있다.
뭘 해도 안 되는 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날.
지금까지 너무 잘 풀렸으니, 고비가 올 수도 있다.
이 고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오늘 지더라도 망가지면 안 된다.
오늘은 그만 던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난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윤승환 투수 코치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불펜 투수들은 이제야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6회 말까지는 내 몫인가 보다.
파이터스 불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딱!
[쳤습니다! 잘 맞은 타구! 쭉쭉 뻗어갑니다. 중견수! 중견수!]
[아! 잡아냈습니다. 정수민 선수의 파인 플레이!]
[풀카운트 접전 끝에 히츠 3번 타자 구자운 선수가 때린 타구, 하마터면 넘어갈 뻔 했어요.]
[금강 투수의 패스트볼이 가운데로 몰렸거든요. 홈런이 될 뻔 했습니다.]
“후우~.”
마운드 위에서 나는 긴 숨을 토해냈다.
- 형, 오늘 왜 이래?
“그러게······.”
나는 동윤이에게 이렇게밖에 답하지 못했다.
- 스트라이드 때문 아니야?
“잘 모르겠어. 상체와 하체 움직임은 괜찮은 것 같거든.”
- 그러면 메커니즘이 좋다는 뜻인데. 제구도 흔들리고, 구속도 떨어졌다면······.
내가 괜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시즌 중 투구 폼을 바꾸는 건 미련한 짓일까?
금강불괴의 팔을 가진 뒤, 오늘처럼 헤맨 적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스트라이드를 다시 늘려볼까?
● 히츠 우타자 호세 로마리오
-타율 0.290 / 출루율 0.355 / 홈런 9개
-우투수 타율 0.301 / 우투수 홈런 6개
-강점 : 바깥쪽 상위 3% / 패스트볼 상위 7%
-약점 : 몸 쪽 하위 49% / 변화구 하위 29%
-통산 상대 전적 : 9타수 4안타(2홈런)
KBO리그에서 4년째 뛰고 있는 로마리오는 일발 장타를 갖춘 타자다.
특히 우투수의 바깥쪽 패스트볼을 좋아한다.
로마리오는 어퍼컷 스윙을 한다.
바깥쪽 패스트볼을 잘 걷어 올리지만, 높은 코스에는 그나마 약한 편이었다.
난 1회 말 결정구로 하이 패스트볼을 던졌다.
그걸 로마리오가 잘 받아쳐 홈런을 때린 것이다.
로마리오를 상대로 어떤 공 배합을 해야 할까?
제구와 구속이 조금씩 떨어지니까, 자신감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안 된다.
내가 날 믿고 지키지 못하면, 끝이다.
초구는 몸 쪽 커브다.
슈육~.
“스트라이크!”
로마리오는 역시 패스트볼을 노리는 건가?
2구째는 스윙을 하겠지?
슉~.
“볼.”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로마리오는 인내심을 가지고 흘려보냈다.
분명 스트라이크 존 하단을 겨냥했다.
공이 필요 이상으로 잘 떨어졌다.
로마리오가 속지 않았을 뿐, 난 좋은 공을 던졌다.
먼저 몸 쪽 커브로 타자의 밸런스를 흔들었다.
다음에는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시선을 분산했다.
여기서 몸 쪽 패스트볼을 찌를 수 있다면?
타이밍을 뺏을 수 있다.
땅볼이나 내야 플라이가 나올 가능성이 크겠지.
슉-.
내 손을 떠난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향했다.
보더라인으로 잘 붙어야 할 텐데.
어라?
내 공은 몸 쪽을 향했지만 삐딱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에 가까운 공이었다.
딱!
***
경기 후 나는 숙소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스트레칭을 한 뒤 섀도 피칭을 했다.
- 좀 쉬는 게 낫지 않아?
동윤이 목소리가 또 등장했다.
까불지 않는 걸 보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이기든 지든 루틴은 지켜야지. 게다가 오늘 망한 건 밸런스 문제 같아.”
나는 오늘 올 시즌 첫 패를 당했다.
5.2이닝 동안 6피안타 4실점.
투구 수는 86개였다.
선발 투수로 전환한 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 난 아무래도 스트라이드 때문인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 그럼 되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첫 2경기도 너무 좋았잖아?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지금 투구 폼이 너무 편해. 미국 코치들도 과도기라고 했거든.”
- 어렵네. 뭐든 너무 급작스럽게 변하면 불안한데.
어린 녀석이 영감 같은 소리를 계속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부터 올 시즌 초까지 내 피칭을 대단했다.
‘유리 몸’이자 ‘유리 멘탈’에게는 과분한 성과였다.
그 폼에 변화를 준 것은 도박과 다름없었다.
“갑자기 왜 약한 소리야? 메이저리그 가서 크게 먹고, 크게 튀자며?”
- 폼까지 바꿀 줄은 몰랐지.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처음 3경기에서 벌어놓은 게 있으니 좀 까먹어도 돼. 느낌은 나쁘지 않아.”
- 다음 등판 때는 스피드가 잘 나올까?
“한두 번 더 던져보면 알겠지. 제구도 그렇고.”
- 커브는 어때?
“오늘 그나마 커브가 낫던데. 계속 해보려고.”
극단적이었던 드롭 앤드 드라이브 폼을 바꿔 보려는 건 메이저리그 진출을 고려해서다.
수직 무브먼트가 크다는 내 피칭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릴리스 포인트가 더 높아야 한다.
위에서 타자 무릎 높이로 내리꽂는 패스트볼이 궤적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러면 커브와 체인지업 등 수직으로 움직이는 변화구의 효용도 커질 것이다.
혹시 아는가?
포크볼까지 장착하면 더 위력적일 수도 있다.
주무기였던 슬라이더의 비중은 조금 줄여야 한다.
리치가 긴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옆으로 휘는 변화구는 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다.
- 희한하네. 그렇게 비관적인 형이 이렇게 낙관적으로 변하다니.
“내가 말했잖아. 공이 세지니까 깡도 세지더라고.”
- 위이이잉.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전화기가 울렸다.
박지연 아나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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